1, 문무왕이 삼국통일한지 7년만에 돌아가셨으니 많은 일을 하지는 못하신듯 합니다만.... 일단은 한반도 중남부를 접수함으로써 영토가 크게(신라입장) 확장되었으니 당연히 행정제도를 새로 개편하고 군사제도또한 개정하는것이 첫번째였습니다. 물론 문무왕때 바로 완성되는것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백제의 백성들과 고구려의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게 하기 위하여 융화정책을 펼치셨습니다.
2, 일단 1번에서 언급했던 행정제도 개편이나 군사제도 개정, 그리고 민족 융화정책은 기본적으로 해야죠. 그래야 새로 획득한 정복지를 효율적으로 다스릴수가 있으니깐요. 일단 이 세가지는 기본적으로 했을겁니다.
그다음 했을법한 정책이라면 우선 새로운 외교질서를 확립하는 것일듯 합니다. 광개토태왕이 삼국통일을 하신뒤라면(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고구려의 국경이 북쪽 한곳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남쪽에는 적국이 없으니깐요. 당시 일본은 찐따였으며 바다 건너편에 있었으니 뛰어난 고구려의 해군력만 유지해줘도 막을수가 있을듯 합니다. 물론 남쪽을 무방비상태까지는 아니었어도 최소병력만 배치해놓고 북쪽 방어선에 병력을 더 많이 배치하게 될것입니다. 그리고는 바로 피해복구에 들어갈듯 합니다. 신라야 약소국이였으며 우방국 핑계로 강제병합시켰다는 가정에서(가능성 거의없음)라도 백제와의 전쟁에서는 제법 상당한 피해를 봤을듯 합니다. 백제도 만만치 않았거든요. 거기다 북서쪽국경의 후연이 요동방어선에 와서 깔짝대는것도 의식했어야 했을겁니다. 물론 후연은 북위한테 두들겨 맞고 있어서 대규모 공격까지는 못했겠지만 신경 거슬리게 하는 공격정도는 하고도 남았을듯 합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광개토태왕께서 얼마나 오랫동안 제위하시는지에 따라서 시행하는 정책의 수가 변동될듯 합니다. 피해복구와 행정제도 확립을 동시에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니깐요. 거기다 민족융화정책에 군사 재배치에도 시간이 소요되는바... 따라서 광개토태왕께서 삼국통일을 하고난뒤에는 주로 한반도 중남부의 영역화나 행정제도 개편에 주력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정벌은....글쎄요.... 그때즈음이면 북위가 화북지방의 대부분을 접수해버리는데 왠만해서는 안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