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 비누를 만들어 쓸 수 있는 양잿물이 들어 온 시기는 아마 개화기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양잿물을 화확적인 용어로는 수산화나트륨이라 하며 순수 우리 표현으로는 서양에서 들여 온
잿물이라 하여 양(洋)자를 붙여 양잿물 이라 부르게 된것입니다. 예: 시멘트(洋灰 양회) 석회..
잿물이란 나무를 태운 재를 이용하여 물을 부어 만든 것입니다 잿물은 약간 미끄럽고
그 물로 빨래를 하면 일반 물보다 때가 잘 빠집니다 그러기에 옛날 사람들은 불에 탄 재를 이용하여
옷도 빨고 머리도 감고 그랬던 것이며 머리를 감을 경우는 잿물이나 콩을 삶은 물 창포물로
머리를 감았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196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비누나 치약이 흔치를 않아서 빨래비누를 가정에서
덩어리로 된 양잿물을 풀어지도록 끓여서 그 물을 쌀겨에 부어서 비누를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당시만 하더라도 시골 왠만한 읍소재지에는 공중목욕탕도 없었을 때이며 추운 겨울에는
목욕 몇번 못하였습니다 또한 그시절만 하더라도 화장품인 로숀도 귀했던 시절이었기에
그당시는 요즘으로 말하면 로숀 이라는 것을 일본식 이름으로 "구루무" 라 불렀으며 지금 로숀은
부드러운 액체이지만 그당시 구루무는 지금 로숀과 달랐으며 구루무 장사들이 북을 동동 치면서
시골로 팔러 다녔습니다 그러기에 북소리를 듣고 동동구루무 장사가 왔다라 하여
구루무를 통에서 떠내서 팔기에 구루무를 살려면 약간 널도 낮은 병을 가지고 가서
퍼주면 거기에 담아 와서 손발이 트지 않도록 바라 줬던 것입니다 (요즘 핸드크림 역활)
얼굴에 바르는 화운데이숀은 딱분이었습니다.
69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비누가 귀하여 양잿물로 만들어 쓰고 했던 세상이었는데
조선시대는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재를 태운 잿물 빗물 콩물 창포물로 머리를 감고
지금처럼 자주 감은 것이 아니기에 머리에 이가 생기고 옷에도 이가 많아 사람 피를
빨아 먹고 밤이면 호롱불 밑에서 옷에서 이잡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요즘 사극을 보면
옛사람들 얼굴이 깔끔하게 나오는데 그당시는 수염을 깎는 면도기도 없었기에 턱밑에 수염이
길더라도 가위나 칼로 짤라야 하기애 턱밑에 난 수염도 자주 짜르지 못하고 아주 꺼칠하게
다녔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한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수염을 깎는 지금의 면도기를 일본식으로 가마솔 이렇게 불렀는데
그거조차 별로 없어 면도를 자주 못하였습니다 집에 가마솔이 없는 사람들은 이발소에 가야만이
수염을 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