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간섭기에 대해서...ㅇㅁㅇ 굉장히 방대한 내용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라...ㅇㅁㅇ 얼마나 서술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네요 ㅎㅎ ppt라면 발표용으로 하시는 건가요? 아마 대학이시겠죠? 교양수업으로...
서술이 너무 길어지면 내용이 장황해질 우려가 있으니...ㅎㅎ 요점만 간추려서 서술해볼께요~
더 궁금하신 것, 추가내용이 필요하신 것은 의견주시면 추가답변드리겠습니다.
원간섭기의 시작 배경
-'저고여 암살사건'이후 몽고와 고려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이후, 몽고는 6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해왔고 고려는 이를 방어해냈으나 큰 물적, 인적 피해를 입고 많은 문화재가 소실되었습니다. 결국 고려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몽고에 항복의사를 밝히고 몽고는 이를 받아들여 양국간에 평화관계가 맺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몽고제국에서 쿠빌라이가 칸(황제)에 오른 후, 국호를 중국식인 '원'으로 고친 다음부터는 고려에 대한 본격적인 간섭이 시작됩니다. 고려는 아직 무신들의 권력이 강했기 때문에 고려 왕들은 왕권 강화와 무신세력 축출을 위해 몽고의 힘을 빌리고자 몽고와 결혼관계를 맺는 등 각종 노력을 합니다.
그 결과 무신세력의 축출에 성공하고 왕권이 이전보다는 강화되었으나 몽고의 부마국(사위국)이 된 고려는 몽고의 집요한 간섭을 받게 됩니다.
*몽고의 정치적 간섭
- 정치적으로는 사위국인 고려가 원나라와 같은 관제를 쓸 수 없다 해서 군주의 칭호가 '조'나 '종'에서 '왕'으로 격하되었고 '태자'는 '세자'가 되었으며 그 외 각종 정부기관들의 명칭도 이전에 비해 격이 낮아집니다. 또한 일본 정벌을 위해 고려에 '정동행성'이란 기구를 세우고 거기의 장관에 고려 왕을 임명한 뒤 그 밑에 고려인과 몽고인 관리를 두었는데, 일본정벌이 무산된 이후에도 이 기구를 없애지 않고 그 부속기관인 '이문소'를 통해 고려의 내정에 마구잡이로 간섭합니다.
*경제
- 위에서 기록한 정동행성을 통해 일본정벌을 위한 군함 건조, 무기 제작 등을 고려인들에게 떠맡겼고, 몽고 군대와 함께 고려 군대를 파견했기 때문에 인적-물적 수탈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응방'이란 기구를 설치해 고려의 해동청(매)를 바치게 했고, 거기다가 '결혼도감'이란 기구를 설치해 고려 처녀와 남성들을 공남, 공녀로 바치게 했지요. 이 정도면 되었으려나요?^^
*문화
- 원간섭기에 유일하게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문화입니다. 고려는 비록 원간섭기에 많은 수탈을 당했지만 양국 간의 교류를 통해 화약제조기술, 목화 재배 등을 배우게 되고 의학기술 등이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발전합니다. 고려의 문화 역시 원나라에도 크게 영향을 주어서 원나라에서 한때 고려문화를 따르는 방식이 유행하는데 이를 '고려양'이라 했습니다.
다만 문화면이라 해도 긍정적인 면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불교 사찰들이 원나라와 권문세족(원나라의 비호를 받아 성장한 계층)을 위해 활동하는 사찰들로 변질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