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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정치의 정의
- 붕당이란 현재의 "정당"과 비슷한 개념으로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한 정치집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대표적으로 남인, 북인, 소론, 노론 등이 있습니다.
붕당의 근본적 원인과 직접적원인
- 붕당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상대립"이라고 볼 수 있으며,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정치적상황에 있어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기위해 등장한 것이 붕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의겸과 김효신의 대립
- 심의겸과 김효원(김효원인걸로 알고 있습니다.)은 바로 이조전랑 임명문제로 대립하게 됩니다. 결국 이는 붕당의 출현을 불러왔고 당시 심의겸의 집은 서쪽에 있었기에 그를 따르는 무리를 "서인", 김효원의 집이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무리를 "동인"이라 칭하며 등장한 것이 붕당의 시초입니다.
신진사림과 기성사림
- "신진사림"이란 주로 붕당등장 초기에 젊은 층을 즉, 동인쪽을 의미하며, "기성사림"이란 주로 나이가든 층인 심의겸, 성혼의 문인 등 즉, 서인쪽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여립의 모반사건
- "기축옥사"라고도 하며 이사건으로 동인이 강경파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나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동인은 완전히 나뉘게 되어 남명 조식의 학풍을 계승한 북인(남명학파), 퇴계 이황의 학풍을 계승한 남인(퇴계학파)으로 분당됩니다.
정철의 세자 책봉문제
- "건저의 사건"이라고도 합니다. 정철이 선조가 장성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자 책봉을 주장하자 선조의 미움을 사 삭직되었으며 이는 결국 그가 속했던 붕당인 서인의 세력약화를 불러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인과 서인의 대표적 인물
- 동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이언적과 김효원이 있으며, 서인의 대표적인 인물로 서경덕, 심의겸, 성혼 등이 있습니다.
북,남인으로 갈린 계기
-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정여립의 모반사건 즉, "기축옥사"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놓고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갈리게 됩니다.
회퇴변척 폐모살제
- 회퇴변척이란 남인의 영수인 퇴계이황의 문묘를 제거하고 조식만을 받들자는 주장으로 이는 남인의 큰 불만을 이끌었을법 합니다. 폐모살제는 인목대비를 폐하자는 것으로 역시 광해군대 북인들의 주장으로 이는 이이첨을 중심으로 하는 대북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으나 이에 대한 화답은 인조반정(1627)으로써 귀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북,대북 까지
- 소북(온건파)은 영창대군을 따르던 세력으로 영수는 유영경이었으나 광해군 즉위후 소북은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대북(강경파)은 광해군을 지지하던 세력으로 광해군 집권 시절에는 절대권력을 누렸다고 할 수 있으며 영수는 이이첨이었습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