햐...이거 진짜 어디서부터 손을 데야할지....일단 급한대로 티베트인, 위구르족, 내몽골의 몽골족, 허난족, 만 설명할게요. -제가 제일먼저썼습니다. -
1)티베트의 시조의 기원은 진짜 거의 물증과 기록이 남아있지않아서 알수가 없구요. 단지 신화로만 전해내려오고있습니다. 본론으로 넘어가면 티베트는 당나라시대에 가서야 당나라 서중부를 공격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그때부터야 조금씩 나오기시작합니다. 그후 티베트는 거의 활동을 하지않고있다가 몽고족이 원나라를 세웠을때에 인도에서 온 불교를 개량해만든 티베트불교를 전해주면서 원나라와 친한사이를 유지하면서 문화적으로 발전하게됩니다.
그렇게 청나라시대가 되었을때에, 티베트는 안타깝게도 청나라에게 점령당하고맙니다.( 당나람때처럼요!!!!)그후 티베트는 잠시 독립을 이루었다가 무력으로 쳐들어온 중국에 의해 점령당하고 달라이라마(티베트의 정신적, 실질적 우두머리)는 피신을 하게됩니다. 라싸는 중국상점천지가 되고, 농산물도 거의 다 빼앗기고, 천연자원도 아주많이약탈당하고(중국전체천연자원의 1/3에 해당하는 양!)그러면서 비운의 삶을 살다가 달라이라마가 외국에 퍼뜨리면서 그 진상이 알려지게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중국의 강력한 동화정책으로 티베트어는 말살당하고 있어서 정체성을 찾기가 어렵긴하지만 그래두 거의 유일하게 정체성이 조금은 남아있는 민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티베트인들은 히말라야산맥을 넘어서 인도북부 카슈미르 지역등에 거주해서살고 있다고합니다.
2)위구르는 의 힘을 빌리겠습니다. 종교는 이슬람교, 언어는 위구르어, 국기가 있으며
위구르는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활약한 투르크계(
系)의 민족이다.
중국어로는 ‘웨이우얼(
維吾爾)’이라고 표기한다. 744년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제국을 세웠으며, 840년 키르기즈(kirgiz)에게 멸망한 뒤에도 간쑤[
甘肅], 둔황[
敦煌],
투르판[
吐魯蕃] 등지에 위구르 왕국을 세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동서의 문화와 유목과
농경 문화를 융합한 수준 높은 문화를 형성하였다. 오늘날에는 중국 서북부에 있는
신장웨이우얼자치구[
新疆維吾爾自治區]에 대부분 거주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터키,
파키스탄 등에도 분포해 있다.
위구르라는 이름은 ‘연맹, 군집’(Uy+gur)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사서(
史書)에서는 흉노(
匈奴)의 후예로서 흉노 공주와 이리의 교합으로 생겨났다는 민족 기원 설화가 전해진다. 북위(
北魏)에서는 고거(
高車), 수(
隨)에서는 위흘(
韋紇), 당(
唐)에서는 회흘(
回紇), 회골(
回鶻), 송(
宋)과 원(
元) 시대에는 외오아(
畏吾兒)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특히 788년 위구르 카간이 당(
唐)의 덕종(
德宗)에게 간청해 회흘(
回紇)에서 회골(
回鶻)로 바꾸어 불렀는데, 이는 빠르기가 매와 같다는 뜻을 가진다.
위구르는 몽골 고원이 거점이었을 때는
돌궐 문자를 썼으며 서쪽으로 이동한 뒤에는
소그드 문자(Sogdian alphabet)를 기초로 한
위구르 문자를 사용했다. 8세기 위구르 제국에서는 마니(Mani, 216~274)가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에 기독교와 불교의 요소를 결합해 창시한
마니교(
摩尼敎, Manichaeism)를 공식적인 종교로 하였다. 그리고 중앙아시아 민족으로서는 최초로
성곽 도시를 건설하였다. 9세기 투르판 위구르 왕국에서는 불교가 성행했으며 경교(
景敎)로 알려진
네스토리우스(Nestorians)파 기독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의 동진(
東進)에 따라 11세기 이후 이슬람화하여 15세기 이후에는 중앙아시아의 다른 투르크 민족과 마찬가지로 수니(Sunni)파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이슬람교가 중국에서 회교(
回敎)나 회회교(
回回敎)로 불리게 된 것은 회흘(
回紇), 회골(
回鶻)이라 불리던 위구르가 믿던 종교로 알려졌기 때문이라는 학설처럼 위구르는 이슬람교를 중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
위구르는 동서 교역을 매개하며 유목과 농경 문화를 결합한 매우 복합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동투르키스탄 지역에서 이루어진 유적 조사로 위구르의 각종
고문서(
古文書)·벽화 등이 발굴되었다. 쿠차[
龜玆], 투르판[
吐魯蕃], 둔황[
敦煌] 등지에서 발굴된 유물과 유적들은 위구르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동서 문화의 교류와 융합에 기여한 역할들을 보여준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풍부하고 다채로운 구전문학의 전통과 독특한 춤과 노래를 간직하고 있다.
현재 위구르인들은 중국 서북부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에 거의 대부분이 분포하고 있다. 신장웨이우얼자치구는 중국 전체 면적의 17%를 차지할 정도로 면적이 넓으며,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등 8개국과 5,600킬로미터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2003년을 기준으로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총인구는 1,933.95만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가운데 위구르인은 882.35만명이다. 신장[
新疆] 이외의 지역에서는 약 60만 정도의 위구르인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구르는 80% 이상이
톈산산맥[
天山山脈] 이남 지역에 거주하면서 농업과 목축에 종사하고 있다. 카쉬가르[
客什, Kashgar]는 위구르의 문화적 중심지이다.
신장은 예로부터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각국과 밀접한 경제, 문화 관계를 맺어왔다. 그리고 청(
淸)의
건륭제(
乾隆帝, 1711~1799) 때인 1760년대부터 중국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지만, 위구르는 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동안 고유한 문화적 전통을 강하게 유지해 왔다. 때문에 위구르인들은 1930년대부터 중국에서 독립하여 동투르키스탄(Eastern-Turkystan)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민족운동을 전개해 왔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소련(
蘇聯,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 USSR)이 해체되고 카자흐스탄(Kazakhstan), 키르키즈스탄(Kyrghyz),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등 투르크계 이슬람 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위구르의 분리 독립 움직임도 본격화하였다. 오늘날 이 지역은 중국에서 민족 분쟁이 가장 날카롭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3: 내몽골의 몽골족: 이 민족은 분단된지 50년도 안된 곳 중하나입니다. 우리나라 남북한처럼요. 이곳은 현재 몽골이라 불리는 외몽골과 네이멍구자치구(내몽골)지역으로 나뉘어있는데요.예전, 이지역은 과거 일본과 소련의 힘겨루기로 인해서 겨우겨우살아남아있다가, 50년전 소련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인해서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가 러시아에 의해서 독립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지역은 북아일랜드처럼 독립을 못하고 있다고하죠. 그래서 현재 이지역은 내몽골이라 불리고 다른지역은 외몽골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 이지역사람들은 과거 원나라의 후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막화가 많이 진행되고있는곳중 하나인데다가 언어조차 중국어와 몽골어를 혼용해서 쓸만큼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 중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