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이 친일파라고 하는 사람이 정신병자라고 봅니다.
아니면 아주 이상한 사람인지 모르지요.
김소월은 본명은이 김정식이고, 소월은 필명으로 1902년 9월 7일 평북 구성 출생하여 평북 정주에서 성장하면서 한문을 공부했습니다.
남산보통학교와 오산학교 중학부를 거쳐서 배재고보를 마치고 1923년 일본 도쿄 상대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관동대지진으로 인하여 귀국하였습니다.
***이상한 국어선생님께서 김소월이 1923년 일본 도쿄 상대 예과에 입학하였던 것으로 친일파라고 그러면 정말 정신분석해야 할 것 같군요.
1920년 3월 오산학교 재학시 스승이던 김억의 도움으로 '창조' 5호에 작품 '낭인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등 시 5편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습니다.
이때의 시에는 민요조에 기조를 둔 곱고 애달픈 가락이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1922년부터 주로 '개벽'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등이 이 무렵에 발표된 것입니다. 1923년에 '못잊어',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등을 발표했습니다.
김소월은 1924년에는 김동인과 김찬영 및 임장화 등과 함께 '영대'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산유화', '밭고랑 위에서' 등의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1925년 생전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매문사에서 발간하였으며, 시혼의 음영과 정조를 강조한 유명한 시론 '시혼'을 발표하였습니다.
'진달래꽃'에는 표제작 진달래꽃을 비롯하여 '산유화'와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보섭대일 땅이 있었다면' 및 '초혼' 등이 수록되었습니다.
그러나 고향(평안북도 구성군)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실의의 나날을 술로 달래는 생활을 하였는데, 33세 되던 1934년 12월 23일 부인과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이튿날 음독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33261
1968년 3월 한국일보사에서 남산에 소월시비를 세웠고,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1987년 문학사상사에서 소월시문학상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는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민족시인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그의 시 세계는 토속적이며 전통적인 정한의 세계를 수준 높은 서정적 언어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절대로 친일파도 아니고 친일을 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김소월이 친일파라고 하는 사람이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봅니다.
아니면 아주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지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