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의식주 좀.....

삼국의 의식주 좀.....

작성일 2011.03.22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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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역사 숙제인데요.

삼국의 의식주를 조사해오래요.

제가 역사에는 약한데 숙제가 그거에요.

삼국의 의식주 좀 알려주세요...


#삼국의 의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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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고구려

 백제

 신라

의생활

 고구려의 고분 벽화 : 남녀의 기본의복은 저고리와 바지였다.

 *신라보다 2세기앞서 공복제정.

* 삼국이 모두 비슷

 관리들은 등급에 따라 보라색,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의 옷을 입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런 색깔의 옷을 입을 수 없었으며, 오직 흰색, 검은색, 감색과 같은 색깔의 옷만을 입을 수 있었다

식생활

 * 고구려인들은 육식을 즐겼다 

* 지리적 특성상 쌀보다는 잡곡류를 주로 생산. 쌀은 지배층이 먹는 귀한 곡식, 일반 백성들은 보리, 조, 콩, 수수 등을 주식으로 하였다

* 쌀은 지배층이 먹는 귀한 곡식, 일반 백성들은 보리, 조, 콩, 수수 등을 주식. 

* 회를 즐겨 먹었다

* 고기류로는 돼지와 닭을 식용으로 널리 사육. 소는 오늘날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식용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 백제의 김치류가 일본에 전해져 단무지가 되었다고 함

* 고구려인들은 육식을 즐겼으며, 백제와 신라인들은 술·장·젓갈을 발달시켰다

* 쌀은 지배층이 먹는 귀한 곡식, 일반 백성들은 보리, 조, 콩, 수수 등을 주식으로 하였다

* 회를 즐겨 먹었다

* 고기류로는 돼지와 닭을 식용으로 널리 사육. 소는 오늘날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식용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주생활 

* 산과 골짜기에 의지하여 집을 지었고, 일반 주택들은 초가였으나 왕궁이나 관아, 사찰들은 기와지붕을 하였다.

* 가난한 사람들은 긴 겨울을 나기 위해 장갱(長坑)을 만들고 여기에 불을 때서 그 열로 겨울을 따뜻하게 지냈다

 습기가 많은 여름을 지내기 위해서 바닥이 시원한 '마루'를 사용  신분에 따라 집에 대한 제한 규정이 있었다. 방의 크기나 담장의 높이 그리고 건축 재료나 장식물 등이 신분에 따라 규제되었다



삼국시대의 의생활

옷감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였다. 뼈바늘, 방직용 가락 바퀴 등은 그것을 입증하는 자료이다. 이렇게 시작된 의복 생활은 국가 발생 이후 대체로 완벽한 의복 형태를 갖추게 된다. 삼국 시대가 되면 의복 생활은 더욱 발전하여 우리 나라 의복의 고유한 양식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삼국 시대에 백성들은 대개 삼을 길러 짠 삼베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또는 칡의 섬유로 짠 옷감인 갈포로 만든 옷을 입었다. 삼베는 오늘날에는 여름철에나 시원하게 입는 옷이니 만큼 겨울철에는 매우 추웠을 것이다. 일반 백성이 비교적 따뜻한 무명옷을 입게 된 것은 목화가 전래된 고려말 이후의 일이다. 귀족들은 곱고 촘촘하게 짠 베, 또는 명주나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신라에서는 법흥왕(재위 514~540) 때 관복을 제정했는데, 이는 신분에 따라 옷에 대한 제한 규정을 정한 것이었다. 관리들은 등급에 따라 보라색,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의 옷을 입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런 색깔의 옷을 입을 수 없었으며, 오직 흰색, 검은색, 감색과 같은 색깔의 옷만을 입을 수 있었다. 이런 제한은 대체로 삼국이 비슷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 시대 옷 모양은 고분에서 출토된 흙인형(토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통해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벽화에 의하면 고구려 남녀의 기본 의복은 저고리와 바지였다. 저고리는 오늘날 한복과는 달리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저고리였다. 여성 한복의 짧은 저고리는 고려 이후 나타난 것이다. 바지는 남자는 물론 여성들도 즐겨 입는 옷이었다.

여성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주름 치마를 즐겨 입었으며, 치마의 길이가 신분을 구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치마를 입었다는 것이다. 무용총의 주인접객도에는 치마를 입은 남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한 귀족 남녀들은 의식이 있을 때는 물론 평상시에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 두루마기를 덧입었다. 속옷의 모습은 안악 3호분의 수박도와 각저총의 씨름도에 그려져 있다. 이들 남자들은 오늘날의 삼각 팬티와 유사한 속옷을 입고 있어서 당시의 남자의 속옷의 모양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 보아 여성의 경우도 마땅히 속옷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그 자세한 모양은 알 수가 없다.

신발로는 부여에서 짚신을 신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일반 백성은 짚신을 주로 신었을 것으로 보이며, 귀족들은 가죽신을 신었다. 또 귀족들은 사냥을 할 때는 오늘날 승마용 부츠와 같은 긴 가죽신을 신기도 하였다. 박물관에서 흔히 보면서 의문을 품기도 하는 금속으로 된 스파이크가 박힌 신발은 대개 왕이나 귀족들의 의식용 신발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고구려 벽화에는 하녀나 시종들은 맨발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서, 일반 백성이나 하층민들은 맨발로 생활하기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분 벽화를 통해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사실은 흰옷보다는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옷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벽화는 귀족 생활을 주로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이 백의 민족이라는 표현은 최소한 고구려의 경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고구려 벽화에는 둥그런 물방울 모양의 무늬가 그려진 옷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 ‘물방울 무늬’는 천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행하고 있어서, 고구려인의 뛰어난 패션 감각을 짐작할 만하다.

 

 

삼국시대의 식생활

신석기 시대 이후 농경이 시작되었다. 농경의 시작은 인간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주식이 되는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먹는 문제를 해결하게 된 것이다. 이때는 조, 피, 수수 등의 잡곡류가 주식이었다.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오늘날에도 주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쌀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국가적으로 벼농사를 장려했으며 많은 저수지를 축조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경우는 지리적 특성상 쌀보다는 잡곡류를 주로 생산했으며, 신라, 백제의 경우도 쌀은 일반 백성들이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곡식은 아니었다. 쌀은 지배층이 먹는 귀한 곡식이었고, 일반 백성들은 보리, 조, 콩, 수수 등을 주식으로 하였다. 물론 이러한 곡식을 섞어 잡곡밥을 해서 먹었는데, 박물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솥, 시루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흙으로 만든 토기 솥이나 시루도 사용했지만, 쇠솥도 일반에까지 널리 보급되었는데, 이 쇠솥은 중요한 재산의 하나였다.

반찬류로는 간장, 된장, 젓갈류 등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소금을 널리 이용했으므로 이러한 양념류의 조리가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날 식단의 가장 기초가 되는 김치도 물론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김치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 우리 나라에 전해졌다. 그러므로 이때의 김치는 채소류를 소금이나 젓갈에 절인 정도였을 것이다. 백제의 김치류가 일본에 전해져 단무지가 되었다고 하니, 삼국 시대 김치의 모습을 단편적으로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그 외 물고기나 조개류 등을 반찬으로 사용했다. 흥미롭게도 백제와 신라에서는 회를 즐겨 먹었다고도 한다. 고기류로는 돼지와 닭을 식용으로 널리 사육했다. 소는 농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축이었던 만큼, 오늘날과는 달리 일상적으로 식용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귀족을 비롯한 지배층은 일반 백성보다는 훨씬 호화스러운 식생활을 하였는데, 『삼국유사』에는 손님 접대에 50여 가지 반찬을 내놓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그 외 당시의 음식류로는 술은 물론이고 약밥, 떡, 말린 고기, 꿀 등이 있고, 조미료로 참기름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박물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큰 가마솥, 항아리, 도가니, 질그릇, 시루, 술잔, 컵모양 토기, 다리 달린 주발, 수저 등 식생활과 관련된 유물들은, 당시의 식생활 문화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삼국시대의 주생활

정착 생활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 이후 지어진 최초의 집은 움집이었다. 신석기 시대의 움집은 땅을 60센티미터에서 1미터 정도 파고, 기둥을 세워 지붕을 덮는 모양이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움의 깊이가 낮아지면서 벽면이 생겨나고 지붕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삼국 시대에는 완전한 지상 가옥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일반 백성들은 여전히 움집이나 반움집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여의 부소산성에는 백제의 병사들이 기거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움집을 복원해 놓았는데, 이것을 통해서 당시 백성들의 주거 생활을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집은 내부를 나눌 수 없어 방이 하나인 셈이므로, 남녀노소 구분없이 한가족이 한방에서 생활하였다.

신라에서는 신분에 따라 집에 대한 제한 규정이 있었다. 방의 크기나 담장의 높이 그리고 건축 재료나 장식물 등이 신분에 따라 규제되었다. 백성들은 중국식 기와를 얹을 수 없었고, 담장도 6자 이상 높이 쌓거나 회를 바를 수 없었다. 그리고 방의 길이나 너비도 15자를 넘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수의 백성들은 이 규정에도 훨씬 못 미치는 주거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 시대의 집모양을 보여주는 유물로는 집모양 토기가 있으며, 또한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통해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집모양 토기를 통해서 당시의 집의 외형이 최근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와 지붕의 집모양 토기는 당시 지배층의 일반적인 주택의 모습이었다. 가운데 부엌이 있고 양옆에는 두 개의 방이 있는 구조이다.

왕이나 대 귀족의 주거 생활은 몹시 화려했다. 궁궐이나 사찰 그리고 귀족의 주택에는 화려한 기와 및 장식물을 사용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통해서 보면 대 귀족의 대 저택에는 부엌, 우물, 수레 창고, 고기 창고, 방앗간, 외양간, 마구간을 따로 갖추고 있었다. 방은 화려한 커튼이나 휘장으로 장식을 하고 침상에서 생활하였으며, 거실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는 주거 생활이었다. 난방은 화로나 난로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백성들의 난방 방법도 발전하였다. 신석기 시대의 움집의 경우, 가운데 화덕을 만들고 불을 피워 추위를 피했다. 그러나 움의 깊이가 낮아지고 지상 가옥으로 발전하면서 삼국 시대에 온돌이 등장하였다. 불을 피우는 화덕이 부엌에 설치되고 방 한쪽으로 구들을 놓아 온기를 통과시키는 초보적인 형식이다. 방바닥은 흙을 다지고 거적과 같은 깔개를 까는 정도였다. 삼국 시대에는 온돌이 널리 보급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온돌 난방법은 지금까지도 널리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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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문화의 특징)

 

고구려

문화적 특징

ㆍ 씩씩하고 굳센 기상이 있음.

ㆍ 고분 벽화가 많이 남아 있음.

문화재

ㆍ 무용총(수렵도, 무용도), 장군총, 안학궁 터(장수왕이 평양으로 도읍을 옮길 당시의 궁성), 광개토왕릉비 등

알 수 있는 점

ㆍ 수렵도와 무용도에서 고구려인의 고유한 무용 양식을 보여 준다는 것과 기마 민족으로서 수렵을 즐기고, 사냥을 중요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

백제

문화적 특징

ㆍ뛰어난 건축 기술을 갖고 있음.

ㆍ 온화함과 섬세함이 잘 나타나 있음.

ㆍ 일본 고대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음.

문화재

ㆍ 미륵사지 석탑, 무령왕릉, 공산성, 송산리 고분, 정림사지 5층 석탑 등

알 수 있는 점

ㆍ 정림사지 5층 석탑에서 이 탑은 백제의 석탑이 목조 건축을 따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어 우리 나라 석탑의 발전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신라

문화적 특징

ㆍ 불교적이며 화려하고 아름다움.

ㆍ 고구려의 용맹함과 백제의 우아함이 섞여 있음.

문화재

ㆍ 금관, 왕관 장식, 금귀걸이, 고분군, 첨성대, 안압지 등

알 수 있는 점

ㆍ 첨성대가 동양에서 가장 오래 된 천문대이다. 신라에도 천문학에도 발달이 되 있을 것이다.

가야

문화적 특징

ㆍ 다양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이다.

ㆍ 철기문화가 강성했다.(변한에서 나는 철을 바탕으로 갑옷이나 무기가 강했다)

ㆍ 철을 중심으로 교역이 성했다.

문화재

ㆍ 평저주형토기, 수로왕릉, 수로왕비릉, 김해 구산동 고분군 등

알 수 있는 점

ㆍ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부드러운 곡선미의 다양한 토기, 많은 양의 철제 무기류와 금, 은, 상감장식기법 등이 가야문화의 특징을 알려 준다. 특히 김해 대성동, 함안 도항리, 합천 옥전, 고령 지산동 등지에서 많은 수의 가야무덤이 발굴되었다.

 

 

도움 되셨다면 답변확정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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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윤혁이지!ㅋㅋㅋㅋ너도숙제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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