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정희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18년간 독재정치를 하였지만 그로인해 대한민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지금은 G-20 국가 중의 하나로 세계경제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제가 2년전에 오픈백과에 올린 글을 답으로 대신합니다.
조선(朝鮮)의 망국과 함께 일본의 식민지로 거의 반세기를 보낸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서 박정희처럼 선이 뚜렷한 인물이 없다. 지금은 서구 각국은 기독교가 하나의 문화양식으로만 존재하는데, 전국의 교회가 번성하는 것을 보면서 중국보다도 주자학에 몰두하여 근대사의 그 험한 물결을 알아 채리지 못해 나라를 빼앗겼던 그 때를 연상하게 한다.
사실 19세기 서구의 침탈 아래 극동 3국(조선.중국.일본)의 당면한 과제는 어떻게 서구의 근대 기술을 받아들여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와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그리고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는 다 당면한 과제를 풀고자 열망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세 나라 모두 개혁을 이루려 하였지만 중국은 서구의 기술에만 관심을 갖고 정신적 개혁을 이루지 못해 몰락하고,조선은 그나마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가장 먼저 서양의 기술과 정신을 접목시켜 성공한 일본에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조선은 일본에 의해 교육제도.농업정책.철도 등 모든 것을 정립해 나가는 부속지로 되어 근 40년을 보냈다. 더우기 일본의 조선지배는 근대적인 산업기술만 이식한 것이 아니라 교육.행정.사법 등 모든 제도와 관습마저 일본화하여 그 정신과 체제가 해방된지 이제 63 년이 되었어도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60년간 남한과 북한이 추진했던 근대화의 과정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비록 북한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사실 일본의 메이지 시대의 천황제보다 더 강화된 수령제로 60년 세습정권으로 변형된 사회주의 독재국가로 완성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북한의 이런 독재 체제는 북한 국민들이 일제의 식민지 체계에서 해방되고 바로 독재 체제로 바뀌어 왔기 때문에 식민지 시기의 경험 외에 다른 비교가 없어 북의 독재는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남한의 경우는 미국에 의해 정부수립이 되고 한국전쟁이라는 최악의 경험과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서도 정권의 교체가 평화적으로 두 번이나 있었고, 4.19혁명이라는 민주주의의 실험도 있고, 5.16의 군사정변과 12.12의 악순환도 겪어 이제는 국민들이 무엇이 나은 것인가에 절대성 보다는 상대적으로 받아 드릴 수 있도록 성숙되었다.
여기서 왜, 박정희냐 하면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군사정변(구테타)으로 정권을 잡아 17 년간 통치하며 세계 최빈국에서 그가 죽을 때 아시아의 용으로 인정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중진국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의 틀과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게한 지도자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권유린과 철권통치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말살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어두운 면이 있지만 그 당시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신흥 독립국가 중에 현재 경제적으로나 정치발전 문제에서 이만큼 성공한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 나라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잔재를 말끔히 없앤 북한은 지금 더 심한 독재와 가난의 질곡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박정희 시대에서 인권이 어느 정도 유린이 되고 민주주의도 많은 부분에서 유보되었지만 남한은 정당정치가 외형적으로나마 운영되고, 언론도 통제를 받았지만 북한의 체제에 비하면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 시대에 있었던 친일청산의 미흡한 점은 그 보다 먼저 경제건설과 국가경영의 틀을 짜는 것이 선결과제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러한 박정희를 비판하고 인격적으로 모독할 것이 아니라 중국이 마우쩌둥(毛
澤東)을 중심으로 그의 잘한 면과 못한 면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배워야할 것이다. 지난 과거사를 정리한다고 어두운 면만 밝히지 말고 이제는 세계로 나가 우리도 열강이 되는 길의 표지석으로 삼고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거리의 벚꽃을 사쿠라로 부르는 시대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역사는 다시 도도히 흐르고 지난 100 년 전에 고공(高宗)의 묘호(廟號)마저 일본인 관리가 추존하고, 아관파천까지하며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이 되고 황제가 된 한심한 역사는 되풀이 되서는 안된다. 그리고 일본에 의해 민비(명성황후라는 말 자체가 쑥스럽다)시해를 당하고도 저항도 못하고 지낸 무능한 지도자가 다시는 나와서는 안될 것이다. 박정희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뿐 입니다. 누구는 욕하고 저주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지도자였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