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 의 인구와 영토...

고구려 백제 신라 의 인구와 영토...

작성일 2010.02.16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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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책을읽다가 우연히 조선조 3대 태종 3년 당시 호패법에 따른 인구 조사가 있었는데

30만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는겁니다

물론 호패법에 따른 것이기 떄문에 10~20%밖에 참여 하지 않았다 쳐도기껏해야 300만이 넘는건데....

그렇다면

고대삼국과 조선초의 인구 차이가 너무 심합니다..

백제 전성기 때의 인구가 650만 정도로 추정되고있다합니다(멸망시 350만 정도 였다 하니..)

 

교과서의 강역대로 칠경우 전성기라 해봤자 전라 남도와 북도일부 그리고 충청일부 그리고 황해도 약간

가지고 있다고 했을때 미어터지는 인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도 대륙백제설을 완전히 믿진않지만 혹시 영토가 더 넓은거 아닐까요???

 

그리고 고운 최치윈의 글을보면 백제와 고구려 두나라가 전성기때100만의 군사를 끌어올릴수

있다 했다고 합니다....

 

고구려 인구는 멸망당시 450만 정도로 추정되나 그것은 당나라가 평양 함락후 측정한

인구라 정확하지 않고 또 비록 평양이 무너졌으나 고구려 전영토  중 일부 밖에 점령하지 못한상태라

고구려 전인구수는 100만호 정도라고...

그리고 전성기 시절의 고구려는 족히700만 은 넘었을거라 측정하면

100만정도는 끓어올릴수 있으므로 최치원이 목이 달아나게 당나라에 보내는 글에다

뻥티기를 하지 않았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의 경주 인구만 17만호 즉..85만명...

현 인구와 비슷할수준입니다..

삼국의 전성기때 인구를 합치면

1500만이 훨신넘습니다

이것은 조선말 19세기와 비슷한 인구입니다

무려 1400년 전의 일인데 말이지요..

시간이 지나면 인구가 증가하는것은 당연한일인데

참 이상합니다...

그쵸,,??

혹시 영토감소에 따른 인구 감소가 아닐지 조심스래 질문을 올립니다...

 

1.고구려도 지금 현 교과서 영역대로 할거 같으면 말이 안됩니다...

더 넓었던거 아닐까요

 

2.제일 말이 안되는것은 백제... 전성기 당시 그영토에 가능할까요..??

더넓었던게 아닐까요...

 

3.통일된 중국인구가 4500만(더적나..)이란걸 감안했을때

영토 대 인구 비율 해봐도 3 : 1 정도 되는데 지금 교과서 영토는 좀 작지 않을까요??

 

4.나.당 연합군의 668년 제2차 침공때 신라군 20만이 고구려 한성을 공략했다는데

경상도 에서 그정도 군대가 나올까요???

 

5.고구려 전성기당시 군사 100만이라... 뭐 이건 불확실하다 쳐도 기록에 의하면

멸망당시에도 고구려 상비군만 40만이 넘었고

광개토태왕떄는 전사단(직업군인)만30만정도라고 하고

그럼 총 군사 한 100만이 뻥튀기 된게 아니란 말인데....

그 영토에서 가능할까요??

 

6.그리고 인터넷에 써진 글여러개 봤는데

광개토태왕꼐서 신라 백제 살려두고 후연가서 뻘짓하다 신라에게 결국

망했다라는 글이 많던데 신라한테 망한게 아니라 그당시 정세보면

신라 거의 망했던데 백제 한테 서라벌 인근까지 점령당하고

그래서 당나라한테 굴욕적인 계약을 한것같더네

그리고 광개토 태왕이 신라 백제 살려둔건

명나라나 청나라가 조선 배트남 멸망 안시킨것과

똑같은 이유가 아닐런지요??

그것같고 의아해하는 교수가 있다는 말듣고 놀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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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전근대 기록들을 볼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인구 혹은 병력 혹은 물자 등에 관한 사항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특히 정치적 기록의 경우, 자국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과장이나 축소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근대이전의 역사찬술이 현재와 같이 고증과 실증에 의거하는 경우보다는 왕조를 창립한 특정 가문이나 귀족의 정통성확립이나 신격화의 도구였던 이유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삼국사기에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하는 북연의 고운이 스스로를 "고양씨"의 후예라고 하고, 김유신전에 김유신이 "소호금천씨"의 후예, 고려태조 왕건을 "당 숙종의 후예"라고 하였던 것과 대비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인구, 병력, 각종 물자같은 기록들이 왜곡된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나옵니다. 이미 유명한 수 양제의 고구려침략군의 규모인데, 그 규모는 113만이라고 언급되어있지만, 바로 다음 구절에 "과장하여 200만이라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등장합니다.(실제 이 113만도 일부 학자들은 의혹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보여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윤관의 별무반의 규모입니다. 분명히 그 규모는 17만이라고 하는데, 윤관의 업적을 기리는 영주청벽기를 보면, 그 규모를 "군 30만을 모집하여..."라고 언급하고 있어 과장의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최치원이 당나라 태사시중에게 보냈다는 글도 이런 관점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선 "고구려와 백제가 강할 때 강병 100만으로..."라는 내용 바로 뒤에 나오는 내용은 "이에 당 정관연간(당태종의 연호) 6군을 징발하여 고구려를 정벌하므로 고구려가 두려워하여 화친을 맺으니, 당태종은 그 항복을 받아들였다."라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물론 그 이후의 내용이 "그럼에도 고구려가 말을 듣지 않고..."라는 식으로 이어지나, 우선 이 서신의 내용은 "이렇게 골치아픈세력을 굴복시켰으니 당태종은 대단하다"라는 내용이고, 이것은 다소의 윤색과 과장이 들어간 글로 이해해야 합니다. 여기에 100만이라는 용어는 실제 병력의 규모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 연간 기록에도 있습니다.

 

  신라의 기록도 비슷하게 봐야 합니다. 삼국유사에 신라의 수도인구 17만호 고구려인구 21만호가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연간에 "고구려 남부 12성을 항복받고 12성의 총 인구는 760여호에 3500명 정도"라고 기록이 있는데, 그나마 4개 성읍은 인구가 차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에 당평백제비 등에 백제인구가 24만호 600여만명으로 적혀 있지만, 정사에 백제인구는 24만호가 아닌 5부 76만호 200성이며(이 성도 주성, 군성, 현성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당의 13만, 신라의 5만을 맞아싸우는 백제군의 규모는 의직의 1만, 계백의 5천  정도만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자료들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그 밖에 대문예가 언급한 고구려군 30만의 경우나, 조선초기의 인구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당시 30만, 혹은 고려의 광군 30만이나 별무반 17만이라고 하여 상비군이 30만이나 17만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평소 군적 등에 올라 있다가 전쟁시 동원되는 예비전력인 경우가 근대이전의 국가들에게서는 많았다는 점을 우선 아셨으면 하며, 조선의 인구 역시 당시 조세등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조선태조 6년 군역담당자는 37만 가량이었고 이것이 세조때 더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되려 조선 후기에 가면 수취를 더 많이 하기 위해 장정이 아닌 자 까지 군적에 올리는 폐단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전근대 사회에서 병력이 수십만이었다, 혹은 인구가 형편없이 적었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하여 이를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는 당시의 주변 상황을 더 살펴보고 그것들과의 연관관계를 파악하여 최종적인 결과를 추정하는 것입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역사학은 과거의 사료를 평가,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적 진실 규명과 그 관련성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이걸 아셨으면, 그런 오류를 범하셔서는 안됩니다. 역사는 개인적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님이 막연하게 "고구려와 백제의 인구는 ~명이다"라고 한다고 사실이 되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백제 전성기 때의 인구가 650만 정도로 추정되고있다합니다.

-> 백제전성기는 4c로 멸망시기와 무려 300년이 차이납니다. 그 동안의 인구증가율도 고려하셔야지요.

저는 멸망당시의 인구가 전성기때의 인구가 더 많은건 당연하다고 봅니다만.

게다가 백제 전성기 인구를 650만이라고 추정하는 학자가 누군지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고구려 인구는 멸망당시 450만 정도로 추정되나 그것은 당나라가 평양 함락후 측정한 인구라 정확하지 않고 또 비록 평양이 무너졌으나 고구려 전영토  중 일부 밖에 점령하지 못한상태라 고구려 전인구수는 100만호 정도라고...

->이 또한 막연한 추측으로 일관하시는군요. 고구려멸망당시의 인구는 69만7천호로 350만정도로 추정됩니다. 고구려 전 영토중 일부밖에 점령못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추측하셨는데

평양성은 엄연히 고구려의 수도였기 때문에, 평양성에서 정확한 호구조사기록을 검토했다고 추측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고운 최치윈의 글을보면 백제와 고구려 두나라가 전성기때100만의 군사를 끌어올릴수 있다 했다고 합니다....

->조조의 100만대군이 허풍이라는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다산 정약용도 임란당시 일본의 병력을 100만이라고 표현했으며, 수 양제는 200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00만대군이란건 병력의 수가 많거나, 아니면 강하거나 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봐야 합니다

아무래도, 발해왕실의 대문예의 30만강병발언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신라의 경주 인구만 17만호 즉..85만명... 현 인구와 비슷할수준입니다..

->그건 후기신라 평화가 한참 지속되던시기의 인구입니다. 비교를 잘못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인구가 증가하는것은 당연한일인데 참 이상합니다... 그쵸,,??

->이걸 아시는분이, 왜 백제 전성기의 인구가 멸망기의 인구보다 무려 300만이나 많다고 하셨는지 의문이군요. 님이 말씀하셨던대로 그 좁은땅에 말입니다.

 

1.고구려도 지금 현 교과서 영역대로 할거 같으면 말이 안됩니다... 더 넓었던거 아닐까요

->그럴것이다라고 막연한 추측을 하지 마시고, 증거를 하셔야죠. 아니면 "그럴것이다"라고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해보심이 어떨런지요.

사료상엔, 문자명왕시기에 북부여를 병합한이후로 더이상 영토확장은 없습니다.

혹자는 전성기때는 고구려가 요서를 지배하지 않았을까?라고 의문을 품는데,

장수왕시기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24년, 연 나라 임금이 위 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시자를 보내주기를 요청하였다. 위 나라 임금이 이를 허락하지 않고, 군사를 동원하여 연 나라를 공격하려 하면서, 우리 나라에 사신을 보내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여름 4월, 위 나라가 연 나라의 백낭성을 공격하여 승리하였다. 왕은 장수 갈로와 맹광으로 하여금 군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연 나라 사신 양 이를 따라 화룡에 가서 연 나라 임금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갈로와 맹광이 연 나라 성에 들어가, 군사들에게 헌 옷을 벗게 하고, 연 나라 무기고에 있는 정장을 내주어 입게 하였다. 그들은 대규모로 성을 약탈하였다. 5월, 연 나라 임금이 용성에 남아 있는 주민들을 동쪽 고구려로 옮기고, 궁전에 불을 질렀다"

연나라는 요서에 자리잡고 있던 북연을 뜻합니다. 저 구절을 봐서는, 전성기의 고구려가 요서를 지배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즉 고구려의 영토가 아니였던거죠.

 

2.제일 말이 안되는것은 백제... 전성기 당시 그영토에 가능할까요..?? 더넓었던게 아닐까요...

->전성기는 영토가 넓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일단 역사학계는 한강유역확보를 삼국의 패권을 가늠하는 척도로 보기 때문에, 한강유역을 차지한 근초고왕시기에 전성기라고 보는것입니다.

또한, 백제가 군사적으로 국제적으로 떨쳤던 위상이 강력했던때가 근초고왕시기이기 때문에 전성기라고 보는것입니다.

 

3.통일된 중국인구가 4500만(더적나..)이란걸 감안했을때

영토 대 인구 비율 해봐도 3 : 1 정도 되는데 지금 교과서 영토는 좀 작지 않을까요??

-> 위에 말씀드렸지만, 막연한 추측에 불과하십니다.

외람된 얘기지만, 그럼 왜 그 좁은 서울에는 인구가 1000만이나 될까요? 

 

4.나.당 연합군의 668년 제2차 침공때 신라군 20만이 고구려 한성을 공략했다는데 경상도 에서 그정도 군대가 나올까요???

-> 20만이 아닐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킬때의 병력은 5만이였습니다.

이 5만도 원정에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치였을겁니다. 한강유역의 군사까지 모조리 빼돌렸기 때문입니다. 혹 백제가 평정되었으니까, 백제유민까지 동원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도 10만은 되지 않을겁니다.

 

5.고구려 전성기당시 군사 100만이라... 뭐 이건 불확실하다 쳐도 기록에 의하면 멸망당시에도 고구려 상비군만 40만이 넘었고 광개토태왕떄는 전사단(직업군인)만30만정도라고 하고 그럼 총 군사 한 100만이 뻥튀기 된게 아니란 말인데.... 그 영토에서 가능할까요??

->되묻겠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멸망당시 고구려 상비군이 40만이며, 광개토태왕때 직업군인이 30만이라는 기록이 있다는 겁니까?

 

6.그리고 인터넷에 써진 글여러개 봤는데 광개토태왕꼐서 신라 백제 살려두고 후연가서 뻘짓하다 신라에게 결국 망했다라는 글이 많던데 신라한테 망한게 아니라 그당시 정세보면 신라 거의 망했던데 백제 한테 서라벌 인근까지 점령당하고 그래서 당나라한테 굴욕적인 계약을 한것같더네 그리고 광개토 태왕이 신라 백제 살려둔건 명나라나 청나라가 조선 배트남 멸망 안시킨것과 똑같은 이유가 아닐런지요?? 그것같고 의아해하는 교수가 있다는 말듣고 놀랐는데...

->당연히 현재의 관점, 그것도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보니까, "뻘짓"따위의 초잡소리가 나오지요.

당시 고구려인들의 생각을 추리하지 않고 말입니다. 저 같아도, 당연히 후연을 공격하겠습니다.

대학생의 입장에서, 귀여운 초딩꼬마 2명이 얌전히 "형님,형님 알라뷰"하고 있는데, 갑자기 씨름선수가 맞짱뜨자고 하면, 누구랑 싸우시겠어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 교과서에 기록된 고구려영토는 보니까 작더군요-- 직접 역사서 찾아보니 요서 서쪽 만리장성 동쪾끝 부분까지 넓혔었다네요. 장수왕때 조금더 확장 (북서쪽)

 

2.백제 대륙설이 있다는데 백제가 수군 강국 이였으니 대륙 진출은 가능하다고 보는데

중국이 워낙 혼란하고 그러다보니 얼마안가 소실 됬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게다가 수로로만

이동이 가능한 지역이고.. 고구려 쪽으로 진격한것은 좀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평양 이남까지

진격했다는것은 그떄당시 백제가 군사력을 강화시킨 떄였으니 고구려는 또 중국 쪽에 거의 집중한

상태이니 그정도 쯤은 가능했다고 봅니다.

 

3.중국 영토를 말씀하시는거? 영토가 지금 사서를 통해서 대충 짐작한 거라서 아주 정확하게는 못하고

기록 된 내용으로만 판단합니다. 그러나 옛날이라서 예를들어 ~~성 까지 영토를 넓혔다고 치면

그 성이 있는곳 까지 국경으로 판단하는데 유물이 없다면 정확한 예가 안나오겟죠. 게다가 성이아닌 산,

지형이라고 따지면 더힘들수도...

 

4.20만은 좀 과장 된거같은데... 만으면 15만?? 안될거같은데 적어도 5만은 보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5.내 가능할겁니다. 전성기때 확불려 놨었어요. 거의 만주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보면 됩니다.

긁어 모았으면 더됬을수도..?

 

6.광개토 대왕이 백제를 망치지 않은 이유 첫번째가 고구려와 백제는 가족국(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백제건국)이고요 또다른 이유가 지금 생각이 안나네요 아-- 고구려가 후연치니까 후연이 내부분열 일어나서 망하긴 했어요. 뻘짓은 아니에요.신라를 두고 생각하면 명,청이 조선,월남 남긴거와 같다고 보시면된다고 하네요.

이건 들은거.. 신라 거의 망했었죠. 지금 경상도 보다도 훨씬 작고 6가야 합친거보다도 작았다던데

 

어디서 들은거와 제지식이 좀 합쳐저서 다른 역사전공분들 께는 멍멍이 소리로 보이겠지만

초보라서 이해부탁드립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삼국시대때의 인구기록과 조선시대인구기록은 엄연히 다릅니다. 삼국시대때 인구기록을 해봐야 백제멸망당시의 75만호라는기록 고구려멸망당시의 69만호라는기록이 전부입니다. 질문자님께서 말한 전성기기록이 650만이라던지 멸망당시가 350만이라는기록은 어디에도 없으며 또한 최치원이 고구려와 백제가 전성기때 군사가 100만이었다라는 말은 중국의 삼국시대때 조조가 항상 100만대군을 이끌고다녔다라는 기록과 같은 맥락입니다. 즉 한마디로 구라라 이거죠.

 

고구려 인구는 멸망당시 450만 정도로 추정되나 그것은 당나라가 평양 함락후 측정한

인구라 정확하지 않고 또 비록 평양이 무너졌으나 고구려 전영토  중 일부 밖에 점령하지 못한상태라

고구려 전인구수는 100만호 정도라고...

 이말은 상당히 어불성설입니다만 『삼국사기』기록에 고구려 인구수를 고구려의 5부 1백 76성 69만여 호를 나누어 9도둑부 42주 1백현으로 만들고 평양에다가 안동도호부를 두어 통치하였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국사기』를 읽으신적이 없으신가 보군요.

 

삼국시대 당시 경주는 상당히 발전되어있는 도시였습니다. 기록에도 경주의 묘사는 다른도시들과는 상당히 비교될만큼 화려하게 묘사되어있습니다.

 

지금 국사교과과서에 나온 고구려의 영토는 이상할게 없으며 더 넓지도 않았습니다. 

 

2.제일 말이 안되는것은 백제... 전성기 당시 그영토에 가능할까요..??

더넓었던게 아닐까요...

말이 안되는건 질문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머가 불가능하다는것이며 인구수를 말하자면 질문자님께서 말한게 틀립니다.

 

수의 문제가 중국통일당시가 4000만이라는 기록은 영토비례와는 상관없습니다. 실제로 고구려와 백제중 영토가 고구려가 훨씬 넓었으나 인구수를 백제가 더 많았습니다.

 

경상도에서 왜 그런 군대가 않나올까요??

 

어느기록에도 고구려 상비군이 40만이라는건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글들을 쓰신건지 궁금하네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1.고구려도 지금 현 교과서 영역대로 할거 같으면 말이 안됩니다...

더 넓었던거 아닐까요

 

현 교과서가 중학교 국사인지 고등학교 국사인지 몰라 일단 교과서 보다는 큽니다. 만주지방을 거의 통째로 먹었습니다. 그리고 최대영토 였을 떄에는 서쪽으로는 북경근처까지 위로는 헤이룽강을 지나 동쪽은 발해의 동경 일대까지 먹었습니다. 남으로는 한강쪽이고요

 

2.제일 말이 안되는것은 백제... 전성기 당시 그영토에 가능할까요..??

더넓었던게 아닐까요...

 

네 불가능할거는 없습니다. 게다가 중국 사마천인가가 쓴 책에도 있는 걸로 알고있습니다만..

 

3.통일된 중국인구가 4500만(더적나..)이란걸 감안했을때

영토 대 인구 비율 해봐도 3 : 1 정도 되는데 지금 교과서 영토는 좀 작지 않을까요??

 

교과서영토가 무슨 국가인지는 모르겠으나 교과서영토가 꼭 작다고는 말 못합니다. 어차피 진짜 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정말 중국통째로 우리였다 해도 진짠지 가짠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서에 그런 기록이 없으니 아니다! 하는거지요. 추측일 뿐입니다.

 

4.나.당 연합군의 668년 제2차 침공때 신라군 20만이 고구려 한성을 공략했다는데

경상도 에서 그정도 군대가 나올까요???

 

신라의 영토에서 다 정말 최후의 전투다. 할 정도로 뽑아내면 20만은 될겁니다. 그리고 제가 볼때에 신라군만 20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한 18~20만은 될 것 같은데 20만은 너무 무리해서 뽑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청년 중년 다 긁어모으면 될것같습니다. 단 백성들의 불만이 폭발하려 했겠지만 통일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없는것 같습니다.

 

5.고구려 전성기당시 군사 100만이라... 뭐 이건 불확실하다 쳐도 기록에 의하면

멸망당시에도 고구려 상비군만 40만이 넘었고

광개토태왕떄는 전사단(직업군인)만30만정도라고 하고

그럼 총 군사 한 100만이 뻥튀기 된게 아니란 말인데....

그 영토에서 가능할까요??

 

고구려 전성기 때에의 영토라면 정복지마다 군인들을 수거해서 쓰면 100만 될거라고 봅니다.

게다가 백제 신라 보다는 고구려가 인구가 월등히 높습니다. 예전에 비교표를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가옥수가 백제가 2등이고 신라가 3등이였습니다.

 

6.그리고 인터넷에 써진 글여러개 봤는데

광개토태왕꼐서 신라 백제 살려두고 후연가서 뻘짓하다 신라에게 결국

망했다라는 글이 많던데 신라한테 망한게 아니라 그당시 정세보면

신라 거의 망했던데 백제 한테 서라벌 인근까지 점령당하고

그래서 당나라한테 굴욕적인 계약을 한것같더네

그리고 광개토 태왕이 신라 백제 살려둔건

명나라나 청나라가 조선 배트남 멸망 안시킨것과

똑같은 이유가 아닐런지요??

그것같고 의아해하는 교수가 있다는 말듣고 놀랐는데...

 

고구려 전성기 일때에 백제 신라도 군대는 있었기 때문에 나제(신라, 백제)를 쓸려면은 군대를 파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후연이 쳐들어 오면 안되기 때문에 일단 남쪽에 협박(?)같은 거를 한거죠. 올라오면 너네 다 끝이다. 그래 놓고 북쪽을 점령한거라고 봅니다. 아니면 그당시에 뭔가 이유가 있었겟죠. 사서에는

안 써있지만.. 

고구려 백제 신라 의 인구와 영토...

... 교과서 영토는 좀 작지 않을까요?? 4.나.당 연합군의 668년 제2차 침공때 신라군 20만이 고구려 한성을... 님이 막연하게 "고구려백제인구는 ~명이다"라고 한다고 사실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인구를...

... 고구려 백제 신라 초기 중기 후기 따로 얘기해주세요 고구려 인구가 제일 알고...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던 고구려인구백제보다 적게 기록된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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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영토를 이루는 요동, 남만주, 부여, 한반도 북부 등은 과거 요동군, 현도군... 백제, 신라의 인구고구려보다 적었을 것이다. 백제는 물론 곡창지대를 차지하고...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영토확장...

... 삼국(고구려,백제,신라)의 영토확장 과정과 해외 진출에대해알려주세용~ 되도록이면 빨리용~ 백제의 전성기 백제의 전성기는 근초고왕 시기인데 이 때 백제영토는 경기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각 인구가 얼마나...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고려, 조선시대의 인구가... 이는 삼국의 인구를 거의 아울른 정도 였을 것입니다.(고구리의 영토는 일부 짤려저...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구려 백제 신라 등 권력이 집중되고 이들이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다른나라를... 정복은 영토확장 / 노동인구 확보/ 농사를 지을 땅을 확보해 식량 생산이 증가/ 중국과의...

4세기경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를...

국사수행평간데요ㅠ.ㅠ 4세기경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를 꼭 ! 지도로 올려주세요ㅠ.ㅠ 6시안으로 부탁드립니다ㅠ.ㅠ 감사내공있어요 ㅇ.ㅇ! 순서대로 백제의 전성기때...

고구려,백제,신라 문화, 영토확장에 대하여

... └Ð------------- 신라의 영토를 가장 넓어지게 만든 왕은? └Ð ------------ 고구려의 문화가 발달한 시기는? └Ð ------------ 백제의 문화가 발달한 시기는? └Ð ------------ 신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