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

삼국지,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

작성일 2004.08.01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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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음,뜻,한자,간단한유래) 50개 좀 가르쳐주세요, ,
50개가 안되더라도, , 있는 대로 다 답변 해주세요 ..
빨리 부탁드립니다 ..


p.s 독서가족신문을 만들어야되는데요 ,
거기에 넣어야할 내용이랑, 좋은 제목이 있으신분,
답변좀, ,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안녕하세요?

삼국지와 관련된 고사성어입니다.

◈ 가도멸괵(假途滅?) : 길을 빌려서 괵을 멸한다는 뜻. 이는 옛날 고사에서 비롯 되었다. 주유가 길을 빌려 익주를 치는 척하면서 실로는 형주를 치려는 계획을 세우자, 제갈량이 이미 이를 간파하고 주유를 농락하였다.

◈ 간뇌도지(肝腦塗地) : 간과 뇌장을 쏟아낸다는 뜻. 사지에서 아두를 구해온 조운에게 유비가 도리어 아두를 땅바닥에 집어던지며, '이 아이 하나 때문에 명장을 잃을 뻔 했구나!'고 탄식하자 조운이 감복하여 '간과 뇌장을 쏟아내도 주공의 은공을 갚을수 없겠습니다'고 말하였다.

◈ 강노지말(强弩之末) : 힘센 쇠뇌에서 튕겨나간 화살도 마지막에는 얇은 천 조차도 뚫지 못한다는 뜻으로, 강한 군사도 원정(遠征)을 가면 지쳐서 군력(軍力)이 약화된다는 말이다. 제갈량이 적벽전에 앞서 손권을 만나면서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하였는데, 여기서 강노는 조조의 병력을 뜻한다. 이 고사는 세력이 강하였던 것도 그 쇠퇴하는 시기에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 개문읍도(開門揖盜) : 긴박한 주위 사정을 깨닫지 못하고 감상(感傷)이나 비탄에 빠져 제스스로 화(禍)를 불러들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개문납도(開門納盜)·개문납적(開門納賊)이라고도 한다. 문을 열어두고 도둑을 맞이한다는 뜻. 손책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손권이 자칫 슬픔에 젖어 국정을 그르칠까 두려워 장소가 충고하였다.

◈ 거재두량(車載斗量) : 수레에 싣고서 말[斗]로 잰다는 뜻으로, 아주 흔하거나 쓸모 없는 것이 많음을 비유하는 말.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오주손권전(吳主孫權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219년 오나라의 손권이 위(魏)나라의 조조(曹操)와 결탁하여 촉한(蜀漢)의 용장 관우(關羽)를 죽였다. 221년 촉한이 오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오나라의 손권은 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위나라의 사자로 중대부(中大夫) 조자(趙咨)가 뽑혔다. 조자에게 손권이 말하였다. "결코 오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마시오." 조자가 위나라의 수도에 도착하자, 위왕 조비(曹丕)는 그가 찾아온 이유를 알면서도 짐짓 속내를 떠보았다. "오나라의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총명하고 자애롭습니다. 또한 재능이 뛰어나고 원대한 지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과장이 심하군." 조비가 비꼬듯 웃었다. 그러자 조자가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가며 반론하였다. 조비가 또 물어보았다. "만일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한다면?" "대국에 무력이 있다면, 소국은 방위책이 있습니다." "위나라가 두려운가?" "오나라에는 100만의 용맹한 군사와 함께 지리적인 천험(天險)이 있습니다." "그대 같은 인재가 오나라에는 얼마쯤 되나?" "나 같은 자는 수레에 싣고 말로 잴 정도[車載斗量]입니다." 조비가 탄복하여 말하였다. "사신으로서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함은 그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오." 배석한 위나라의 신하들도 감동하였다. 조자의 활약으로 오나라와 위나라의 군사 동맹이 성립되었다. 조자가 돌아오자, 손권은 상(賞)과 함께 기도위(騎都尉) 벼슬을 내렸다.

◈ 괄목상대(刮目相對) : 이 말은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 삼국시대에 오(吳)나라의 왕 손권(孫權)이 그의 장수 여몽(呂夢)이 무술에는 능하나 학문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을 나무라자 여몽은 이로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았다. 후에 노숙(魯肅)이 찾아가 전과 달라진 그의 높은 식견에 놀라워하자 여몽은 "선비가 사흘을 떨어져 있다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대하여야 합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라고 하였다.

◈ 국궁진췌, 사이후이(麴窮盡膵, 死而後已) : 제갈량의 출사표에 등장하는 말. 온 마음의 정성 몸이 부숴질 때까지 노력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정성을 다하겠다는 뜻.

◈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 : 주군과 신하가 마치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 가까운 사이를 말하는데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한 후 이 말을 사용했다.

◈ 계륵(鷄肋) : 닭의 갈비뼈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뜻에서, 무엇을 취해 보아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 〈양수전(楊修傳)〉에 나오는 말로, 위(魏)나라 조조(曹操)와 촉(蜀)나라 유비(劉備)가 한중(漢中) 땅을 놓고 싸울 때, 조조는 진격이냐 후퇴냐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곤경에 빠져 있었다. 부하 한 사람이 내일의 일을 묻고자 밤늦게 조조를 찾아가니 조조가 다만 계륵(鷄肋)이라고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부하는 그대로 돌아와 계륵이 무슨 뜻이냐고 막료들과 의논을 하는데 아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는 가운데 단지 주부(主簿)로 있는 양수(楊修)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내일은 철수명령이 내릴 테니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의 해석은 "닭의 갈비는 먹음직한 살은 없지만 그대로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결국 이곳을 버리기는 아깝지만 대단한 땅은 아니라는 뜻이니 버리고 돌아갈 결정이 내릴 것이다(夫鷄肋 食之則無所得 棄之則如可惜 公歸計決矣)"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적중하여 다음날 철수명령이 내려졌다.

◈ 낙불사촉(樂不思蜀) : 즐기느라 촉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 암우한 후주 유선이 촉 멸망 후 사마소를 뵙는 자리에서 '너무 즐거워서 촉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그를 크게 비웃었다고 한다.

◈ 난공불락(難攻不落) : 학소가 지키는 진창성이 쉽사리 빼앗기지 않자, 제갈량이 감탄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 난형난제(難兄難弟) : 형제의 우열을 가릴수 없다는 뜻으로 나중에 바뀌어 상하우열을 가릴수 없는 것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말을 후학들이 평가하기로 부모된 사람은 죽을때까지 자기 자식의 우열을 가려 품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가 하면 부모로부터 '형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은 아우도 기분이 좋을리 없는데 만일 동생보다 못한 형이라고 평가한다면 어떤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될까를 염두에 두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 노우지독(老牛☆犢) : 늙은 소가 어린 송아지를 핥는다는 뜻으로, 양표가 아들 양수의 죽음 후에 매우 슬퍼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조조는 이러한 양표를 보고는 양수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참고) 양표는 이때 모반죄로 낙향해 살고 있었다.

◈ 내조(內助) : 아내가 집안을 탈없이 이끌어 남편이 바깥일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 단기천리(單騎千里) :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가는 관우의 모습을 묘사한 고사. 말 하나를 타고 천리를 내달린다는 뜻.

◈ 단도부회(單刀赴會) : 칼 한자루를 들고 모임에 나간다는 뜻으로, 여기서 모임이란 위험한 자리를 뜻한다. 관우를 초청하여 죽이겠다는 노숙의 궁벽한 꾀에 대해 관우는 청룡도 한자루만 들고 찾아가는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 도리상영(倒履相迎) : 신을 거꾸로 신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왕찬에 대한 설명 중, 그의 스승 격인 채옹이 왕찬의 방문에 신마저 거꾸로 신고 나가서 환영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 도원결의(桃園結義) : 약속한다는 뜻. 원(元)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 환관의 발호로 정치가 어지럽자 생할고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새로운 살길을 찾게 되었다. 신흥 종교인 태평도(太平道)의 교주 장각(張角)은 이러한 틈을 이용해 세력을 넓히고 난을 일으켰다. 이것이 후한을 멸망시킨 황건적의 난이다. 조정에서는 하진을 대장군으로 삼아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미치지 못하자 각 지방에 병사를 모집하는 방을 붙이게 되었다. 유주(幽州) 탁현(?縣)에 살던 유비(劉備)는 이 방문을 보자 가슴이 뛰었다. 그는 평소에 큰 일을 하고 싶어했으며, 일찍이 뤄양에 차를 사러 갔다가 황건적 무리의 횡포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의욕만 앞설 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거한이 유비 곁으로 다가와 한숨만 쉬는 것을 꾸짖었다. 장비(張飛)였다. 둘은 뜻이 같음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가까운 주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또 범상치 않은 얼굴의 거한이 있어 서로 마음이 통하였다. 그가 관우(關羽)였다. 서로 의기가 투합하자, 장비의 제안으로 다음날 장비의 집 후원 복숭아 밭에서 의형제 결의를 맺고 피를 나누었다. '유비와 관우, 장비는 비록 성은 다르다 할지라도 이미 의형제가 되었으니, 곧 마음을 한 가지로 하고 힘을 합쳐 곤란함을 구원하고 위태로움을 도와,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만민을 편안케 할 것이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한 해 한 달 한 날에 죽기를 원하니 하늘과 땅의 신령께서는 이 뜻을 굽어살피소서. 만일 우리들 중에 의리를 배반하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여 주소서.' 나관중이 도원결의를 책 첫머리에 삽입한 것은 정당하고 큰 의리를 부각하려는 것이었는데, 오늘날에는 목적과는 상관없이 의리를 맺는 데 이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 득롱망촉(得籠望蜀) : 조조가 한중을 얻고 허창으로 되돌아가려 할 때, 사마의가 조조에게 권하길, '이 기회를 틈타 유비가 있는 촉을 얻으십시오'라 하였으나, 조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옛말에 농지방을 얻고 촉을 바란다더니, 욕심이 과하군'이라 답변하였다.

◈ 돈견(豚犬) : 송(宋)나라 말 원(元)나라 초에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사서《18사략(十八史略)》 동한(東漢) 효헌제(孝獻帝) 조에 나오는 말이다. 관도(官渡)의 싸움에서 원소군을 물리치고 기반을 확립한 조조는 이어 형주를 공략하고 유비를 하구라는 곳으로 몰아 넣은 후 백만 대군을 동원하여 강동의 오(吳)나라로 진격해 왔다. 이때 오나라에는 손견(孫堅)이 죽고 그 아들 손권(孫權)이 즉위하여 주유(周瑜)·여몽(呂蒙)·노숙(魯叔) 등 막강한 참모의 보좌를 받고 있었다. 조조의 대군이 밀려 온다는 소식을 들은 손권은 유비군과 연합하여 이를 대적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양군은 장강을 사이에 두고 포진하였다. 조조는 수전에 약한 군사를 보호하기 위해 전함의 고물과 이물을 연결시켜 선단을 하나로 묶었다. 오군 사령관 주유는 이를 보고 곧 화공(火攻)을 준비하였다. 먼저 노장 황개(黃蓋)를 사소한 트집을 잡아 군사들 앞에서 욕보이는 고육계(苦肉計)로 조조를 속이고, 황개는 조조에게 거짓 항복을 하였다. 그리고는 겨울철에 보이는 강남 특유의 계절풍을 기다렸다. 하나로 묶인 선단은 불에 약할 수밖에 없고, 화공을 하려면 바람의 방향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자, 황개가 마른 풀과 염초를 가득 실은 작은 배를 이끌고 백기를 휘날리며 조조군으로 향하였다. 조조군에서는 뜻밖의 동남풍에 당황하면서도 황개의 투항을 기뻐하였다. 황개가 조조군에 다가가 화공을 시작한 후에야 모든 것을 눈치 챈 조조군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불은 바람을 타고 곧 조조군의 선단에 옮겨 붙었다. 가뜩이나 물에 약한 조조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이때 주유의 본군이 물밀듯이 밀어닥치자 조조군은 대적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궤멸하고 말았다. 이것이 유명한 적벽(赤壁) 대전이다. 적벽 대전으로 자존심을 크게 상한 조조는 틈만 나면 오나라의 손권을 공략하려 했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들을 낳으면 응당 손중모(孫仲謀:중모는 손권의 자) 같아야 한다. 지난 날 항복한 유경승(劉景升:劉表)의 아들(劉琮)은 돼지 자식, 개 자식에 불과하다.” 돈견이란 이와 같이 어리석고 못난 자식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인데, 부모가 남 앞에서 자기 자식을 겸손하게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 만전지책(萬全之策) : 조조가 원소를 격파한 뒤, 유표는 누구를 지지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자 한숭과 유선이 유표에게 건의하기를, '원소는 우유부단한 자라 분명 조조에게 격파당할 것이다. 조조에게 투항해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참고) 이 장면은 연의에는 나오지 않는 듯 싶다. 후한서 유표전에 나온다고 한다.

◈ 망매해갈(望梅解渴) : 조조가 전쟁 중에서 물을 구하지 못하여 그 병사들이 갈증을 이기지 못해 사기를 잃자, 조조는 '조금만 가면 매실을 얻을 수 있으니 참고 견뎌라'고 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유) 매림지갈(梅林止渴), 참고) 이 말은 조조와 유비가 영웅에 대해 논하면서 나온 말이다.

◈ 망천지시(亡天之時) : 하늘이 망하려는 것. 17로 제후군이 모여서 원소를 장으로 추대하자, 원소가 동탁의 만상을 이말로 표현하였다.

◈ 명모호치(明眸皓齒)와 폐월수화(閉月羞花) : 미인을 두고 '침어낙안(沈魚落雁)'이나 '폐월수화(閉月羞花)' 또는 '명모호치(明眸皓齒)'라는 말이 시나 부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명모(明眸)란 시원스럽고 맑은것, 호치(皓齒)는 하얗고 아름다운 이를 말한다. '명모호치(明眸皓齒)'는 미인의 조건이 되었다. 나중 시인들은 이 말을 빌어 미인을 뜻할때 '폐월수화(閉月羞花)' 또는 '명모호치(明眸皓齒)'라고 노래했다.

◈ 박면피(剝面皮) : 오제 손호가 자기 기분에 들지않는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만행을 저지른 데서 이 고사가 비롯되었는데, 이는 '면피를 벗긴다'는 것은 파렴치한 자의 면모를 밝혀 수치를 맛보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낮가죽이 두껍다라든가 뻔뻔스럽다라든가 염치를 모른다는 것을 '후안무치'라고 하는데 이것은 '시경' 소아의 의 한편에 '교언여황(巧言如簧)은 안지후의(顔之厚矣)' 에서 나온 고어로 이것을 좀 새롭게 구성한 것이 '남사(南史)' 변변전에 나오는 '면피후(面皮厚)' 즉 뻔뻔스러운 사람을 두고 얼굴 가죽이 두껍다고 말했다.

◈ 백리지재(百里之才) :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 노숙이 방통을 유비에게 추천하면서 방통을 이에 비유하였다. 참고) 그러나 연의에서는 이 구절을 '방통은 백리를 다스릴 인물이 아니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 백미(白眉) : 백미는 흰 눈썹이란 뜻이다. 제갈량, 즉 제갈공명(諸葛孔明)과도 친교를 맺었던 마량(馬良)은 형제가 다섯이었다. 다섯 형제는 모두 자(字)에 상(常)이란 글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가리켜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일컬었다.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났으나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그 고장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씨오상은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흰 눈썹이 가장 훌륭하다(馬氏五常 白眉最良)”라고 하였다. 즉, 마량은 어려서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던 것이다. 이 때부터 같은 또래, 같은 계통의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백미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사람만이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이야기할 때도 백미라 부른다.《삼국지》 에 그 유래가 전한다.

◈ 복소지란(復巢之卵) : 공융의 두 아들이 한 말. 둥지가 부서지면 알이 성할리가 없다는 뜻. 공융이 조조의 노여움을 사 끌려가자, 그의 비복들이 그 두 자제에게 몸을 피하라고 권했지만, 둘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유) 복소지하 안유완란 (復巢之下 安有完卵), 소훼란파(巢毁卵破)

◈ 비육지탄(悲肉之歎) : 보람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한탄함을 비유한 말. 원래, 할 일이 없어 가만히 놀고 먹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살만 찜을 한탄한다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유비(劉備)가 한 말이다. 유비는 한때 신야(新野)라는 작은 성에서 4년간 할 일 없이 지냈는데, 어느 날 유표의 초대를 받아 연희에 참석하였을 때 우연히 변소에 갔다가 자기 넓적다리에 유난히 살이 찐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그는 슬픔에 잠겨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 눈물 자국을 본 유표가 연유를 캐묻자 유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언제나 몸이 말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말을 타는 일이 없어 넓적다리에 다시 살이 붙었습니다. 세월은 사정없이 달려서 머지않아 늙음이 닥쳐올 텐데 아무런 공업(功業)도 이룬 것이 없어 그것을 슬퍼하였던 것입니다(吾常軍不離鞍 ?肉皆消 今不復騎 ?裏肉生 日月若馳 老將至矣 而功業不建 是以悲耳)." 비육지탄은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 삼고초려(三顧草廬) :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기 관우(關羽:?~219)와 장비(張飛: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허송 세월만 보낸 채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劉彪)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와 같은 강한 군사력이 있으면서도 조조(曹操)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를 유효 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를 찾아가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伏龍:초야에 묻혀 있는 재사)과 봉추(鳳雛) 가운데 한 사람만 선택하시지요"라고 말하였다. 유비는 복룡이 제갈 량임을 알고 그를 맞으러 장비와 관우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갔는데, 세 번째 갔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삼고지례는 유비가 제갈 량을 얻기 위해 그의 누추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간 데서 유래하는데,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한 인재를 알아 볼 줄 아는 안목도 또한 갖추어야 한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물고기가 물을 만난 사이)라고 말하였다. 제갈 량은 원래 미천한 신분으로 이곳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숨어 지냈다. 그는 스스로를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유하였지만 최주평(崔州平)과 서서(徐庶)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 그는 뜻을 펼칠 때를 기다린 것이었다. 제갈 량은 이후 《출사표(出師表)》에서 자기를 찾은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해 감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신이 비천한 신분임을 알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줄여서 삼고라고 하며, 삼고초려(三顧焦廬) 또는 초려삼고(焦廬三顧)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 삼고지우(三顧知遇)가 있다. 유) 삼고지례(三雇之禮)

◈ 세한지송백(歲寒之松柏) :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기상은 겨울이 되어야 안다. 조조에게 투항한지 얼마 안되어 다시 관우와의 전투에 참여한 방덕이, 패한 뒤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린 것을 일컫는 말이다.

◈ 소향무적(所向無敵) : 이르는 곳마다 맞설 싸울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막강한 세력을 뜻한다. 조조가 형주를 얻고는 기고만장해져서 손권에게 투항하라는 뜻을 암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주유가 이에 반대하면서, '우리 군은 가는 곳마다 이기고 대등하게 대적한 자들이 없었습니다'고 하였다.

◈ 수어지교(水魚之交) : 매우 친밀하게 사귀어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원래 물과 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관계에 비유한 말이다. 어수지친(魚水之親)이라고도 하는데, 부부 사이나 남녀가 매우 사랑하는 것을 어수지락(魚水之樂)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중국 삼국시대의 유비(劉備)와 제갈 량(諸葛亮)의 사이를 비유한 데서 비롯된다. 《삼국지》 을 보면, 유비와 제갈 량과의 사이가 날이 갈수록 친밀하여지는 것을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불평하자, 유비가 그들을 불러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다는 것은 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는 불평을 하지 말도록 하게(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라고 타일렀다. 이리하여 관우와 장비는 다시는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 :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사이를 뜻한다. 촉의 명장 위연은 국내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없어서 누구든 두렵게 여겼는데, 오직 장사 양의만이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고 그와 자주 맞서곤 했다. 유) 유여수화(有如水火)

◈ 순망치한(脣亡齒寒) :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뜻.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 5년조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시대 말엽(B.C. 655), 진(晉)나라 헌공은 괵나라를 공격할 야심을 품고 통과국인 우나라 우공에게 그곳을 지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나라의 현인 궁지기(宮之寄)는 헌공의 속셈을 알고 우왕에게 간언했다.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오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수레의 짐받이 판자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괵나라와 우나라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결코 길을 빌려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왕은 “진과 우리는 동종(同宗)의 나라인데 어찌 우리를 해칠 리가 있겠소?”라며 듣지 않았다. 궁지기는 후환이 두려워 “우리나라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족과 함께 우나라를 떠났다. 진나라는 궁지기의 예견대로 12월에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정복하고 우왕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결코 끊어서는 안 되는 관계를 가리킨다. 동의어로 순치지국(脣齒之國)·순치보거(脣齒輔車)가 있으며, 유사어로 조지양익(鳥之兩翼)·거지양륜(車之兩輪)이 있다.


◈ 식소사번(食少事煩) : 적게 먹고 일은 많이 한다. 제갈량의 사신에게 사마의가 말하면서, 제갈량은 얼마 안가 죽으리라고 예언하였다. 참고) 이에 대하여 주부 양옹이 담당하는 군무의 양을 줄이라고 건의했으나, 제갈량은 선주의 은총을 떠올리며 거절한다.

◈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걱정을 끼친다는 말로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다는 뜻. 유비에게 제갈 량을 소개했던 서서(徐庶)가 유비의 군사로 있으면서 조조를 많이 괴롭혔다. 조조는 모사꾼인 정욱의 계략에 따라 서서가 효자라는 것을 알고 그의 어머니를 이용하여 그를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다. 서서의 어머니 위부인은 학식이 높고 의리가 투철한 여장부로 서서에게 현군을 섬기도록 격려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위부인의 글씨를 모방한 거짓편지를 써서 서서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나중에 위부인은 서서가 조조의 진영으로 간 것이 자기에 대한 아들의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부터가 걱정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다(女子識字愚患).”라며 한탄하였다. 소동파의 시에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라는 구절도 있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근심도 그만큼 많이 하게 되는 것, 또는 어줍잖은 지식 때문에 일을 망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한국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 신은구의(新恩久義) : 새로운 은혜, 오래된 의리라는 뜻으로, 은혜는 조조에 대한 것이요, 의리는 유비에 대한 것이다. 관우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조조의 호의에 감사히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비를 잊지 않았다.

◈ 양상군자(梁上君子) :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 즉 도둑을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쥐를 가리키기도 한다.

◈ 언과기실(言過其實) : 실제보다 말이 더 앞선다는 뜻. 제갈량이 마속을 높이 평가하자, 이에 대해 유비가 '그는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나 실제로는 대단한게 없으므로 그를 높이 기용하지 말아라'고 충고하였다. 제갈량은 마속을 죽일 때 이 글귀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언출위론 하필성문(言出爲論 下筆成文) : 말을 하면 경론이고 붓만 들면 명문이라는 뜻. 건안문단의 일인자로 꼽히는 조식에 대한 평이다.

◈ 오관육참(五關六斬) : 다섯 관문에서 여섯 명을 벤다는 뜻. 관우가 원소 밑에 있던 유비를 만나기 위해 그를 가로막는 다섯 관문의 장수 여섯을 베었다. 그의 충절을 기리는 고사성어. 참고) 동령 - 공수 낙양 - 한복, 맹탄 기수 - 변희 형양 - 왕식 활주 - 진기 유) 오관참장(五關斬將)

◈ 우도할계(牛刀割鷄) :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 동탁이 사수관을 지킬 장수를 뽑을때 여포를 보내려 하자, 화웅이 여포를 소 잡는 칼, 손견을 닭에 비유하며 자신의 출전을 요청하였다. 유)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

◈ 원문사극(轅門射戟) : 여포가 원문에서 150보 거리에 놓아둔 화극의 곁가지를 화살로 쏘아 맞춘 일. 이로써 교전을 앞두던 원술의 부장 기령과 유비는 화해를 하게 되었다.

◈ 육출기산,구벌중원(六出祁山,九伐中源) : 기산에 여섯번 나가고, 중원을 아홉번 어우른다는 뜻 . 각각 제갈량과 강유가 북벌을 여섯번, 아홉번 시도한 것을 뜻한다.

◈ 읍참마속(揖斬馬謖) :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히 법을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에 비유하는 말. 울며 마속(馬謖)의 목을 벤다는 뜻으로 《촉지(蜀誌)》 〈마속전(馬謖傳)〉에 나오는 말이다. 촉(蜀)나라의 제갈 량(諸葛亮)은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자기의 명령·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싸우다가 패한 부장(部將) 마속을, 그 전날의 공과 두터운 친분에도 불구하고 울며 목을 베어 전군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 일룡분이호(一龍分二虎) : 한 마리의 용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갈라놓다. 관우와 장비의 싸움을 말린 유비에 대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 절영지회(折纓之會) : 갓끈을 끊는 연회라는 뜻. 옛 고사에서 비롯됨. 이유가 이고사를 예로 들어 동탁에게 간언하길 초선을 여포에게 내리면 여포의 충심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 진복론천(秦宓論天) : 촉의 진복이 오의 사신 장온과 하늘에 대해 논한 일. 여기서 장온은 진복의 논리정연한 말과 해박한 지식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 창서칭상(倉舒秤象) : 조조의 아들 창서가 오에서 보내온 코끼리의 무게를 잰고사를 말한다. 참고) 조창서는 이름이 충이고 창서는 그의 자이다. 조조가 그의 아들중 가장 총애할만큼 재주가 남달랐지만,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빛을 보지 못하였다.

◈ 청경우독(淸耕雨讀) : 맑을 땐 밭을 갈고 비가 올 땐 책을 읽는다. 제갈량이 융중에서 이런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 천계일봉(千鷄一鳳) : 닭 천 마리 중에 봉황이 한 마리가 있다는 뜻. 황건적 장수인 절천야차 하만이 조조 군영을 농락하며 등장하자, 조홍이 이렇게 외치며 그와 맞섰다.

◈ 칠종칠금(七縱七擒) :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다는 뜻으로, 상대를 마음대로 다룸을 비유하거나 인내를 가지고 상대가 숙여 들어오기를 기다린다는 말. 제갈량(諸葛亮)이 맹획(孟獲)을 사로잡은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음대로 잡았다 놓아주었다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칠금(七擒)'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삼국지(三國志)》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1대 황제인 유비(劉備)는 제갈 량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갈량은 후주(後主)인 유선(劉禪)을 보필하게 되었는데, 그때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위(魏)나라를 공략하여 생전의 유비의 뜻을 받들어야 했던 제갈 량은 먼저 내란부터 수습해야 했다. 유선이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제갈 량은 적진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이간책을 썼다. 과연 반란군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서로 살육을 일삼았다. 그 결과 마지막으로 등장한 반란군이 바로 맹획이라는 장수였다. 맹획이 반기를 들자 제갈량은 노강 깊숙이 들어가 그를 생포했다. 제갈량의 계략에 걸려들어 생포된 맹획은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맹획을 생포한 제갈량은 오랑캐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촉한의 무장인 마속(馬謖)도 '용병의 도리는 최상이 민심을 공략하는 것으로, 군사전은 하책일 뿐 심리전을 펴 적의 마음을 정복하라'고 했다. 제갈 량은 오랑캐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면 그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북벌(北伐)도 한결 용이할 것이라 생각하여 맹획을 풀어주었다. 고향에 돌아온 맹획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제갈량은 자신의 지략을 이용하여 맹획을 다시 사로잡았지만 또 풀어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에게 마음속으로 복종하여 부하 되기를 자청했다. 여기서 '칠종칠금'이란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이 말은 '상대편을 마음대로 요리한다'는 뜻으로 비유되어 사용된다.

◈ 침불안석,식불감미(寢不安席,食不感味) : 누워도 자리가 편치 않고,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 말로, 위로 강대한 적을 둔 그의 심정을 잘 드러낸다.

◈ 탄금주적(彈琴走賊) :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낸다는 뜻. 제갈량이 가정전에서 패한 후 서성에서 사마의의 10만 대군과 맞설 때, 단 3천 병력으로 적을 막아내지 못함을 알고 거문고 울림으로 손쉽게 적을 쫓아냈다. 참고) 이때 사용된 계책이 공성지계이다.

◈ 투서기기(投鼠忌器) : 쥐를 잡다가 독을 깬다는 뜻. 허전의 사냥에서 조조의 방자한 행동을 목격한 관우가 칼을 들어 그를 베려 할 때, 유비가 가만히 그를 만류하며 이말을 하였다.

◈ 파죽지세(破竹之勢) :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라는 뜻으로, 세력이 강대해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다음은 《진서(晉書)》〈두예전(杜預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晉)나라의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가 진무제(晉武帝)로부터 출병 명령을 받아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오(吳)나라를 쳐서 삼국시대의 막을 내리고 천하통일을 이룰 때의 일이다. 출병한 이듬해 음력 2월,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회의를 열었다. 이때 한 장수가 '곧 강물이 범람할 시기가 다가오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르니 일단 후퇴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두예는 단호히 명령조로 대답했다. "지금 우리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다. 그것은 마치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破竹之勢]'와 같다. 대나무란 일단 쪼개지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을 대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단 말인가." 두예는 곧바로 군사를 재정비하여 오나라의 도읍인 건업(建業)으로 진격하여 그야말로 파죽지세처럼 몰아쳐 단숨에 건업을 함락시켰다. 오왕 손호(孫晧)는 손을 뒤로 묶고 수레에 관을 싣고 사죄의 뜻을 보이며 항복해왔다. 이리하여 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두예는 오나라를 평정한 공으로 당양현후(當陽縣侯)에 봉해졌으나, 만년에는 학자로서 학문과 저술에 힘을 기울여 《춘추석례(春秋釋例)》《좌전집해(左傳集解)》 등의 저서를 남겼다. 오늘날 이 말은 거침없이 일이 잘 풀리거나 처리됨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세여파죽(勢如破竹)', '영도이해(迎刀而解)'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 할수기포(割鬚棄袍) : 수염을 자르고 도포를 버린다는 뜻. 동관에서 마초와 맞닥뜨린 조조가 그에게 패하여 도망갈 때, '비단 도포를 입은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도포를 버리고, '수염이 긴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수염을 잘랐다고 한다.

◈ 호부견자(虎父犬子) : 호랑이 아들에 개 아들이라는 말로, 촉을 차지하여 나라를 세운 유비에 비하여 그 나라를 주색으로 망쳐버린 우매한 아들 유선을 비교한다.

◈ 화병(畵餠) : '그림 속의 떡에 불과하다'란 뜻으로 실력없이 명성만 화려한 자를 말한다.

◈ 홍문연회 : 유비와 조조가 영웅에 대하여 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관우와 장비가 들이닥치면서 '칼춤이라도 추어보이기 위해 달려왔습니다'라고 하자, 조조는 그들의 충심에 감복하면서, '이곳은 홍문의 연회가 아니니 칼을 들 필요는 없을 것이오'라고 답하였다. 참고) 홍문연회란 항우가 모사 범증의 말에 따라 홍문이라는 곳에서 유방을 죽이려 했던 일을 말한다. 범증은 항장이라는 장수를 시켜 칼춤을 추다가 은밀히 유방을 죽이도록 하였는데, 이를 알아챈 항백이라는 자가 같이 칼을 뽑고 춤을 추면서 항장의 행동을 저지하였다. 곧 유방의 장수인 번쾌도 칼을 뽑아들고 뛰어 들어 항장을 막았고, 낌새를 알아차린 유방은 곧 장 자리를 떠서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유비의 입촉에서도 인용된다.

◈ 회귤고사(懷橘故事) : 오의 육적이 원술의 초청을 받아 잔치에 참가하였을때, 모친을 생각하여 귤을 품어 달아났다는 고사. 유) 육적회귤(陸績懷橘)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는 잘 모르겠네요.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안녕하서l요-#

사기열전은 잘 모르겠구여--#

삼국지에 있는 것 만했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군요

◈ 가도멸괵(假途滅?) : 길을 빌려서 괵을 멸한다는 뜻. 이는 옛날 고사에서 비롯 되었다. 주유가 길을 빌려 익주를 치는 척하면서 실로는 형주를 치려는 계획을 세우자, 제갈량이 이미 이를 간파하고 주유를 농락하였다.

◈ 간뇌도지(肝腦塗地) : 간과 뇌장을 쏟아낸다는 뜻. 사지에서 아두를 구해온 조운에게 유비가 도리어 아두를 땅바닥에 집어던지며, '이 아이 하나 때문에 명장을 잃을 뻔 했구나!'고 탄식하자 조운이 감복하여 '간과 뇌장을 쏟아내도 주공의 은공을 갚을수 없겠습니다'고 말하였다.

◈ 강노지말(强弩之末) : 힘센 쇠뇌에서 튕겨나간 화살도 마지막에는 얇은 천 조차도 뚫지 못한다는 뜻으로, 강한 군사도 원정(遠征)을 가면 지쳐서 군력(軍力)이 약화된다는 말이다. 제갈량이 적벽전에 앞서 손권을 만나면서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하였는데, 여기서 강노는 조조의 병력을 뜻한다. 이 고사는 세력이 강하였던 것도 그 쇠퇴하는 시기에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 개문읍도(開門揖盜) : 긴박한 주위 사정을 깨닫지 못하고 감상(感傷)이나 비탄에 빠져 제스스로 화(禍)를 불러들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개문납도(開門納盜)·개문납적(開門納賊)이라고도 한다. 문을 열어두고 도둑을 맞이한다는 뜻. 손책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손권이 자칫 슬픔에 젖어 국정을 그르칠까 두려워 장소가 충고하였다.

◈ 거재두량(車載斗量) : 수레에 싣고서 말[斗]로 잰다는 뜻으로, 아주 흔하거나 쓸모 없는 것이 많음을 비유하는 말.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오주손권전(吳主孫權傳)'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219년 오나라의 손권이 위(魏)나라의 조조(曹操)와 결탁하여 촉한(蜀漢)의 용장 관우(關羽)를 죽였다. 221년 촉한이 오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오나라의 손권은 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위나라의 사자로 중대부(中大夫) 조자(趙咨)가 뽑혔다. 조자에게 손권이 말하였다. "결코 오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키지 마시오." 조자가 위나라의 수도에 도착하자, 위왕 조비(曹丕)는 그가 찾아온 이유를 알면서도 짐짓 속내를 떠보았다. "오나라의 군주는 어떤 사람인가?" "총명하고 자애롭습니다. 또한 재능이 뛰어나고 원대한 지략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과장이 심하군." 조비가 비꼬듯 웃었다. 그러자 조자가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가며 반론하였다. 조비가 또 물어보았다. "만일 위나라가 오나라를 공격한다면?" "대국에 무력이 있다면, 소국은 방위책이 있습니다." "위나라가 두려운가?" "오나라에는 100만의 용맹한 군사와 함께 지리적인 천험(天險)이 있습니다." "그대 같은 인재가 오나라에는 얼마쯤 되나?" "나 같은 자는 수레에 싣고 말로 잴 정도[車載斗量]입니다." 조비가 탄복하여 말하였다. "사신으로서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함은 그대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오." 배석한 위나라의 신하들도 감동하였다. 조자의 활약으로 오나라와 위나라의 군사 동맹이 성립되었다. 조자가 돌아오자, 손권은 상(賞)과 함께 기도위(騎都尉) 벼슬을 내렸다.

◈ 괄목상대(刮目相對) : 이 말은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국 삼국시대에 오(吳)나라의 왕 손권(孫權)이 그의 장수 여몽(呂夢)이 무술에는 능하나 학문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을 나무라자 여몽은 이로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았다. 후에 노숙(魯肅)이 찾아가 전과 달라진 그의 높은 식견에 놀라워하자 여몽은 "선비가 사흘을 떨어져 있다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대하여야 합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라고 하였다.

◈ 국궁진췌, 사이후이(麴窮盡膵, 死而後已) : 제갈량의 출사표에 등장하는 말. 온 마음의 정성 몸이 부숴질 때까지 노력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정성을 다하겠다는 뜻.

◈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 : 주군과 신하가 마치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 가까운 사이를 말하는데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한 후 이 말을 사용했다.

◈ 계륵(鷄肋) : 닭의 갈비뼈는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뜻에서, 무엇을 취해 보아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 〈양수전(楊修傳)〉에 나오는 말로, 위(魏)나라 조조(曹操)와 촉(蜀)나라 유비(劉備)가 한중(漢中) 땅을 놓고 싸울 때, 조조는 진격이냐 후퇴냐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곤경에 빠져 있었다. 부하 한 사람이 내일의 일을 묻고자 밤늦게 조조를 찾아가니 조조가 다만 계륵(鷄肋)이라고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부하는 그대로 돌아와 계륵이 무슨 뜻이냐고 막료들과 의논을 하는데 아무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는 가운데 단지 주부(主簿)로 있는 양수(楊修)만이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내일은 철수명령이 내릴 테니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의 해석은 "닭의 갈비는 먹음직한 살은 없지만 그대로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다. 결국 이곳을 버리기는 아깝지만 대단한 땅은 아니라는 뜻이니 버리고 돌아갈 결정이 내릴 것이다(夫鷄肋 食之則無所得 棄之則如可惜 公歸計決矣)"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적중하여 다음날 철수명령이 내려졌다.

◈ 낙불사촉(樂不思蜀) : 즐기느라 촉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 암우한 후주 유선이 촉 멸망 후 사마소를 뵙는 자리에서 '너무 즐거워서 촉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그를 크게 비웃었다고 한다.

◈ 난공불락(難攻不落) : 학소가 지키는 진창성이 쉽사리 빼앗기지 않자, 제갈량이 감탄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 난형난제(難兄難弟) : 형제의 우열을 가릴수 없다는 뜻으로 나중에 바뀌어 상하우열을 가릴수 없는 것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말을 후학들이 평가하기로 부모된 사람은 죽을때까지 자기 자식의 우열을 가려 품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가 하면 부모로부터 '형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은 아우도 기분이 좋을리 없는데 만일 동생보다 못한 형이라고 평가한다면 어떤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될까를 염두에 두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 노우지독(老牛☆犢) : 늙은 소가 어린 송아지를 핥는다는 뜻으로, 양표가 아들 양수의 죽음 후에 매우 슬퍼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조조는 이러한 양표를 보고는 양수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참고) 양표는 이때 모반죄로 낙향해 살고 있었다.

◈ 내조(內助) : 아내가 집안을 탈없이 이끌어 남편이 바깥일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 단기천리(單騎千里) :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가는 관우의 모습을 묘사한 고사. 말 하나를 타고 천리를 내달린다는 뜻.

◈ 단도부회(單刀赴會) : 칼 한자루를 들고 모임에 나간다는 뜻으로, 여기서 모임이란 위험한 자리를 뜻한다. 관우를 초청하여 죽이겠다는 노숙의 궁벽한 꾀에 대해 관우는 청룡도 한자루만 들고 찾아가는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 도리상영(倒履相迎) : 신을 거꾸로 신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왕찬에 대한 설명 중, 그의 스승 격인 채옹이 왕찬의 방문에 신마저 거꾸로 신고 나가서 환영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 도원결의(桃園結義) : 약속한다는 뜻. 원(元)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 환관의 발호로 정치가 어지럽자 생할고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새로운 살길을 찾게 되었다. 신흥 종교인 태평도(太平道)의 교주 장각(張角)은 이러한 틈을 이용해 세력을 넓히고 난을 일으켰다. 이것이 후한을 멸망시킨 황건적의 난이다. 조정에서는 하진을 대장군으로 삼아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미치지 못하자 각 지방에 병사를 모집하는 방을 붙이게 되었다. 유주(幽州) 탁현(?縣)에 살던 유비(劉備)는 이 방문을 보자 가슴이 뛰었다. 그는 평소에 큰 일을 하고 싶어했으며, 일찍이 뤄양에 차를 사러 갔다가 황건적 무리의 횡포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의욕만 앞설 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거한이 유비 곁으로 다가와 한숨만 쉬는 것을 꾸짖었다. 장비(張飛)였다. 둘은 뜻이 같음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가까운 주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또 범상치 않은 얼굴의 거한이 있어 서로 마음이 통하였다. 그가 관우(關羽)였다. 서로 의기가 투합하자, 장비의 제안으로 다음날 장비의 집 후원 복숭아 밭에서 의형제 결의를 맺고 피를 나누었다. '유비와 관우, 장비는 비록 성은 다르다 할지라도 이미 의형제가 되었으니, 곧 마음을 한 가지로 하고 힘을 합쳐 곤란함을 구원하고 위태로움을 도와, 위로는 나라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만민을 편안케 할 것이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한 해 한 달 한 날에 죽기를 원하니 하늘과 땅의 신령께서는 이 뜻을 굽어살피소서. 만일 우리들 중에 의리를 배반하고 은혜를 잊는 자가 있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여 주소서.' 나관중이 도원결의를 책 첫머리에 삽입한 것은 정당하고 큰 의리를 부각하려는 것이었는데, 오늘날에는 목적과는 상관없이 의리를 맺는 데 이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 득롱망촉(得籠望蜀) : 조조가 한중을 얻고 허창으로 되돌아가려 할 때, 사마의가 조조에게 권하길, '이 기회를 틈타 유비가 있는 촉을 얻으십시오'라 하였으나, 조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옛말에 농지방을 얻고 촉을 바란다더니, 욕심이 과하군'이라 답변하였다.

◈ 돈견(豚犬) : 송(宋)나라 말 원(元)나라 초에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사서《18사략(十八史略)》 동한(東漢) 효헌제(孝獻帝) 조에 나오는 말이다. 관도(官渡)의 싸움에서 원소군을 물리치고 기반을 확립한 조조는 이어 형주를 공략하고 유비를 하구라는 곳으로 몰아 넣은 후 백만 대군을 동원하여 강동의 오(吳)나라로 진격해 왔다. 이때 오나라에는 손견(孫堅)이 죽고 그 아들 손권(孫權)이 즉위하여 주유(周瑜)·여몽(呂蒙)·노숙(魯叔) 등 막강한 참모의 보좌를 받고 있었다. 조조의 대군이 밀려 온다는 소식을 들은 손권은 유비군과 연합하여 이를 대적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양군은 장강을 사이에 두고 포진하였다. 조조는 수전에 약한 군사를 보호하기 위해 전함의 고물과 이물을 연결시켜 선단을 하나로 묶었다. 오군 사령관 주유는 이를 보고 곧 화공(火攻)을 준비하였다. 먼저 노장 황개(黃蓋)를 사소한 트집을 잡아 군사들 앞에서 욕보이는 고육계(苦肉計)로 조조를 속이고, 황개는 조조에게 거짓 항복을 하였다. 그리고는 겨울철에 보이는 강남 특유의 계절풍을 기다렸다. 하나로 묶인 선단은 불에 약할 수밖에 없고, 화공을 하려면 바람의 방향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자, 황개가 마른 풀과 염초를 가득 실은 작은 배를 이끌고 백기를 휘날리며 조조군으로 향하였다. 조조군에서는 뜻밖의 동남풍에 당황하면서도 황개의 투항을 기뻐하였다. 황개가 조조군에 다가가 화공을 시작한 후에야 모든 것을 눈치 챈 조조군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불은 바람을 타고 곧 조조군의 선단에 옮겨 붙었다. 가뜩이나 물에 약한 조조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 이때 주유의 본군이 물밀듯이 밀어닥치자 조조군은 대적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궤멸하고 말았다. 이것이 유명한 적벽(赤壁) 대전이다. 적벽 대전으로 자존심을 크게 상한 조조는 틈만 나면 오나라의 손권을 공략하려 했지만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아들을 낳으면 응당 손중모(孫仲謀:중모는 손권의 자) 같아야 한다. 지난 날 항복한 유경승(劉景升:劉表)의 아들(劉琮)은 돼지 자식, 개 자식에 불과하다.” 돈견이란 이와 같이 어리석고 못난 자식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인데, 부모가 남 앞에서 자기 자식을 겸손하게 부르는 말로도 쓰인다.

◈ 만전지책(萬全之策) : 조조가 원소를 격파한 뒤, 유표는 누구를 지지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자 한숭과 유선이 유표에게 건의하기를, '원소는 우유부단한 자라 분명 조조에게 격파당할 것이다. 조조에게 투항해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참고) 이 장면은 연의에는 나오지 않는 듯 싶다. 후한서 유표전에 나온다고 한다.

◈ 망매해갈(望梅解渴) : 조조가 전쟁 중에서 물을 구하지 못하여 그 병사들이 갈증을 이기지 못해 사기를 잃자, 조조는 '조금만 가면 매실을 얻을 수 있으니 참고 견뎌라'고 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유) 매림지갈(梅林止渴), 참고) 이 말은 조조와 유비가 영웅에 대해 논하면서 나온 말이다.

◈ 망천지시(亡天之時) : 하늘이 망하려는 것. 17로 제후군이 모여서 원소를 장으로 추대하자, 원소가 동탁의 만상을 이말로 표현하였다.

◈ 명모호치(明眸皓齒)와 폐월수화(閉月羞花) : 미인을 두고 '침어낙안(沈魚落雁)'이나 '폐월수화(閉月羞花)' 또는 '명모호치(明眸皓齒)'라는 말이 시나 부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명모(明眸)란 시원스럽고 맑은것, 호치(皓齒)는 하얗고 아름다운 이를 말한다. '명모호치(明眸皓齒)'는 미인의 조건이 되었다. 나중 시인들은 이 말을 빌어 미인을 뜻할때 '폐월수화(閉月羞花)' 또는 '명모호치(明眸皓齒)'라고 노래했다.

◈ 박면피(剝面皮) : 오제 손호가 자기 기분에 들지않는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만행을 저지른 데서 이 고사가 비롯되었는데, 이는 '면피를 벗긴다'는 것은 파렴치한 자의 면모를 밝혀 수치를 맛보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낮가죽이 두껍다라든가 뻔뻔스럽다라든가 염치를 모른다는 것을 '후안무치'라고 하는데 이것은 '시경' 소아의 의 한편에 '교언여황(巧言如簧)은 안지후의(顔之厚矣)' 에서 나온 고어로 이것을 좀 새롭게 구성한 것이 '남사(南史)' 변변전에 나오는 '면피후(面皮厚)' 즉 뻔뻔스러운 사람을 두고 얼굴 가죽이 두껍다고 말했다.

◈ 백리지재(百里之才) :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 노숙이 방통을 유비에게 추천하면서 방통을 이에 비유하였다. 참고) 그러나 연의에서는 이 구절을 '방통은 백리를 다스릴 인물이 아니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 백미(白眉) : 백미는 흰 눈썹이란 뜻이다. 제갈량, 즉 제갈공명(諸葛孔明)과도 친교를 맺었던 마량(馬良)은 형제가 다섯이었다. 다섯 형제는 모두 자(字)에 상(常)이란 글자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들 형제를 가리켜 ‘마씨오상(馬氏五常)’이라 일컬었다. 형제가 모두 재주가 뛰어났으나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났으므로 그 고장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씨오상은 모두 뛰어나지만 그 중에서도 흰 눈썹이 가장 훌륭하다(馬氏五常 白眉最良)”라고 하였다. 즉, 마량은 어려서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던 것이다. 이 때부터 같은 또래, 같은 계통의 많은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백미라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사람만이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이야기할 때도 백미라 부른다.《삼국지》 에 그 유래가 전한다.

◈ 복소지란(復巢之卵) : 공융의 두 아들이 한 말. 둥지가 부서지면 알이 성할리가 없다는 뜻. 공융이 조조의 노여움을 사 끌려가자, 그의 비복들이 그 두 자제에게 몸을 피하라고 권했지만, 둘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유) 복소지하 안유완란 (復巢之下 安有完卵), 소훼란파(巢毁卵破)

◈ 비육지탄(悲肉之歎) : 보람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한탄함을 비유한 말. 원래, 할 일이 없어 가만히 놀고 먹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살만 찜을 한탄한다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유비(劉備)가 한 말이다. 유비는 한때 신야(新野)라는 작은 성에서 4년간 할 일 없이 지냈는데, 어느 날 유표의 초대를 받아 연희에 참석하였을 때 우연히 변소에 갔다가 자기 넓적다리에 유난히 살이 찐 것을 보게 되었다. 순간 그는 슬픔에 잠겨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 눈물 자국을 본 유표가 연유를 캐묻자 유비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언제나 몸이 말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는데 요즈음은 말을 타는 일이 없어 넓적다리에 다시 살이 붙었습니다. 세월은 사정없이 달려서 머지않아 늙음이 닥쳐올 텐데 아무런 공업(功業)도 이룬 것이 없어 그것을 슬퍼하였던 것입니다(吾常軍不離鞍 ?肉皆消 今不復騎 ?裏肉生 日月若馳 老將至矣 而功業不建 是以悲耳)." 비육지탄은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 삼고초려(三顧草廬) : 《삼국지(三國志)》의 〈촉지 제갈량전(蜀志 諸葛亮傳)〉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기 관우(關羽:?~219)와 장비(張飛:166?~221)와 의형제를 맺고 무너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위해 애를 쓴 유비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허송 세월만 보낸 채 탄식하였다. 유비는 유표(劉彪)에게 몸을 맡기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관우와 장비와 같은 강한 군사력이 있으면서도 조조(曹操)에게 여러 차례 당하였다. 유비는 그 이유를 유효 적절한 전술을 발휘할 지혜로운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유능한 참모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隱士)인 사마휘(司馬徽)를 찾아가 유능한 책사를 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사마휘는 "복룡(伏龍:초야에 묻혀 있는 재사)과 봉추(鳳雛) 가운데 한 사람만 선택하시지요"라고 말하였다. 유비는 복룡이 제갈 량임을 알고 그를 맞으러 장비와 관우와 함께 예물을 싣고 양양(襄陽)에 있는 그의 초가집으로 갔는데, 세 번째 갔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 이때 제갈 량은 27세, 유비는 47세였다. 삼고지례는 유비가 제갈 량을 얻기 위해 그의 누추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간 데서 유래하는데,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또한 인재를 알아 볼 줄 아는 안목도 또한 갖추어야 한다. 유비는 제갈 량을 얻은 이후 자신과 제갈 량의 사이를 수어지교(水魚之交:물고기가 물을 만난 사이)라고 말하였다. 제갈 량은 원래 미천한 신분으로 이곳에서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숨어 지냈다. 그는 스스로를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유하였지만 최주평(崔州平)과 서서(徐庶)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다. 그는 뜻을 펼칠 때를 기다린 것이었다. 제갈 량은 이후 《출사표(出師表)》에서 자기를 찾은 유비의 지극한 정성에 대해 감격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신이 비천한 신분임을 알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어 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 주어 당시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이 일로 저는 감격하여 선제께서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줄여서 삼고라고 하며, 삼고초려(三顧焦廬) 또는 초려삼고(焦廬三顧)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 삼고지우(三顧知遇)가 있다. 유) 삼고지례(三雇之禮)

◈ 세한지송백(歲寒之松柏) :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기상은 겨울이 되어야 안다. 조조에게 투항한지 얼마 안되어 다시 관우와의 전투에 참여한 방덕이, 패한 뒤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린 것을 일컫는 말이다.

◈ 소향무적(所向無敵) : 이르는 곳마다 맞설 싸울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막강한 세력을 뜻한다. 조조가 형주를 얻고는 기고만장해져서 손권에게 투항하라는 뜻을 암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주유가 이에 반대하면서, '우리 군은 가는 곳마다 이기고 대등하게 대적한 자들이 없었습니다'고 하였다.

◈ 수어지교(水魚之交) : 매우 친밀하게 사귀어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원래 물과 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잠시도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관계에 비유한 말이다. 어수지친(魚水之親)이라고도 하는데, 부부 사이나 남녀가 매우 사랑하는 것을 어수지락(魚水之樂)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중국 삼국시대의 유비(劉備)와 제갈 량(諸葛亮)의 사이를 비유한 데서 비롯된다. 《삼국지》 을 보면, 유비와 제갈 량과의 사이가 날이 갈수록 친밀하여지는 것을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불평하자, 유비가 그들을 불러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다는 것은 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는 불평을 하지 말도록 하게(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勿復言)”라고 타일렀다. 이리하여 관우와 장비는 다시는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 :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사이를 뜻한다. 촉의 명장 위연은 국내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없어서 누구든 두렵게 여겼는데, 오직 장사 양의만이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고 그와 자주 맞서곤 했다. 유) 유여수화(有如水火)

◈ 순망치한(脣亡齒寒) :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라는 뜻.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 5년조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시대 말엽(B.C. 655), 진(晉)나라 헌공은 괵나라를 공격할 야심을 품고 통과국인 우나라 우공에게 그곳을 지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나라의 현인 궁지기(宮之寄)는 헌공의 속셈을 알고 우왕에게 간언했다.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오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수레의 짐받이 판자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괵나라와 우나라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결코 길을 빌려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왕은 “진과 우리는 동종(同宗)의 나라인데 어찌 우리를 해칠 리가 있겠소?”라며 듣지 않았다. 궁지기는 후환이 두려워 “우리나라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족과 함께 우나라를 떠났다. 진나라는 궁지기의 예견대로 12월에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정복하고 우왕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결코 끊어서는 안 되는 관계를 가리킨다. 동의어로 순치지국(脣齒之國)·순치보거(脣齒輔車)가 있으며, 유사어로 조지양익(鳥之兩翼)·거지양륜(車之兩輪)이 있다.


◈ 식소사번(食少事煩) : 적게 먹고 일은 많이 한다. 제갈량의 사신에게 사마의가 말하면서, 제갈량은 얼마 안가 죽으리라고 예언하였다. 참고) 이에 대하여 주부 양옹이 담당하는 군무의 양을 줄이라고 건의했으나, 제갈량은 선주의 은총을 떠올리며 거절한다.

◈ 식자우환(識字憂患) :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걱정을 끼친다는 말로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다는 뜻. 유비에게 제갈 량을 소개했던 서서(徐庶)가 유비의 군사로 있으면서 조조를 많이 괴롭혔다. 조조는 모사꾼인 정욱의 계략에 따라 서서가 효자라는 것을 알고 그의 어머니를 이용하여 그를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다. 서서의 어머니 위부인은 학식이 높고 의리가 투철한 여장부로 서서에게 현군을 섬기도록 격려하였다. 그러나 조조는 위부인의 글씨를 모방한 거짓편지를 써서 서서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나중에 위부인은 서서가 조조의 진영으로 간 것이 자기에 대한 아들의 효심과 거짓편지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고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부터가 걱정을 낳게 한 근본 원인이다(女子識字愚患).”라며 한탄하였다. 소동파의 시에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라는 구절도 있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쓸데없는 근심도 그만큼 많이 하게 되는 것, 또는 어줍잖은 지식 때문에 일을 망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한국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 신은구의(新恩久義) : 새로운 은혜, 오래된 의리라는 뜻으로, 은혜는 조조에 대한 것이요, 의리는 유비에 대한 것이다. 관우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조조의 호의에 감사히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비를 잊지 않았다.

◈ 양상군자(梁上君子) :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 즉 도둑을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쥐를 가리키기도 한다.

◈ 언과기실(言過其實) : 실제보다 말이 더 앞선다는 뜻. 제갈량이 마속을 높이 평가하자, 이에 대해 유비가 '그는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나 실제로는 대단한게 없으므로 그를 높이 기용하지 말아라'고 충고하였다. 제갈량은 마속을 죽일 때 이 글귀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언출위론 하필성문(言出爲論 下筆成文) : 말을 하면 경론이고 붓만 들면 명문이라는 뜻. 건안문단의 일인자로 꼽히는 조식에 대한 평이다.

◈ 오관육참(五關六斬) : 다섯 관문에서 여섯 명을 벤다는 뜻. 관우가 원소 밑에 있던 유비를 만나기 위해 그를 가로막는 다섯 관문의 장수 여섯을 베었다. 그의 충절을 기리는 고사성어. 참고) 동령 - 공수 낙양 - 한복, 맹탄 기수 - 변희 형양 - 왕식 활주 - 진기 유) 오관참장(五關斬將)

◈ 우도할계(牛刀割鷄) :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 동탁이 사수관을 지킬 장수를 뽑을때 여포를 보내려 하자, 화웅이 여포를 소 잡는 칼, 손견을 닭에 비유하며 자신의 출전을 요청하였다. 유)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

◈ 원문사극(轅門射戟) : 여포가 원문에서 150보 거리에 놓아둔 화극의 곁가지를 화살로 쏘아 맞춘 일. 이로써 교전을 앞두던 원술의 부장 기령과 유비는 화해를 하게 되었다.

◈ 육출기산,구벌중원(六出祁山,九伐中源) : 기산에 여섯번 나가고, 중원을 아홉번 어우른다는 뜻 . 각각 제갈량과 강유가 북벌을 여섯번, 아홉번 시도한 것을 뜻한다.

◈ 읍참마속(揖斬馬謖) :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히 법을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에 비유하는 말. 울며 마속(馬謖)의 목을 벤다는 뜻으로 《촉지(蜀誌)》 〈마속전(馬謖傳)〉에 나오는 말이다. 촉(蜀)나라의 제갈 량(諸葛亮)은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자기의 명령·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싸우다가 패한 부장(部將) 마속을, 그 전날의 공과 두터운 친분에도 불구하고 울며 목을 베어 전군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 일룡분이호(一龍分二虎) : 한 마리의 용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갈라놓다. 관우와 장비의 싸움을 말린 유비에 대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 절영지회(折纓之會) : 갓끈을 끊는 연회라는 뜻. 옛 고사에서 비롯됨. 이유가 이고사를 예로 들어 동탁에게 간언하길 초선을 여포에게 내리면 여포의 충심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 진복론천(秦宓論天) : 촉의 진복이 오의 사신 장온과 하늘에 대해 논한 일. 여기서 장온은 진복의 논리정연한 말과 해박한 지식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 창서칭상(倉舒秤象) : 조조의 아들 창서가 오에서 보내온 코끼리의 무게를 잰고사를 말한다. 참고) 조창서는 이름이 충이고 창서는 그의 자이다. 조조가 그의 아들중 가장 총애할만큼 재주가 남달랐지만,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빛을 보지 못하였다.

◈ 청경우독(淸耕雨讀) : 맑을 땐 밭을 갈고 비가 올 땐 책을 읽는다. 제갈량이 융중에서 이런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 천계일봉(千鷄一鳳) : 닭 천 마리 중에 봉황이 한 마리가 있다는 뜻. 황건적 장수인 절천야차 하만이 조조 군영을 농락하며 등장하자, 조홍이 이렇게 외치며 그와 맞섰다.

◈ 칠종칠금(七縱七擒) :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다는 뜻으로, 상대를 마음대로 다룸을 비유하거나 인내를 가지고 상대가 숙여 들어오기를 기다린다는 말. 제갈량(諸葛亮)이 맹획(孟獲)을 사로잡은 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마음대로 잡았다 놓아주었다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칠금(七擒)'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삼국지(三國志)》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제1대 황제인 유비(劉備)는 제갈 량에게 나랏일을 맡기고 세상을 떠났다. 제갈량은 후주(後主)인 유선(劉禪)을 보필하게 되었는데, 그때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위(魏)나라를 공략하여 생전의 유비의 뜻을 받들어야 했던 제갈 량은 먼저 내란부터 수습해야 했다. 유선이 아직 어리고 철이 없어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 제갈 량은 적진에 유언비어를 퍼뜨려 이간책을 썼다. 과연 반란군은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켜 서로 살육을 일삼았다. 그 결과 마지막으로 등장한 반란군이 바로 맹획이라는 장수였다. 맹획이 반기를 들자 제갈량은 노강 깊숙이 들어가 그를 생포했다. 제갈량의 계략에 걸려들어 생포된 맹획은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맹획을 생포한 제갈량은 오랑캐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대해 촉한의 무장인 마속(馬謖)도 '용병의 도리는 최상이 민심을 공략하는 것으로, 군사전은 하책일 뿐 심리전을 펴 적의 마음을 정복하라'고 했다. 제갈 량은 오랑캐의 마음을 사로잡고 나면 그들의 인적, 물적 자원을 바탕으로 북벌(北伐)도 한결 용이할 것이라 생각하여 맹획을 풀어주었다. 고향에 돌아온 맹획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제갈량은 자신의 지략을 이용하여 맹획을 다시 사로잡았지만 또 풀어주었다. 이렇게 하기를 일곱 번, 마침내 맹획은 제갈량에게 마음속으로 복종하여 부하 되기를 자청했다. 여기서 '칠종칠금'이란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 이 말은 '상대편을 마음대로 요리한다'는 뜻으로 비유되어 사용된다.

◈ 침불안석,식불감미(寢不安席,食不感味) : 누워도 자리가 편치 않고,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 말로, 위로 강대한 적을 둔 그의 심정을 잘 드러낸다.

◈ 탄금주적(彈琴走賊) :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낸다는 뜻. 제갈량이 가정전에서 패한 후 서성에서 사마의의 10만 대군과 맞설 때, 단 3천 병력으로 적을 막아내지 못함을 알고 거문고 울림으로 손쉽게 적을 쫓아냈다. 참고) 이때 사용된 계책이 공성지계이다.

◈ 투서기기(投鼠忌器) : 쥐를 잡다가 독을 깬다는 뜻. 허전의 사냥에서 조조의 방자한 행동을 목격한 관우가 칼을 들어 그를 베려 할 때, 유비가 가만히 그를 만류하며 이말을 하였다.

◈ 파죽지세(破竹之勢) :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라는 뜻으로, 세력이 강대해 감히 대적할 상대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다음은 《진서(晉書)》〈두예전(杜預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진(晉)나라의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가 진무제(晉武帝)로부터 출병 명령을 받아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오(吳)나라를 쳐서 삼국시대의 막을 내리고 천하통일을 이룰 때의 일이다. 출병한 이듬해 음력 2월,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회의를 열었다. 이때 한 장수가 '곧 강물이 범람할 시기가 다가오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르니 일단 후퇴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자 두예는 단호히 명령조로 대답했다. "지금 우리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이 높다. 그것은 마치 '대나무를 쪼갤 때의 맹렬한 기세[破竹之勢]'와 같다. 대나무란 일단 쪼개지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을 대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단 말인가." 두예는 곧바로 군사를 재정비하여 오나라의 도읍인 건업(建業)으로 진격하여 그야말로 파죽지세처럼 몰아쳐 단숨에 건업을 함락시켰다. 오왕 손호(孫晧)는 손을 뒤로 묶고 수레에 관을 싣고 사죄의 뜻을 보이며 항복해왔다. 이리하여 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두예는 오나라를 평정한 공으로 당양현후(當陽縣侯)에 봉해졌으나, 만년에는 학자로서 학문과 저술에 힘을 기울여 《춘추석례(春秋釋例)》《좌전집해(左傳集解)》 등의 저서를 남겼다. 오늘날 이 말은 거침없이 일이 잘 풀리거나 처리됨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세여파죽(勢如破竹)', '영도이해(迎刀而解)'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 할수기포(割鬚棄袍) : 수염을 자르고 도포를 버린다는 뜻. 동관에서 마초와 맞닥뜨린 조조가 그에게 패하여 도망갈 때, '비단 도포를 입은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도포를 버리고, '수염이 긴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수염을 잘랐다고 한다.

◈ 호부견자(虎父犬子) : 호랑이 아들에 개 아들이라는 말로, 촉을 차지하여 나라를 세운 유비에 비하여 그 나라를 주색으로 망쳐버린 우매한 아들 유선을 비교한다.

◈ 화병(畵餠) : '그림 속의 떡에 불과하다'란 뜻으로 실력없이 명성만 화려한 자를 말한다.

◈ 홍문연회 : 유비와 조조가 영웅에 대하여 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관우와 장비가 들이닥치면서 '칼춤이라도 추어보이기 위해 달려왔습니다'라고 하자, 조조는 그들의 충심에 감복하면서, '이곳은 홍문의 연회가 아니니 칼을 들 필요는 없을 것이오'라고 답하였다. 참고) 홍문연회란 항우가 모사 범증의 말에 따라 홍문이라는 곳에서 유방을 죽이려 했던 일을 말한다. 범증은 항장이라는 장수를 시켜 칼춤을 추다가 은밀히 유방을 죽이도록 하였는데, 이를 알아챈 항백이라는 자가 같이 칼을 뽑고 춤을 추면서 항장의 행동을 저지하였다. 곧 유방의 장수인 번쾌도 칼을 뽑아들고 뛰어 들어 항장을 막았고, 낌새를 알아차린 유방은 곧 장 자리를 떠서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유비의 입촉에서도 인용된다.

◈ 회귤고사(懷橘故事) : 오의 육적이 원술의 초청을 받아 잔치에 참가하였을때, 모친을 생각하여 귤을 품어 달아났다는 고사. 유) 육적회귤(陸績懷橘)

삼국지,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

삼국지,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음,뜻,한자,간단한유래) 50개 좀 가르쳐주세요, , 50개가 안되더라도, , 있는 대로 다 답변 해주세요 .. 빨리 부탁드립니다 .. p.s...

사기나오는 고사성어 가르쳐주세요,

사기열전에 나오는 고사성어좀 가르쳐주세요, 뜻하구 유래 이런것 필요없구요, 그냥 고사성어만 찾아 주세요, 최소 15개 이상이요~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성어. 관포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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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나 초한지, 열국지,수호지 등에 나오는 고사성어를 좀 알려주셨음 합니다. 지금... 못해 사기를 잃자, 조조는 '조금만 가면 매실을 얻을 수 있으니 참고 견뎌라'고 한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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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나오는고사성어60개만알려주세요 내공포함하구요 될수록빨리여 1. 가도멸괵... 못해 사기를 잃자, 조조는 '조금만 가면 매실을 얻을 수 있으니 참고 견뎌라'고 한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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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형주찰출기 고사성어

한문 수행평가로 삼국지 형주탈출기 내용으로 연극을 해야하는데 쓸만한 고사성어 최소 15개 이상 부탁드립니다.... 변변전에 나오는 '면피후(面皮厚)' 즉 뻔뻔스러운 사람을...

삼국지나오는 고사성어 30~40개(내공...

삼국지나오는 고사성어 30~40개(내공 있어요~) 제가 삼국지를 읽어야 돼는데...너무... 못해 사기를 잃자, 조조는 '조금만 가면 매실을 얻을 수 있으니 참고 견뎌라'고 한데서...

삼국지나오는 고사성어

삼국지에 보면요 고사성어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 고사성어들좀 알려주세요...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破竹之勢]'요. 대나무란 처음 두세 마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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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개이상으로해서 삼국지에서나오는 고사성어좀 알려주세요! 그리고 새 해 福... 못해 사기를 잃자, 조조는 '조금만 가면 매실을 얻을 수 있으니 참고 견뎌라'고 한데서 비롯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