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10]제 여행기행문 검토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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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일주일 내내 기다렸던 수학여행 이였다. 머슥머슥 했던 친구들과 친해 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친구들의 특징과 성격을 알 수 있었고, 나와 잘 맞는 친구들과 친해져 여러모로 뜻 깊었던 여행 이였다. 또한 이북 땅을 밞아 볼 수 도 있어서 좋았다.
첫째 날의 대부분의 시간은 버스에서 보내야 했다. 먼저 우리의 행선지가 강원도 쪽이라서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첫날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해상공원이다. 잠을 자고 있던 나는 친구의 깨움으로 일어나 해상공원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버스에서 내려 나와 친구들은 여러 군데 시선이 가는 장소로 이동을 했다. 가는 길에 나무에서 청설모 한 마리를 만났는데, 청설모가 도망치기 전에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청설모를 만나고 가던 중 우리는 모두 어떤 간판을 보고 웃기 시작했다. 간판에는 ‘국민가수 태진아’ 라고 적혀져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땐 그저 태진아 홍보 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옆에 작게 친동생집이라고 써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들은 웃다가 처음에 가보려고 했던 경북대종으로 갔다. 경북대종은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 진 것이었는데 별로 볼 것은 없었다. 경북대종을 보고 우리는 공연이 주로 열릴 것 같은 홀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단상위에서 리마리오 자세를 하고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고, 모두 내 제안에 응하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뒤 시간이 다되어 버스에 올랐다. 난 후에 해상공원에서 바다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알았다. 숙소에선 모두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모여 놀기에 바빴다. 나는 몇 명은 반 친구들과 방에서 카드게임을 하며 놀았다. 나중에 한 11시쯤 되자 한 친구의 제안으로 베개 싸움을 했고 그 때문에 몇몇은 선생님께 걸려 혼이 났다.
둘째 날, 금강산에 가는 날 이였다. 그 날 아침은 금강산에 대한 설렘 보다는 잠에 대한 욕구가 더 강했다. 늦은 취침과 이른 기상 때문 이였다. 그러나 난 느릿느릿 일어나 세면을 하고 아침밥을 먹은 뒤, 필요한 준비물만 챙겨 차에 탔다. 우리는 여러 가지 수속 절차를 마친 뒤 북한 땅을 밞을 수 있었다. 북한에선 차량검문이 있었는데, 북측 장교 둘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북측 사람이라 신기했지만, 그들이 옆구리에 찬 총과 그들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었다. 혹 나 만 그랬을까 나의 옆에 앉았던 친구는 군대식 차렷 자세를 하고 시선은 앞으로 고정하고 굳은 얼굴로 있었다. 그 모습이 웃겼을 법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웃으면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법한 분위기에 나 또한 친구처럼 가만히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금강산에 도착했다. 모두들 카메라로 금강산의 멋진 풍경을 담기에 바빴다. 나는 입구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산행을 했지만, 조금 가다가 나 혼자 산행을 했다. 그 이유는 내가 산행을 할 때 빨리 올라가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나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여, 이내 포기하고 천천히 산을 올랐다. 산행을 하며 난 카메라 셔터 누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금강산의 높고 웅장한 모습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멋진 풍경에도 옥 의 티가 있었는데, 멋지고 크다 하는 바위에는 모두 북한 삼장군의 글귀를 써둔 것이다. 약간의 땀을 흘리며 오른 도착지는 구룡폭포였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는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추운 날씨로 적어진 수량이 아쉬웠다. 나는 친구들,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사진 촬영을 한 뒤 빨리 내려왔다. 그 이유는 빨리 산에 오른 탓에 미처 보지 못한 풍경이나,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나는 내려오는 길에 숙소에서 가져온 물통에 금강산 삼록수를 떴고 기념품점에서 부모님, 동생 그리고 다른 학교 친구에게 줄 기념품을 샀다. 그 날 금강산 산행을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먼저 북한 동포들과 우리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구룡폭포에서 나와 나의 친구는 북측아저씨와 함께 사진을 찍고 또한 안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아저씨와 우리는 대화가 잘 통했고, 서로 동포애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기념품점에선 판매원 누나와 말을 나누었는데, 하나 더 사라는 말에서 남측의 장사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난 통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사상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과, 북측에서 만 쓰는 말과 남측에서 만 쓰는 말맞추기 그리고 경제적 격차를 맞추어야 할 것 같았다.
위의 세 가지만 잘 이루어 질 수 있다면, 통일이 그리 멀지 많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두 번째 날의 금강산 산행은 뜻 깊은 여행 이였다. 그 날 산행을 마치고 저녁 전에 돌아와 자유시간이 많았지만 대부분 산행에 지쳐 잠을 잤다.
셋째 날, 작년에 졸업여행으로 갔던 설악산을 가는 날 이였다. 정동진과 함께 중학교 졸업여행 코스였는데, 산행코스도 같아서 가기 싫었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기념 촬영을 한 뒤 나는 나와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들과 저번에 가보지 못했던 울산바위 코스로 갔다. 우리 말고도 울산바위 코스로 간 학생이 꽤 있었는데, 대부분 나와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였다. 울산바위로 올라가는 길에 말로만 듣던 흔들바위를 만났다. 나와 친구들은 바위를 힘차게 밀었다. 그러자 난 바위의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산행을 하려는데, 몇몇 친구가 지쳐서 더 이상 산행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나는 산행할 친구들 하고만 산을 올랐다. 울산바위를 만만 하게 본 탓일까 울산바위는 생각보다 지세가 험준하고 높아서, 오르는데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그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을 올랐다. 그때의 감동은 전교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는 것 보다 더 큰 감동 이였다. 울산바위에서 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목을 축이며 경치를 감상했다. 우리는 정상에서 조금 있다가 자리를 추스린 뒤 울산바위에서 내려왔다. 난 울산바위를 내려오며 깨달음을 하나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올라가는 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고통에 비하여 무척 쉽고 수월하다는 사실 이였다. 난 이에 고등학교 3년 생활이 힘들지만 잘 이겨만 낸다면 미래에 편하게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 자신감을 얻었다.
지겹고 따분 할 것만 같았던 설악산 여행, 그렇지만 나에게 큰 교훈을 준 값진 여행 이였다.
마지막 날, 오늘은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에버랜드를 가는 날이다. 졸업여행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꼭 가는 필수 코스인 에버랜드는 몇 번을 가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이번엔 새로 사귄 고등학교 친구들과 가게 되어서 더 재밌었다. 역시나 에버랜드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촬영을 속히 끝낸 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바쁘지 않았지만 그냥 뛰어서 놀이기구로 갔다. 우리무리 중에서는 놀이기구를 잘 타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가 있었는데, 처음엔 같이 다니다가 놀이기구를 잘 못타는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 해서 나누어져서 놀았다. 난 놀이기구는 초등학교 때 모두 적응하여 잘 타는 축에 끼어 있었다. 에버랜드에서 가장 재밌었던 것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리프트였다. 우리는 에버랜드에 있는 동안 총 3번의 리프트를 탔는데, 재밌었던 점은 나와 나의 친구들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반대편에서 오는 외국인들에게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답변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재밌다는 듯이 웃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중요한건 우리는 그걸 엄청 즐기고 웃었다는 거다.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지만, 그때 상황은 엄청 재밌었다.
그렇게 뜻 깊었던 수학여행은 끝이 났다. 이제 3년 동안 악작 같이 공부해야 한다. 그 3년 동안 힘들 때 마다 수학여행에서의 교훈과 깨달음을 기억하며 잘 이겨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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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일주일 내내 기다렸던 수학여행 이였다. 머슥머슥 했던 친구들과 친해 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친구들의 특징과 성격을 알 수 있었고, 나와 잘 맞는 친구들과 친해져 여러모로 뜻 깊었던 여행 이였다. 또한 이북 땅을 밞아 볼 수 도 있어서 좋았다.
첫째 날의 대부분의 시간은 버스에서 보내야 했다. 먼저 우리의 행선지가 강원도 쪽이라서 이동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첫날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해상공원이다. 잠을 자고 있던 나는 친구의 깨움으로 일어나 해상공원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버스에서 내려 나와 친구들은 여러 군데 시선이 가는 장소로 이동을 했다. 가는 길에 나무에서 청설모 한 마리를 만났는데, 청설모가 도망치기 전에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좋았다. 청설모를 만나고 가던 중 우리는 모두 어떤 간판을 보고 웃기 시작했다. 간판에는 ‘국민가수 태진아’ 라고 적혀져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봤을 땐 그저 태진아 홍보 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옆에 작게 친동생집이라고 써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들은 웃다가 처음에 가보려고 했던 경북대종으로 갔다. 경북대종은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 진 것이었는데 별로 볼 것은 없었다. 경북대종을 보고 우리는 공연이 주로 열릴 것 같은 홀로 갔다. 그곳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단상위에서 리마리오 자세를 하고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고, 모두 내 제안에 응하여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뒤 시간이 다되어 버스에 올랐다. 난 후에 해상공원에서 바다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알았다. 숙소에선 모두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모여 놀기에 바빴다. 나는 몇 명은 반 친구들과 방에서 카드게임을 하며 놀았다. 나중에 한 11시쯤 되자 한 친구의 제안으로 베개 싸움을 했고 그 때문에 몇몇은 선생님께 걸려 혼이 났다.
둘째 날, 금강산에 가는 날 이였다. 그 날 아침은 금강산에 대한 설렘 보다는 잠에 대한 욕구가 더 강했다. 늦은 취침과 이른 기상 때문 이였다. 그러나 난 느릿느릿 일어나 세면을 하고 아침밥을 먹은 뒤, 필요한 준비물만 챙겨 차에 탔다. 우리는 여러 가지 수속 절차를 마친 뒤 북한 땅을 밞을 수 있었다. 북한에선 차량검문이 있었는데, 북측 장교 둘이 들어왔다. 처음 보는 북측 사람이라 신기했지만, 그들이 옆구리에 찬 총과 그들의 매서운 눈빛을 보고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생겼었다. 혹 나 만 그랬을까 나의 옆에 앉았던 친구는 군대식 차렷 자세를 하고 시선은 앞으로 고정하고 굳은 얼굴로 있었다. 그 모습이 웃겼을 법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웃으면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법한 분위기에 나 또한 친구처럼 가만히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금강산에 도착했다. 모두들 카메라로 금강산의 멋진 풍경을 담기에 바빴다. 나는 입구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산행을 했지만, 조금 가다가 나 혼자 산행을 했다. 그 이유는 내가 산행을 할 때 빨리 올라가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들 나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여, 이내 포기하고 천천히 산을 올랐다. 산행을 하며 난 카메라 셔터 누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금강산의 높고 웅장한 모습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멋진 풍경에도 옥 의 티가 있었는데, 멋지고 크다 하는 바위에는 모두 북한 삼장군의 글귀를 써둔 것이다. 약간의 땀을 흘리며 오른 도착지는 구룡폭포였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구룡폭포는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추운 날씨로 적어진 수량이 아쉬웠다. 나는 친구들,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사진 촬영을 한 뒤 빨리 내려왔다. 그 이유는 빨리 산에 오른 탓에 미처 보지 못한 풍경이나, 기념품을 사기 위해서였다. 나는 내려오는 길에 숙소에서 가져온 물통에 금강산 삼록수를 떴고 기념품점에서 부모님, 동생 그리고 다른 학교 친구에게 줄 기념품을 샀다. 그 날 금강산 산행을 나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먼저 북한 동포들과 우리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구룡폭포에서 나와 나의 친구는 북측아저씨와 함께 사진을 찍고 또한 안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아저씨와 우리는 대화가 잘 통했고, 서로 동포애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기념품점에선 판매원 누나와 말을 나누었는데, 하나 더 사라는 말에서 남측의 장사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난 통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 서로의 사상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과, 북측에서 만 쓰는 말과 남측에서 만 쓰는 말맞추기 그리고 경제적 격차를 맞추어야 할 것 같았다.
위의 세 가지만 잘 이루어 질 수 있다면, 통일이 그리 멀지 많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두 번째 날의 금강산 산행은 뜻 깊은 여행 이였다. 그 날 산행을 마치고 저녁 전에 돌아와 자유시간이 많았지만 대부분 산행에 지쳐 잠을 잤다.
셋째 날, 작년에 졸업여행으로 갔던 설악산을 가는 날 이였다. 정동진과 함께 중학교 졸업여행 코스였는데, 산행코스도 같아서 가기 싫었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기념 촬영을 한 뒤 나는 나와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들과 저번에 가보지 못했던 울산바위 코스로 갔다. 우리 말고도 울산바위 코스로 간 학생이 꽤 있었는데, 대부분 나와 같은 중학교 친구들이였다. 울산바위로 올라가는 길에 말로만 듣던 흔들바위를 만났다. 나와 친구들은 바위를 힘차게 밀었다. 그러자 난 바위의 흔들림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시 산행을 하려는데, 몇몇 친구가 지쳐서 더 이상 산행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나는 산행할 친구들 하고만 산을 올랐다. 울산바위를 만만 하게 본 탓일까 울산바위는 생각보다 지세가 험준하고 높아서, 오르는데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그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을 올랐다. 그때의 감동은 전교조회 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는 것 보다 더 큰 감동 이였다. 울산바위에서 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목을 축이며 경치를 감상했다. 우리는 정상에서 조금 있다가 자리를 추스린 뒤 울산바위에서 내려왔다. 난 울산바위를 내려오며 깨달음을 하나 얻었는데, 그것은 바로 올라가는 길은 어렵고 힘들지만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고통에 비하여 무척 쉽고 수월하다는 사실 이였다. 난 이에 고등학교 3년 생활이 힘들지만 잘 이겨만 낸다면 미래에 편하게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아 자신감을 얻었다.
지겹고 따분 할 것만 같았던 설악산 여행, 그렇지만 나에게 큰 교훈을 준 값진 여행 이였다.
마지막 날, 오늘은 수학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에버랜드를 가는 날이다. 졸업여행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꼭 가는 필수 코스인 에버랜드는 몇 번을 가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이번엔 새로 사귄 고등학교 친구들과 가게 되어서 더 재밌었다. 역시나 에버랜드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촬영을 속히 끝낸 뒤 나는 친구들과 함께 바쁘지 않았지만 그냥 뛰어서 놀이기구로 갔다. 우리무리 중에서는 놀이기구를 잘 타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가 있었는데, 처음엔 같이 다니다가 놀이기구를 잘 못타는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 해서 나누어져서 놀았다. 난 놀이기구는 초등학교 때 모두 적응하여 잘 타는 축에 끼어 있었다. 에버랜드에서 가장 재밌었던 것은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리프트였다. 우리는 에버랜드에 있는 동안 총 3번의 리프트를 탔는데, 재밌었던 점은 나와 나의 친구들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반대편에서 오는 외국인들에게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은 답변을 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재밌다는 듯이 웃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중요한건 우리는 그걸 엄청 즐기고 웃었다는 거다.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웃을 일이 아니지만, 그때 상황은 엄청 재밌었다.
그렇게 뜻 깊었던 수학여행은 끝이 났다. 이제 3년 동안 악작 같이 공부해야 한다. 그 3년 동안 힘들 때 마다 수학여행에서의 교훈과 깨달음을 기억하며 잘 이겨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