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역사를 알고 싶어요.

우리말의 역사를 알고 싶어요.

작성일 2003.08.25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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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도 역사가 있겠죠.

우리말의 역사를 알고 싶어요.

알고 있으면 빨리 알려주세요.

기왕이면 아주 자세히 좀...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 국어의 변화
세상 만사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듯이 언어도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의사 전달을 위한 약속의 체계이기 때문에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변화들이 쉴새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게 되면 그 변화의 모습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된다.

우리말은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말의 이러한 변화는 음운, 어휘, 문법 등 국어를 구성하는 모든 측면에 걸쳐 이루어져 왔다. 다음은 15세기에 쓰여진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서문인데, 이 구절만 보더라도 우리말에는 여러 가지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젼 로 어린  셩이 니르고져 홇 배 이셔도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

이를 현대 국어로 옮기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끝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우리는 여기서, 15세기 국어의 '  , 니르다,  '이 오늘날에는 각각 '백성, 이르다, 뜻'으로 바뀌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그 동안 음운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단어의 모습도 바뀐 것이다. 또, '젼 '라는 단어는 '까닭'으로, '하니라'는 '많으니라'로 바뀌었는데, 이는 '젼 , 하니라' 같은 단어들이 지금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어린   '에서 '어린'은 당시에는 '어리석다'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몯  노미'의 '놈'도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는 그 동안 단어의 의미가 변화한 예이다.

또, '니르고져'의 '-고져'는 의도를 나타내는 연결 어미인데 지금은 '-고자'로 쓰이며, '홇 배 이셔도'에서 의존 명사 '바'에 주격 조사 'ㅣ'가 붙어 있지만, 지금의 국어에서는 '하는 바가 있어도'처럼 주격 조사 '가'가 쓰인다. 이는 15세기에서 지금에 이르는 동안 문법에도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예이다. 이처럼 우리말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끊임없이 변화를 해 왔다.



2. 국어사의 시대 구분

그렇다면 아득한 옛날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우리말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선사 시대(先史時代)에 대한 궁금증이 모두 그러하듯이, 이 질문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이 의문에 대해서는 국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 즉 국어의 게통(系統)이 먼저 정확하게 밝혀져야만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데, 국어의 계통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다.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살필 때, 몽골어군(語群), 만주-퉁구스어군, 튀르크어군 등과 함께 국어가 알타이 어족(語族)에 속할 가능성은 높지만, 아직은 분명한 비교 언어학적(比較言語學的) 증거가 확보되지 않아 가설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국어의 계통을 더 분명하게 밝히는 일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역사 시대 이후 만주 일대와 한반도에 자리를 잡은 우리 민족의 언어는 대체로 북방(北方)의 부여계(夫餘系) 언어와 남방(南方)의 한계(韓系) 언어로 나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뒤 이들은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로 발전되면서 서로 공통점과 함께 차이점도 가진 언어들로 발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언어에 대해서는 자료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그 구체적인 모습을 알기 어렵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부터는 경주(慶州)를 중심으로 언어가 통일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시기 국어를 고대 국어라고 부른다.

고려의 건국과 더불어 언어의 중심지는 개성(開城)으로 옮겨 갔다. 이 시기의 언어는, 일부 고구려어의 흔적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크게 보아 신라어를 계승하여 발전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의 건국으로 언어의 중심이 지금의 서울 지방으로 옮겨졌으나 언어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려의 건국부터 16세기 말까지의 국어를 중세 국어라고 부른다. 중세 국어는 전기 중세 국어, 후기 중세 국어로 더 나누기도 한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한글로 적은 문헌 자료가 많이 나온 시기는 주로 후기 중세 국어에 속한다.

17세기부터는 음운, 문법 등에서 앞 시대의 국어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모음 체계상에 변화가 일어났으며, 여러 문법 현상들이 사라지거나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이 시기, 즉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의 약 300년 동안의 국어를 근대 국어라고 부르다.

개화기(開化期)부터 현재까지의 국어를 현대 국어라 한다. 현대 국어는 앞 시기의 언어와 주로 어휘면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이는 서구 신문명의 전래와 더불어 수많은 단어들이 도입되거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말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 시대부터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기록은 모두 한자를 빌려서 적은 차자 표기(借字表記)로 되어 있어서 그 해독(解讀)이 쉽지 않기 때문에, 당시의 우리말의 실제 모습을 되살려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국어의 변화는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한글 문헌 자료가 충분히 확보된 15세기 국어, 즉 후기 중세 국어부터 생생하게 밝힐 수 있다.



3. 음운의 변화

앞서, 우리는 국어의 변화가 음운, 어휘, 문법 등 모든 측면에 걸쳐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먼저, 음운의 변화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중세 국어 이전의 우리말의 음운구조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알기가 어렵다. 자음의 경우, 중세 국어 시기에 이르러 현대 국어 마찬가지로 예사소리(ㅂ, ㄷ, ㅈ, ㄱ), 된소리(ㅃ, ㅉ, ㄸ, ㄲ), 거센소리(ㅍ, ㅌ, ㅊ, ㅋ)의 세 계열(系列)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세 국어에는 현대 국어와 달리 마찰음인 ' '([ ]), '△'([Z])와 같은 자음이 더 있었다. 이 중에서 ' '는 15세기 말에 이르러 반모음 'ㅗ/ㅜ'([W])로 바뀌었다. '셔 >서울', '더 >더워', '쉬 >쉬운' 등에서 그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는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걸쳐 소멸하였다. '   >마음', '처  >처음', '아  >아우' 등에서 그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세 국어에는 현대 국어와 달리 음절 첫머리에 둘 이상의 자음이 올 수 있었다. ' ', ' '과 같이 자음 둘이 첫머리에 놓일 수 있었던 것이 그 예이다. 또, 'ㄷ', ' '와 같이 자음 셋이 나타나는 표기도 보이지만, 이 세 자음을 실제로 모두 발음했는지는 확실히 알기가 어렵다. 이러한 소리들은 나중에 대부분이 된소리로 바뀌었다.

중세 국어의 단모음은 /ㅣ, ㅡ, ㅓ, ㅏ, ㅜ, ㅗ,?/ 의 7모음 체계였다. 그 중에서 /?/는 음가(音價)가 차츰 소멸되기 시작하여 16세기에는 둘째 음절 위치에서 /ㅡ/나 /ㅏ/ 등으로 바뀌었다. '기 마[鞍]'가 '기르마'로, '  [壁]이' ' 람'으로 바뀐 것들이 그 예이다. 이중모음(二重母音)에는 /ㅑ, ㅕ, ㅛ,ㅠ,ㅘ,ㅝ/와 같이 반모음이 뒤에 놓이는 이중 모음도 있었다.

근대 국어 시기에 이르러서는 모음 체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이미 중세국어에서 일어났던 '?'의 음가 소멸이 계속되어 첫째 음절에서도 /?/가 /ㅏ/로 바뀌게 되었다. ' 래[湫]'가 '가래'로, ' 년(來年)'이 '래년'으로 바뀐 것들이 그 예이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의 음가가 소멸된 이후 이중 모음이었던 /ㅔ/와/ㅐ/가 단모음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 결과, 18세기 말에 이르러 국어의 단모음은 /ㅣ, ㅔ, ㅐ, ㅡ, ㅓ, ㅏ, ㅜ, ㅗ/의 8모음 체계로 되었다.

현대 국어로 들어서는 시기에 이중 모음 /ㅚ, ㅟ/도 단모음으로 변화하여 근대 국어의 8 모음 체계가 10모음 체계로 바뀌었다. 그 결과, 이중 모음의 경우, 중세 국어와는 달리 반모음이 앞서는 이중 모음만 남게 되었다.

성조(聲調)는 단어의 뜻을 분별해 주는 기능을 하는 소리의 높낮이를 말한다. 지금으로서는 고대 국어에 성조가 존재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중세 국어에는 성조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중세 국어의 기록을 보면 글자마다 글자의 왼쪽에 점을 찍어 성조를 표시했는데, 이를 방점(傍點)이라 부른다. 평성(平聲)에는 점을 찍지 않았고, 거성(去聲)에는 한 점, 상성(上聲)에는 두 점을 찍었다.

평성은 낮은 소리이고, 거성은 높은 소리였으며, 상성은 처음에는 낮다가 나중에는 높아 가는 소리였다. 예를 들면, '곶[花]'은 평성으로 낮은 소리이고, ·플[草]은거성으로 높은 소리였으며, ':별[星]'은 상성으로 낮게 시작하여 높게 끝나는 소리였다. 15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일관성 있게 표시되던 방점은 16세기 중엽 이후 흔들리기 시작하다가 16세기 말엽에 일르러서는 사용하지 않게되었다. 이를 본다면, 성조는 적어도 16세기 말에 소멸되었다고 추측할 수가있다. 성조의 소멸에 따라 평성과 거성은 짧은 소리로, 상성은 긴 소리로 발음하게 되었다. 그러나 방언에 따라서는 성조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현대 국어의 경상도 방언이나 함경도 방언의 일부에 아직 남아 있다.



4. 어휘 변화

음운이나 문법과는 달리 어휘에는 그 시대의 다양한 특징적 상황들이 반영된다.

따라서, 우리말의 어휘가 변화해 온 양상을 살펴보면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변화 양상까지도 읽을 수가있다.

고대 국어의 어휘는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지만, 이 시기의 우리말 어휘는 외래 요소에 의한 오염이 없이 순수한 고유어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 시대에 들어와 중국과의 교섭이 잦아지면서 수많은 한자어들이 들어와 우리말의 어휘는 고유어와 한자어로 된 이중적(二重的) 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16년 (서기 757년)에 원래 고유어였던 땅 이름, 사람 이름, 관직 이름 등이 대부분 한자어로 바뀌게 된 것도 한자어의 세력이 강해진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고유어가 훨씬 많이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중세 국어의 문헌들에는 현대 국어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많은 고유어들이 발견된다. '온[百]', '즈믄[千]', '  [江]', '미르[龍]', ' 곶[ ], 등이 그러하다. 이들은 뒤에 대부분이 한자어로 대체되었다.

또, 외래어의 도입도 끊임없이 이어져서 그 결과 고유어는 수적으로 점점 위축되어 왔다. '붇[筆]', '먹[墨]'등의 단어는 중국어를 직접 차용한 것이며, '부텨[佛陀]', '미륵(彌勒)' 같은 불교 용어는 범어(梵語)가 한자어를 통해서 우리말에 들어온 것이다. 고려 말기에는 관직, 군사에 관한 어휘를 비롯하여, 말과 매, 그리고 음식에 관한 단어들이 몽골어에서 들어 왔다. '가라말[黑馬]', '보라매[秋鷹]', '수라[御飯]'등이 그 예이다. 또, '투먼[豆萬]'과 같은 여진어(女眞語) 의 단어가 들어오기도 하였다. 갑오개혁(甲午改革)으로 대표되는 개화기를 전후하여 우리말의 어휘에는 다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한자를 사용하여 번역된 서구의 신문명어들이 대량으로 도입되었던 것이다. '공기(空氣), 전기(電氣), 지구(地球), 이발(理髮), 사진(寫眞),대학교 (大學校), 소학교(小學校), 권리(權利), 연필(鉛筆),석유(石油), 철로(鐵路), 병원(病原),……'등과 같은 단어들은 모두 이 시기에 들어온 것이다. 또, 일제 강점기(强占期)에는 많은 일본어들이 우리말에 들어왔었으나 광복 뒤 꾸준한 정리 작업을 통해서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광복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명과 직접 관계를 맺는 일이 잦아지면서 서구 외래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은 현대 국어 어휘의 커다란 특징이다.

단어의 의미도 역시 변화하였다. 개화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정(人情)'이 '뇌물(賂物)'을, '방송(放送)'이 '석방(釋放)'을 의미했었다. 이처럼 어휘의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데, 의미 영역이 확장되기도 하고 반대로 축소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의미로 변화하기도 한다.

의미가 적용되는 영역이 원래보다 확장된 예는 많이 있다. '다리[脚]'는 처음에는 사람이나 짐승의 다리만을 가리키던 것이었는데 '책상'이나 '지게'의 다리 같은 무생물에까지 적용된 것은 의미가 확장된 결과이다. '영감(令監)'같은 말도 의미가 확장된 예이다. 이 말은 옛날에는 당상관(當上官)에 해당하는 벼슬을 지낸 지체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남자 노인을 두루 가리키게 되었다.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의미가 적용되는 영역이 원래보다 축소된 경우도 있다. 그예로 '짐승'이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이 말은 한자어인 '즁 (衆生)'에서 온 말로,원래 유정물(有情物) 전체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였지만, 이 말에서 비롯된 '짐승'이란 말은 인간을 제외한 동물만을 가리키게 되어 의미가 축소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놈, 계집'같은 말이 있다. 이들은 원래 일반적인 '남자,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던 것인데, 그 의미 영역이 축소되어 지금은 비속어로 사용된다.

한편, 의미의 확대나 축소로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가령, '어리다'는 중세 국어에서 '어리석다'라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적다'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또, '싁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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