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조기유학 내공100

미국조기유학 내공100

작성일 2010.10.21댓글 3건
    게시물 수정 , 삭제는 로그인 필요

안녕하세요 초등학생6학년 여학생입니다.

몇달전부터 유학생각하고있다가,아빠가보내준다고하셔서

지금 생각중입니다. 친구네 고모님께서 미국뉴욕에살아서

뉴욕가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미국뉴욕에 한국사람이많다는거알고있는데 저는 한국인많은것보다는

자신의 의지가 가장중요하다고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뉴욕에 마음이더끌리네요.

먹고자는건 친구네 고모님께서 다해주실수있는데, 학비와 제 개인용돈이

얼마정도 드는지 궁금합니다. 가디언은 친구 고모님께서 해주실수있을듯해서

가디언비도 줄어들고, 홈스테이비용도 줄어들었는데 학비와 용돈이 얼마정도들까요?

이제부터 질문드립니다.

 

질문 1_ 내년에 갈예정인데,내년에가게되면 저는 사립학교가야됩니다.

뉴욕에서 가장저렴한 사립학교 추천해주세요[ex:카톨릭학교-크리스찬]

 

질문 3_ 크리스찬학교가 뉴욕에도있나요? 시애틀밖에못봐서요.

 

질문 4_ 질문 1에서 추천해주신 1년학비를 알려주세요.[한화로]

내년에가면 중1이지만, 한학년낮춰서 초6으로 들어갈예정이니, 초6 학비를 알려주세요.

 

질문 5_뉴욕크리스찬사립학교가있다면 1년학비가 어느정도되나요? [한화로]

 

질문 6_미국한번가면 몇번씩은 한국에오겠지만, 미국에서 아예 대학교까지나올예정입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 얼마정도하나요?[한화로]

 

질문 7_ 1년학비+개인용돈이 3000만원이 넘나요? 미국에 가게되면 기본은 3000만원이 넘는다고하네요.

정말로 1년에 학비와 용돈이 3000만원이 넘는지알려주세요.

 

질문 8_ 학비와 개인용돈 이외에도 더 필요한게 있나요? [홈스테이비용, 가디언비용 빼구요]

 

 

 

질문은 총 8가지입니다. 친절한답변부탁드려요^^ 내공 100드립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뉴욕에 있어서 답변을 드립니다.

친구 고모님이 좋으신 분인가봐요. 무료로 홈스테이와 가디언을 해주시니 정말 잘 해드려야 하겠어요.

고모님댁이 뉴욕 어디인지를 먼저 알아야 겠네요.

뉴욕이 워낙 넓어서요. 한국사람이 많은곳도 있지만 아주 없는데도 많아요.

뉴욕은 세계의 모든 인종들이 다 있으니 어느 지역에 사는냐에 따라 주위환경이 달라집니다.

 

 

질문 1_ 내년에 갈예정인데,내년에가게되면 저는 사립학교가야됩니다.

뉴욕에서 가장저렴한 사립학교 추천해주세요[ex:카톨릭학교-크리스찬]

- 가장 저렴한 학교를 찾기보다 우선 사는지역을 알고 가까운 학교를 찾아야 겠네요. 뉴욕은 크리스찬 학교보다 카톨릭 학교가 더 많아요. 학비는 보통 연간 $8,000 정도입니다.

 

질문 3_ 크리스찬학교가 뉴욕에도있나요? 시애틀밖에못봐서요.

 - 크리스찬학교는 별로 없어요.

 

질문 4_ 질문 1에서 추천해주신 1년학비를 알려주세요.[한화로]

내년에가면 중1이지만, 한학년낮춰서 초6으로 들어갈예정이니, 초6 학비를 알려주세요.

- $8,000을 한국돈으로 계산하면 960만원 정도입니다.

 

질문 5_뉴욕크리스찬사립학교가있다면 1년학비가 어느정도되나요? [한화로]

- 대략 960만원 정도입니다. 같은 질문이 되겠네요.

 

질문 6_미국한번가면 몇번씩은 한국에오겠지만, 미국에서 아예 대학교까지나올예정입니다.

영주권이나 시민권 얼마정도하나요?[한화로]

- 학생은 영주권을 신청할 수가 없지요. 시민권자의 양자로 들어가는 것 밖에 없네요.

 

질문 7_ 1년학비+개인용돈이 3000만원이 넘나요? 미국에 가게되면 기본은 3000만원이 넘는다고하네요.

정말로 1년에 학비와 용돈이 3000만원이 넘는지알려주세요.

- 사립학교는 교복과 과제물 같은것은 모두 학생이 구입을 해야합니다. 1년에 3,000만원이면 남겠네요.

 

질문 8_ 학비와 개인용돈 이외에도 더 필요한게 있나요? [홈스테이비용, 가디언비용 빼구요]

- 교복, 학교 과제물, 점심값, 핸드폰비 등

 

서두에 언급했지만 뉴욕 어디에 사는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먼저 알아보고 연락주시면 도와드릴께요.

 

유학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2011년 1월 학기에도 가능하니 참고하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안녕하세요

 

뉴욕에도 크리스챤 캐톨릭 학교가 많습니다. 다만 물가와 학비가 좀 높고 입학심사가 까다로운 편입니다.

그외지역에도 저렴하면서 경쟁력이 좋은 크리스챤 사립학교가 많이 있습니다.

3천만원이하의 학교들도 상당수있으며 3천만원이상의 학교만 추천하는곳은 전문적이지 못하고 다양한 학교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유학의 순서는 크게보면 학교선정-지원서및 필요서류발송-입학허가서(I-20) 도착-미국비자인터뷰-출국준비-출국등의 순으로 이루어집니다.

 

 

 

우선 추천드리는 주는 펜실바니아, 뉴저지,조지아,뉴욕정도가 유학생 만족도가 높은곳이며, 크리스챤, 캐톨릭 학교들의 경우 학비도 상당히 저렴합니다.

홈스테이는 미국재단이 학생특성에 맞게 가장 이상적이고 검증된 가정을 배정하며, 출국후 홈스테이와 많은 문제가 있다면 빠르게 바꾸는 조치를 취하게 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년간 총비용은 저렴한 곳은 학비랑 홈스테이비용등 모두 포함해서 약 $17,000정도이며 평균 $17,000-$22,000정도를 예상하시면 됩니다.

좋은 유학원을 딱 추천드리기는 어렵지면 아래 카페에 가시면 이상한 유학원 피하는 방법이 적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해마다 많은 학생들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습니다.

미국 사립학교를 가기위해서는
미국 현지인 홈스테이를 하시는 방법과학교에 기숙사시설이 되어있는(boarding school)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미국 사립학교는 공립교환학생과는 달리 학교와 지역을 선택할  있으며, 대학진학에 초점을 맞춘 교육학문뿐만 아니라인성/리더쉽등에 중점을  전인교육을 제공하기 때문에,공립교환학생의의 여러피해사례가 대두됨과 동시에 미국 사립학교 유학에 해마다 많은 지원자와 관심이 집중되면서성공사례와 그렇지 못한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험했던 많은 학생들 중에서 현재 유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학생들의 공통된 특징들을 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건본인의 의지입니다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님 손에 이끌리어 상담을  학생들은 백이면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본인의 의지가 있어도 성공을 보장할  없는 것이 유학인데 의지마저 없다면  힘들겠지요?

돈이 많지 않아도 유학을   있습니다.

성적이 월등하지 않아도 유학을 가서 성공할  있습니다.

시기가 다소 늦어도 유학을 가서 성공할  있습니다.

하지만…유학에 관한 본인의 의지 없이는 성공적인 유학을   없음을 100% 장담합니다.

성공적인 유학의 조건 두 번째는언어적인 준비 상태를 들고자 합니다.

많은 학부모님들이일단 보내고 나면 어떻게든 되겠지요 라는 막연한 생각을 많이 하십니다물론좋든 싫든 영어를 쓸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내던져지거나사립 홈스테이 학교에 입학하여호스트 가정과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공유한다면예상보다 훨씬 빠른 영어 실력 향상을 얻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학을 준비하면서 영어학습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ESL 코스만을 1 내내 듣게 되는 상황도 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학수속과 함께 하루 2시간정도의 꾸준한 영어 학습을 병행 하는게 필요합니다.

과천에 사시는 학부모님이 9월입학 3달전인 6월에 상담을 하시고 학교를 정하여 2개월을 남겨놓고 제게 무얼 해야 할까요학원을 추천해 주세요라고 질문하셨을 , 2개월간 학원을 수강하는것보다미국교과서를 구입해서 미리 review해보고 유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어려워하는 미국 역사와 생물에 관련된 책을 미리 한글로라도 공부해두고, 허클베리핀,톰소여의 모험,프레드릭 더글라스의 생애,위대한 겟츠비등 미국중고교 필독도서의 주요 내용이라도 파악두시기를 권고드렸습니다.

물론 효과는 매우 좋았습니다미시간의 우수한 학교에서 첫해 3.6 받았으며,여러 활동상으로 볼 때유학생활  성적표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본인이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여유학수속과 함께 하루에  1시간이라도 끊기지 않고 공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이것은 학교 입학이 확정되면 그때 자퇴하고 영어에만 집중할께요 라고 답하는 학생에게 자주 해주는 충고입니다.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다음은미국 사립학교를 선정하시기 전 반드시 참고하셔야  몇 가지 Tip 드리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입학시험으로는 SLEP 있으면 미국상위권 기숙사 학교의 경우 SSAT TOEFL, 혹은 SSAT SLEP, 혹은 SSAT 전화인터뷰를 요구합니다.

슬랩은 저의 유학센타 에서 매주 원하시는 날짜와 시간에 응시가능하며   유학원에서도 응시가 가능하나 SSAT TOEFL 자주 볼 수 있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SLEP처럼 단기간에 준비해서 응시할  있는 시험이 아니란 점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학교선택시 반드시 유의할 


첫째우선 시기를 정하셔야 합니다.

지금 시점을 두고 말씀드리자면,1월학기 일부와 9월학기 지원이 가능하며., 내년 1월학기를 지원희망하실경우 아무리 늦어도 올해 12월말 까지는 원서를 접수하셔야 합니다. 미국 사립학교 유학지원이 원서접수가 빠를수록 유리하며, 특히 1월학기는 더더욱 빠른 접수가 필요합니다.1월학기는 모든 학교들이  국제학생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선택의 폭이 좁으며 지원가능 인원수도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는 일부 유학원에서 가격이 저렴하고 입학이 쉽다는 이유로 주로 추천해주는 학교들로 지원을 했다가 크게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중부중 한 주에 있는 1년에 총비용이 $12,000이 채 안되는 학교가 있습니다.

7학년부터 12학년이 제공되며, BIBLE과목과 함께, 대학진학률이 90%라고 표시되어있습니다.

실제 이 학교는 비용적인 부담이 많으신 학부모님들이 해마다 학생들을 보내는 학교입니다.

하지만 실체를 들여다 보면, 전학률이 무려 70%에 달할정도이며, 늘수시로 국제학생들을 받아들이며, 음식과 시설은 학생들이 감당키 어려워할 정도이며, 졸업생 대학진학현황은 일부 주립대외엔 거의 찾아볼수가 없으며,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고교졸업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방과 후 학교의 WORK PROGRAM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별로 갖가지 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 등 실제 학부모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학교임을 2개월이 채 안되 알게 됩니다

 

또다른 기숙사 학교를 또 살펴보겠습니다.

이곳 역시 년간 비용 2천 5백만원의 비교적 저렴한 학교이며 150년의 전통을 자랑하지만, 거미줄이 가득한 기숙사와, 한국인 50명이 전체의 기숙사에 꽉차있으며, 수업 중 교사가 졸다가 항의를 받기도 한적이 있는 매우 비추천의 학교입니다. 한국학생들의 전학이 수없이 일어나자, 학교홈페이지에 가득했던 한국학생 사진을 지우고 미국학생들 사진으로 바꾸어, 마치 이 학교에 국제학생이 거의 없어보이는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런 학교들이 많은 유학원의 추천학교로 홈페이지에 올라와있기 때문에 학교이름을 밝힐수는 없지만

이 외에도 조심해야 할 학교들이 꽤 많이있기에 학교선정등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기준이 필요함을 재차 강조드립니다.



둘째기숙형태를 선택하셔야 합니다.


기숙사 학교를  것인지 홈스테이 학교를  것인지를 정하셔야 합니다.

미국 전역의 사립학교는 1,500개가 넘습니다아무 기준 없이 막연히 괜찮은 학교를 골라야지 하며 달이 걸려도 학교선정을 못하는 학부모님들도 많이 뵈었습니다.

 기숙형태의 특징들을 알고서학생과 맞는 기숙형태가 무엇인지 정해야 하지요.

기숙사 학교는 공부에 집중   있고선생님들이 대부분 교내 혹은 학교 인근 30분거리에 거주하기 때문에선생님과의 접촉과 유대관계에 좋으며상대적으로 대학진학율이 약간 더 높은 편입니다.

단점은추수감사절, spring break, 성탄절  짧게 쉬는 방학(7일에서 12일정도) 기숙사가 닫기 때문에 미국에 연고가 있거나대안이 있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요즘엔갈곳이 없는 국제학생들을 위해인근 hostfamily 연결시켜서 머물게 해주는 학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학교생활을 하며 친해진 미국친구의 집에서 머무는 학생들도 자주볼수가 있습니다.
또한비용이 홈스테이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미국 전역의 기숙사 학교는 14백만원에서 39백만원대까지 지역별, 학교별로 매우 광범위하며 대부분의 학교들의 비용이 학비와 기숙사비를 합쳐서 년간 평균 28백만원정도의 비용이 평균치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비용이 저렴하다고 학교 수준이 반드시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시설적으로 다소 떨어지는 부분과 금액이 저렴하여국제학생의 지원이 몰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홈스테이의 경우미국 현지 가정과의 잦은 교류로 영어 향상에는 기숙사 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입니다다만  가정과의 융화와 적응 등에 본인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한 비용면에서 볼 때 기숙사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부담이 적습니다.
홈스테이의 경우 가장 저렴한 비용이 1 총비용(학비+홈스테이비) 15백만원 에서 부 터 2 3백만원까지 역시 지역별 학교별로 매우 다양하며대부분의 학교들이 1 7백에서 1 9백만원 사이에 몰려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셋째맹목적인 지역선호는 금물
미국 북동부쪽에 IVY리그가 몰려있음은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북동부쪽의 학교만을 고려할  매우 높은 비용과매우 강한 학풍에 오히려 학생들이 유학생활 자체를 버겨워  수가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있느냐가 학교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학교선택에 있어 지역에 대한 편견은 같은 비용으로  좋은 학교를 선택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미국의 중북부나 중부,중동부쪽에도 숨어있는 보석같은 좋은 학교들이 많이 있다는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넷째학교의 규모  과외 활동의 다양성
사립학교의 학생 수는 일반적으로 200~300 규모인데학생수가 많고 적음에 따라 학교의 질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학생수가 적은 학교는 교사들의 세심한 지도와 배려가 가능하고 학교가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과외 활동의 종류가 많지 않아서 다양한 경험을   없다는 단점이 있으며학교의 규모가 크면 다양한 경험을   있고 경쟁적 요소가 많은 반면 가족적 분위기나 교사들의 세심한 배려와 지도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다섯째나에게 맞는 학교인가
학생의 영어실력  학업 수준을 냉정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봐야 합니다무조건 높은 SAT평균성적이 공개되어 있는 학교를 원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지나친 학업적 부담으로 학생에게 불이익이 되고나 제대로 소화를   없는 음식을 먹게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실제로 미국현지인들이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가장  이유는 높은 대학 진학률이나 SAT평균 점수 때문이 아니라적은 학생 수로 교사의 세심한 배려를 받을  있고 학칙과 도덕적 규범이 높으며전인교육을 받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유학에 관해 가장많이 묻는 질문 BEST 9

 

1.      미국 사립학교에서 ESL프로그램이란건 무엇인가요?

 

ESL이란,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의 약자로써, 말 그대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집중 영어 학습 프로그램입니다.

국제학생을 받는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ESL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나, 모든 사립학교가 ESL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ESL은 학점이 인정되지 않고, ESL을 마칠때까지는 정규영어 수업을 들을 수가 없고, 수업에는 국제학생밖에 없어서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한국 학생들은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수업이긴 합니다만, 영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정규수업을 듣고 GPA(내신성적)을 망치는 것보다는 ESL을 통해 영어를 업그레이드 한 후에 정규수업을 통해 GPA를 관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ESL비용은 학비에 포함되어 무료인 경우도 있으며 상당수의 학교들이 별도 비용을 요구하며, 비용은 $2,000-$4,000정도가 대부분입니다.

ESL4개월정도마다 Test를 거쳐서 학생 수준에 따라서 한학기만 듣는 학생도 있으며 2학기를 듣는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 교환학생을 경험한 학생이나, 영어권국가에서 1년이상 학업한 학생들은 ESL을 듣지 않고 정규수업을 듣게 되나, 처음 유학을 하는 학생의 경우에는 ESL과 다른 수업을 함께 듣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SSAT와 토플은 미국 조기유학을 가려면 반드시 필요한가요?

 

SSAT란 미국 사립고교 입학시험이며, 토플은 많은 학생들이 알다시피, ETS사에서 주관하는 국제 영어 공인 시험입니다.

미국내에서는 정규적으로는 1, 2, 3, 4, 6 ,11, 12월에 년 7회 정규시험이 있고, 한국의 경우에는 1, 3, 4, 11, 12월에 연 5회 정규시험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전체 5개의 섹션으로 구성이 되며 유형은 객관식이며 각 25분 동안 영어와 수학을 평가하게 됩니다.

각 섹션은 Analogy Math 1, Synonyms, Math 2, Reading Comprehension 그리고 Essay로 나누어져있습니다. 특히 에세이는 25분안에 완료해야 하기에, 많은 학생들이 시간에 쫒기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이 두 시험은 미국의 TOP 보딩스쿨이나 상위권 사립학교에서 입학서류와 함께 요구하는 서류입니다.

그외 모든 중상위 사립학교는 토플보다 훨씬 난이도가 쉽고 편하게 여러 번 유학센타에서 볼수 있는 SLEP시험을 응시하거나, 전화인터뷰를 하거나,아니면 서류만으로 Admission review를 하게 됩니다.

, 미국의 국제학생을 받는 사립학교 중 약 15-17%정도만이 SSAT와 토플을 요구하며 그외의 학교들은 SSAT와 토플이 없이도 응시가 가능합니다,

 

3.     미국유학은 정말 비싼가요? 얼마의 비용을 예상해야 하나요??

 

  상담하시는 분들중 적지않은 분들이 미국유학은 5,6천이 든다고 알고 계셨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정답은, 맞을수도 아닐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일부 TOP-BOARDING School-명문 기숙사학교(주로 동북부와 캘리포니아 LA인근)은 년간 총비용이35천에서 42천달러이므로, 한화로 환산했을 때 5천만원의 비용이 든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특목고 같은 미국의 TOP 기숙사 학교들을 지원하는 학생은 많지 않으며, 중상위 사립학교들은 아래와 같은 비용이 대체적입니다.

사립기숙사 학교 비용

하위권 기숙사 학교 평균비용: $16,500-$23,000

중상위권 기숙사 학교 평균비용: $25,000-$31,000

명문 및 상위권 기숙사 학교 평균비용: $35,000-$42,000

사립홈스테이 학교 비용

명문 사립홈스테이 학교 년간 평균 총 비용: $28,000-$32,000

중상위권 사립홈스테이 학교 년간 평균 총 비용:$21,000-$28,000

 

4.    미국 학교 수업은 어떤가요? 한국과 많이 틀리나요?

 

한국과 미국의 수업은 방식이 많이 틀립니다.

미국은 한국의 대학처럼 강의실을 옮겨가며 수업을 듣고, 필수학점을 취득해서 졸업을 하게 되어있고, 에세이나 레포트등의 제출등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시험을 망치고도, 과목선생님께 상담하여 추가 레포트나 에세이를 더 제출하여 학점을 올리는 경우가 있는것도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가 있지요.

또한 Pop-Quiz라고 해서 팝콘처럼 갑자기 튀어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전에 배웠던 것을 쪽지시험처럼 시험을 보기도 합니다. 여러 번 보니까 한번 망쳤다고해서 속상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팝퀴즈를 잘보려면, 복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미국역사나 생물,과학등은 유학생들이 다소 어려워하는 과목이므로, 한국에서 미리 미국 역사책등을 읽고 가면 도움이 됩니다. 수학은 한국학생들이 가장 자신있어 하고 미국학생들보다 유일하게 월등한 과목이기도 합니다.

 

아래 문제들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되시리라 봅니다.

 

A)What number added to 8 is half the product of 6 times 1/3 of 9?

a)10    b)1    c)9    d)19

93분의 1의 값을 6배를 하면 8의 숫자에 몇을 더하여야 하는가?

    B)In the sequence: 200,188,176,164…., what number should come next?

    a)12    b)154  c)142  d)152

     Jackie can row downstream 32km in 8 hours but it takes him 4 hours to do 12 km upstream. Find the rate of the rower and the current.

 

      미국 학과 과목중 APHonor과목들이 있는데 이것에 관해 묻는 질문이 많습니다.

   APAdvanced Placement의 약자로써 대학교양의 과목을 고등학교때 미리 듣는것입니다. 가산점이 있으나 당연히 더 어렵겠지요?

   Honor과목은 일종의 심화학습입니다. 난이도가 더 어렵지만 역시 추가 가산점이 있습니다.

Honors가 아닌 보통 수업들은 A-, A, A+ 모두 동일한 크레딧을 주지만 (B부터는 credit이 나눠짐)

honors를 들었을때 A+를 받으면 보통 수업에서 A+받았을때의 credit보다 더 많은 creditd을 주죠.

예를 들면  

 Honors 아닌 수업

 Honors

 A+, A, A- : 4.0 credit

A+ : 5.0, A : 4.5, A- : 4.3

 B+ : 3.3, B : 3.1, B- : 3.1

 B+ : 4, B : 3.5, B- : 3.3

 C+ : 2.3, C : 2.1, C- : 2

 C+ : 3, C : 2.5, C- : 2.3

 D+ : 1.3, D : 1.1, D- : 1

 D+ : 2, D : 1.5, D- : 1.3

이렇게 됩니다. (학교별로 차이는 있을수 있습니다)

 

 

 

5.      미국 중고교 유학을 가고 싶은데, 장학금을 주는데는 전혀 없는 건가요??

     미국 대학교는 국제학생에 대한 장학금 혜택이 다소 폭이 넓은데 반해, 미국 중고교 학교들은 국제학생에 대한 장학금 제도는 거의 전무 합니다.

    하지만 일부 학교가 국제학생들에게도 장학금제도를 제공하는 학교가 일부 있습니다만 전액 장학금이 아니며, 국제학생이 몰려서 경쟁이 높은 것이 단점입니다

    또한 한국의 목사님 자녀에게는 목사님의 재직증명서나 목사님의 자녀라는 증명서가 있으면 학비의 25%혜택을 주는 학교도 있습니다.

      그외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크리스챤 학생의 경우 크리스챤임을 증명하면 비용을 할인해주는 유학센타도 있습니다.

    

     6.일부 사립학교에서 요구한다는 SLEP시험은 무엇이며, 난이도가 어떤가요?

 

     SLEP시험은 ETS에서 주관하는 중고교 유학시험입니다.

     듣기와 READING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45문제 입니다.

     난이도를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굳이 난이도를 평가하자면 3에서 1정도의 수준이며, 6개의 form입니다.           form별로 어떤것은 듣기가 조금 어렵고, 어떤것은 reading 어렵고 전체적인 수준은 거의 비슷합니다.

     SLEP 보시길 원하신다면 언제든 편하신 날짜와 시간에 단독 응시,혹은 여러명응시가 가능하며, 미리 유학센타로 예약하시면 응시하실   수 있습니다.  

 SLEP (Secondary Level English Proficiency)

 

SLEP testListeningReading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서 학생이 수업을 받을 경우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중고등학생 수준으로 만들어진 영어시험으로서 듣기(45), 독해(45)에 걸쳐 총 150문항, 90분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 ..그림 문제(1~25):25문제

..4개 문항 중 그림을 가장 잘 묘사한 문항 찾기
..TOEIC(토익)의 그림 문제와 같은 유형

 

 

 

 

. ..들은 문장 찾기(26~45):20문제

..들은 문장과 일치하는 문장을 보기 중 선택

 

. ..약도 보고 찾기(46~57):12문제

..대화를 듣고 약도에 설명된 장소 및 차량 찾기

 

. ..대화 듣고 질문에 답하기(58~75):18문제

..대화를 듣고 Narrator의 질문에 답하기

 

 

. ..그림 보고 답하기(1~12):12문제

..제시된 그림 속에서 문장의 내용과 일치하는 사람 찾기

 

. ..그림 찾기(13~27):15문제

..제시된 문장과 동일한 내용의 그림을 선택

 

. ..어휘 및 독해(28~75):48문제

..문장 속 적당한 단어 찾기 및 완성시킨 문장의 독해로  구성

 

 

7.    미국 공립학교에는 갈수 없나요? 공립과 사립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국제학생은, 동반비자를 받아서 부모님과 함께 가지 않는 한 공립학교에 절대로 다닐수가 없습니다. 동반비자를 받아서 부모님과 함께가시는 경우도 비자발급률이 매우 떨어지며,사실 매우 어려운 방법이며 특수한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공립학교를 불법으로 다니게 되면 추후 강제귀국 및 향후 미국에 다신 갈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도박이므로, 이 때문에 유학생들은 사립학교로 정식유학생자격으로 지원하여 유학을 가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에 비해, 대학진학률,학업 커리큘럼,교사와 학생간의 비율등에서 월등하기 때문에,미국 시민들도 교육열이 강한 학부모들은 공립이 아닌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습니다.

 

8.미국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있는지요?

 

유학을 간 후 외국 학생들이 한두번 말을 걸때 그때를 잘 잡아야 합니다. 보통 학생들이 한번,두번말을 걸때 반응을 잘하지 않으면, 3번째까지 말을 걸어주지 않습니다. 자신과 친해지고 싶지 않은것으로 오해를 하지요.

국제학생이기 때문에 영어를 능숙히 하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영어가 부족해도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계속 대화를 이어가다가 공통분모를 찾는 방법, 즉 어디에서니, 무슨과목을 듣니, 등등을 이어가다 이 친구가 수영을 좋아한다는 fact를 얻게 되면, 나도 수영을 잘하는데 우리 언제 한번 같이 수영하러 갈래?등등으로 공통점을 찾으면 그다음 번 만남이나 친해지는게 훨씬 수월합니다.

저희 학생중의 하나는 10월 9일 한글날에  class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한글날의 의미를 설명해준후, 미리 준비해둔 한글로 각 학생들 외국이름을 적은 카드를 주었는데, 선생님과 반 학생들이 매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적극적인 노력과 마음가짐이면 충분합니다.

 

9.미국 명문 보딩스쿨-명문 기숙사 학교 (TOP-Boarding School)지원에 관하여

 

미국 명문 보딩스쿨은 대부분 동부(뉴욕,뉴햄프셔,뉴저지,코네티컷,펜실바니아등등)에 몰려있습니다.

기준이 특별히 있는것은 아니지만, 통상 미국 보딩스쿨 순위 50위정도까지를 명문 보딩스쿨로 봐도 무난합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9월학기 지원자 접수를 1월 31일 혹은 2월1일에 마감을 하며 3월10일에 발표합니다.

뉴욕의 Stonybook같은 명문 학교는 12월 중순에 원서 마감을 합니다. 간혹 원서마감이 이렇게 일찍하는줄 몰랐다며 아쉬워하는 한국유학준비생들이 많아서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각 학교별로 마감일을 반드시 체크하여야 하며, 명문 보딩스쿨은 9월학기 지원이 매우 빨리 마감하고 합격자를 발표하는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명문 보딩스쿨들이 SSAT와 토플을 요구하며 합격을 기대하기 위해선 SSAT 최소 80%이상은 나와야 합니다. 일부 상위권 학교들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도 입학이 불가한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3년간 학교입학담당자와 대화를 하면서 입학되는 아이들을 비교해보았을때, 내신과 SSAT,토플이 고득점인것은 공통사항이었으며, 특이한 점은 미국현지의 중위권 사립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학생들, 즉 전학생의 입학이 높았습니다. 이것은 미국 명문 보딩스쿨들이 이미 검증된 학생들, 미국의 문화와 언어, 학교수업등에 적응을 마친 학생들을 더 선호한다는 증거로 봐도 좋습니다.

따라서 명문보딩스쿨을 간절히 희망하나, 현재 자격이 부족한 학생일 경우 미국 중상위 학교에서 1년정도학업을 하면서 전학을 노리면 훨씬 더 유리할수 있습니다.

또한 명문 학교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GPA(내신성적)/SSAT/토플등은 사실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입학담당자들도 그러한 점수로 학생을 선발하는데 매우 골머리를 앓고 있지요,따라서 Personal essay. 추천서,상장및 수상내역, 액티비티 활동, 리더쉽,인성등에서 더더욱 자신을 잘 데코레이션을 해야 입학가능성을 높일수가 있습니다

2010.10.22.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미국(美國, 영어: United States of America, USA, 또는 아메리카 합중국)은 50개 주와 1개의 특별구로 이루어진 연방제 공화국이다. 하와이 주를 제외한 국토의 대부분인 본토 48개 주수도 구역인 워싱턴 D.C.북아메리카 대륙에 자리잡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캐나다와, 남쪽으로는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아메리카 대륙 북서쪽에 있는 알래스카 주는 동쪽으로는 캐나다와, 서쪽으로는 베링 해협을 사이로 러시아와 마주하고 있다. 하와이 주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군도이 다. 이 나라는 태평양과 카리브 해해외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나라 가운데 미국은 총 면적 기준으로 세 번째 또는 국토 면적으로만 네 번째로 넓은 나라이며,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다민족 사회이자 다문화 국가이며, 수많은 나라에서 대규모로 이민자가 들어오는 나라이다.[1]미국의 경제는 2008년 기준 국내총생산이 14조 4천억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큰 국민 경제를 이루고 있다. (세계 명목 국내총생산의 1/4, 구매력 평가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의 1/5)[2][3]

아시아 대륙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은 오늘날 미국 본토에 오랜 세월 동안 살아왔다.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는 아메리카의 유럽 식민지화 이후 전쟁과 질병으로 급감하였다. 미국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늘어선 13개 식민지에서 건국되었다. 13개 주 국가는 1775년 5월에 식민본국인 영국과 전쟁을 벌였고(미국 독립 전쟁), 1776년 7월 4일에는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민족 자결의 권리를 바탕으로 한 연맹체 국가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이후 1783년까지 전쟁을 벌인 미국은, 파리 조약을 통해 영국의 식민지 중에서 최초로 독립을 쟁취했다.[4] 1787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 헌법회의에서 오늘날의 미합중국 헌법이 답변확정되었으며, 이듬해에 비준되어 이 주들은 강력한 중앙 정부를 둔 단일 공화국이 되었다. 1791년에 비준된 미국 권리장전은 10개의 수정 헌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러 기본적인 민권과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19세기에 미국은 프랑스, 스페인, 영국, 멕시코, 러시아에게서 영토를 획득하고, 텍사스 공화국하와이 공화국병합하였다. 농업 중심의 미국 남부와 산업화된 미국 북부간에 주의 권리노예제 확대 문제를 놓고 갈등하면서 1860년대에 미국 남북 전쟁이 일어났다. 결국 북부가 승리하면서 영구적인 국가 분열 사태를 막았으며,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 경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이루었다.[5]미국-스페인 전쟁제1차 세계 대전으로 미국은 군사 강대국의 지위를 굳혔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은 최초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국제연합 안전보장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냉전이 종결되고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미국은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이 나라는 전 세계 군비 지출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이다.[6]

목차

[숨기기]
<script type="text/javascript"> // if (window.showTocToggle) { var tocShowText = "보이기"; var tocHideText = "숨기기"; showTocToggle(); } // </script>

명칭 [편집]

1507년, 독일의 지도학자마르틴 발트제뮐러가 세계 지도를 만들었는데, 그는 이 지도에서 서반구에 있는 땅을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지도학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고 명명하였다.[7] 과거 영국 식민지 시대에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아메리카 합중국의 만장일치 선언"(unanimous Declaration of the thirteen united States of America)이라고 나와 처음으로 이 나라의 현 명칭이 쓰이는데, 이것은 1776년 7월 4일에 "아메리카 합중국 대표자"들이 답변확정한 것이었다.[8] 1777년 11월 15일에 제2차 대륙 회의에서 연합 헌장(Articles of Confederation)을 답변확정하면서 "이 연합의 입구는 '아메리카 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 될 것이다."라고 하면서 오늘날의 국호가 확립되었다. 이 국호의 축약형인 'United States'도 표준 명칭이다. 그 밖에 흔히 쓰이는 명칭으로는 'the U.S.', 'the USA', 'America'가 있다. 일상 회화에서 쓰이는 이름으로는 'the U.S. of A.'와 'the States'도 있다. 미국의 대중적인 명칭인 '컬럼비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서 유래한 말로, 수도인 컬럼비아 구역'에서도 나오는 이름이다.

보통 미국 시민을 이르는 말은 '아메리칸'(American)이다. 또 미국의 정식 형용사는 'United States'이지만, 'American'이나 'U.S.'가 가장 흔히 미국을 일컫는 형용사이다. (가령 'American values', 'U.S. forces' 등) 영어에서 'American'이 미국과 무관한 사람을 이르는 말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9]

'the United States'라는 문구는 원래 문법상 복수형으로 취급하여,(가령 "the United states are") 1865에 비준된 제13차 미국 수정 헌법 등에서도 그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남북 전쟁 종전 이후 이 말은 단수형으로 쓰게 되었다.(가령 "the United States is") 오늘날에는 단수형이 표준 표기이며, 다만 관용구인 "these United States"에서는 복수형 표시가 남아있다.[10]

한편 오늘날 한국어에서 쓰이는 '미국'(美國)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시대 중국인들이 '아메리카'를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은 음차 표기인 '美利堅'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미리견'이 줄어들어 생긴 말이다.[11]일본에 서는 '亜米利加'(아메리카)로 표기하였으며, 그 밖에도 한국어에서 '며리계'(弥里界)라는 독자적인 음차 표기도 있었다.[11]

역사 [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역사입니다.

아 메리카 원주민과 유럽 식민자 [편집]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의 유럽 식민화, 13개 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알래스카 원주민을 비롯한 미국 본토의 원주민들은 보통 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12,000년 ~ 40,000년 전에 아메리카에 온 것으로 보인다.[12]콜럼버스 이전 미시시피 문화 처럼 일부 원주민 집단은 진보한 농경, 장대한 건축, 국가 수준의 사회를 이룩하였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이후 수백만 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천연두 등 외래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13]

1620년에 필그림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갔다. 그림은 윌리엄 핼샐의 '플리머스 항구의 메이플라워 호', 1882년작.

1492년, 제노바인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실과 계약을 맺어 카리브 해 제도까지 다다라, 원주민들과 처음으로 조우하였다. 1513년 4월 2일, 스페인의 콩키스타도르 후안 폰세 데 레온이 스스로 "라 플로리다"(La Florida)라고 부른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는데, 이 때가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본토에 도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에 스페인 정착지가 들어서고 연이어 오늘날의 미국 서남부에 하나씩 정착지가 생겨나 멕시코까지 이어졌다. 프랑스인 모피 무역상들은 오대호 주변 지역에 누벨 프랑스라는 전초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며, 마침내 프랑스는 멕시코 만에 이르는 북아메리카 내륙 지방 대부분을 자신들의 영토로 주장하였다. 정착에 성공한 초기 영국인 정착지로는 1607년 제임스타운버지니아 식민지와, 1620년 필그림플리머스 식민지이다. 1628년에 매사추세츠 만 식민지의 칙허로 말미암아 이주민들이 대거 흘러들어오게 되며, 1634년에 뉴 잉글랜드에는 10,000여명의 청교도들이 살게 되었다. 1610년대 말에서 미국 혁명에 이르기까지 약 50,000명의 죄수들이 영국령 아메리카 식민지로 이송되었다.[14] 1614년부터 네덜란드 정착민들이 맨해튼 섬뉴암스테르담허드슨 강 하구를 따라 정착하였다.

1674년, 네덜란드는 자신들의 아메리카 영토를 영국에 할양하였으며, 뉴네덜란드 주는 뉴욕으로 개명되었다. 새 이주민 다수는 특히 남부로 몰렸는데, 이들은 계약 노동자들로, 1630년~1680년 사이에 버지니아의 전체 이주민 가운데 약 2/3가 계약 노동자들이었다.[15] 18세기에 들어, 아프리카 노예들이 담보 노동의 주요 원천이 되었다. 1729년 캐롤라이나가 분리되고, 1732년 조지아에 식민지가 설치되면서, 이후 미합중국을 이루게 될 영국 13개 주가 모두 성립하였다. 이들 각 주는 대부분의 남성 자유민들이 참여하는 선거를 통해 지방 정부를 두었는데, 옛 영국인의 권리에 헌신하고 공화주의를 고무시킨 지방 자치의 관념이 발전하였다. 모든 주에서 아프리카 노예 무역을 합법화하였다. 아메리카 식민지는 출산율이 높고 사망률이 낮으며, 끊임없이 이민자가 유입하여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1730년대와 1740년대의 대각성 운동이라는 기독교 부흥주의 운동으로 종교와 종교 자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프랑스-인디언 전쟁에서 영국군이 프랑스에게 캐나다를 빼앗았으나, 이 곳의 프랑스어를 쓰는 주민들은 남쪽 식민지와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흔히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유럽인에게 쫓겨나던 아메리카 원주민을 제외하고, 이들 13주 식민지의 인구는 1770년에 260만여 명으로 당시 영국의 1/3 수준 이었으며, 아메리카 인구의 1/5은 흑인 노예들이었다.[16] 아메리카 식민지는 영국에 조세를 납부하였으나,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 의회에 대표자를 두지 못하였다.

독 립과 영토 확장 [편집]

미국 혁명, 미국 독립 전쟁, 명백한 운명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독립 선언. 존 트럼벌 그림. 1817-18년작.

1760년대와 1770년대 초 혁명기에 아메리카 식민지와 영국간의 대립으로 미국 독립 전쟁(1775년 ~ 1781년)이 일어났다. 1775년 6월 14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륙 회의에서 대륙군이 창설하고, 사령관으로 조지 워싱턴을 임명하였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고 선언하였으며, "특정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은 대륙 회의는 1776년 7월 4일에 토머스 제퍼슨이 주로 초안을 마련했던 독립 선언서를 답변확정하였다. 이 날은 오늘날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된다. 1777년 연합 헌장으로 결속력이 약한 국가연합 정부가 설립되어 1789년까지 존속하였다.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아메리카 군대가 영국을 무찔러,(요크타운 전투) 영국은 미합중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이들 주에게 미시시피 강 서쪽의 아메리카 영토에 대한 주권을 승인하였다. 조세권을 가진 강력한 국민 국가를 창설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1787년에 필라델피아 헌법회의를 조직하였다. 1789년에 미국 헌법이 비준되었으며, 1789년에 신생 공화국의 초대 상하원 의회가 출범하고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연방 정부가 개인의 자유 및 다양한 법적 보호 보장을 제한하지 못하게 금한 권리 장전이 1791년에 답변확정되었다.

노예제에 대한 입장은 유동적이었는데, 미국 헌법 1조 9항에서는 아프리카 노예 무역 폐지를 1808년까지, 20년 간 유보하도록 규정했다. 북부 주에서는 1780년에서 1804년 사이에 노예제를 폐지했으나, 남부 주에서는 "특별한 관습"(peculiar institution)을 옹호하며 노예주로 남았다. 1800년경에 시작된 제2차 대각성 운동으로 복음주의노예 제도 폐지 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 개혁 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의 연도별 영토 확장.

미국은 서부 영토 확장에 열을 올려 아메리카 인디언 전쟁이 일어났으며 인디언 제거 정책을 펴서 원주민들은 터전을 잃게 되었다.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시대에 프랑스가 주장한 영토인 루이지애나를 매입하여 국토의 면적은 거의 갑절로 늘어났다. 여러 이유로 영국과 벌인 1812년 전쟁은 승패가 분명히 갈리지는 않았으나 미국의 민족주의를 강화시켰다. 미국 군대가 플로리다를 수 차례 침입하면서 1819년에 미국은 스페인에게서 플로리다와 여타 멕시코 만 연안 영토를 할양받게 된다.(아담스-오니스 조약) 1845년에 미국은 텍사스 공화국을 병합하였다. "명백한 운명"이라는 관념이 대중화되는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17] 1846년 영국과 오리건 조약을 맺으면서 미국은 오늘날의 미국 북서부를 통치하게 된다. 멕시코-미국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1848년에 캘리포니아와 오늘날의 미국 남서부할양받게 되었다. 1848년~49년의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로 서부 이주가 가속화되었다. 새로이 철도가 부설되면서 정착민들의 이동이 쉬워지고, 원주민과의 갈등도 커졌다. 50년 만에 4천만 마리 이상의 아메리카들소(버팔로)가 가죽과 고기를 얻거나 철도망 확대의 편의를 위해 학살당하였다. 평원 인디언들의 주요 자원이던 버팔로를 손실하면서 여러 원주민 문화는 큰 타격을 입었다.

내전과 산업화 [편집]

남북 전쟁, 미국-스페인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게티즈버그 전투", 쿠리에 & 이브의 석판화. 1863년경.

노예주와 자유주는 주와 연방 정부간의 관계를 놓고 갈등하였으며, 신설 주의 노예제 시행 여부를 놓고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런 가운데, 주로 노예제 반대 입장이었던 공화당 후보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0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링컨의 취임에 앞서 일곱 노예주는 분리 독립을 선언하여 남부 연합을 결성하였다. (연방 정부는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남부 연합이 섬터 요새를 공격하면서 미국 내전이 발발하였으며, 노예주 네 곳이 남부 연합에 추가로 가입하였다.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에서 남부 연합의 노예가 자유라고 선언하였다. 1865년에 북부 연합이 승리하여 미국 헌법은 세 차례 수정되어 당시 노예 신분이었던 아프리카 노예 4백만여 명이 자유를 보장받았으며,[18]미국 시민이 되었으며, 투표권을 부여받았다. 이 전쟁으로 연방 정부의 권력이 크게 증대되었다.[19]

전후 링컨이 암살당하면서, 새로이 해방된 노예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한편 남부 주를 재건하고 재통합하는 목표로 했던 공화당의 재건 정책이 급진화되었다. 1876년 대선 논쟁이 1877년의 합의로 해결되면서 미국의 재건 정책이 종식되었으며, 이내 짐 크로 법으로 수많은 아프리카계 미국 시민들이 시민권을 박탈당하였다. 북부에서는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남유럽동유럽에서 전례없이 많은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미국의 산업화가 더욱 진전하였다. 1929년까지 지속된 이민 물결로 노동력이 유입되고 미국 문화가 변화하였다. 국가 기반 시설이 발전하면서 경제 발전을 자극하였다. 1867년 러시아에서 알래스카를 매입하면서 미국 본토의 영토 확장이 일단락되었다. 1890년 운디드 니 학살은 인디언 전쟁 최후의 대규모 무장 투쟁이었다. 1893년, 태평양 하와이 왕국의 원주민 왕정이 미국 거류민들이 주동한 정변으로 전복되자, 1898년에 미국은 이 군도를 병합하였다. 같은 해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은 강대국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으며, 푸에르토리코, , 필리핀을 병합하였다.[20] 50여 년 뒤에 필리핀은 미국에서 독립하였으나, 푸에르토리코와 괌은 아직도 미국 영토로 남아 있다.

세 계 대전과 대공황 [편집]

미국의 대공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36년 더스트볼로 버려진 사우스다코타의 농장.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질 때 미국은 중립 태도를 취하였다. 미국인 대부분은 영국과 프랑스를 동정하였으나, 많은 이들이 참전에 반대하였다.[21] 1917년 미국은 결국 연합군으로 참전하면서 전황은 동맹국에 불리하게 전개된다. 전후 상원은 국제 연맹을 창설한 베르사유 조약에 비준하지 않았다. 미국은 고립주의에 경도된 일방주의 정책을 추구하였다.[22] 1920년대에 여권 신장운동은 여성 투표권을 보장하도록 헌법이 수정되는 성과를 얻었다. 번영을 구가하던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는 대공황의 단초가 된 1929년 월 가의 대폭락으로 끝나버렸다. 1932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D. 루즈벨트는 경제 위기에 맞서 경제 분야에 정부의 간섭을 증대하는 다양한 정책인 뉴 딜 정책으로 대응하였다. 1930년대 중반의 더스트 볼(Dust Bowl) 현상으로 수많은 농촌이 빈곤에 빠졌으며, 새로이 서부 이주 바람이 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도 미국은 사실상 중립을 유지하다, 1939년 9월에 나치 독일폴란드를 침공하면서 1941년 3월 무기대여법을 통해 연합국에 물자를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진주만을 급습하면서 미국은 추축국에 대항하여 연합군에 참전하였다. 참전으로 미국의 자본 투자와 산업 능력이 높아졌다. 주요 참전국 가운데 미국은 전쟁 덕분에 오히려 더 부유해진 유일한 나라였다.[23] 연합국의 브레튼우즈 회의얄타 회담으로 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세계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는 새로운 국제 체제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유럽 전선에서 연합국이 승리하자 1945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전후에 발효한 국제 연합 헌장이 도출되었다.[24]처음으로 핵무기를 개발한 미국은 그 해 8월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무기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전쟁이 끝났다.[25]

냉 전과 저항 정치 [편집]

냉전, 베트남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연설하고 있는 마틴 루서 킹 2세.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기 에 미국과 소련은 각자 북대서양 조약기구바르샤바 조약기구를 통하여 유럽의 군사 현안을 주도하며 패권을 놓고 경쟁하였다. 미국은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으며, 소련은 공산주의와 중앙 통제 경제 체제를 이끌어갔다. 양자는 대리전을 통하여 전쟁을 벌이고 여러 독재 정권을 지원하였다. 1950~53년의 한국 전쟁에서 미군은 중국 공산군과 싸웠다. 하원 반미 활동 위원회(HUAC)에서는 좌익 단체의 국가 전복 혐의를 캐내는 조사 활동을 벌였으며, 조지프 매카시 상원 의원은 반공 정서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1961년 소련이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리면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이 최초로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내세워 1969년에 기어이 실현하였다. 또 케네디는 쿠바에서 소련군과 핵 위기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미국 경제는 계속 성장하였다. 로자 파크, 마틴 루서 킹 2세, 제임스 베블과 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주도한 민권 운동은 인종 차별 및 분리에 맞서 비폭력 방식을 이용하여 저항하였다. 1963년에 케네디가 암살당한 뒤, 린든 B. 존슨 대통령 시대에 1964년 민권법, 1965년 투표권법이 통과하였다. 존슨과 후임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 동남 아시아로 대리전을 확대하였다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그런 가운데 반문화 운동반전 운동흑인 민족주의, 성 혁명의 영향을 받아 널리 성장하였다. 베티 프리던,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새로운 여성주의 유파는 여성의 정치, 경제,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말미암아 1974년에 닉슨은 권력 남용과 사법 방해 등의 혐의로 탄핵되 는 것을 피하고자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사임하게 되었으며,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였다. 1970년대 말 지미 카터 행정부 시대에는 스태그플래이션이란 인질 사건이 중요한 사건이었다. 1980년에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 정치가 우익으로 급선회하고, 세금과 예산 우선 순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레이건 2기 정부 때는 이란-콘트라 사건이 일어나고, 소련과 괄목할만한 관계 증진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후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이 종식되었다.

오늘날 [편집]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시기에 미국은 국제 연합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여, 걸프 전쟁은 국제 연합의 승인을 받아내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대에 현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경제 성장(1991년 3월 ~ 2001년 3월)이 이루어졌으며, 닷컴 거품 현상이 생겼다.[26] 민사 소송과 섹스 스캔들 때문에 1998년에 빌 클린턴이 탄핵받았으나, 끝내 임기를 지켰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H. W. 부시의 아들 조지 W. 부시가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미국사상 대단히 근소한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에 일어난 세계 무역 센터 테러.

2001년 9월 11일, 알 카이다 테러범들이 뉴욕 시의 세계 무역 센터와 워싱턴 인근 펜타곤테러 공격을 감행하여, 거의 3천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부시 행정부는 이에 대응하여 "대테러 전쟁"을 개시하였다. 2001년 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탈리반 정권과 알 카이다 훈련소를 제거하였다. 탈리반 반군은 아직도 게릴라 전쟁으로 싸우고 있다. 2002년, 부시 행정부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근거를 내세워 이라크에 정권 교체 압박을 가하였다.[27] 북대서양 조약기구의 지원이나 국제 연합의 명시적인 군사 개입 명령 없이 부시는 의지의 연대(Coalition of the willing)를 조직하여 2003년에 이라크를 선제 공격하였으며, 과거 미국의 동맹자였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였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발생하여 멕시코 만 연안 지대 상당 지역을 심각하게 파괴하였으며, 뉴올리언스를 황폐화하였다. 2008년 11월 4일, 세계적인 경제 침체 속에서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는 최초의 아프리카계 출신 미국 대통령이다.

자연 환경 [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지리, 미국의 기후, 미국의 환경입니다.
미국 본토의 위성 지형 사진.

미국 본토의 육지 면적은 약 7억7천만 헥타르이다. 본토와 떨어진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넓은 주로, 면적이 1억5천만 헥타르이다. 북아메리카 대륙 남서쪽으로 태평양 한 가운데에 자리한 군도인 하와이 주 면적은 1백6십만 헥타르을 겨우 넘는 정도이다.[28] 미국은 러시아와 캐나다 (또는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 3, 4위인데,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미국과 중국의 면적 순위는 중국-인도간 의 영토 분쟁 지역 및 미국 총 면적의 계산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의 면적을 놓고 CIA 월드 팩트북에서는 9,826,676 km2,[29] 국제 연합 통계국에서는 9,629,091 km2,[30]브리태니커 사전에서는 9,522,055 km2[31]으 로 쓰고 있다. 육지 면적만 따지자면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 다음으로 3위로, 캐나다보다 약간 크다.[32]

대서양의 해안 평원에서 내륙으로 가면 피드먼트낙엽수 삼림과 구릉 지대로 이어진다. 애팔래치아 산맥은 동부 연안과 오대호, 중서부를 가른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수계미시시피 강-미주리 강은 국토의 심장부를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평평하고 비옥한 대초원을 이루는 대평원은 남동부의 고원 지역까지 서쪽으로 뻗어있다. 대펴원 서쪽 끝에 있는 로키 산맥은 국토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콜로라도에서는 고도가 4,300m까지 높아지기도 한다. 더 서쪽으로 가면 로키 산맥의 대분지(그레이트베이슨)와 모하비 사막 등 사막이 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캐스케이드 산맥태평양 연안과 가까이 뻗어있다. 알래스카에 있는 고도 6,194m의 매킨리 산은 미국과 북아메리카 전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알래스카의 알렉산더 제도알류샨 제도, 하와이의 화산 등 활화산도 흔하다. 로키 산맥 옐로스톤 국립 공원 밑에 있는 초화산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화산체이다.[33]

1782년 이래 미국의 국조(國鳥)인 대머리 독수리.

광대한 영토에 다양한 지리 환경을 지닌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기후 형태를 찾아 볼 수 있다. 서경 100도선 동쪽으로는 기후대가 북쪽의 습윤 대륙성 기후에서 남쪽의 온대 습윤 기후에 이른다. 플로리다 남쪽 끝 지역은 하와이처럼 열대 기후이다. 서경 100도선 서쪽의 대평원 지역은 반건조 기후이다. 서부 산맥 상당 지역은 고산 기후를 나타낸다. 남서부의 사막과 대분지의 기후는 건조하며, 캘리포니아 해안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고, 오리건워싱턴 주 및 알래스카 남부는 서안 해양성 기후를 보인다. 알래스카 대부분은 아극 기후나 극 기후이다. 극단적인 기후 현상도 종종 일어나는데, 멕시코 만과 접한 주에는 허리케인이 곧잘 발생하며, 세계 토네이도의 대부분도 미국내, 특히 중서부 토네이도 길목(Tornado Alley)에서 주로 일어난다.[34]

미국의 생태는 최다 생물다양성 국가(megadiverse countries)로 여겨진다. 미국 본토와 알래스카에는 관다발식물 17,000여 종이 있으며, 하와이에서는 속씨식물 1,800 종 이상이 발견되는데, 이들 가운데 본토에서도 서식하는 종은 적은 수에 불과하다.[35] 미국은 포유류 400종, 조류 750종, 파충류 및 양서류 500종 이상이 서식하는 땅이다.[36] 곤충은 91,000종 이상이 서식한다고 한다.[37] 1973년의 멸종 위기종 법안은 위기종과 취약종 및 이들의 서식지를 보호하는데, 미국 어류 및 야생생물 보호국에 서 이들 서식지를 감시한다. 미국에는 58개의 국립 공원이 있으며, 그 밖에도 연방 차원에서 관리하는 공원, 숲, 야생 지역이 수백 곳 있다.[38] 미국 정부는 국토 육지 중 총 28.8%를 소유하고 있다.[39] 이 가운데 대부분의 지역은 보호 구역이며, 일부 지역은 원유 및 가스 시추, 광산 채굴, 벌목, 목축을 위해 임차한 곳도 있으며, 군사 목적으로는 2.4%가 이용되고 있다.[39]

정치 [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정치입니다.
미국 의회 의사당 서쪽 정면. 미국 상하원이 이 곳에 있다.

미합중국은 1776년 성립되어, 전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연방 국가이다. 미국은 "에 의하여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여 다수결의 원칙을 조정하는" 대의 민주주의 입헌 공화국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 최상위 법전인 헌법에 규정된 견제와 균형 체제에 따라 통제된다. 미국의 연방 제도에서 시민은 보통 세 단계의 정부 즉 연방, 주, 지역 단위에 속한다. 미국 헌법은 연방 정부의 권한에 관한 것을 구성 주에서 위임받았는데, 그 가운데 국방·외교 정책·대외 무역의 조정 기능, 통화, 최고 법 집행기능, 주간 통상의 조정, 이민 등은 연방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임권에 속한다. 주 정부의 주요 기능은 교육, 농업, 자연보호, 고속도로 관리, 차량 감독, 공공안녕, 교도행정, 주내 통상의 조정, 교육·보건·복지 정책의 시행 등이다. 지역 정부의 업무는 보통 각 과 시 정부에 나눠 맡기고 있다. 거의 모든 경우에 행정부와 입법부 공무원은 구역별로 시민의 다수 투표에 따라 선출된다. 연방 차원의 비례대표제는 없으며, 하위 정부 단위에서도 이 제도는 드물다.

백악관 남쪽 정면. 미국 대통령의 관저이다.

미국의 정치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볼 때 특이한 측면들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주로 정치제도나 정치행동의 측면에서 발견될 수 있으며, 이는 곧 정치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정치문화는 미국인들의 정치적 성향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가브리엘 앨몬드(Gabriel A. Almond)가 지적하였듯이 미국의 정치문화는 동질적이고 세속적이다. 인종의 도가니라고 불리는 미국에서는 인종뿐만 아니라 종교·문화·경제 등에 걸쳐서 차이가 크며 시민의 이해(利害)도 대립하기 쉽다. 따라서 식민지 시대부터 정치의 목표는 항상 현실적이며, 동의에 입각한 이해관계의 조정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정치문화는 많은 가치가 복합된 정치문화인 동시에, 합리적이고 타산적이며, 경험적인 정치문화이다. 때문에 미국의 정치무대는 마치 혼잡한 분위기 속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자유시장을 방불케 한다. 미국에서는 자유로운 개인의 정치 참여 원칙이 관철되어 왔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은 3권분립을 엄격히 고수하고, 독립국에 가까운 주(州)제도를 채용하여 지역의 자주성을 존중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역사적 경위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형태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분립된 3권간에는 권력의 중복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국의 정치체제 간에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가 중복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연방제도를 답변확정하고 있는 미국의 정부는 구성주정부가 연방정부에 위임하는 권한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으며, 그 외의 권한은 국민과 50개의 주가 보유하고 있다. 50개주는 연방 정부와 마찬가지로 주 정부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 각부는 연방 정부의 각부와 동등한 기능 및 영역을 지닌다. 각 주의 행정 수반은 주지사이다. 연방정부와 주정부간의 권력의 분리에도 불구하고, 양자 간에는 권력 분포와 행사에 있어서 중복현상과 마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 세기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미국도 행정부의 권력이 비대해짐에 따라 의회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미국 정치에서 의회가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또한 강력하다. 단지 시대적인 차원에서 행정부의 권한이 강화된 반면, 의회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을 뿐이다. 미국은 50개주에 포함되지 않는 괌, 북마리아나제도 등의 속령 등 해외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국가 군대 최고 통수권자의 직함을 가지며, 국방 장관과 합동 참모총장을 임명한다. 미국 국방부육군, 해군, 해병대, 공군을 비롯한 군 전체를 총괄한다. 해안 경비대의 경우 평화시에는 국토안보부에서, 전시에는 해군부에서 관할한다.

경제 [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경제입니다.
경제 지표
실업률 10.0% 2009년 11월 [40]
GDP 성장률 −0.7%2009년 2/4분기 [0.4%2008년] [41]
CPI 인플레이션 −1.5% 2008년 8월 ~ 2009년 8월 [42]
공공 채무 12조 1,130억 달러 2009년 11월 30일 [43]
빈곤율 13.2%2008년 [44]

미국의 경제 체제는 민주주의적 혼합 경제로, 풍부한 천연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높은 생산성을 누리고 있다.[45] 미국이 부유한 경제를 이룩한 것은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의 존재와, 기술혁신이 뒷받침된 국내 산업이나 해외에서의 활발한 투자활동으로 대표되는 고도의 자본주의 체제에 의한 것이다. [46]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14조 4천억 달러로, 시장 환율로 세계총생산(GWP)의 23%, 구매력 평가(PPP) 대비 세계총생산의 약 21%를 차지한다고 한다.[2] 미국의 GDP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2008년 유럽 연합의 구매력 평가 대비 합산 GDP보다 겨우 5% 적은 수준이다. 이 나라는 1인당 명목 GDP 17위, 구매력 평가 1인당 GDP 6위에 등재되었다.[2]

미국은 세계 최대 재화 수입국이며, 수출 규모는 세계 3위인데 1인당 수입액은 비교적 낮다. 주요 무역 상대국으로는 캐나다, 중국, 멕시코, 일본, 독일이 있다.[47] 2007년, 자동차는 주요 수출입 품목이었다.[48] 중국은 미국 공공 채무를 가장 많이 보유한 해외 채권국이다.[49] 약 6년간 성장하던 미국 경제는 2007년 12월부터 침체기를 맞고 있다.[50] 한편 미국은 국제 경쟁력 보고서에서 2위에 등재되었다.[51]

2009년 미국 경제에서 개인 부문은 전체 중 55.3%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는데, 연방 정부 활동은 24.1%, 주 및 지역 정부 활동(연방 이전액 포함)은 20.6%를 기록하였다.[52] 미국 경제는 탈산업화 단계로, 서비스 부문이 GDP의 67.8%를 차지하지만, 지금도 미국은 산업 강국이다.[53] 기업 총수령액 기준 주요 사업 문야는 도소매 무역이며, 순수입 기준으로는 제조업이 주된 분야이다.[54] 화학 공학 제품은 주요 제조업 분야이다.[55] 미국은 세계 3위 석유 생산국이며, 최대 수입국이기도 하다.[56] 미국은 전기 및 핵 에너지를 비롯하여 액화 천연 가스, 황, 인지질, 소금 생산에서 세계 1위이다. 농업은 미국 GDP의 1%를 넘지 않으나,[53] 미국은 옥수수[57]와 콩[58]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뉴욕 증권거래소는 세계에서 달러가 가장 많은 곳이다.[59]코카콜라, 맥도날드는 세계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가장 높은 기업이다.[60]

2009년 3/4분기에 미국 노동 인구는 1억 5,440만 명이었다. 이 중 고용 인구의 81%가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 2,240만 명을 거느린 미국 정부는 주요 고용처이다.[61] 미국 노동자의 노동 조합 조직률은 12% 정도로, 서유럽의 30%에 비하여 낮은 수준이다.[62] 세계 은행은 미국을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가 가장 쉬운 나라 1위로 들었다.[63] 1973년에서 2003년까지 미국인의 연간 평균 노동 시간은 199시간에 이르렀다.[64] 이런 이유도 있어서, 미국은 세계에서 노동 생산성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08년에 미국은 시간당 노동 생산성 면에서 십년 전까지만해도 미국보다 높던 노르웨이,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따라 잡았다.[65] 유럽과 견주어 미국의 자산 및 법인 소득세율은 보통 높은 편이며, 노동 특히 소비세율은 낮다.[66]

사회 [편집]

미국인의 조상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로서 이들에게 힘과 희망을 불어준 것이 종교였던 것만큼 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축제는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이다. 신대륙에서의 첫 수확을 신에게 감사하고자 매년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전국에 걸쳐 대대적인 축제를 벌인다. 이날에는 모형으로 만든 대형 칠면조와 의장대를 앞세우고 화려한 축하행진을 벌인다. 크리스마스에는 집 안팎에 온갖 장식물로 꾸민 나무를 세우고, 어린이들은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갖다주기를 기다리면서 양말 켤레를 나무에 걸어놓는다. 미국의 교육은 19세기초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하였는데, 누구나 12년간 의무교육을 받는다. 미국의 교육방법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워서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또한 토, 일요일이 휴일이고 여름방학도 6월 중순부터 3개월 정도이다. 방학 때에는 숙제가 거의 없기 때문에 미국의 어린이들은 캠프와 여행을 가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기도 한다.예의범절에 대해서는 엄격한 편으로 거의 모든 어린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방을 가지며 잠은 반드시 혼자 자도록 하고, 취침시간도 정해져 있다. 미국에서는 15, 16세가 되면 부모가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의 최대 목표는 자립, 독립이기 때문에 다 자란 성인 자식이 부모와 동거하는 일은 거의 없다. 멀리 떨어져 사는 일이 많기 때문에 부모, 자식, 형제자매의 사진이 가정에 많이 장식되어 있으며 크리스마스 또는 감사절에는 서로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이혼의 증가가 미국 가정의 가장 큰 문제다. 한쪽 부모만을 가진 어린이와 부모의 재혼에 따라 이복 형제자매를 가진 어린이가 늘어나는 추세로 다음 시대의 국민성에 대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미국인의 국민성은 가정을 중심으로 자신이 사는 지역사회에 대한 귀속감이 강하며 다른 나라 국민에 비해 대체로 개방적이고 쾌활하며 친절한 한편 미국 민주주의와 기독교정신, 게다가 물질적 번영에 따른 고도의 대중소비생활 등이 만들어 낸 미국적 생활방식이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국민의식을 낳아 자신들에게 좋은 것은 타인들에게도 좋은 것이라 생각하여 타국에 강요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라 할 수 있다. [67]

인종과 언어 [편집]

출신 국가별 인종 분포, 2000년 기준.

미국의 발전은 그 역사를 통해서 유럽·아프리카·아시아로부터의 이민에 의해서 유지되어 왔는데, 오늘날 이들 민족은 융합하여 새로운 아메리카 민족을 구성해 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영어를 사용하고, 같은 미국적인 생활을 영위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외견상 분명히 몇 인종으로 나눌 수 있다. 유럽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그 중에서도 출신 국가별로는 영국계, 독일계, 아일랜드계 등이 가장 많다. 최초로 이주해 온 것은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이며, 독립할 때까지는 이 밖에 독일인 등이 추가되었지만 중심은 영국인이었으므로 현재도 미국에서는 영어가 일상어이다. 남북전쟁 이후는 종래의 북유럽계의 이민에 비하여 이탈리아인·슬라브인 등의 남유럽계·동유럽계 이주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20세기 초에는 전 이민의 8할을 이들 이민이 차지하였다. 이민을 가장 많이 온 때는 188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이며, 그 전후를 포함하여 1820년부터 1961년까지의 4,200만 명이 입국하였다. 또한 19세기 말부터는 중국인·일본인·한국인·필리핀인·멕시코인·쿠바인·푸에르토리코인 등이 증가하고 있어, 이들을 총칭하여 신이민이라고도 한다. 마찬가지로 19세기 이래 이주하게 된 유대인은 특이한 존재로서, 현재 전 세계 1,500만의 유대인 중 약 550만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는 자산가나 훌륭한 학자가 많고, 각지에 집단적인 생활을 하며, 미국 사회에서는 무시하지 못할 세력을 가지고 있다.

비(非)백인 가운데 가장 큰 인구를 가진 소수민족은 히스패닉으로, 라틴 아메리카로부터의 이민 유입 및 높은 출산율 등으로 오랫동안 가장 많은 소수 집단이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넘어섰다. 또한 서부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수 히스패닉계 주민은 원래 멕시코 영토였던 그들의 거주지가 미국에 병합됨으로써 자동적으로 미국인이 되기도 했다.

흑인은 전체 인구의 약 12%를 차지한다. 아시아계 이민은 아직 수적으로는 미미한 편이며, 한국계 주민들은 약 2백만 명, 중국인은 약 3백만 명, 일본인은 약 80만 명 정도로 대부분이 캘리포니아 주를 중심으로한 서부지역에 많다.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내 아메리카 원주민입니다.

미국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 해당하는 영토내에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 그리고 이들의 현대 후손이다. 이 표현은 광범위한 부족, 국가, 민족을 포괄하며 이 중 많은 무리들은 오늘날에 정치적 공동체로 살아남았다.

미국의 인종 구성
인종 비율(%) 인종 비율(%)
백색인종 87.5 기타 36.6
영국계 15.3 황색인종 1.1
독일계 12.7 아메리카 인디언계 0.4
아일랜드계 8.1 일본계 0.3
스페인계 4.4 중국계 0.2
이탈리아계 4.3 필리핀계 0.2
프랑스계 2.6 흑색인종 11.1
폴란드계 2.4 기타 0.3
러시아계 1.1

미국에는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 출신이 모여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공용어는 사실상 영어이 나, 히스패닉계 인구가 많은 서부 지역에서는 스페인어를, 특정 민족의 인구가 많은 구역은 그 민족의 언어를 공공 표지판 등에 병기하기도 한다.

미 국의 이민 정책 [편집]

미국은 이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민 정책은 국가의 기초를 설계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다. 초기에 미국은 경 제발전을 위한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유색인 이민을 받아들였으나, 이미 일터에 뿌리를 내린 백인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시대에 따라 유색인 이민문호를 조절했다.

미국은 1850년 무렵부터 아시아계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다가 이들의 영향력이 커질 조짐이 있자, 1882년 중국인 이민부터 금지시키더니 1924년 아시아계 이민을 완전히 금지시켰다. 당시 미국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여기에서 예외였다. 캘리포니아주는 이보다 앞선 1913년 외국인 토지소유 금지법을 제정해 외국인의 토지소유를 막았는데, 표적은 아시아계였다. 토지를 소유하면 자본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법은 미국시민(미국 시민권을 소유한 자)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는데 아시아계 이민 1세는 미국시민이 될 수 없었다.

그러다 2차 대전에서 중국과 연합국으로 싸우게 되자 중국에 이민문호를 개방한 것이 1943년, 인도가 1946년, 한국일본에 대해서는 1952 년에 와서야 이민문호를 다시 열었다. 문호를 개방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민이 허용되는 숫자는 생색내기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1952년 개정법으로 아시아 이민 1세도 미국시민이 될 수 있었다. 시민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투표권이 있다는 말로 크건 작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미원조전쟁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민의 국가이면서도 인종차별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68]

구체적으로 인종 문제가 사회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이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활약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인종 문제 [편집]

앵글로-색슨족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 북방계의 이주자들은 이주 시기가 빨랐다는 점도 있어 일찍이 융합하였으며, 현재 미국 사회의 주류에 있다. 이에 대하여 19세기 후반 이후 이주한 신이민들은 일반적으로 신참자(新參者)로서 생활의 기반이 약한 데다가 유대인·아시아인 등은 인종·문화가 구(舊)이민과 이질적이어서 동화하기 어려우며, 배척을 당하는 일도 많았다. 따라서 그들은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경향이 있고, 사회생활에서도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있다. 그러나 현재 인종문제로서 최대의 문제는 인구의 1할을 차지하는 흑인의 문제이다. 식민지 시대에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로 팔려 온 그들은 해방 후 전국 어느 곳에나 거주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일부에선 교육·취직·거주 등의 분야에 불평등한 점이 남아 있고, 이에 항의하는 흑인의 행동도 차츰 격렬해지고 있어, 오늘날 미국 내에서 최대의 사회 문제로 되어 있다. 또한 푸에르토리코인은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에 한정되어 있고 절대수도 많지는 않은데 신이민으로서 흑인과 함께 사회의 최하층을 형성하는 수가 많다. 그리고 빈곤으로 인해 그들의 생활상태는 차츰 사회문제화되어 가고 있다.

교육 [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교육입니다.
버지니아 대학교, 토머스 제퍼슨이 설계했으며, UNESCO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지역·주·연방 간의 계획 및 정책의 협조체제는 교육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역사적으로 교육은 주와 지역정부의 소관사업으로 간주되었다. 3,000개 이상의 대학과 종합대학교 중에서 군사학 분야의 일부 학교만이 연방기관에 속한다. 그러나 1862년 연방정부가 농과대학과 공과대학을 설립할 목적으로 주정부에 연방공유지를 불하(이런 대학은 '토지불하대학'으로 불림)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모든 차원에서 교육에 관여해왔다. 그밖에도 학교급식계획을 지원하고, 아메리카 인디언 교육을 관할하며, 대학에 연구비를 지급하고, 대학생에게 학자금을 융자해주며, 퇴역군인 교육의 재정을 지원한다.

초등교육은 여전히 일차적으로 지역정부의 소관이지만,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64년의 민권법은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학군에 대해 연방정부가 재정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학교가 많은데도 인종차별지역에 사는 흑인들의 자녀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부분의 주에서 6세에서 16세까지 무상·의무 교육을 실시한다. 미국 학생들의 절대다수가 중등교육을 마치는 17, 18세까지 학교에 다닌다. 미국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등교육기관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명문 대학교로는 하버드대학교(매사추세츠)·예일대학교(코네티컷)·프린스턴대학교(뉴저지)·컬럼비아대학교(뉴욕)펜실베이니아대학교(펜실베이니아)시카고대학교(일리노이)·스탠퍼드대학교(캘리포니아)·캘리포니아 대학교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MIT) 등이 있다.

언론 [편집]

미국의 대부분의 방송은 민영 방송이지만 미국의 소리, 자유아시아방송, 자유유럽방송 등의 국제방송은 국가가 운영한다.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LA 타임즈(Los Angeles Times), AP 등을 비롯한 세계적인 신문사와 통신사들이 많이 존재한다.

문화 [편집]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컨텐츠인 애플 파이, 야구, 성조기

아메리카 대륙에 신세계를 구축한 개척자들은 엄격한 청교도이며 그 금욕사상은 모든 경쟁이나 즐거움을 죄악시하여 종교적인 활동을 제외하고 생산과 결부되지 않은 활동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옛 세계’에서 도입된 예술·스포츠 문화가 신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척민들은 그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빠르게 미국사회에 동화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건축, 미술, 문학, 음악 등 다방면에서 미국적인 사고와 양식이 표출되었으며, 특히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대중음악과 영화를 들 수 있다.

예술 전반에 걸쳐 미국은 비교적 역사가 짧은 나라인데 반해 인상적인 많은 숫자의 인정받는 거장들을 배출했다. 나다니엘 호돈, 허만 멜빌, 헬리 제임스, 에디스 워턴, 윌리엄 포크너의 장·단편 소설들은 다른 어느 나라의 가장 훌륭한 소설과도 필적하는 것들이다. 회화는 훌륭한 초상화가인 존 싱글턴 카플리와 코마스 어킨스의 작품들과 윈슬로 호머의 뛰어난 수채화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의 잊혀지지 않는 사실주의 그림들로 번성하였다. 또한 미국은 세계적으로 위대한 조각가인 오거스트 세인트 고든스, 알렉산더 콜더, 데이비드 스미스, 루이스 네이슨, 그리고 뛰어난 고전음악 작곡가인 찰스 아이브즈와 아론 코플란드를 배출시켰다. 그러나 세계 문화에 대한 미국의 독특한 공헌은 대중을 상대하는 영역에서이다. 다이미노블과 그 전통을 이어받은 슈퍼마켓 신문코너에 범람하는 대중소설 등은 미국적인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그런가하면 할리우드는 영화제작을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던 서부영화와 갱영화 및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 대중예술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의 오페레타에서 시작한 미국의 작곡가들과 작사가들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형식의 오락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창조했다. 팝뮤직에서도 아프리카와 유럽의 음악전통이 미국에서 만나자, 이것들이 결합되어 어느 무엇과도 다른 음악적 표현이 재즈와 그 부산물인 로큰롤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대중성은 예술을 오로지 고상한 것, 고고한 것, 정신성이 높은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던 타국의 들 사이에 오랫동안 저속한 것으로 경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중예술은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계속 사로잡고 있고, 이른바 문화에 있어서 평등성이라고 할 만한 특색이 21세기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매력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풍부한 자본과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의 대중음악과 영화는 세계 각국의 문화에 빠르게 흡수, 발전되었다. 미국의 대중예술은 도시문화를 반영한 예술, 기술에 의하여 확대된 예술, 젊은이의 에너지로 뒷받침된 예술, 대중으로부터 환영받는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69]

종교 [편집]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 서 이민 온 개신교 신자들 즉, 청교도들은 초기에는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전통종교를 사교(邪敎)로 이해하여 배격했으며, 같은 기독교 종파들인 성공회로마 가톨릭 교회성공회 기도서 사용 금지, 성공회 신자 추방, 로마가톨릭교회 신자 이민거부로 배척하였다.

하지만 건국 후에는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였고, 다수의 인종·민족으 로 구성된 나라라는 미국의 특징상 거의 모든 종류의 종교를 볼 수 있지만, 유럽에서 온 이민이 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주 1회 교회에 가는 사람은 점차로 적어지고 있다. 개신교 신자가 다수이며 그외 로마 가톨릭 교회, 유대교, 정교회, 불교 및 기타 다양한 종교가 있다. 또한 유대교도도 많아서 이스라엘의 인구보다도 더 많은 유대교도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개신교도 52%, 로마 가톨릭 교회신자 24%이며, 그밖에 모르몬교도 2%, 유대교도 1%, 무슬림 1%, 기타종교 10%, 무종교 10%이다. 종교적 신념도 미국인들은 매우 높아 신 또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 비율이 94%에 달할만큼 종교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유대인을 공격했던 시기도 있었고, 존 F. 케네디외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않았던것도 이와같은 배경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과 같이 종교나 민족이 미국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도 적지 않다.

청 교도들의 미국 개척 [편집]

영 국 종교개혁으로 성공회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이후, 일부 칼뱅주의자들은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성서에 언급되지 않은 전통들을 배척한 성서주의자들로서, 성공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일부 청교도들은 네덜란드와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네덜란드에 이주한 ‘암스테르담 제2 영국교회 분리주의자 형제’들을 후에 침례교 또는 침례교인이라고 불렀다.

미국에 1620년 이주한 이들은 영국 플리머스 항을 떠나 메이플라워호에 탑승했는데, 본래 이들은 버지니아 식민지에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태풍을 만나면서 플리머스 정착지에 이주하였다. 이 플리머스 정착지는 메사추세스 식민지에 흡수된다. 후에 이들을 일컬어 '필그림 파더스'라고 하게 되었으며, 종교의 자유를 찾아 개척되었다는 미국의 이미지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이 청교도들에 의해 개척된 기독교 국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낭만적인 신화라는 설명도 있다. 그 실례로 개혁교회 목사인 마이클 호튼은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나침반)에서 독립혁명으로 미국을 건설한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이신론자들이었음을 지적한다.

로 저 윌리엄스의 종교의 자유 포용 [편집]

미국은 청교도들이 개척한 나라로서 초기 청교도 사회에서는 기독교인만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갖고 있었고, 청교도 목사들 은 신자의 자녀에게만 세례를 집례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사상이나 종교를 다소 배격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실제로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 前 성공회 사제는 제정분리사상 즉, 종교정치의 분리사상을 주장하여, 1635년 청교도 사회로부터 추방되었다.

로저는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도움을 받아 매사추세츠 주 남부에 정착하여 프로비던스(Providence, 현재 로드 아일랜드)를 건설했다. 프로비던스는 종교의 자유를 존중했기 때문에, 앤 허친슨처럼 종교적 박해를 받던 사람의 안식처가 되었다. 앤 허친슨은 보스턴 주민이었는데, 창세기아브라함 이야기에 근거, 하느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도행전 18장 26절과 디도에게 보낸 편지 2장 3~5절에 근거, 여성도 교회에서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 때문에 재판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추방명령을 받았고, 프로비던스로 피신했다. 물론 로저는 앤 허친슨의 신앙을 존중하여 그녀를 프로비던스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로저 윌리엄의 종교적 자유 포용은 미국 민주주의의 모태가 되었다.

마녀 사냥 [편집]

17세기 청교도 사회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대다수 청교도들은 이것을 사탄의 세력에 의한 것으로 두려워했다. 이것은 1692년 살렘 마녀 사냥으로 폭발하는데, 메사추세스주 살렘에서 일부 시민들이 마녀로 몰려 고문치 사 또는 사형당한 사건으로, 50명 중 19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 사건은 초기 청교도 사회의 오점 중 하나이다.

기 독교 근본주의의 등장 [편집]

근대 미국과 유럽교회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 영향을 주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의 근대적 해석으로 기독교와 시대의 연관성을 추구했다.[70] 특히 미국교회의 자유주의 신학은 하느님 나라 즉, 하느님의 다스림의 윤리성을 강조한 사회복음주의가 등장하는 등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성향을 보였고, 미국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회에서는 대다수 교회들 이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71] 이에 대한 이에 대한 반동으로 미국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The Fundamentalism)를 주장하였다. 근본주의 신학은 일부 감리교회와 극소수의 장로교회와 절대다수의 침례교회에서 영향력을 보였는데, 1915년 출판된 《근본》이라는 소책자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72] 예수의 동정녀 탄생, 예수의 신성, 예수의 대속적 죽음, 예수의 재림, 축자영감설에 근거한 성서무오설이 근본주의의 교리적인 특징이며, 예수를 믿지 않는 다른 종교인들은 심판으로 멸망한다는 구원관, 음주나 흡연에 반대하는 종교적인 금욕주의,[73]신학 교육과 자연과학에 대한 거부도 근본주의의 특징이다.[74][75] 이들 근본주의자들은 조선에서의 개신교 선교를 했기 때문에, 한국 개신교회는 근본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76]

현대 미국 교회 [편집]

현재 미국에서 가장 압도적인 종교는 기독교이며, 86.5%가 기독교인이다. 이 중에서 개신교 신자는 51.3%이며, 침례교, 감리교, 미국장로교(Presbyterious Church of USA, PCAUSA), 오순절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루터교회, 미국 개혁교회 등의 다양한 교파가 있다. 이중 그리스도의 교회는 미국 교회에서 19세기 소위 환원운동이라는 종교운동으로 발생한 자생적인 교파이다. 로마 가톨릭은 28%로 단일 교단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미국 정교회는 3%이다.[77] 최근 들어 다소 감소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대통령 취임식이나 학교 졸업식에 개신교 목사가 기도를 할 정도로 개신교회의 영향력이 강하다.

한편, 미국 로마가톨릭교회 내 일부 보수주의 법조계 인사들은 보수 정치계와 관계를 맻고 있다. 20세기 초에야 차별이 완화된 미국 로마가톨릭교도들에게 법조계는 유일한 출세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현재 미국 법조계내 보수주의 대변자들은 로마가톨릭교도들인데, 2005년 감리교 신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독실한 로마가톨릭 신자 존 로버츠를 대법원장으로 지명한 데 이어, 또 다시 보수 로마가톨릭교도 새뮤얼 얼리토를 대법관으로 추천하는등 미국 보수 로마가톨릭과 보수복음주의간의 연대가 시도되고 있다.[78]

그외 미국 기독교 교파로는 미국 성공회(Episcopal Church of USA, ECUSA)가 있는데, 청교도들이 미국을 개척한 시기에는 성공회 기도서 사용금지, 성공회 신자 추방 등의 탄압을 받았으나, 종교의 자유가 존중되면서 일부 주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79] 현재 미국 성공회 관구장 즉, 미국 성공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는 얼 쇼리 주교(1957년생) 이다.

문학과 예술 [편집]

역사를 통틀어 미국은 일단의 뛰어난 작가들을 배출했다. 코튼 매더와 조내선 에드워즈의 설교집에서부터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의 불후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시대와 건국 초기시대가 미국 문학 속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문학은 너새니얼 호손, 허먼 멜빌, 에밀리 디킨슨,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마크 트웨인, 헨리 제임스 등과 같은 작가들로 대변되었다. 20세기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벡, H. L. 멘켄, F. 스콧 피츠제럴드, 노먼 메일러, 솔 벨로, 존 업다이크 등의 작가들이 이름을 떨쳤다. 희곡 작가로는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시인으로는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 로버트 프로스트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흑인 문학으로는 랠프 엘리슨의 《투명 인간》 (Invisible Man, 1952년)이 20세기 미국 소설 가운데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다. 보다 최근에는 여성운동이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서 토니 모리슨, 앤 타일러, 루이즈 에드리히 등의 작품이 애독되었으며 여성 소설의 급속한 팽창을 경험했다.

건축 분야의 경우, 스칸디나비아에서 전해진 통나무집은 신속하게 보급되어 숲이 우거진 프런티어 지역의 상징적인 주택이 되었다. 연방양식, 그리스 부흥 양식, 고딕 양식 등 보다 정교한 건축양식이 19세기에 도시와 시골의 건축물에 이용되었다.

도시들이 소위 황금시대(Golden Age)로 접어들면서 마천루가 등장해 미국 사회의 기술적 업적과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윌리엄 러 배런 제니와 루이스 설리번은 시카고 출신의 건축가로, 그러한 건축양식의 선구자들이다. 설리번의 제자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9~1959)는 프레리 학파(Prairie School)로 알려진 새로운 건축설계운동을 시작해 20세기초에 미국 전역에 걸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후대의 주요 미국건축가로는 독일 태생의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르 로어, 그의 제자들인 필립 존슨, 로버트 벤투리 등이 있다.

1825~1870년에 유행했으며 황야 그 자체를 소재로 삼았던 허드슨 강파(Hudson River School)는 미국 미술에서 일어난 최초의 토착화 운동으로 여겨진다. 아셔 B. 듀랜드가 그 대표적인 화가이다. 도시생활은 에드워드 호퍼 같은 사실주의파나 스튜어트 데이비스 같은 추상파 화가를 막론하고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20세기 중엽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_(Pop Art)의 등장으로 쇠퇴했다. 앤디 워홀과 로버트 라우셴버그 등의 팝 아티스트들은 대중문화와 상업에서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했다.

종종 조각의 발전은 회화의 발전과 병행되는 경우가 있는데, 루이즈 니벌슨과 마크 디 주베로의 추상화와 클래스 올덴버그의 팝 아트 조각이 바로 그 예이다. 다양한 양식과 경향과는 대조를 이루는 특이한 예술가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미국 예술의 현저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고립상태에서 제작된 그들의 작품들은 국가적 경험에서 발견된 본질적인 것을 표현한다. 19세기의 윈즐로 호머와 20세기의 조지아 오키페 등의 화가들이 그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대중 문화 [편집]

할리우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할리우드 간판.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이 큰 예술 분야는 영화이다. 하워드 헉스, 조지 쿠커, 오손 웰스, 프랭크 캐프라, 존 포드, 존 휴스턴 등과 같은 미국의 영화제작자들은 영화예술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유럽의 학구적 관심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로버트 앨트먼 등 차세대 미국 영화제작자들을 고무시켜 사실적 표현의 수단으로 상업적 영화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했다. 또 20세기에 미국에서 발명된 텔레비전도 때로 영화예술 수준으로 고양되기도 했지만 주로 대중오락과 정보전달의 매체로 머물러 있다.

미국은 독특한 형태의 대중음악을 발전시켰다. 재즈·블루스·컨트리&웨스턴·로큰롤 등의 각 음악형태는 미국 생활을 통해 갖게 되는 공통의 리듬과 관심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연주자들로는 재즈의 듀크 엘링턴, 블루스의 앨버트 킹, 컨트리&웨스턴의 행크 윌리엄스, 로큰롤의 엘비스 프레슬리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중문화에 기여한 미국의 또다른 분야는 스테이지 뮤지컬(stage musical)이다. 극예술과 노래를 혼합한 형태인 뮤지컬은 제롬 컨,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리처드 로저스, 조지 거슈윈, 레너드 번스타인, 스티븐 손드하임 등의 작곡가 및 서정시인들의 작품에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 또한 현대의 고전음악분야에서는 찰스 아이브스, 존 케이지, 엘리엇 카터와 같은 유명한 작곡가들을 배출했다.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관현악단이다.

스포츠 [편집]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화려한 스포츠 행사들로는 프로 야구월드시리즈, 대학 미식축구로즈볼, 프로 미식축구의 슈퍼볼, 미국 프로 농구협 회(NBA)의 플레이오프전, 프로 아이스하키스탠리컵 대회, 미국 오픈테니스 선수권대회, 미국 프로골프인 협회 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경주, 켄터키 더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 서러브레드 경마, 프로복싱 선수권대회 등도 세계적인 관심을 끈다. 미국은 4년마다 열리는 하계 올림픽동계 올림픽 대회의 단체전과 개인전에 대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한다.

 

이거 잘보시고 가보실지 선택해보세요..

미국조기유학질문~! 내공:100

안녕하세요 저는 2000년 6월 생으로 미국 조기유학을 계획하고 있어요. 준비하다 궁금한게 너무 많아서 이렇게 질문해 보네요ㅎㅎ 제가 만약 미국인이고 학교에서 학년을...

미국조기유학 내공100

... 친절한답변부탁드려요^^ 내공 100드립니다. 미국(美國, 영어: United States of America, USA, 또는 아메리카 합중국)은 50개 주와 1개의 특별구로 이루어진 연방제 공화국이다....

미국 조기유학 가는데

미국 조기유학 가는데 내년 7월에 가는 건데 비자를 지금 발급받을 수 있을까요? 내공100 안녕하세요! *)질문에 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 비자발급내용 포함해서...

영국,미국 조기유학 질문 (내공 100)

현재 인문계고등학교 1학년이구요.여러문제때문에 곧 자퇴를 할 것 같습니다.(폭력 이런거말구요)원래 알아보던 스웨덴은 거주허가문제로 안되고 그래서 영국이나...

미국 조기유학 중1

... ㅏㅌ아요ㅠ 미국 조기유학 장단점 그냥 모두 다 알려주세요….ㅠㅠ 한국에서 공부는... 광고x 내공걸어요100 안녕하세요. 현재 국내 중학교 1학년에 재학중이며 미국 유학에...

미국 조기유학 질문

안녕하세요 이제 막 만14세 넘은 학생입니다 최근 미국 조기 유학에 관심을 가지게... 내공 100 질문자님 안녕하세요 :) 수기답변으로 안내 해드리는 세준쌤입니다 ! -> ICNA...

영국,미국 조기유학 질문 (내공 100)

현재 인문계고등학교 1학년이구요. 여러문제때문에 곧 자퇴를 할 것 같습니다.(폭력 이런거말구요) 원래 알아보던 스웨덴은 거주허가문제로 안되고 그래서 영국이나...

and 미국 조기유학질문 (내공100)

안녕하세요. 초등학생 6학년 여학생입니다. 지금 유학을 정해놓고있습니다. 사실 말하자면 어학연수지만, 길게있을수있어서 일단 유학으로 제 목표를 정했습니다. 지금...

미국조기유학궁금한점(내공100)

... 내공 100걸구요 ! 답변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중2여자구요 이번에 가려고 준비중인데 아는게 없어서 이렇게 질문드려요 ㅎㅎ 제가 모르는 것이 많아 어이없는 질문을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