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적 관점에서 <쉽게 쓰여진 시>는 <자아성찰형> 작품이랍니다. 부정적 자아에 대한 부끄러움과 반성을 통해 참된 자아를 회복하고자 하는 태도를 형상화한 작품이랍니다. 따라서 참된 자아를 회복하는 것은 <이상 세계로 나아감>이 아니라 본질적인 자아, 즉 잃어버린 자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상세계에 대한 그리움, 또는 나아감으로 해석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이상세계>란 현실이 아닌 보다 밝은 미래의 세로운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랍니다.
반영론적 관점으로 본다고 해도 시적화자는 현재 조국을 쪽빠리에게 빼앗긴 암울한 부정적 현실에 있겠지요. 쪽빠리에 의해 조국이 식민지화 되었는데 화자는 쓸데없는 공부나 하고 다니는 것이 몹시도 싫었겠지요. 조국의 광복을 위한 실질적 행동을 하지 못하는 화자 자신의 현실 안주적 삶에 대한 부끄러움과 비판을 하고 있지만 결국 시대적 상황을 인식하고 부정적 현실을 극복해서 이상 세계, 즉 조국이 광복된 상태로 나아가기를 염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답니다. 다만 <현실을 떠나>라는 부분이 문제가 될 수 있답니다. 부정적 현실을 극복해서 긍정적 현실로 변화시키는 것이지 <현실을 떠난 이상세계>를 염원한다고 볼 수 없답니다. 부정적 현실을 바로 잡는 이상세계이지요 현실과 괴리된 이상세계는 아닙니다. 화자가 추구하는 세계는 부정이 부정된 참된 세계, 즉 국권을 다시 회복한 세계입니다.
어떻게 보면 <말장난>같을 수도 있답니다. 그러니 질문자께서 의문을 표한 것에 대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답니다. 솔직히 선지 3)번은 의도적으로 함정을 파논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문제를 출제할 때는 맞고 틀린 것을 명확히 하여야 하나 모호하고나 자의적 용어를 사용하여 단순히 변별성만 요구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냥 참고하시고 <가장 가까운 답>을 고르시는 방법론을 연습을 하세요. 학생의 잘못이 아니라 문제 수준이 낮아서 그런 것입니다. 의문과 회의는 학문의 근본이랍니다.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라는 것은 회의적 사고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이지요. 그러니 앞으로도 계속 회의하고 의문를 갖는 태도를 지향하시면 좋은 결실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