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마루타사건과 비슷한 사건을 세계를 기준으로 해서 상세하...

일제강점기 때 마루타사건과 비슷한 사건을 세계를 기준으로 해서 상세하...

작성일 2011.05.29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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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마루타사건과 비슷한 사건을 세계를 기준으로 해서 상세하게 적어주세요!!

 

적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사 수행평가라서 ㅠㅠ

 

내공 有


#일제강점기 때 약탈 된 문화재 #일제강점기 때 이름 #일제강점기 때 일본 #일제강점기 때 한국 독립 #일제강점기 때의 학교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인간을 통나무 '마루타'로...

일본 군국주의 세력에 의해 벌어진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였던 '생체실험(生體實驗)'은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우리와는 무관한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생체실험의 잔혹상이 속속 드러나도 적잖은 조선인들이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었음이 밝혀지고 있어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생체실험', '마루타', '일본군 731부대', '이시이 중장의 만행' 등으로 불리는 인간말종적인 범죄행위의 실상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소련 하바로프스크 군사재판소는 1949년 12월 25일부터 30일까지 일본 관동군 제731부대 총무부장과 제1부대장(세균연구 담당), 제4부장(세균제조 담당)을 지낸 가와지마 소장에 대한 범죄행위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의 공판 기록인 '세균 전용 병기의 준비 및 사용의 혐의로 기소된 전 일본군의 사건에 대한 공개재판서류(1950년 모스크바 외국어 도서출판소 발행)'는 스미르노프 연방 검사의 가와지마 소장 심문 내용을 담고 있다. 가와지마 소장은 종전 후 소련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스미르노프 검사 "세균전 준비가 일본이 아닌 만주에서 시행된 것은 무슨 내용인가?"

가와지마 소장 "만주는 소비에트 연방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므로 전쟁을 개시할 경우 만주에서 세균전 병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만주는 세균전 병기의 연구에 관한 실험을 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편리하다.

스미르노프 검사 "만주에서의 실험 실시의 '편의성'이란 무엇인가?"

가와지마 소장 "만주가 대단히 편리했던 것은 '피실험 재료'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스미르노프 검사 "'피실험 재료'란 무엇을 말하는가? 실험용으로 부대로 보내진 인간인가?"

가와지마 소장 "그렇다."

스미르노프 검사 "실험의 희생자를 호칭함에 잇어 부대에서는 어떤 은어가 사용되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그것은 '마루타'라고 불렀다.'

스미르노프 검사 "그 사람들은 부대내 감옥에서 각자의 성명을 그대로 가진 채 감금되어 있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아니다. 그들은 성명 대신 번호로 불리고 있었다."

스미르노프 검사 "그 사람들은 결국은 누구나 죽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그렇다."

스미르노프 검사 "세균 전문학자인 당신은 전쟁의 방법으로서 살인적인 전염병을 만연시키는 일이 가공할 재난을 가져온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그렇다. 난 이해하고 있었다."

스미르노프 검사 "페스트 및 기타 전염병의 만연으로 초래되는 가공할 재난이 중립국까지도 엄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이해하고 있었는가?"

가와지마 소장 "그렇다. 난 이해하고 있었다."

가와지마 소장의 심문조서는 제731부대에서는 '생체실험'한 희생자들을 '마루타'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마루타'는 '껍데기만 벗긴 통나무'란 뜻으로 한자어 '환태(丸太)'인 일본식 단어이다. 인간을 생체실험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인간이 아닌 통나무처럼 대한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 정권의 악마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731부대의 특설 감옥에 갇힌 포로들은 단순히 '마루타'로만 불리고, 각종의 실험을 기록할 경우 성별에 따라 '암컷 마루타', '수컷 마루타'라고만 서류에 적었다. 이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은 없고 실험재료인 '마루타'만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 국가 권력 차원의 '인간도살' 프로젝트를 실시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생체실험 대상은 주로 중국인, 몽고족, 조선인, 소련인이었다.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 최강의 부대라던 관동군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이었다. 관동군 산하 731부대가 각국의 반일 인사들을 체포하여 산 채로 실험재료로 삼아 죽인 숫자는 대체로 3천여명에 달한다. 만주 하얼빈시 남방 20km지점에 악독한 세균전 비밀연구소, 뒷날 관동군 방역 급수부 본부가 창설된 것은 1933년의 일이다. 처음에는 부대의 성격을 은닉하기 위해 '가모 부대'라고 부르다가 '도쿄 부대'로 이름을 바꾸고 1941년 8월 비익명을 '만주 제731부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곳이 731부대의 본부이고 소련과 만주의 국경지대인 하이달, 쑨우, 린커우, 하이린에 각각 지부가 설치되었다.

731부대를 통칭 이시이 부대[石井部隊]라고 부르게 된 것은 조직의 대부분이 부대장인 이시이[石井四郞] 중장의 창안과 관리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부대는 6km3의 광대한 특별군사지역에 비행장, 3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막사, 발전소, 철도 진입선, 학교 교육시설,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감옥, 각종 연구실과 교련용 조마장, 대강당, 운동장, 심지어 신사까지 설치되었다.

전율할 인간도살의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실험'하는 '악마의 소굴'인 731부대는 당시 극비 중의 극비사항으로서 "설사 우군기라 할지라도 그곳 상공을 무단 비행하는 항공기는 무조건 격추하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고, 이 부대는 전용전투기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731부대에는 17개의 반으로 짜여진 가공할 '연구', '작업반'이 구성되었다. 2600여명 정도의 요원들은 주로 탄저균, 페스트균, 콜레라균 등 20여 종류의 병원체를 중심으로 세균병기의 연구 개발에 종사했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의 의과대학이나 민간연구소에서 차출한 학자, 연구원들로 신분은 군속, 기사였다. 이 '731 악마부대는 관동군의 헌병대, 특무기관, 여기에 소속된 하얼빈 보호원에서 체포해온 조선인, 중국인, 러시아인, 몽골인 등 반일지사와 그 가족들을 부대 안의 특별감옥에 수감하고, 생체실험의 '재료'로 이용하였다.

● 이름도 없이 번호로 불린 '실험재료'

제731부대에는 항상 2백명에서 3백명 정도의 '마루타'가 '비축'되어 있었다. 이들은 생체실험 목적에 따라 각기 독방에 수용되거나 3~10명 정도가 같은 방에 수용되었다. '마루타'들은 바이러스, 곤충, 동상, 페스트, 적리, 비장, 탈저, 콜레라, 병리, 혈청, 티푸스, 결핵, 약리, 세균제조, 리케차, 식물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팀의 연구 필요에 따라 분류, 수감되었다. 수감되면서 이미 국적이나 성명이 사라지고 그 대신 번호에 따라 호칭되었다.

많은 한국인에게는 강력하고 살상력이 빠른 세균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무려 31종류의 '실험'이 자행되었다. 예컨대 고속원심분리기를 사용해 사람의 생피를 짜는 착혈실험, 인간의 피와 말의 피를 서로 교환해 보는 인마혈(人馬血) 교환실험, 각종 병원체가 어떻게 인간의 체내에 스며들어 질병을 일으키는가, 어떤 경로로 인간은 동상에 걸리는가 등이 '실험'되었다. 또 각종 독가스를 살포하여 어떤 상황에서 숨지는가를 실험하고 살아있는 인체를 해부하여 질병이나 충격을 가하는 등 그야말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아무 것도 안 주고 물만 먹여도 60~70일이나 버티는 '마루타'를 관찰하고, 전혀 물을 안 주고 빵만 먹이면 6~7일째 가서 퉁퉁 부은 채 피를 토한다는 것을 실험했다. 또 인체의 70% 이상이 수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루타를 한증막에 넣고 쪄 수분을 빼는 실험도 감행했다. 그때 체중이 20~30% 줄어든다는 체중기 눈금도 확인했다. 70kg 마루타가 15kg으로 되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살아 숨쉬는 인체에다 페스트, 콜레라, 파상풍균을 주입시켜 관찰하고, 탄저균을 피부, 음식물, 호홉기관 등 3개의 감염경로로 나눠 인체에 침투시킨 뒤 이 세균이 인체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가를 조사하기 위해 다른 잡균이 들어오기 전에 생체해부를 했다. 표본번호 '403'으로 기록되어 있는 34세 남자의 경우, 코로 균을 침투시킨 뒤 3일 후 해부됐으며 폐, 췌장, 비장, 간장 등 각종 장기들에 대한 조사를 했다. 구체적인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요시무라반의 동상 실험은 대개 동절기(11월~3월)에 실시되었다. 겨울의 밤은 영하 40도로 내려가는 것이 예사였다. 요시무라반은 밤 11시나 12시 무렵 '마루타'를 특별처치실로 끌어내서 냉수로 채운 통에다 마루타의 손발을 적셨다. 인공적으로 동상을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손발이 젖은 마루타를 건물 밖으로 끌어내서 혹독한 영하의 추위에 일정시간 세워놓으면 동상은 틀림없이 일어났다. 동상이 발생하면 마루타를 다시 실내로 끌어들였는데 이번엔 치료를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중국 동북부를 침략한 관동군의 병사들 가운데는 극한 속의 작전근무 때문에 동상에 걸리는 자가 적지 않았다. 제731부대에서는 동상의 원리와 치료법의 연구, 개선을 서둘렀고 극한 상황 아래서도 세균 감염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자료도 수집하고 있었다.

임신 중에 체포, 연행돼 감옥에서 아들을 낳은 여자 마루타 한사람은 갓난아이를 살리기 위해 어떤 '실험'에도 응했다.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매일처럼 간수에게 호소하였다. 그러나 731은 어미 마루타가 낳은 자식은 결국 '새 끼' 마루타일 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731에서는 마루타가 재료이므로 그 자식도 모르모트와 마찬가지로 '사육'되는 것이었으니 물론 어미와 자식은 함께 죽음을 당했다. 대원들의 죽음에는 영안실이 준비돼 있었으나 마루타 모자에게는 번호가 기록된 카드와 소각로가 있을 뿐이었다.

어떤 때는 10여명의 마루타를 엉덩이만을 노출시켜 가스 회저균의 강제 감염 실험이 자행되었는데 가스 회저란 전장에서 청상이나 폭렬상을 입은 병사가 걸리는 지독한 병이다. 손발의 조그만 상처라도 불결한 채로 방치해 두면 흙속에 있는 가스 회저균이 침입하여 6~8시간내에 발병한다. 매우 높은 고열과 동시에 균독으로 인해 곳곳에 근육의 회저가 시작된다. 심한 악취와 부패로 인한 근육의 변색, 가스의 발생과 격동 끝에 환자는 몸부림치다 죽어가고 만다. 당시 이 병을 막으려면 손발의 절단 외엔 방법이 없었다. 노출된 마루타의 엉덩이를 향해 가까운 거리에서 가스 회저균으로 오염된 유사 폭탄이 폭발했다. 무수한 파편이 마루타의 엉덩이에 파고들었다. 마루타에 명중했는가를 확인하려고 대원들은 낱낱이 '점검'했다.

그후 마루타들을 '특설감옥'으로 돌려보내어 발병부터 사망하기까지를 상세히 관찰하여 기록되었다. 아무런 응급조치도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에 응급치료 같은 것은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731부대가 원했던 것은 가스 회저균이 탐욕스럽게 마루타의 엉덩이를 좀먹고 파헤치는 과정이었다. 며칠 후 마루타는 살이 썪는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사망했다.

소년의 나이는 12세, 13세 정도로 판단되었다. 전신에 마취가 퍼졌을 무렵 소년의 신체는 알코올로 깨끗이 닦여졌다. 해부대를 둘러싼 다베반 반원 중에서 K요원이 손에 메스를 쥐고 한 걸음 소년 앞으로 다가섰고 흉곽을 따라 Y자형으로 메스가 들어갔다. 코헬감지로 지혈된 피부에 핏방울이 하나 둘씩 맺히며 하얀 지방이 드러났다. 생체 해부가 시작됐다. 마취된 소년의 몸 안에서 장, 췌장, 신장, 위 등 각종 장기가 차례로 꺼내져 양동이 속에 따로따로 던져 넣어졌다. 다른 대원이 그 장기들을 곧바로 양동이에서 집어내 포르말린액이 든 용기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소년의 체액이 묻은 메스가 번들거렸다. 피거품이 쏟아지는 속에서 K요원은 능란하게 메스를 놀리면서 소년의 하반신에서 장기들을 드러냈다. 소년의 하반신은 텅 비었다. 그 장기들은 포르말린액 속에서 여전히 꿈틀꿈틀 수축운동을 되풀이했다. 위를 떼어내고 폐까지 절제하자 소년은 머리만이 남았다. 그것을 미나또반의 한 사람이 해부대 위에 고정시켜 놓은 뒤에 귀와 코 사이에 메스를 가했다.

두피를 벗겨낸 뒤에 톱으로 두개골을 8각형으로 잘랐다. 뇌가 드러나자 한 대원이 포르말린 용기 속에 넣었다. 해부대 위엔 소년의 사지와 공동이 된 신체의 형태만이 남았다.

이틀에 세명꼴로 죽인 마루타의 시체는 '시체소각로'에서 소각되었다. 제731부대는 모든 전쟁 범죄의 흔적을 말소하기 위해 시체를 항상 소각로에서 태웠으며 거기서 나오는 뼈 조각은 '골총'이라 불리는 구덩이에 버렸다. 소각로의 굴뚝은 높았으나 역시 풍향에 따라 악취가 맴돌았다. 마루타의 시체는 똑같이 처리됐으나 한가지 예외의 사태가 있었으니 그것은 1945년 8월 9일 시작된 제731부대의 철수에 따른 마루타 처리의 실수였다.

부대에서 실시된 생체해부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는 표본 채집이다. 인간이 전염병에 걸린 때에 심장은 어떻게 되는가? 간장의 변색은 어떻게 되는가? 감염의 진행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가 등 각 '장기'의 변화를 똑똑하게 파악하는 데는 생체해부가 제일 이상적인 방법이었다. 질병 감염의 표본 채집만이 아니었다. 한 가지 약물을 투입했을 때 시간 경과나 내장의 많은 변화와의 관련을 조사하는 것도 생체 해부의 장점이었다. 그 때문에 마루타에는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물질이 주입되었으며 마루타의 정맥에 공기를 주사하면 신체의 각 기관은 어떤 과정을 거쳐 기능을 잃게 되는가? 공기 주사는 죽음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보다 상세한 경과에 대원들도 흥미를 가졌다.

또 마루타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경우 몇 시간 몇 분만에 죽게 되며, 신체의 각 부분은 어떻게 변화하는가도 실험했다. 마루타를 커다란 원심분리기에 넣고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실험은 마루타가 죽을 때까지 되풀이해서 실시했다. 해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오줌이나 말의 혈액을 신장에 주입하면 인간의 신체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원숭이나 말의 혈액과 인간의 혈액을 섞는 실험도 추진됐다. 마루타 하나로부터는 얼마만큼의 혈액을 짜낼 수 있는가? 펌프를 사용한 착혈 실험이 나날이 실시됐다. 연기를 다량 폐 속에 불어넣으면 어떻게 되는가? 또 연기 대신 독가스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독가스나 미란성 물질이 위에 들어갈 경우는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가? 이런 것을 제731부대에서는 자연스럽게 실행에 옮겨졌다.

모리무라 세이이치[森村誠一] 저술 '악마의 731부대'」

● 반일운동가들 대부분 마루타로 희생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야만적인 생체실험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희생 숫자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국 하얼빈시 평방구에 있는 '침화일군 731부대 죄증진열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세균전 부대로 특별수송된 피해자 1203명 중에는 중국인 1173명, 소련인 16명, 조선인 7명, 몽골인 7명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중에는 조선인 심득룡(沈得龍)과 이청천(李淸泉)도 끼어 있다. 반일첩보활동을 해온 심득룡은 1943년 10월 중국 동북지구의 일본군 제86부대 소속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 부대는 대련 지방에서 반일지사들을 체포하는 것이 주임무인 특수부대였다. 심득룡은 부인, 중국인 사진사 2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들은 중국 공산당 국제반제정정보부 소속 조직원들이었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을 받고 대부분 731부대로 수송돼 세균 실험 재료로 쓰여진 후 살해되었다. 중국 중앙문서관과 대련시 문서관에 보관돼 있는 일본 헌병대 관련 기록문서에는 피해자 명단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청천(李淸泉)은 중국인들과 손을 잡고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44년 7월 해납미시에서 일본군 헌병대원에게 체포되어 731부대에 넘겨져 희생되었다. 이밖에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마루타의 희생물이 되었다. 소련 극동재판소는 피해자의 숫자가 약 3천여명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여기에는 수많은 조선인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군의 생체실험은 제731부대나 제100부대에서만 자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지바현 카시와시에 사는 재일 한국인 정정모씨는 "만주의 731부대가 주로 중국인들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한데 비해 일본 국내에서는 제국대학의 의학부가 중심이 돼 조선인들을 실험대상으로 썼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가나가와대학의 쓰네이시 게이이치 교수는 "당시 일본의 학계를 주도하던 동경제국대학과 경도제국대학 의학부 교수들이 731부대 배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전후에도 생체실험에서 얻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일본 의학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행세해 왔다."고 주장한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정정모씨는 1940년 강제 징용돼 일본에 끌려온 지 한달만에 탈출, 반일지하운동을 하다가 동지들과 함께 모리오카에서 체포되었다. 정씨는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났지만 선배 두명은 풀려나지 못하였다. 두 사람이 의과대학에 끌려가 생체실험을 당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일본에서 지하운동을 하던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조선인이 체포돼 형무소에 끌려가면 생체실험 대상이 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한다.

정씨는 특히 그들이 생체실험 대상자가 됐을 뚜렷한 증거로 1948년 요코하마에서 열린 전범재판의 구주대학 생체해부사건의 공판정에서 직접 들은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1945년 구주지방에 불시착한 미국인 B29 전투기 조종사 8명을 구주대학에서 생체해부하고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군이 진주한 후 본격 수사가 이루어져 관계자 전원이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 재판정에는 소련인 검사가 배석했는데 그가 미국인 검사에게 한 진술이 인상에 깊이 남았다. "일본 국내에서 미국인뿐 아니라 조선 사람들도 생체해부의 대상이 되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 문제도 같이 조사하자."는 제의였다. 그러나 이 제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는 모리오카의 보은사라는 절에 6백여개 정도가 있었다는 무연고 조선인들의 위령비가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조선인의 무덤이라고 주장한다. 무연고자비가 있는 일대의 땅은 모리오카 시내에 잇는 이와테대학 소유로 의과대학에서 생체실습한 동물과 사람의 뼈를 묻는 곳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정씨가 갔을 당시 그곳에는 나무 푯말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 조선인과 동물의 뼈가 묻혀 있다.'라고 씌여 있었다고 한다. 이 푯말은 나중에 없어졌다.

● 윤동주(尹東柱)도 생체실험 대상이 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이라고 노래했던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도 생체실험에 희생됐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동지사대학에 유학중이던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한 혐읠 1943년 7월 체포되어 1945년 2월 26일 27세의 젊은 나이에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사망했다.

윤동주가 생체실험에 희생됐을지 모른다는 의혹은 그의 시체를 인수하러 갔던 숙부 윤영춘에게 송몽규가 했다는 증언에서 비롯된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의 송몽규는 "저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렇게 됐다. 윤동주도 이 주사 때문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또 숙부 윤영춘은 "당시 형무소 내의 시약실 앞에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약 50여명의 조선 청년들이 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일본인 고노에 에이지는 "윤동주의 죽음과 그 3개월 뒤에 일어난 구주대학 해부사건과는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윤동주의 죽음을 구주대 생체해부사건과 관련지어 문제를 제기했다.

● 마루타 자료 미국에 넘겨 처벌 모면

전후 일본 도쿄에서 2년 6개월 동안 총 818회에 걸쳐 진행된 전범재판에서 731부대원은 단 한명도 처벌되지 않았다. 이유는 종전 후 미국이 생체실험 표본 및 실험 데이터 등 731부대의 실험자료를 넘겨받는 대가로 전범재판에서 생체실험 자체를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은 731부대의 인체실험을 조직적으로 은폐시킨 반면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731부대 요원들이 의학계 등에 진출해 생체실험에서 얻은 결과들을 활용해왔다.

종전 50년만에 풀인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의 기밀문서 '페스트균 실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새의 깃털과 벼룩을 이용한 세균전이 수행됐는데, 그 방법이 731부대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주장을 담은 '한국전쟁에서의 세균전 보고서'가 말해주듯이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천인공노할 만행인 '인간 마루타'의 실험결과가 한국전쟁에서 다시 사용되었음을 알려준다.

출처; 사람과 지식 版 '日帝는 식민통치를 하면서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

해설; 김삼웅(金三雄) 친일 반민족행위 문제 연구소 소장.

 

 

731 부대와 마루타

731 부대(731部隊)는 일본제국 육군 관동군 소속의 비밀 생물학전 연구 및 개발 기관으로, 1932년 설립, 2차 중일전쟁(1937~1945년)을 거쳐 1945년까지 생물·화학 무기의 개발 및 치명적인 인체 실험을 행하였다. 일본 요원이 악명 높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공식적으로는 ‘헌병대 정치부 및 전염병 예방 연구소’로 알려졌다. 원래는 태평양전쟁 전 정치 및 이념 부서로 설립되어 적에 대한 사상, 정치적 선전과 일본군의 사상 무장이 임무였다. 첫 부임자였던 의사 이시이 시로(石井四郞)의 이름을 따라, 이시이 부대(石井部隊)라고도 불린다. 영미권에서는 Unit 731로 잘 알려져 있다. 731 부대는 또한 히로히토 천황의 칙령으로 설립한 유일한 부대이며, 천황의 막내 동생이 그 부대의 장교로 복무하였다.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에 있던 일제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

설명

731부대 건물 잔해

 

이 부대는 중국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하얼빈 핑팡(平房, 당시 만주국 괴뢰 정부의 영토)에 주둔해 관동군 관할 구역 내의 정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위장되었다. 이 부대는 일본의 정치적 선전, 일본 군대의 사상적 대표로서 업무를 수행했다. 처음에는 공산주의 정치 선동에 대항해 일했으나 나중에 그 영역이 확대되었고, 화학·세균전 준비를 위한 연구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생체 실험을 위한 것이었다.

731 부대는 크게 보면, 독일 나치의 SS같은 정치 선동 부서이다. 여기서는 일본인의 인종적 우월성, 인종주의 이론, 방첩 활동, 정보 활동, 정치적 사보타주, 적 전선 침투 등에 관한 활동을 하였다. 이 부대는 만주 헌병대, 만주 정보기관, 만주 정규 경찰, 만주 거류민 위원회, 지역 만주 민족주의 정당, 일본 비밀 정보기관과 긴밀히 연락했다. 이 부대의 만주에 있는 부문에서는 백러시아인, 중국인, 만주인, 몽골인과 기타 특수 부서, 비밀 부서 경력의 외국인을 활용했다.

민간인과 군인 모두 1만 명의 중국인과 조선인, 몽골인, 러시아인이 이 부대의 실험 대상이었다. 일부 미국인과 유럽인 등 연합군 전쟁 포로가 731부대의 손에 죽었다. 게다가 이 부대에서 생물학 무기 프로그램에 의해 연구된 생물학 무기의 사용으로 수만 명의 중국인이 죽었다.

 

731부대는 일제가 세운 생물학전 연구기관 중 하나였으며, 516부대(치치하얼 시, 齊齊哈爾), 543부대(하이라얼 시, 海拉尔), 773부대(Songo), 100부대(창춘, 長春), 1644부대(난징, 南京), 1855부대(베이징, 北京), 8604부대(광조우, 廣州), 200부대(만주), 9420부대(싱가폴) 등 동아시아 각지에 세워진 기관도 731부대와 유사하거나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일제의 헌병대가 관리하였다.

731부대와 관련된 많은 과학자가 나중에 정치, 학계, 사업, 의학 부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일부는 소련군에 체포되어 하바로프스크 전범 재판에 회부되었다. 미국에 항복한 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료를 제공하는 대가로 사면받았다. 그들이 행한 잔인한 행위 때문에 731 부대의 활동은 국제연합에 의해 전쟁범죄로 선포되었다.

형성

1932년 이시이 시로 장군은 ‘육군 전염병 예방 연구소’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와 그 부하들은 종마 수용소를 건설했다. 이곳은 그 지역에는 종마 요새로 알려져 있다. 이 실험 수용소는 ‘베이인허’에 있는데, 하얼빈 시에서 남쪽으로 1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이시이는 ‘토고 부대’를 조직했는데 화학, 생물학 작전을 하기 위한 비밀 연구 그룹이다. 1935년 탈옥과 폭발이 있었고, 이시이는 종마 요새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중에 핑팡(하얼빈 시에서 남쪽으로 24킬로미터)으로 가서 훨씬 더 큰 새로운 시설을 만들었다.

이 부대는 나중에 관동군으로 통합되어 ‘전염병 예방부’가 되었고, 같은 시기에 ‘이시이 부대’와 ‘와카마쓰 부대’로 나위어졌다. 창춘에 있었다. 1941년부터 이 부대들은 합쳐서 ‘관동군 방역 급수부’ 또는 731부대로 불린다. 이 부대는 제국청년군(Imperial Young Corps), 대학의 연구소, 헌병대의 지원을 받았다. 어떤 이는 731부대가 헤로인 생산을 위해 만주에서 양귀비를 경작하던 미쓰이 재벌과 연계가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활동

암호명 ‘마루타’의 특별계획은 실험할 때 인간을 사용하였다. 실험 대상은 주위 인구 집단에서 수집되었고 이들은 완곡어법으로 ‘통나무’(마루타)라 불리었다. 마루타란 용어는 구성원 중 일부의 농담에서 유래했다. 이 시설을 지역 당국에는 제재소라고 했기에 그런 농담이 생겼다. 시험에는 영아, 노인, 임산부 모두 사용되었다. 많은 실험과 해부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취없이 이뤄졌고, 이는 실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생체 실험 (또는 생체 해부)

  • 수용자는 마취없이 생체 실험을 당하였다.
  • 다양한 질병에 걸린 수용자를 생체 해부하였다. 과학자들은 수용자에 대한 침습적 수술을 하였다.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장기를 제거하였다. 모두 살아있는 상태에서 시행했다. 왜냐하면 부패 과정은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성인 남자, 성인 여자, 어린이, 영아 모두 대상이었다.
  • 생체 실험은 임산부에게도 시행되었다. 어떤 때는 의사에 의해 수태되고 그 태아는 꺼내졌다.
  • 출혈의 연구를 위해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였다.
  • 절단된 팔이나 다리는 가끔 수용자의 반대편에 다시 붙여졌다.
  • 몇몇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는 얼려져 절단되었다. 어떤 때는 얼렸다가 녹여서 치료받지 않은 괴저와 부패의 영향을 연구했다.
  • 일부 수용자의 위는 외과적으로 절제되고 식도와 장을 연결하였다.
  • 일부 수용자에게서 뇌, 폐, 간의 일부가 제거되었다.

무기시험

  • 수류탄을 시험하기 위해 인간 목표물을 다양한 거리의 다른 위치에 세웠다.
  • 인간을 대상으로 화염방사기를 시험하였다.
  • 인간을 말뚝에 묶어 세균방출폭탄, 화학무기, 폭발성 폭탄을 시험하였다.

세균전 공격

  • 수용자에게는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접종되어 그 효과를 연구했다. 예방접종이라고 위장하였다.
  • 치료받지 않은 성병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남녀 수용자에게 일부러 매독, 임질을 강간에 의해 감염시키고 연구하였다.
  • 질병 전파 벼룩을 대량으로 얻기 위하여 수용자에게 벼룩을 감염시키고 세균전의 유용성을 연구하였다.
  • 전염성 벼룩, 감염된 의류와 물자가 폭탄 안에 포장되어 다양한 목표물에 투하되었다. 콜레라, 탄저병 등 전염병으로 약 40만 명의 중국인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타 여러 실험

  • 일부 수용자는 숨막혀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기 위하여 목매달렸다.
  • 일부 수용자는 색전이 생기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동맥에 공기가 주입되었다.
  • 일부 수용자는 신장에 말의 소변이 주입되었다.
  • 일부 수용자는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물과 음식을 전혀 주지 않았다.
  • 일부 수용자는 죽을 때까지 고압의 방에 놓여졌다.
  • 일부 수용자는 극저의 온도에 놓이어 동상이 걸리게 하였다. 그런 조건에서 얼마나 생존하는지, 인체 살의 부패와 괴저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 일부 실험은 온도와 화상, 인간 생존의 관계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 일부 수용자는 원심분리기에 넣어져 죽을 때까지 돌려졌다.
  • 동물의 혈액이 일부 수용자에게 주입되어 그 효과가 연구되었다.
  • 일부 수용자를 가스실에 넣어 다양한 종류의 화학 무기를 시험했다.
  • 바닷물이 몇몇 수용자에게 주사되었다. 바닷물이 생리식염수를 대치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부서

731부대는 8개의 부서로 나뉜다.

  • 제1부 : 여시니아 감염, 콜레라, 장티푸스, 결핵에 대해 인간을 재료로 연구했다. 이를 위해 수용 시설 하나가 300~4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건설되었다.
  • 제2부 : 생물학 무기를 연구했다. 특히 병균과 기생충을 퍼뜨리는 장치의 생산에 중점을 두었다.
  • 제3부 : 병균을 포함한 수류탄의 생산. 하얼빈 시에 위치해 있었다.
  • 제4부 : 기타
  • 제5부 : 요원 훈련
  • 제6부 ~ 제8부 : 시설, 의학, 행정 부서

상세한 편성은 아래와 같다.

  • 총무부
    • 부관실
    • 조사과
      • 번역반
      • 인쇄반
      • 사진반
      • 兵要地誌班
      • 조사반
      • 도서반
    • 인사과
    • 서무과
      • 노무반
      • 서무실
      • 식당
      • 酒保
      • 학교
    • 기획과
    • 경리과
    • 관리과
      • 건설반
      • 공무반
      • 동력반
      • 운전반
      • 전화반
    • 군수과
  • 제1부(부장:菊池斉 / 세균 연구)
    • 제1과(티푸스)
      • 田部班(반장:田部井和 / 티푸스 연구)
    • 제2과(콜레라)
      • 湊班(班長:湊正男 / 콜레라 연구)
    • 제3과(생리・마루타 관리)
      • 吉田班(건강진단)
      • 宮川班(엑스레이)
      • 在田班(엑스레이)
      • 栗秋班(약리)
      • 草味班(반장:草味正夫 / 약리 연구)
      • 石井班(포로 입출 관리)
      • 蓬田班(포로 입출 관리)
      • 志村班
      • 특별반(특설 감옥)
    • 제4과(이질)
      • 江島班(반장:江島真平 / 이질 연구)
    • 제5과(페스트)
      • 高橋班(반장:高橋正彦 / 페스트 연구)
    • 제6과(병리)
      • 石川班(반장:石川太刀雄丸 / 병리 연구)
      • 岡本班(반장:岡本耕造 / 병리 연구)
    • 제7과
    • 제8과(리케치아)
      • 野口班(반장:野口圭一 / 리케치아・벼룩 연구)
    • 제9과(수서곤충)
      • 田中班(반장:田中英雄 / 곤충 연구)
    • 제10과(혈청)
      • 内海班(혈청 연구)
      • 小滝班(튜버큘린)
    • 제11과(결핵)
      • 肥之藤班(脾脱疽)
      • 太田班(반장:太田澄 / 탄저 연구)
      • 樋渡班
      • 降旗班(페스트)
      • 金沢班
      • 貴宝院班(천연두)
      • 二木班(반장:二木秀雄 / 결핵 연구)
    • 소속과 안밝혀짐
      • 笠原班(반장:笠原四郎 / 바이러스 연구)
      • 吉村班(반장:吉村寿人 / 동상 연구)
  • 제2부(실시 연구, 実施研究)
    • 八木沢班(반장:八木沢行正 / 식물균 연구)
    • 소성반(폭탄 제조)
    • 기상반
    • 항공반
    • 무선반
    • 田中班(곤충)
    • 篠田班(곤충)
    • 安達 실험장
  • 제3부(방역 급수)
    • 서무과
    • 제1과(검색)
    • 제2과(毒物検知)
    • 제3과
      • 濾水班
      • 급수반
      • 운전반
      • 공작반(濾水機)
      • 濾水機・弾筒製造窯
  • 제4부(부장:川島清 군의관 소장 / 세균 제조)
    • 제1과(華頂:柄沢十三夫 군의관 소좌 / 배양 생산)
      • 野口班(페스트・脾脱疽)
    • 제2과
    • 제3과(건조균・백신)
    • 제4과(백신)
      • 有田班(반장:有田正義 / 발진티푸스・백신)
      • 植村班(가스괴저・脾脱疽)
    • 소속과 안 밝혀짐
      • 朝比奈班(반장:朝比奈正二郎 / 발진티푸스 및 백신 제조)
  • 교육부(부장:西俊英 군의관 중좌 / 부원 교육)
    • 서무과
    • 교육과
    • 위생병
    • 취사반
    • 진료소
    • 錬成隊
    • 소년대
  • 자재부(실험용 자재)
    • 서무과
    • 제1과(약품 합성)
      • 山口班(세균탄)
      • 堀口班(유리)
    • 제2과(구매 보급)
    • 제3과(濾水機)
    • 제4과(창고)
    • 제5과(병기 보관)
    • 제6과(동물 사육)
  • 진료부(부속 병원)
    • 전염병동
    • 진료실
    • 가족 진료소
  • 헌병실
    • 保機隊

지부

  • 牡丹江 지부(만주 제643부대, 지부장:尾上正男 군의관 소좌)
    • 총무과
    • 경리과
    • 제1과
    • 제2과
    • 제3과
    • 자재과
    • 교육과
  • 林口 지부(만주 제162부대)
    • 총무과
    • 제1과
    • 제2과
    • 자재과
    • 교육과
  • 孫呉 지부(만주 제673부대, 지부장:西俊英 군의관 중좌)
    • 총무과
    • 제1과
    • 제2과
    • 자재과
    • 교육과
  • 海拉爾 지부(만주 제543부대)
    • 총무과
    • 제1과
    • 제2과
    • 자재과
    • 교육과
  • 大連 지부(만주 제319부대)
    • 총무부
    • 연구부
    • 제조부

 부대원


 희생자들

731 부대의 희생자들

중국, 한국, 몽고, 러시아의 군인과 시민,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한 약 1만 명의 사람들이 생화학 병기의 실험 재료로서 살해되었다. 거기에는 일부 미국인과 유럽인도 포함되었다. 731부대에서 개발된 생화학 무기로 인해 수십만 명의 중국인이 학살되었다.

한국인 희생자

2005년 8월 2일 하얼빈일보는 생체실험 대상자였던 1,463명의 명단을 발굴 공개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한국인 희생자는 6명으로 아래와 같다. 대부분 항일운동 또는 반파시즘 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인물로 파악되고 있다.

  • 심득룡(沈得龍)
  • 이청천(李淸泉)
  • 이기수(李基洙·28·함북 신흥군 동흥면·1941년 7월20일 체포)
  • 한성진(韓成鎭·30·함북 경성·43년 6월25일 체포)
  • 김성서(金聖瑞·함북 길주·43년 7월31일 체포)
  • 고창률(高昌律·42·강원도 회양군 난곡면·41년 7월25일 체포)

전후 처리

도쿄전범재판 때 일본의 생체실험 문제가 언급되었으나, 관련자들은 실험에서 얻은 자료들을 제공하고 러시아에 넘겨주지 않는 댓가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잔인한 행위로 현재 전쟁범죄로 공표되어 있는 상태이다.

 

 

주요인물

 

이시이 시로(石井四郎, 1892년 6월 25일 ~ 1959년)는 일본의 장군으로 731부대 사령관에 임명되어 중일전쟁 중 일본 제국군대의 생물학전을 담당했다.

Shiro Ishii, commander of Unit 731

 

이시이는 치바현에서 태어났다. 쿄토제국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비록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방해되는 사람으로 생각되지만 학업에 있어서는 뛰어났다. 1922년 육군병원과 토쿄의 육군의학교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그의 작업은 윗사람들의 눈에 들기에 충분했다. 2년 뒤에 대학원 후 과정으로 쿄토제국대학에 돌아왔다.

그는 67세 암으로 죽을 때까지 한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시노즈카 요시노(篠塚良雄)는 구 일본 제국군대의 군인으로서 731부대에 근무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는데 관여했다.

생체실험을 당한 중국인의 가족 180명이 일본 정부에게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며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시즈오카는 이 재판에서 중국인 원고를 위해 증언했다. "나는 731부대 대원이었다. 나는 인간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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