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드리겠습니다.
우선 오스트리아 제국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국 내 마자르족의 반발을 막기 위해 자치를 허용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이중 왕국의 형태를 허용한 것이지요.
이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갈등을 막았지만, 제국 내의 슬라브 민족이 헝가리를 부러워하여 자치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하는 계기가 됩니다. 즉 삼중 왕국(오스트리아 왕국 - 헝가리 왕국 -남부 슬라브 왕국)의 형태를 제안한 것입니다.
하지만 헝가리의 마자르족이 극단적인 마자르주의를 내세워 이를 실현시키지 못했습니다.
즉 오스트리아 제국 내 슬라브 민족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것이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오스만 튀르크(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민족 구성원은 슬라브 민족이 대다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국력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이왕이면 슬라브 민족이 탄압을 받고 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보다는 세르비아 왕국에 의해 해방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세르비아 왕국도 역시 같은 슬라브 민족을 해방시켜주고 발칸 반도에서 슬라브 민족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했겠죠.
하지만 중서부 유럽의 대다수의 국가들은 게르만족이 그 구성원으로 있었기에, 슬라브 민족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 후 발칸 반도로의 진출을 선언했으나 이를 막기 위해 소집된 제1차 베를린 회의에서 독일, 영국은 러시아가 아닌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어주어 오스트리아가 많은 권리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행정권입니다. 본래는 오스만 제국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오스트리아에게 넘어온 것이지요.
하지만 세르비아 왕국은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비록 행정권이 오스트리아 제국에 있지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같은 민족인 세르비아와의 합병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1908년 오스트리아가 오스만 제국의 청년 튀르크당 혁명의 혼란 속에서 재빨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합병을 선언하였고, 이는 세르비아의 막대한 분노를 야기합니다.
심지어 제 2차 발칸 전쟁(1913)에서 승리한 세르비아가 알바니아의 병합을 시도하였으나 오스트리아가 이를 반대하여 무산되기도 하였구요.
이제 세르비아에게 오스트리아는 단순히 싫어하는 국가를 넘어서서 자신들의 발전을 막고 민족을 갈라놓는 원수가 되버린 것이지요. 이는 사라예보 사건을 야기하여 제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