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조선의 인구는 얼마였고 2022년 남북한의 인구는 얼마나 많나요?

1900년 조선의 인구는 얼마였고 2022년 남북한의 인구는 얼마나 많나요?

작성일 2023.01.08댓글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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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현재의 인구는 5162만 명 정도이고, 1910년 기준으로 1310만 명이었습니다.

1900년의 인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는데

이를 기반으로 추정해 보면 120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외국인의 저술에도 보면 1200만 명 정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답글 쓰신 분 중에 1900년에 1700만 명이라고 답하신 분이 계신데요.

사실이 아닙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도 1700만 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조선 말 1300만 명이었던 인구가 1945년에 그 2배인 2500만 명으로 급증했고,

평균수명도 1905년의 23.5세에서 1945년에 45세로 급증했다는 게 진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한국사 교과서가 일체 숨기고 날조국사 세뇌교육만 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은 국사를 통째로 날조해서 대국민 사기 교육을 하는 나라입니다.​

예를 들면

님은 일본이 독립 한국에 지원한 현금만 해도 일본 총 외환보유고의 35%가 넘었다는 사실은 아시나요?

1909년에 <조선 백성 100만 명의 한일합방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시나요?

당연히 모르실겁니다. 한국은 국민들에게 날조된 사기 국사만 가르치는 나라니까요.

한국사 교육이 감추는 진실이지만 이토 히로부미도 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었어요.

조선은 굶어 죽은 시체들이 널려 있던 노예제 나라였고,

조선의 탐관오리들에게 수탈당하여 백성들은 노예 신세로 끝없이 굶어 죽던 나라인데,

이토와 일본이 노예해방과 굶어 죽음에서의 해방을 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중국 사신이 오면 지금의 독립문 앞에 있는 영은문에 왕이 마중나가서

중국 사신에게 큰절 16번씩 하고 춤추고 발구르며 절하던 나라였고,

중국에게 조공과 처녀 공녀를 계속 바쳐야 했던 나라인데,

이토는 더 이상 중국에게 절하지 않고 더이상 뜯기지 않게 해 준 독립 영웅이었어요.

우리 역사상 그 이상 인기 있었던 인물은 없을겁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환영하는 조선인들의 인파>

​​​다음은 ‘조선왕조실록’ 중 시대 역순으로 극히 일부만 추린 자료

​​*(흉년·기근)구제가 안되어 구덩이에 시체가 뒹굴고 있습니다[고종42(1905)-2-8]

*항간에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이 많은 데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애처로운 이 궁핍함 역시 너무 참혹하여.[고종 41(1904)-1-30]

*한성부 5서 안에서 얼어 죽은 시체를 거두어 묻는 돈이[고종34(1897)-1-14]

*떠돌아다니며 얼어 죽거나 굶어죽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종31(1894)-10-13]

*굶주린 백성들이 부황이 든 것은 어느 곳이나 같으니 참혹하고[고종21(1884)-11-9]

*(북방은)기근과 호표의 재변으로 10집에 9집은 비었습니다[고종17(1880)-12-28]

*해마다 흉년이 들어...굶어 죽은 시체가 곳곳에 있지만[고종13(1876)-8-9]

*굶어 죽는 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고종2(1865)-6-10]

*백성이 굶어 죽어 구렁을 메웠는데도...[철종5(1854)-1-25]

*굶주려 죽는 경우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헌종3(1837)-11-10]

*사망자가 수십만 명이고...살아갈 재산이나 생업이 있는 백성이 극히 적은데,

지금은 그런 백성도 끼니를 잇기 힘들어 부황에 시달리니,

재산이나 생업이 없는 백성은...길바닥에 시체가 잇따르고...[순조21(1821)-8-22]

*굶어 죽은 시체가 길에 깔려 있습니다[순조10(1810)-3-7]

*굶어죽은 사람을 헤아리기 어렵다고 한다[정조19(1795)-10-2]☞조선의 전성기

*제주의 굶주려 죽은 백성이 6천여 명입니다[영조41(1765)-12-16]

*기근이 겹쳐 이르러 사망한 사람이 거의 반이나 되니[영조28(1752)-2-19]

*굶어 죽은 시체가 서로 베고 누웠는데[영조18(1742)-3-5] ☞조선의 전성기..후략

​<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1권 21쪽 발췌본(조선왕조실록 중)

https://blog.naver.com/smrbooks/222701149249

​다음은 조선 말의 민란들 중 극히 일부만 발췌한 자료...

​*비적이 창궐하여 인민 생활은 아침 저녁도 고려하지 못하고[순종2(1909)-12-4]

*비적의 무리들의 화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미쳐...불타버린 민호가 수천 호나 되어 잿더미만 남은 촌락들은 쓸쓸하고[순종1(1908)-2-28]

*전 참판 허위는 비적의 괴수가 되었는데, 700여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각 고을을 노략질 하므로...[순종 즉위년(1907)-10-15]

*수령이 탈취하고 군사들이 침탈하며 의병이라면서 약탈하고[고종43(1906)-9-24]

*도적의 약탈이 곳곳에 낭자하고 사람을 죽이고 집을 불질러[고종43(1906)-3-11]

*인심은 소란하여 진정될 가망이 없고 도적은 점점 성하여[고종42(1905)-5-1]

*도적들의 약탈로 몽땅 거덜나고, 군사로도 토벌할수 없으니.[고종41(1904)-7-15]

*백성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도적이 횡행하여 길이 막히고[고종41(1904)-1-8]

*흉년으로 인하여 도적이...어디라 할 것 없이 사정이 모두 민망하지만, 도적의 우환은 삼남 지방이 더욱 심하다고 한다.[고종40(1903)-7-1]

*비적(匪賊)들의 경보(警報)가 막심합니다.[고종39(1902)-7-20]

*제주도 대정 민란에 대하여 보고하다.[고종38(1901)-5-31]

*경성 내외에서 도적들의 약탈로 도로까지 막힌다고[고종36(1899)-1-15]

*도적이 횡행하여...약탈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건만[고종33(1896)-12-26]

*도적의 소요로 성주에서 불타버린 민가가 600여 호나 되고 하동에서는 온 성이 모두 타버렸다고 한다.[고종32(1895)-10-1]

*동학 무리들이 날뛴 것 때문에 금산군과 용담현의 인명 피해가 81명, 불에 탄 민가가 972호이고 불탄 관청 건물이 44칸이니[고종32(1895)-1-8]

*괴산에서 비적의 소요로 불에 탄 민가가 500여 호나,[고종31(1894)-10-29]

*의정부에서 민란이 일어난 개성에 대한 처리를 아뢰다[고종31(1894)-11-24]

*도적들의 소요가 더욱 심해져서 대낮에 떼를 지어 다니며 가게들을 모두 털고 길가는 사람의 물건을 약탈하며[고종30(1893)-10-29]

*평안도 민란을 일으킨 자들의 처벌에 대해...[고종30(1893)-2-23]

*도적이 갈수록 성하여 도성 안에서 대낮에 약탈하며[고종28(1892)-12-24]

*도적으로 인한 소란이 기내(畿內)에서 더욱 심한 만큼[고종27(1891)-3-8]

*옛날의 도적은 사람들에게 들킬 것을 두려워했는데 오늘날의 도적은 오히려 알려지지 않을 것을 걱정합니다...[고종24(1888)-3-29]

*도적이 없는 데가 없고 변란이 없는 곳이 없으니[고종23(1887)-8-16]

*황해도 토산현의 민란에 관하여 의정부에서 보고하다[고종22(1886)-1-4]

*모반대역부도에 대해...능지처사에...천한 노비 부류로서[고종 21(1884)-12-13]

*백주에 강도 6, 70명이 상인 재산을 빼앗고, 도성에서도 왕왕 강도짓을 하는데, 모두 총과 검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고종20(1884)-6-15]

*도적의 수가 수백 명 혹은 700, 800명에 이르며...[고종18-(1882)-3-23]

*소굴을 만들려고 강화도를 먼저 침범하려 하였고 무기를 빼앗아 서울로 향하려 하였습니다...모반대역부도에...능지처사에...[고종18(1881)-10-10

<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1권 27쪽 발췌본(조선왕조실록 중)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좌측부터 송병준,이완용,이토 히로부미, 순종)>

한일합방 후에도 저렇게 굶어 죽었다는 근거를 하나라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런 사례가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한국사 교과서 사기꾼들이 절대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사 교육은 봉건지배층 중심주의여서 권력의 향방만 중시하지만,

국민 관점에서는 국민의 삶이 어찌 되느냐가 중요했어요.

이토가 국민을 굶어 죽음과 노예에서 해방시켰는데도 역사 날조로 우리의 기억이 조작되었을 뿐입니다.

역사에 관한 한 한국인의 대부분은 이미 바보가 되어버린 상태에요.

한국에서 똑똑한 정치인이 나오기 힘든 이유는 국민이 기억분열증의 바보가 되어버린 이유가 큽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사 교육은 을사조약을 늑약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그 을사조약에 반대하는 신하들을 감옥에 쳐 넣기까지 했던 게 고종이에요.

<조선 말의 서울>

조선은 굶어 죽은 시체들이 널려 있던 나라인데다 전국이 민란으로 들끓어서

스스로 권력을 지킬 수 없는 형국이었어요.

러시아의 남진 때문에 그것을 극복할 능력조차 없어서 조선은 러시아에 먹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때문에 고종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켜 준 일본에 무척 감사했었다는 게 진실입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을 때 가장 슬퍼했던 사람도 고종과 순종 그리고 황태자 이은이에요.

​하지만 이런 진실들을 한국인들은 알아선 안되죠.

한국은 국민들에게 정치적 목적으로 날조된 사기 국사만 가르치는 나라니까요.

​<​​​​1930년대의 서울>

한국은 실컷 얻어먹고 나서 수탈 당했다고 사기교육 하는 역사조작의 나라입니다,

피해자 행세하는 침략의 공범, 보복 당하지 않은 패전국이죠.

임진왜란 부터 강점,수탈,학살,늑약,밀사,명성황후,위안부,징용 등 일본관련 한국사의 99%는 소설이고,

국민 바보만들기 역사조작 세뇌교육 때문에 국민들은 완전히 바보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1941년 중국전선 연전연승에 환호하는 조선인들의 일장기 물결>

한국은 일본과 함께 대륙 침략을 했던 침략의 공범인데, 패전하자마자 피해자 행세로 돌변한 나라에요.

임시정부 광복군은 서류상 339명 그것도 부풀렸다는 내부 폭로까지 있는 숫자인데,

광복군은 일본군에게 총 한 발도 쏴 본 적 없어요.

하지만 조선인 일본군 지원자는 80만 명이 넘고, 입대에 낙방해서 자살한 사람들까지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사실들을 일체 숨기고

<찬란한 우리 나라가 악당 일제에게 강점 당했고, 수탈 당했고, 학살 당했고, 독립투쟁 열심히 했어>

라는 국민 바보만들기 역사날조 세뇌 교육을 시키는 중이죠.

​<조선 말의 서울(동대문)>

우리의 국사 교육이 철저히 감추는 이야긴데요, 조선시대에 연평균 수만~수십만 명씩 굶어 죽어서

최소 6천만 명이 굶어 죽었고 동족을 노예로 부리는 나라도 지구에서 조선 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을사조약 후 그 굶어 죽음과 노예제의 참상이 사라지는 것을 본

조선백성 100만 명의 반봉건 한일합방 운동이 봉건지배층을 굴복시켰고,

한일합방 시대의 노예해방 경제비약과 함께 대륙 침략에 철저히 동조했던 게 진짜 한국사에요.

하지만 미소 점령군에 의해 권력을 쥔 남북한 집권세력이 피해자 행세로 돌변한 후,

독립의 정당성 확보와 자기들 영웅 될 목적으로 일본 악당화, 일제시대 악몽시대 만들기 날조를 시작했고,

좌파는 우파를 친일파로 만들고 악당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를 날조했는데,

멍청한 우파 진영이 놀아나서 같이 일본 악당만들기 날조에 동조하며 놀아난 겁니다.

독립 초에 시작한 이런 일본 악당만들기 날조국사를 바로잡지 못한 잘못 때문에

가짜 독립투사 김일성을 추종하는 진보 간판의 종북 주사파가 생긴 거죠.

우파가 똑똑했다면 종북좌파 부류는 애초부터 종북 주사파가 되지도 않았어요.

일제시대 후기의 한국이 지금의 북한보다 잘 살았다는 사실만 알려져도 북한 정권은 버티기 힘들어요.

지금이라도 진실을 바로잡으면 좌파도 북한 정권도 한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게 지금의 어리석은 우파 진영이죠.

한국은 좌파건 우파건 간에 둘 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통일을 못한 지상 유일한 나라인 겁니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여기까지는 간단한 요약이에요)

국사 교육을 받으면서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으면 바보 되기에 딱 알맞습니다.

​국사는 승자가 맘대로 쓰는거라서 독립된 나라는 독립파가 영웅이고, 합병된 나라는 합병파가 영웅입니다.

승자를 영웅 만들기 위해 패자는 당연히 악당이 되죠.

전쟁의 패자 치고 잔학무도한 학살자 안되는 나라는 지구에 없습니다.

​우리는 국사 교육을 통해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을 극복하면서 나라를 지켜왔다> 라고 교육 받잖아요?

그리고 나라를 빼앗겼다, 되찾았다 등으로 교육 받고 있는데 그것부터가 다 사기 국사에요.

조선시대 말까지만 해도 <민족>이라는 의식이나 그런 개념의 단어조차 없었고,

조선은 우리 나라가 생겨나기 전 시대에

한반도를 정복해서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며 굶겨 죽이던 정복자들만의 나라이지 우리 나라가 아닙니다.

국사는 현재의 나라를 기준으로 과거의 승자들끼리 이어 붙인 겁니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에서 풍신수길이 승리했을 수도 있고, 병자호란 때 중국에 합병 되었을 수도 있어요.

그 결과 우리는 일본과 합병되거나 미국과 합병되어서 오늘에 이르렀을 수도 있는데

어느 쪽으로 흘러 왔건 간에 현재의 나라가 우리 나라가 되고, 승자는 영웅, 패자는 악당이 되는겁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그 기본 사실부터 감추고 속이는 게 한국사 사기 교육이에요.

​​

한국은 고려가 일본을 침략해서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한 사건은 빼고 임진왜란만 날조 사기교육 하는 나라에요.

그런데 조선 말은 물론이고 임진왜란 당시에도 굶어 죽는 노예 상황은 동일했습니다.

게다가 조선 백성들의 50-60%가 노예였는데, 그런 나라에 왜군이 쳐들어와서 방을 붙였어요.

<우리는 당신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당신들 왕의 압제가 너무 심해서 온 것이다> 라면서

굶어 죽던 조선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어요.

이 상황에서 님이 조선의 노예 백성이라면, 조선 지배층과 일본의 지배층 중 누구의 편에 서시겠어요?

만약 님이 이 나라 지배층의 노예이고 지배층의 수탈과 무능으로 인해 굶어 죽은 시체들이 길에 널려 있고,

님의 가족 중 일부가 굶어 죽었고, 님도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쳐요.

그 상황에서 이 나라가 미국이나 영국과 전쟁이 터졌다면 님은 누구 편에 서서 싸우시겠어요?

*금년의 기근은 근고에 없었던 것으로 떠돌다가 구렁에 쓰러져 뒹구는 참상을 차마 말할 수 없습니다.[실록,선조3(1570)-4-24]

*민생이 극도로 곤궁하여 굶어죽은 시체가 들에 가득하니[선조12(1579)-5- 22]

*추수철인데도 굶주려 죽는 백성이 많으니.[선조19(1586)-10-2]

*굶어 죽은 사람이 널려 있지만 진구할 길이 없습니다[선조26(1593)-1-11]

*관군이나 의병이나 굶주려 쓰러져 죽는 자가 태반이고[선조26(1593)-3-11]

*곳곳마다 백골이 쌓여 있었고, 굶주린 백성들은 땅에 즐비하게 누워 있거나, 서로 잡아 먹는 모습은 너무도 참혹하였습니다.[선조26(1593)-6-24]

*통곡하는 여인과 아이들을 보았다. “남편이 구걸해서 연명 했었는데, 모두가 굶주려 빌어먹을 곳조차 없으니, 남편이 버리고 갔고, 결국 이렇게 굶어 죽을 수 밖에 없구나 하면서 울고 있다”고 했다.[1593년 7월15, 오희문의 쇄미록]

*굶어 죽은 사람이 길에 가득하고 시체가 하천을 막고 있으며 살아 있는 자도 모두 도깨비입니다....울부짖으며 죽여 달라고 하는가 하면,

<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1권 242쪽 발췌본(조선왕조실록 중)

임진왜란은 조선 백성들과 왜군이 한데 뭉쳐서

백성들을 노예로 부리며 굶겨 죽이던 조선의 못된 지배층 및 중국에 맞서 싸웠다는 게 진실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봉건 기득권 지배층이 일으킨 극소수의 의병을 부풀리지만,

봉건 지배층의 압제에 시달리던 대다수의 백성들은 그들의 편에 서지 않았어요.

조선 백성들은 궁궐과 함께 지배층들의 거주지를 모두 불태워버렸고,

왕이 도망친 곳을 곳곳에 써 붙였고, 신하들과 왕자들을 생포해서 왜군에게 바쳤어요.

임진왜란은 조선 백성들과 왜군이 한데 뭉쳐서 조선 지배층 및 중국군에 맞서 싸웠다는 게 진실입니다.

굶어 죽는 노예제 생지옥을 계속 이어가게 만든 사람은 영웅일까요 악당일까요?

우리 국민들은 이 단순한 이치까지도 분별하지 못하도록 세뇌교육 된 상태입니다.

이순신이 영웅이 된 것은 단지 승자에게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조선 말의 소녀들(당시의 소녀들은 기초적인 초등 교육조차 받을 수 없었다)>

쿠데타로 권력을 쥔 조선의 지배층은 유교 이외의 대부분의 학문을 말살했고,

농업 이외의 대부분의 산업을 탄압했어요.

무식하고 가난한 국민을 만들어야 지배하기 쉬웠기 때문이죠.

조선 지배층은 중국의 조공 요구에 싸워보지도 않고 달라는 대로 다 갖다 바쳤어요.

고려시대 때 많았던 금은 등의 귀금속 유물이 조선에 없는 이유는

조선 지배층이 그것을 탈탈 털어서 중국에게 바쳤기 때문이고,

고려시대에 많았던 기병대가 조선에는 없었던 이유도 그것을 몽땅 털어서 중국에 바쳤기 때문이에요.

조선 지배층은 농사 짓는 데 꼭 필요한 소까지 죄다 쓸어다 바쳤어요.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중국만 잘 섬기면 되니까 500년동안 대외 무역조차 할 필요가 없었죠.

외국인들이 고려(KOREA)는 알았어도 조선은 몰랐던 게 그 때문입니다.

조선 지배층은 엄청난 조공과 수많은 처녀 공녀들을 중국에 상납했고,

수많은 소년들을 고자로 만들어서 바쳤어요.

때문에 조선은 수레도 못만들고, 논에 물 대는 수차조차 못만들어서 바가지로 물 퍼서 논에 물 댔고,

저수지조차 만들 생각을 못해서, 여름이 되거나 가뭄만 오면 대부분의 땅이 말라버려서 끝없이 굶어 죽었죠.

​무지몽매하고 굶주리는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끝없는 굶어죽음의 500년 암흑기가 이어진 것인데,

그 끔찍한 굶어 죽음과 노예제의 악몽과 막장 문맹의 나라가 어떻게 천지개벽 되었는지를,

한국의 국사 교육은 가르쳐 주나요?

1905년도의 근대식 학교가 46개, 1945년의 국공립 학교가 5750개에요.

문맹률은 99.5%에서 27%로 급개선 됐고,

그 끔찍한 굶어 죽음과 노예제의 악몽과 막장 문맹의 나라가 천지개벽 되었는데,

우리의 교육은 그 끔찍한 악몽의 시대로부터 우리 국민들을 구한 사람들을 천하의 악마로 만들고

국민을 노예로 부리며 굶겨 죽이는 기득권을 이어 가려던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들죠.

​​

믿기 힘드시겠지만 한국사 교과서의 80% 이상이 날조된 사기국사에요.

정치적 목적의 악당 만들기와 영웅만들기의 밥그릇 싸움형 날조국사의 대국민 사기판....

말로는 민주니 뭐니 떠들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뒤통수 치는 정치 사기꾼들의 사기판입니다.

다음 자료를 참조하세요.

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 (1권)

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 (2권)

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 (3권)

​​

​​<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

<링크 01: 프롤로그(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

<링크 02: 보도자료(한국의 역사조작 이념사기극 - 한국사 교과서의 80%는 거짓이다)>

​​<링크 03: 반드시 감추어야 하는 한국의 중대 국가기밀>

<링크 04: 정치 사기판 타짜들의 자기 지지층 뒤통수치기 술수>

<링크 05: 한국은 거대한 사기판,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이야기>

(02번 링크는 꼭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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