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경상도인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경상도인

작성일 2020.12.06댓글 1건
    게시물 수정 , 삭제는 로그인 필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 운동에 참여했던 알려진 경상도 사람은 없나요?
대부분 광주 사람 혹은 합동 시위를 하던 서울 사람뿐이었나요?


#5.18 광주민주화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 영향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록관 #헌법 5.18 광주민주화운동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당시 항쟁이 광주시를 중심으로 전남 일원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참여한 사람들은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들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본 자료들 중에 '경상도 사람'이 항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는 다음이 유일합니다.

당시 항쟁에 참여한 양동영 씨(당시 광주서석고등학교 3학년)의 증언입니다.

“21일 오전 11시경 광주역 앞에 서있던 장갑차에 호기심에 우연히 탑승했다. 내가 탄 장갑차는 그날 오후 3차례에 걸쳐 금남로에서 전남도청 분수대 부근을 향해 진격했다. 이 차량에 함께 탑승한 사람은 모두 9명이었는데, 운전 기사는 아시아자동차 공장에서 장갑차를 직접 조립하던 40대 초반의 남자로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었고 워낙 장갑차에 대해 잘 아는 데다 운전도 노련했기 때문에, 탑승자들이 그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랐다. 또 20대 후반가량으로 보이는 부산 청년 1명과 조선대 체육대 2학년생 1명, 나를 포함한 대동고·석산고 등 고3 학생 3명, 나머지 3명의 청년들은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강한 부산 사투리를 쓰던 그 청년은 만약 전투 도중 운전 기사가 사망할 경우 장갑차를 대신 운전하기로 해서 ‘부기사’라고 불렀다. 2번째 전남도청을 향해 돌진할 때부터는 LMG와 카빈 소총 등으로 무장했다. 시민들이 유동삼거리에서 장갑차 안에다 무기를 충분히 실어줬다. 조선대 체육대생이 LMG 사수를 담당했고 나머지 대원들은 카빈 소총 등으로 무장했다. 밖에서는 총탄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장갑차 외부가 일부 파손된 것에 비해 내부는 안전했고, 그날 밤 해산할 때까지 모두 무사했다.”

출처: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18쇄본), 창비 2017., 523~524쪽

5.18광주민주화운동 이유와 과정

... 밑거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록 당시에는 실패로 끝났지만, 민주화를 향한 시민들의 염원을 보여주었으며, 이후 한국...

5.18광주민주화운동

... 5.18, 그날의 기억 - 이선영 지음 이 책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담은 단편 소설집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되...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 상황에 대해...

현재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서 과제를 진행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5.18... 여기서 제가 궁금한 것은 그 당시 광주의 상황이 아닌 그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던...

5.18광주 민주화운동 최초 민간인 희생자

... (그러나 이미 사망한 뒤 누군가가 옥상에서 내던졌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최초 사망자는 이세종씨이고, 광주지역 최초 사망자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투입되었던 공수부대원들은 가해자들인가? 찬성에 대한 근거 좀 찾아 주세요 존나 급해요!!! 군은 국가기관입니다.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사진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사진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진압봉으로 두드려 패는 모습인데요 이러한 진압봉에 맞으면 통증이 심하다던데 그 이유가 먼지 아세요?? 통증이 당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