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면에 있는 문화재들

적성면에 있는 문화재들

작성일 2011.01.20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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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적성면에 산재되어 있는 문화재들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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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면의 문화재)

 

1.가월리 및 주월리 구석기유적

 

종 목  사적  제389호 
면 적 41,590㎡
지 정 일 1994.12.21
소 재 지 경기 파주시  적성면 가월리 산95-6외, 주월리 309외 
시 대 석기시대


파주 가월리와 주월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이 유적은 연천 전곡리 유적과 이어지는 한탄강-임진강 유역의 구석기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시대란 처음 인류가 등장한 때부터 약 1만년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이후의 일이다.

 

발굴조사 결과 4∼5만년 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생각되며, 출토 유물에는 양면 가공석기(주먹도끼), 찍개, 긁개, 몸돌 따위와 크고 작은 석기재료들이 있다. 이 유물들은 무엇보다 당시 도구 제작과정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들이다.

 

이곳은 석기가 집중해서 발견되는 문화층이 있어 매우 중요하다. 전곡리 유적과 함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구석기시대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2.칠중성

 

종 목  사적  제437호 
면 적 52,773㎡
지 정 일 2002.01.29
소 재 지 경기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 산148외 
시 대 삼국시대


칠중성은 해발 147m의 중성산 정상부와 그 남서쪽에 위치한 해발 142m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조한 테뫼식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603m이고 남북 폭은 198m, 동서 폭은 168m이다. 전체 높이는 북동쪽이 가장 높고 서벽에 비해 동벽 부분이 현저히 낮은 형태를 보이고 있다.

 

임진강 중류의 남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관서지방과 한강유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삼국시대에 많은 전투가 있었다. 신라와 고구려의 전쟁이 이 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시 나당연합군에 의한 고구려 침공 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는 신라와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그 역할이 매우 컸던 산성이다.

 

지표조사(2000.10.27∼2001.1.15) 결과 문지 3개소, 건물지 5개소, 우물지 2개소 등이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으며, 칠(七)자명의 평기와와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등 우리나라 고대사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3.김덕함 묘 및 신도비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144호 
지 정 일 1993.10.30
소 재 지 경기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 산1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중기의 문신 성옹 김덕함(1562∼1636) 선생의 묘소이다.


어릴 때 부모를 잃었으나 스스로 학문에 힘써 선조 21년(1588)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인조 14년(1636)에는 대사헌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에는 초토사 이정임을 도와 의병을 모집하고 군량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으며, 광해군 9년(1617)에는 이항복·정홍익 등과 함께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 남해로 유배되었다.


묘의 좌우로는 망주석(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돌기둥)과 문인석이 각각 1쌍씩 있다. 묘 아래쪽에는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앞에 세우던 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김유가 쓴 것이다. 부인인 경주 이씨와의 합장묘로 두 번의 이장을 거쳐 현종 1년(1660)에 이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4.육계토성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217호 
면 적 315,035㎡
지 정 일 2007.10.22
소 재 지 경기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413 번지외 
시 대 백제

육계토성은 임진강 유역의 남한에 위치하고 있는 유일한 백제의 평지토성이다.

 

이곳은 임진강이 사행곡류하여 북쪽으로 돌출해 있는 만곡부로 임진강을 건너는 주요도하지점의 하나인 가야울과 서쪽의 두지나루를 조망하고 제어할 수 있는 곳으로 도하하는 적을 방어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내ㆍ외부는 대부분 논과 밭 등의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성내부에 예전 군부대 건물이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발굴조사 결과 주거지,구덩이 유구등과 토기류,철기류,장신구류 등 초백제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5.감악산 비


종 목  파주시 향토유적 제8호
지 정 일  1986.04.17
소 재 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산 25
시 대  삼국시대


감악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이 고비는 기단부, 비신, 개석을 갖춘 화강암 석비로 높이 170cm, 너비 70∼79cm, 두께 15∼19cm의 규모이다.


이 비에는 전혀 글자가 확인되지 않고 있어 『몰자비』라 부르기도 하고 『설인귀비』『빗돌대왕비』등으로 구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비에 대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속전에 의한 기록만이 존재하고 있다.


1982년 동국대학교 감악산 고비 조사단에서 2차례에 걸쳐 이 비를 조사한 결과 그 형태가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와 흡사하고 적성지역이 전략적 요지로서 진흥왕대에 영토확장 정책에 따라 세력이 미쳤던 곳이라는 점을 들어 제5의 진흥왕 순수비의 가능성을 제기 했으나 그 역시 결론을 낼만한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못했다.


또 한편에서는 『진평왕비』일 가능성도 제기하였으나 그 역시 결정적이지는 못하다. 앞으로 이 비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6.미수 허목선생 친필 암각문


종 목  파주시 향토유적 제22호
지 정 일  2005.05.24
소 재 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141
시 대  조선시대


본 암각문은 지난 2001년 적성면 장좌리 임진강 적벽 구간에서 발견되었으며 암각된 글자는 「괘암」「미수」4자로 「괘암」이란 글자를 「미수」허목선생이 전서체로 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글자의 크리는 「괘암」이 각각 가로 30cm, 세로 55cm 이며 허목선생의 호인 「미수」는 각각 가로 20cm, 세로 25cm의 크기로 바의 절벽면에 암각되어 있다.


암각문을 쓴 미수 허목(1595 ~ 1682) 선생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연천출신이며 전서체의 동방 1인자로 알려져 있음. 1675년 숙종때 이조참판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문장 뿐 아니라 그림 글씨에 뛰어나 강원도 삼척의 「척주동해비」시흥의 「영상이원익비」등의 비문을 썼음. 문집 「미수기언」이 전한다.


「괘암」과 관현된 문헌기록은 미수 허목의 문집인 「미수기언」제 9권 괘암의 제명기조에 나타나는데 “조선 현종9년(1668) 여름에 이 곳 괘암을 찾아가 「괘암」이란 두 글자와 미수서라 쓰고 돌에 새겨 괘암에 제명하는 고적임을 표시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괘암 암각문은 1668년 당시 최초「괘암」이라 새긴 글자가 3백여 년이 지나면서 글씨가 희미해진 것을 미수 허목 선생이 괘암에 제명하는 고적임을 표시하기 위해 새로 새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 그러나 현재 최초의 암각문은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7.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


종 목  등록문화재  제407호 
수량/면적 기념비, 전면 계단, 계단 좌우측 석축 구조물 ·부지면적 172.9㎡
등 록 일 2008.10.01
소 재 지 경기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산2-2 
시 대 근대


 6·25전쟁 때 설마리전투에서 고지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도 최후까지 설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전적비이다.


6·25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영국군의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와 제170 경박격포대 c소대 장병들은 1951년 4월 22일 경기도 파주시 설마리의 설마계곡에서 북한군과 중국군에 포위되어 4일 동안 격전을 치른 끝에 622명 중 39명만 살아돌아왔다. 이들의 희생으로 중공군의 진격은 자연히 늦어졌고, 덕분에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에 새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설마리전투는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치른 대표적인 전투 중의 하나로, 고립방어의 대표적인 전투로 기록되는 등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57년 6월 29일, 영국군과 한국군 보병 제25사단은 설마리전투에서 자유수호를 위하여 싸우다 산화한 영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설마리 고지 아래 암석에 전투비를 건립하였다.


산 바위벽에 벽돌을 쌓고 상하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비(碑)를 부착하였다. 위쪽 2개의 비 가운데 왼쪽에는 유엔기를 새기고, 오른쪽에는 희생된 영국군의 부대 표지를 새겼다. 아래쪽의 왼쪽 비에는 한글로, 오른쪽 비에는 영문으로 각각 당시의 전투 상황을 기재하였다.


이 전적비는 영국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세계적 산업디자이너로 알려진 아널드 슈워츠먼(1936~ )이 당시 영국군으로 한국에 파병되었던 1957년에 디자인한 작품이다. 당시 유엔군의 참전 상황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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