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의 문화재

로마시대의 문화재

작성일 2009.06.23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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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숙제인데요 콜로세움 같은 로마시대의 문화재 6개 정도가 필요합니다.

이름하고 간단한 설명만 있으면 되구요

사진은 없어도 되는데 있으면 더욱 좋아요.

급해요ㅠㅠ 빨리해주세요 ㅠㅠ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로마시대 문화재 해설

 

 

 

 

 

공화정 시대 로마의 신전

 

이시기 로마의 신전은 *그리이스와 에트루리아의 요소들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평면상으로 볼 때 *직사각형이거나 원형이다.

 

포르투나 비릴리스 신전, 로마 2세기말

 

직사각형인 이 신전은 전면에서만 접근 할 수 있는, 높은 에트루리아식 기단 위에 서 있다. 큰 셀라는 깊은 현관 뒤에 있으며, 그 폭은 건물전면의 폭과 같다. 이는 현관의 기둥들만이 독립적으로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다른 기둥들은 장식적이며 지지기능이 없다. 이것은 이른바 벽면에 부착된 고전적 오더와 필라스터의 초기 형식이다. 건물의 전체적인 디자인은 기둥과 주두를 포함해서 그리스의 *이오닉 오더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다. 셀라는 그리스신전의 것보다 더 큰 단일한 통일공간으로 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로마사람들이 이 내부공간을 신의 상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정복군이 가져온 전리품을 진열하는데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빌 신전, 티볼리, BC 1세기

 

이 원형의 신전 역시 하나의 계단만 있는 높은 기단위에 서 있으며, 이 계단은 셀라의 출입구로 이끈다. 이러한 배치는 그리스의 THOLOS에서는 볼 수 없었던 축을 형성시키며, 이것은 건물의 조소적 측면과 그 주위 환경과의 분리를 완화시키는데 기여한다.

 

포르투나 프리미게니아의 성역, 프레네스테, BC2세기

 

1944년의 폭격에 의해 중세에 건설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 폭격에 의해 그 도시아래 묻혀 있었던 고대의 성역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성역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이제는 완벽하게 발굴되어 있다. 로마 남부인 이곳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SULLA황제가 이 성역을 건설하였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건물군은 설계에 있어 두 기존 요소를 결합시키고 있다. 즉, 기원전 3세기에 지어진 FORTUNA PRIMIGENIA 원형신전과 약 100미터쯤 아래에 있는 JUPITER 와 JUNO를 무릎에 앉히고 있는 포르투나 여신의 조각상이 바로 그것이다. 반원형의 열주현관은 고대의 신전에 덧붙여진 것으로, CAMPAGNA를 굽어보고 있는 극장 주위를 감싸고 있다. 이 건물군은 배치에 있어 주변경관을 잘 이용한 것이 역력하게 눈에 띤다. 남북방향의 카르도는 멀리 바다까지 시야를 이끌어가며 동서로 달리는 계곡은 마치 데쿠마누스처럼 성역의 아래로 향하는 축을 가로지르고 있다. 성역은 이 질서 잡힌 체계를 지배하며, 극장은 우주의 질서가 느껴지고 이해되는 장소가 된다. 포르투나 여신의 제단은 아마도 이 극장의 무대 위에 서 있었을 것이다. 연달아 있는 계단, 경사로, 테라스들은 방문자에게 절정을 향한 준비를 시킨다. 여기서 준비를 시킨다는 것은 잘 계획된 순서에 따라, 조직되어 있는 공간을 계속해서 통과해 가도록 한다는 뜻이다.

신전은 양쪽에서 들어가게 되어있는데, 대칭으로 놓여진 계단을 올라가면 열주현관과, 분수가 있는 일종의 '프로필레아'에 닿게 된다. 여기에서 긴 경사로가 시작되며, 주축과 직각으로 교차하고 있다. 경사로는 도릭 오더의 열주랑이 나있는 긴 테라스로 이어진다. 테라스 양측의 한가운데에 이오닉 오더의 엑세드라가 삽입되어 있는데, 서쪽의 것은 제단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쥬피터와 쥬노를 무릎에 앉힌 포르투나 여신의 상을 위한 것이다. 중앙의 계단은 또 하나의 긴 테라스로 이어지는데, 그 후 벽은 부착된 이오닉 오더와 반원형NICHE에 의해 분절되어 있다. 중심 축상의 또 하나의 계단을 올라가면 세면이 코린티안 오더의 열주랑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평지가 나타난다. 이곳에 다다르게 되면 극장 포르타나 신전과 반원형의 열주 현관이 보여지게 된다. 프레네스테 성역이 기본적인 형식상의 특징은 순차적인 연속성이다. 그리스에서 처럼 개개의 독립적인 조소적 형태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테라스, 열주랑, 경사로, 계단 등이 하나의 통합된 전체를 이루면서 구성되어 있다. 공간적이고 조소적인 연속성은 이곳을 지배하는 축의 배치와 결합되어 있다. 연이은 중요한 요소들은 궁극의 목표를 향해 올라간다. 즉, 거대한 석축 벽이 최초의 테라스 아랫부분에 있으며, 다음으로 도릭, 이오닉, 코린티안 오더들이 주된 레벨들을 형성하고 있다. 각 요소는 동적인 전체에 종속되는 부분들로서, 이 전체는 의미 있는 행동양식을 실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네스테 신전의 건축적 형태

 

이집트의 건축에서는 나일강이 지배하는 경관의 지형을 반영함으로써 단일한 직선이 그 주된 특성을 이루었지만 여기서는 1차축과 여기에 직각으로 2차 더해져서 그 교차점에 중심을 형성하며, 이는 그 중심에 로마 시를 갖는 로마제국을 표상 한다. 여기에서 중심과 통로는 처음으로 건축적으로 통합되었다.

잘 계획된 과정을 따라 계속하여 진행하면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절정에 도달하게 되며, 이와 같은 것이 전체의 구성에 있어 주된 법칙이 된다. 축에 의한 배치는 균형과 대칭성을 부여하며, 리듬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디자인의 통일성에 기여하고 있다. 잘 조직된 정적의 외부공간은 아크로폴리스의 자유롭고 동적인 외부공간과 대조가 되며, 두 문명의 근본적인 가치를 대비시키고 있다. 성역은 신전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로마의 통로는 이 중심으로부터 뻗어 나간다. 이집트의 '초월' ,'복귀'의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프레네스테 신전의 건축적 의미

 

이 성역의 건축적 형태는 무엇보다도, 혼돈스러운 세상 내에서의 절제된 질서를 전달한다. 경사가 가파른 접근로는 자신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영원한 염원을 나타낸다. 반원형의 열주현과 그 아래쪽의 평지를 둘러싼 열주랑에서 보이는 인간의 팔에 대한 이유는 이와 같은 거동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개념을 전달한다. 즉, 아버지의 포옹과 같은 느낌과 함께 전체배치의 절정을 이루는 여신의 비호아래 하계의 땅을 정복하고 지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전형적인 로마인의 가치들 즉 질서, 인내, 목표달성에의 집착, 야만인에 대한 우월감, 특출한 정복기질들이 모두 여기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폼페이 시

 

AD79년에 VESUVIUS 화산이 폭발해서 문자 그대로 POMPEII시를 잿더미아래 묻어버리고 말았다. 이 재난은 고대도시의 생활을 그대로 동결시켜 버리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와서 후세를 위해 이 도시를 보존시켜 주었다. 이 도시의 배치와 건축을 볼 때 이는 로마 공화정시대의 것임을 나타낸다. 발굴은 18세기에 시작되었다. 폼페이시는 배치에 있어 전형적인 CASTRUM 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불규칙하며 성장하고 있는 도시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폼페이시는 작은 정주지로서 시작되었으며, 후에 SAMNIUM에 의해 정복되어 일시적으로 점유되었다, SAMNIUM 인들은 그리스의 도시계획 개념의 영향을 받아 이 도시를 요새화하고 재계획하였다. 그러나 그리스의 격자체계가 엄격하게 적용될 수는 없었으며, 그 결과 도시의 주도로들은 직각으로 교차하지 않고 도로들 사이의 섬들도 비정형으로 되었다. 이 도시는 SULLA 황제에 의해 정복되어 BC 80년에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AD62년에 이 도시는 지진으로 일부분이 파손되었다. FORUM ROMANUM에 이어 폼페이 광장은 초기 로마의 도시중심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예가 된다. 3.5:1의 비율을 갖는 직사각형의 중정은 2층 높이를 가진 삼면이 연속적인 열주랑에 의해 구획되고 있다. 대부분의 로마의 광장이 그러한 것처럼 이 광장도 중심교통망과 분리되어 있으며 차량은 광장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이 광장의 긴 남북의 축은 CAPITOLIUM 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이 건물은 높은 기단 위에 서 있는 커다란 신전으로 정면에서 접근하도록 되어있다. 남쪽 끝에는 시민의 권위를 대표하는 CURIA라는 세 개의 홀, 그리고 법과 사업의 중심이 되는 BC100년경에 지어진 바실리카가 있다. 따라서 이 광장은 종교적, 상업적, 행정적 중심의 기능들이 결합되어 있는 도시의 심장부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이것은 축소판의 제국 중심이기도 하다.

가로형태는 불규칙적이고 좁으며 판석으로 포장되어 있다.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보행자용 디딤돌은 마차바퀴 폭만큼씩 간격대가 있었다. STRADA DELL ABBONDANZA 는 작은 상점, 사무실 선술집. 빵집 등이 있는 상가이다. 연이어 있는 상점들 중간 중간에 개인주거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이 개인주거는 상점뒤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으며, 완전히 둘러싸여져 상점으로부터 분리되고 거리의 먼지나 소음으로부터 차폐되고 있다.  

 

폼페이시의 로마시대 개인주거 건축

 

PANSA의 주택 같은 부유층의 도시형 주거는 주로 보도에 면하여 있다. 좁은 문을 통과하면 현관이 나오고 이는 안뜰로 이어진다. 중정은 지붕의 중앙에 개구부가 있으며 그 아래쪽의 바닥에는 빗물을 받기 위해 움푹 파놓은 곳이 있다. 건물의 측면을 따라 침실들이 만들어져 있으며 중정의 끝 부분에는 2개의 작은 방이 양측에 자리 있다. 중정의 뒷부분에는 가족의 중요 문서나 조상들이 보관되어 있는 TABLINUM 이 있다. 타블리늄은 막혀 있기도 하며 PERISTYLE 쪽으로 가는 통로가 나 있을 수도 있다. 이 페리스타일은 그리스에 기원을 둔 열주랑으로 된 넓은 마당이다. 이 마당에는 분수와 정원이 있고 이것을 둘러가며 가족의 사실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 뒤로는 보통 채소밭이나 과일밭 등이 있었다. 집의 바깥쪽을 따라 가로에 면한 개구부들은 상점으로 되어있다. 집 자체에는 안쪽을 향하여 있지만 중정이나 타불리눔, 페리스타일 같은 다양한 중심들은 입구에서 시작하는 축선상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다. 개인주거 건축은 로마제국시대 전반을 걸쳐 고도로 발달하였다. 가족과 가정을 신성하게 여기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정성에 의해 로마의 가정적 종교의 성격이 나타나며, 이는 주거 건축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설명해 준다 BC2세기에 지어진 폼페이 근처의 VILLA OF MYSTERIES 같은 로마의 시골별장은 탁트인 시골 경치를 볼 수 있게 도시형 주거의 뒷부분을 열주랑의 변형시킨 것이다. 이 별장 역시 중정과 페리스타일로 이어지는 축을 딸라 배치되어 있는데 때때로 중정과 페리스타일 의 순서가 바뀌어 있는 것도 있었다.

 

로마시대의 아파트 주거건축

 

제국시대 초기의 로마시의 인구는 거의 백만에 가깝게 증가되었다. 그에 따라 넓게 펼쳐지는 중정식의 주택들은 다층 아파트 건물인 INSULA로 대치되어야 했다. 이 다층의 주거건물은 로마시 인구의 90%를 수용했다. 대부분이 벽돌로 건설되었지만 몇몇은 콘크리트로도 건설되어 있었다. 일층은 상점으로 사용되었으며, 위층은 아파트로 꽤 넓었으며 때때로 두 층에 걸쳐 방을 12개씩이나 갖는 것도 있었다. 대개 이 인술라는 중앙의 뜰을 둘러싸고 지어졌으며, 많은 아파트들이 발코니를 갖고 있었다. 사치스러운 아파트에만 개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인술라에는 개인목욕탕이 없었으며 그 대신 공중목욕탕들이 도시 전체에 걸쳐 편리하게 위치하여 있었다. 난방시설은 전혀 없었다. 로마의 항구도시인 오스티아에 남아있는 로마의 아파트 주거의 일부는 부분적으로 복원이 되어 있으며, 이에 의해 당시 건물들의 외관을 잘 알 수 있다. 이 아파트들은 트라야누스 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들이 통치하던 AD2세기경의 것들이다. 이 연대추정은 아파트 건설에 사용된 벽돌에 제조날짜가 찍힌 날인이나 각인 등이 남아 있으므로 정확하다. 로마시내의 대부분의 아파트 주택은 네로 황제 때의 대화재 이후인, AD64년 이후에 세워진 것이다. 이 이후에 로마는 개인 주거인 도무스가 군데군데 끼어있는 도시구획의 체계를 답변확정했다.  

 

콜롯세움 혹은 플라비우스 원형투기장

 

콜롯세움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시작되어서 그의 후계자인 티투스 황제에 의해 그에게 봉헌되었다. 이것은 그리스의 극장을 원형극장으로 확장시킨 것으로, 로마인이 발명한 건물형식이다. 이 타원형의 투기장은 50000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으며, 경사가 가파른 좌석열로 둘러싸여 있다. 하부구조는 방사상의 동심원 통로들로 된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이 통로들은 콘크리트 터널 혹은 교차 볼트로 덮여 있어서, 그 상부에 있는 좌석열의 하중을 지지하고 있다. 본래 구조체의 상부에는 큰 장대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한 천막을 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투기장 하부의 지하실에는 동물우리, 검투사의 막사, 그리고 같이 싸우게 될 동물과 인간뿐만 아니라 무대장치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기계장치 등이 있었다. 외부는 아래층의 아치로 형성된 출입구들로 그 특징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출입구들에 의해 짧은 시간 안에 넓은 관람석이 채워지고 비워질 수 있었다. 윗층의 개구부들은 관람석이 열에 신중하게 맞추어지고 있으며, 이 관람석의 열은 외벽의 지지주와 여기에 부착된 경사벽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외벽은 그 쌓기에 있어 석재들을 건식으로 결합시키고 있는데, 그리스 건축에서처럼 못으로 고정시키고 있다. 그런데 중세 때 와서 금속을 얻기가 힘들어지게 됨에 따라 금속이음들이 약탈당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이런 상태에서, 차들이 내는 진동으로 인해 돌이 움직여져 전체구조가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

외벽의 높이는 48미터이며 세층의 각각은 아치와 볼트 축조방식에 있어 로마식의 특징적인 조합을 보여주고 있다. 각 아치는 연속되는 인방을 위에 얹고 있는 2개의 부착기둥에 의해 틀이 짜여있다. 이러한 것은 로마식 아치-오더라고 불리우는데, 벽을 분절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수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알베르테에 의해 다시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 신고전주의 건축에서도 사용되었다. 위에서 기술한 배열방식은 구조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단지 넓은 전면을 분절시키고 다시 이 분절은 단위들 속에서 틀이 짜여져 있는 아치들을 수직, 수평으로 율동적으로 반복시킴으로써 의미 있는 전체로 통합시키고자하는 미적 기능을 할뿐이다. 물론 로마의 오더에 있어 형태에 관한 세부적인 면들은 그리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벽을 분절시키는 방식은 전적으로 로마의 것이다. 따라서 도릭-이오닉-코린티안 오더를 수직적으로 중첩시키는 것 역시 로마의 방식이다 가장 육중한 도릭 오더는 일층에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시각적으로도 이 거대한 건물의 하중을 가장 잘 지탱할 수 있어 보인다. 이 보다는 중량이 덜 나가는 이오닉과 코린티안오더들이 2층과 3층에 사용되고 있다. 로마인들은 여기에서 기술적이고 기능적인 업적을 균형 잡히고 의미 있는 형태상의 분절과 훌륭하게 결합시키고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이 건물의 거대한 매스는 보다 인간적인 스케일로 감소되고 있다.

 

바실리카 울피아 AD 112년경

 

바실리카 울피아 는 트라야누스 광장의 일부분이다. 이 광장은 로마제국내에 존재하는 광장 중에 가장 큰 것으로 현실적으로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제국의 권력을 찬미하는 과시적 수단으로서 지어졌다. 로마사람들이 지은 건물 중 가장 특징적인 형식인 이 바실리카는 다양한 업무를 보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설계된 건물로서 '증권거래소', 법정사무실, 행정관청 등으로 이용되었다. 평면상 이 바실리카는 41.50미터*128미터의 직사각형에 2개의 반원형 APSE가 양쪽에 하나씩 덧붙여지진 건물이다. 한쪽은 노예들이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는 곳이며 다른 한 쪽은 황제의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입구는 커다란 중정을 향하여 나있으며, 이 출입구의 위치는 그리스도교도들이 이 건물 형식을 교회로 사용하게 되면서 바뀌게 된다. 채광은 CLERESTORY 창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고창은 목조지붕의 NAVE부분을 열주랑으로 된 AISLE보다 높게 함으로써 형성된다. 이 바실리카는 로마식의 광대한 내부공간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그리스의 신전이 반전된 형태이다. 출입구 반대편의 바깥에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군사적 업적이 나선형 부조로 장식된 트라야누스 기둥이 세워져 있다. 이 기둥은 직사각형의 중정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양쪽에 2개의 도서관이 있다. 트라야누스 기둥 위로는 그가 숭배했던 신의 신전이 있다. 이 건물은 케자르 광장같은 더 작은 제국의 광장에서도 나타나며, 다른 신전들도 즉 아우구스투스 황제 및 내르비 황제 신전의 표본이 되었다. 트라야누스 광장의 신전은 반원형의 앱스가 부착된 형태로서 또 하나의 중정에 자리 잡고 있다. 트리야누스 기둥과 신전은 추후에 덧붙여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공간상의 구성에 있어 국외적인 관계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바실리카 울피아의 전면에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중정이 있는데, 그 양측에는 EXEDRA 가 자리 잡고 있다.

 

바실리카 울피아 건축적 형태

 

트라야누스 광장은 전체적으로 볼 때 분명히 축을 중심으로 한 대칭적 배치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핫셉수트 여왕의 분묘신전에서 보여지는 이집트의 배치방식과 비견될 수 있다. 단, 두 배치 방식간의 차이점은 모든 로마식의 배치에 있어 2차축이 직각으로 도입된 것이다. 이때 첫 번째의 교차축은 큰 중정의 중심과 엑세드라의 정점을 통과하며, 두 번째의 교차축은 바실리카를 지나게 된다. 전면에 있어서도 전형적인 로마식의 배열방식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내외부의 모든 공간들은 열주랑에 의해 형성되며, 이에 의해 율동감이 부여된다. 군인이나 독재자들이 이러한 방식을 매우 애호하는데 로베스피에르나 히틀러가 사주한 건축에서 잘 보여지듯이, 그들은 대개 이 방식을 지나칠 정도로 사용한다. 공간적 연속성은 프레네스테의 성소에서보다는 약화되어있다. 전체의 배치는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중세 성당의TRANSEPT의 전신으로도 생각되어질 수 있다.  

 

바실리카 울피아의 건축적 의미  

 

이 형태가 전달하는 주된 의미는 황제의 자기 찬미인 것 같다. 이 건축물은 세부적이 면에 있어서 매우 스케일이 크며 평범한 일반인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경직되고 , 거의 관용이 없는 질서는 황제의 권력가 지배와 권위를 나타낸다. 바실리카의 내부는 근본적으로 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제국의 영원불변함을 전달한다. 이와 같은 정적이고 초인간적인 공간은 그리스의 동적이고 인간적 척도에 의존한 외부공간과 대조를 이룬다.

 

카라칼라 욕장

 

이 거대한 욕장에는 볼트와 돔으로 된 다양한 내부공간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공간들은 서로 R결합시켜 복합적인 건물군으로 형성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욕장 건물 자체는 110*214미터의 직사각으로서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인 450*450미터의 커다란 정사각형의 대지에 독립되어 세워져 있다. 이 두 공간은 남북의 축을 공유하고 있다.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깊이가 꽤 도며, 북쪽 면에 사무실과 주거건물이 있고 그 한가운데에 주 출입구가 있다. 남쪽으로는 수조와 수로와의 연결부가 있다. 수조의 외벽에는 좌석이 설치되어 있어서 욕장 건물의 전면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구경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대지의 동쪽과 서쪽은 강의실과 구경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그 사이는 운동경기장으로 되어 있다. 이 욕장 건물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그 공간들은 대칭적으로 질서 있게 배열되어있다. 두 축이 교차되는 부분이 건물의 중심이 되는데, 이곳에 교차볼트로 된 프리지다리움이 있으며, 냉수욕조가 들어있는 네 개의 작은 구획들이 덧붙여져 있다. 그 북쪽에는 나타치오, 즉 옥외수영장이 있다. 남쪽으로는 TEPIDARIUM과 원형의 CALDARIUM이 놓여 있다. 열탕실은 작은 한증실들에 의 해 둘러싸여지고 있다. 욕장 건물의 양측은 강의실로 둘러싸인 두 개의 체육관으로 되어있다. 옷을 갈아입은 후에 방문객은 아마도 맨 먼저 한증실에 들어가고 그 다음에 열탕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이곳으로부터 주축을 따라 온탕, 냉탕을 거쳐 수영장까지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교차하는 두 개의 주축은 기능적 패턴과 부분적으로만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건물 밑은 통로로 된 지하동굴로 일부는 마차가 다닐 정도로 넓었다. 여기에는 창고와 보일러실이 있어 노예와 화부들이 일했다. 목욕탕의 수용인원은 1600명이고, 이 건물 전체의 수용인원은 약 3000명이었다. 목욕탕은 육체적 휴식을 위해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대화나, 혹은 강의실이나 도서관이 말해주듯이 다른 지적활동을 통해 마음을 계발하는 기회도 제공해 주었다. 또한 이 건물은 시민 생활의 진정한 중심으로 정치적 토론이 행해지기도 했으며, 상점과 식당도 있어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많은 것들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게 하였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역대의 황제들이 가장 원했던 것이었다.

 

카라칼라 욕장의 건축적 형태

 

배치에 있어 이 건물은 정사각형안에 직사각형이 들어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두 형태는 모두 남북축을 공유하고 있다. 이에 의해 공간상의 대칭이 형성된다. 동서 양측의 공간에는 엑세드라가 있으며, 이는 통일성있는 디자인에 기여하고 있다. 공간의 절정은 주축이 끝나는 곳이 아닌 두 축의 교차점인 볼트로 된 냉탕실이 된다. 이 건물은 두 개의 주축인 *카르도와 *테쿠마누스가 부분적으로만 통로로 쓰인다는 점만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로마의 도시와 같이 배치되어 있다.

 

카라칼라 욕장의 건축적 의미

 

이 형태를 통해 전달되는 주 의미는 육체와 정신의 건강 및 그 모두를 관리하고 즐기자는 것이다. 차고 덥고 뜨거운 신선한 물을 사용하여 목욕과 수영을 하며, 운동을 즐기고 구경하는 그리고 이 모든 것과 함께 좋은 동료와 가까운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즐거움과 그러한 활동의 가치가 이 건물에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거대한 규모를 고도로 질서있고, 대칭적이고, 정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에는 통제를 향한 추구가 숨겨져 있다.

 

판테온, 로마 AD118-125년

 

프레네스테의 성소가 외부공간을 적극적으로 다룬 최초의 것인 반면, PANTHEON은 내부공간을 새로운 실존적 차원의 표현으로서 도입시키고 이다. 이것은 HADRIAN 황제에 의해 건설되어 판테온의 뜻 그대로, 모든 신에게 봉헌되었다. 판테온은 거대한 돔으로 된 ROTUNDA 와 기둥으로 된 커다란 입구현관의 두가지 주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두 부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외부공간과 내부공간 사이의 판테온의 놀라운 대조는 설계자에 의해 미리 의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판테온의 건축적 형태

 

판테온에 있어 수평과 수직의 축은 성공적으로 통합되어지고 있다. 즉 통로와 목표가 의미 있는 전체를 형성한다. 주 수평축은 외부의 직사각형 모양의 마당에서 시작하여, 출입 공간을 가로질러 토툰다의 주 앱스에서 끝난다. 이 앱스 부분의 아치는 맞은편 출입구 부분의 아치와 마찬가지로 엔타블레이춰를 뚫고 치솟아 있다. 이러한 형상의 두 아치는 천장에 있는 원형의 개구부와 관계를 맺으며, 주 수평축을 보강한다. 로툰다의 중심을 통과하는 교차수평축은 약화되어 있다. 수직축은 로툰다의 중심을 통과한다. 로툰다의 내부에 있어 주 수평축은 반구형 돔을 가진 원형공간이 만들어 내는 중앙집중적인 효과로 인해 불분명하게 되어지며, 이때 수직축이 중앙집중식 배치의 주 구성요소가 된다. 로툰다의 내부공간은 율동적인 분절에 의해 매우 효과적으로 구성되고 있다.  

 

판테온의 건축적 의미

 

"판테온은 하늘을 표상한다." 라는 문장은 이 건물의 주된 의미를 가장 잘 말해주고 있다. 로툰다의 내부공간은 하늘에 대한 생각이 추상화된 것이다. 판테온은 수직의 성스러운 차원을 수평의 세속적 차원과 통합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하늘과 세속이 교차된다. 판테온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영원한 염원 즉 자신을 초월하고, 자신을 신성한 것과 합치시키며, 이 공간이 봉헌된 신들과 함께 있고자 하는 염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 역시 근본적으로는 바실리카 울피아처럼, 제국과 여러신의 영원함을 전달하는 정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다. 인간은 이거대한 초인간적 공간에서 제외되고 있다. 내부공간은 분절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체에 근거한 척도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고도로 발달된 내부공간은 분절이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체에 근거한 척도로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고도로 발달된 내부공간임에는 틀림없다. 모든 것이 함축된 인간의 인생여정은 여기에 와서 모든 의미를 지닌 최종의 목표에 다다르고 있다. 실존적 공간의 근본 요소인 통로와 목표는 여기에서 처음으로 효과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궁전 AD 300-305년

 

AURELIUS 황제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으로 인하여 로마 시를 육중한 성벽으로 둘러쌓았다. DIOCLETIANUS황제의 은거궁전이 지닌 요새같은 배치가 동일한 원인 때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이 배치는 로마의 병영배치와 매우 흡사하며 교차하는 2개의 축에 의해 네구획으로 나뉘다. 북쪽의 두 구획은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며 남쪽의 두 구획은, DALMATIAN연안의 바다를 향한 남쪽면을 따라 연속적인 LOGGIA를 세우는 등,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요구에 따라 디자인된 빌라와 궁전 등의 요소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SPALATO 궁전에서 후대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혁신은 첫째 ,'영광의 아치' 상부의 깨어진 형태의 페디멘트로서, 아래쪽의 아치 형태를 반영시키고 있다. 둘째로는 기둥들 바로 위에 얹혀져 있는 아치들로서 이러한 형태는 초기 그리스도교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둥위에 수평의 엔타블레이춰를 놓은 것에 대해 로마인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콜롯세움에서 판테온, 카라칼라 욕장을 거쳐 마지막으로 이곳의 스팔라토에 이르는 발전과정을 검토해 보면 알 수 있다. 아치받이로 불리우는 벽돌은 수평적인 엔타블레이춰의 잔재로 생각될 수 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궁전의 건축적 형태

 

이 궁전의 배치는 로마의 병영식 배치로서 전형적인 로마의 식민지 도시의 배치와 흡사하며, 직사각형의 내부에 십자형의 교차로가 있다. 주축은 남북의 방향으로 되어 있다. 그외에 몇 개의 교차축이 있는데, 하나는 테쿠마누스에 의해, 다른 하나는 왕의 영묘와 쥬피터 신전에 의해 또다른 하나는 돔으로 된 접견실에 의해 ,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로지아를 따라서 형성되어 있다. 비록 전체의 배치가, 특히 궁전이 있는 남쪽의 두 구획에 있어, 엄격한 대칭을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전형적인 로마의 질서와 정형성이 이 형태 속에 존재하고 있다. 의미 있는 공간들을 연속시키는 방식은 구성의 원칙으로서 효과 있게 사용되고 있다. 이 디자인은 율동에 의해 내적으로 서로 결합되어 있다. 궁전을 둘러싼 성곽에 의해 치밀한 통일성이 주어지고 있으며 이 성벽은 세 종류의 탑들에 의해 분절되어지고 있다.

 

디오크레티아누스 황제 궁전 건축적 의미

 

이 형태는 로마인들이 지니고 있는 질서 잡힌 세계라는 세계관을 전달한다. 교차하는 통로는 이 세계를 몇 개의 다루기 쉬운 구획들로 나누며, 안전하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의식용의 길은 의미 깊은 교차점으로 이끌게 되는 데 여기에서 신과 인간이 신전과 왕의 영묘 속에서 하나로 통합되며 황제의 인간적인 면 뿐 아니라 신성함도 나타낸다. 신전은 해가 떠오르는 쪽을 면하고 있으며 왕의 영묘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이 둘은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황제 궁전의 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신비로움의 원초적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인간 존재의 한계를 자각하게 만드는 장소를 넘어서야만 한다. 적절하게도 건물들은 기둥열에 의해 차폐가 되고 있다.

영광의 아치는 황제의 우월함과 신성함을 나타낸다. 궁전은 신성한 세계의 질서를 상징하고 있으며 황제는 이 세계를 다스리는 절대권력을 가진 '우주의 통치자'로서 상징화되고 있다. 궁전은 황제의 이러한 역할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이러한 권력은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여기에서 신과 인간은 하나로 결합되어 황제라는 인격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막센티우스 황제 혹은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바실리카 AD310-320

 

이 바실리카는 둥근 천장을 갖는 새로운 형식의 건축을 탄생시키기 위한 과감한 시도였다. 이 건물들은 그거대한 규모로 해서 곧바로 이를 계승한 건물은 없었다. 이 건물은 MAXENTIUS 황제가 짓기 시작해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완성되었다.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실리카 울피아 같은 바실리카의 초기형태를 교회건축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GROIN VAULT는 로마네스크 시대에만 FLYING BUTTRESS는 고딕시대에만, 그리고 양측의 아일에 직교BARREL VAULT를 사용하는 것은 만투아에 있는 성 안드레아 성당에서만 다시 나타날 뿐이다. 이 구조물은 평면상으로 64.5*90미터 크기이며, 그로인 볼트로 되어있는 NAVE의 높이는 34.20미터로서 카라칼라 욕장의 냉탕실과 유사한 형태로 되어있다. 중앙의 높은 볼트는 주축에 대해 직각으로 되어있는 일련의 배럴 볼트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데 이 배럴 볼트들은 일조의 아일을 형성시키고 있다. 아일 지붕의 상부에는 플라잉 버트레스의 시초로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이것들이 주 볼트의 횡추력을 지탱하고 있다. 주볼트가 시작되는 아일들 중의 하나가 아직도 남아있다. 벽두께는 6미터로 COFFER로 된 볼트로 지지하고 있다. 클리어스토리 창은 측랑의 지붕위에 나 있으며 이곳으로 많은 양의 빛이 네이브로 들어오고 있다.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건물인 이 구조물은 거대한 제국적 스케일로 명료한 내부공간을 창출해 내는 로마 건축가들의 탁월한 재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은 넓지만 충분한 채광이 되고 있으며, 수직의 지지 부재들에 의해 공간이 단절되고 있지 않다. 또한 매우 조소성이 높고 변환이 가능한 방화재료로 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이 건물은 고도로 높은 문명시대의 건축이 요구하는 것들을 만족시켜주고 있다. 이후 800년 동안 이와 같은 건축물은 서양에서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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