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자파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의 수는 250 명을 넘지 못했다. 에방겔리스 자파스는 "지난 자파스 올림픽을 포함, 1896년에 개최될 2번째 올림픽을 위해 파나티네코 경기장을 보수해야 한다."라는 충고를 하지만, 그리스 정부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1896년 아테네 올림픽 준비를 위해 파나티네코 경기장은 두 번이나 정비해야 했다.[26] 1회 대회 정식종목으로는 9종목이 있었는데 육상, 사이클, 펜싱, 체조, 사격, 수영, 테니스, 역도, 레슬링이 있었으며, 조정도 정식종목이었으나 매우 나쁜 날씨로 인해 조정 경기는 취소되었다. 펜싱 경기는 역사적 건물인 자피온(에반젤리스 자파스의 이름을 딴 것이다)에서 열렸다. 그리스의 관리들과 국민들은 올림픽 경기 개최에 열광적이었다. 많은 선수들이 이에 동감하면서 앞으로도 올림픽 대회를 아테네에서 영구히 개최해야 한다고 요구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근대 올림픽은 순환 개최로 열리는 세계적인 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2회 올림픽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기로 결정되었다.
변화와 발전
1896년 올림픽 대회의 성공을 이어서 개최된 두 번째 올림픽인 1900년 올림픽에서는 올림픽의 존폐여부를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1900년에 파리와 1904년에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올림픽은 하필이면 엑스포와 시간과 장소가 겹치는 바람에 빛을 바래게 된다. 1904년 대회를 예로 들면 650 명의 선수단이 참가했지만 그중 580 명은 미국국적을 가진 사람이었다. 1900년과 1904년의 두 올림픽 대회는 역대 올림픽중에 최저점을 기록한다. 올림픽은 1906년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개최되었을 때 다시 일어서게 된다. 또 다른 성공적인 올림픽은 그리스 올림픽 협회가 조직했으며 세 차례나 올림픽을 치른 경기장[주 4]에서 개최되었다. 이 경기는 비공식 올림픽이긴 했지만 세계적으로 상당한 참가자들을 불러 모았으며 대중들에게 큰 재미를 갖다주었다. 이 때를 시작으로 올림픽의 인기와 번영이 시작되었다.
동계 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