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 올림픽에 관하여 궁금한것이있어요

하계 올림픽에 관하여 궁금한것이있어요

작성일 2020.04.12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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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하계 올림픽의 역사와 한국 하계 올림픽 특징을 일려주세요!! 길어도 괜찮아요 체택할테니 부탁드려고 꼭 진실된 내용만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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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올림픽의 시작과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그리고 우리나라 88 서울 올림픽

고대올림픽을 계승한 근대올림픽의 시작과 탄생이 프랑스의 귀족 출신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남작 한사람에 의해 나온 것으로만 대부분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믿음은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100년 이상 인식하고 있습니다.

근대올림픽은 바로 고대올림픽의 부활을 뜻합니다. 그런데 왜 ‘올림픽’일까? 이는 올림픽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에 이것 말고도 다른 운동축제들이 있었으며, 이 중 올림픽이 답변확정돼 근대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또한,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이 열리기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비록 국내대회이지만 올림픽이 3차례 열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영국에서도 역시 국내대회로 올림픽이 한 차례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출범된 뒤에도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과 1908년 런던올림픽 사이인 1906년 아테네에서 올림픽이 열렸다는 점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입니다. 근대올림픽은 이렇듯 공식적인 출범 이전과 이후에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습니다.

▲올림픽 성화 채화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의 신전에서 태양으로부터 채화하여 올림픽경기가 개최되는 주경기장의 성화대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타오르게 하는 불로 채화식이 거행되는 장소는 그리스 남쪽 펠로폰네소스 반도 엘리스지방의 피자티스에 있는 헤라신전이며, 채화된 횃불을 올림픽의 개최지로 옮긴 뒤 릴레이로 봉송하여 주경기장에 점화하게 된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The Temple of Olympian Zeus)

2세기 로마 아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완성된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유적은 아드리아누스 문의 바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15개의 기둥이 남아 있는데 원래는 10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있었다고 한다.

1)고대 올림픽의 탄생

최초의 올림픽이 열린 기원전(B.C.) 776년 당시엔 4년마다 열렸던 올림피아의 올림피아경기, 델피의 피티아(Phthia)경기, 2년마다 열렸던 아르골리스의 네미아(Nemia)경기, 코린트의 이스트미아(Isthmia)경기가 그리스의 4대 제전경기였습니다.

아테네 도시국가의 권력가(정치인)이자 시인인 솔론(Solon)이 올림픽 승리자에게 500드라크마(drachmas : 고대 그리스 화폐단위)를 주고, 이스트미아의 승리자에겐 100드라크마를 준 기록은 당시 올림픽이 더 중요했고 번창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만약 4년마다 열렸던 피티아경기가 더 번창했고, 그게 근대 서양으로 이어졌다면 우린 1988년에 서울올림픽이 아니라 서울피티언대회를 개최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올림픽은 제전이 열렸던 곳의 이름입니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Peloponesus) 반도 서쪽 이오니아해에 인접한 엘리스(Elis) 남쪽에는 알페우스강 유역의 평원이 펼쳐진 고대 그리스의 성지 올림피아(Olympia)가 있습니다.

1875년 독일 고고학자 에른스트 쿠르티우스(Ernst Curtius)가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아 24살이던 1838년에 이곳을 처음 방문한 뒤, 37년 뒤인 1875년에 제우스(Zeus) 신전(BC 2500년)과 제우스의 아내 헤라(Hera) 신전 등을 발굴했습니다. 쿠르티우스의 고고학 작업이 결국 근대올림픽 태동에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올림피아 제전경기 최초의 우승자로 기록된 코레아부스(Coreabus)는 엘리스의 요리사로 관중 앞에서 나체로 1스타데(Stade : 185m)를 뛰었습니다. 이 제전에 참가하려고 그리스 전역의 도시국가에서 지원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엘리스 짐나지움 테스트에 합격하면 엘리스에서 10개월간 나체로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모든 조각상들이 나체였던 점이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단거리 달리기로 시작된 올림피아는 2스타데의 디아우로스(diaulos), 5㎞가량의 장거리인 도리코스(dolichos)가 추가됐고, 5종 경기(제자리 멀리뛰기-창던지기-달리기-원반까지 마쳐 마지막 남은 2명의 레슬링 경기로 우승자를 가림), 전차경기와 경마경기, 권투와 레슬링을 혼합한 지금의 격투기와 비슷한 판크라티온(Pancration) 등이 대표적인 경기입니다. BC 632년이 되면 소년들이 달리기와 레슬링으로 처음 등장하며, BC 616년 소년 권투에 이어 BC 200년이 되면 소년들의 판크라티온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5종 경기가 도입된 뒤 6.8㎏짜리 돌 원반이나 금속 원반을 멀리 던지는 경기는 가장 인기가 높았고, 기록이 좋으면 훌륭한 선수로 평가 받았습니다. 권투경기는 처음 손에 가죽 끈을 감았다가 둥근 쇠고리를 끈으로 주먹에 달고 했으며, 쇠주먹(너클:Knuckle)을 끼기도 했습니다. 14㎞를 달리는 전차경기의 기수만 옷을 입었고, 승리의 영광은 전차 또는 말의 소유자에게 돌아갔습니다. 노예가 참여한 유일한 경마경기는 안장이나 등자 없이 맨발로 탔고, 노예의 주인에게 올리브관이 돌아가고, 선수에겐 무명 머리띠를 매어주었습니다.

올림피아 우승자는 영웅으로 추대돼 세 번 우승하면 올림피아 성림에 조각상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세금 면제와 선물, 명예가 뒤따랐습니다. 우승자가 도시국가로 돌아올 때 성벽 일부를 허물어 통과시키는 의식은 우승자를 보유한 도시가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용맹성의 과시였습니다. 우승자에게는 나뭇잎으로 만든 관이 돌아갔는데, 올림피아는 올리브관, 이스트미아가 솔잎관, 피티아가 월계관, 네미아는 파슬리관이었다. 마라톤 우승자에게 씌워지는 현대 올림픽의 월계관은 피티아경기에서 온 것입니다.

대표적인 영웅으로는 BC 6세기 레슬링에서 6번 우승한 크로톤 출신의 밀로(Milo)는 송아지를 매고 연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BC 408년 판크라티온 우승자 데살리 출신의 폴리다마스(Polydamas)는 맨주먹으로 사자를 때려눕히고, 한 손으로 전차를 세울 만큼 힘이 강했다고 전해집니다. 타소스 출신의 데아게네스(Theagenes)는 권투, 달리기, 판크라치온 등에 출전해 1400번 우승관을 받았다고 합니다.

여자는 선수로 참가할 수도 없었고, 경기도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BC 360년 로데스의 칼리파테이라(Kallipateira) 여자가 있었는데 남장을 해 자신의 아들이 출전한 권투경기를 몰래보다 아들이 우승하자 감격해 달려 나갔다가 여자신분이 들통 나 죽음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 디아고라스(Diagoras)가 BC 464년 권투챔피언으로 널리 칭송받던 터여서 다행이 목숨을 건졌습니다. 오로지 올림피아 입장이 허용된 유일한 여자는 풍요와 농업, 결혼의 여신인 데메테르(Demeter)의 여제사장뿐이었습니다.

BC 2세기 중엽 로마제국이 그리스를 정복한 뒤에도 올림픽은 계속 열렸지만 고대올림픽의 종말은 기독교의 등장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393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Theodosious) 1세는 기독교로 개종한 뒤 올림픽을 무종교로 간주하고, 로마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폐지를 명했습니다. BC 776년부터 AD 393년까지 제293 올림피아드를 끝으로 1069년의 역사가 마감됐습니다. 왕위를 이어 받은 테오도시우스(Theodosious) 2세 또한 불가사의한 그리스의 유적인 제우스와 헤라 신전을 해체해 올림픽의 흔적을 말살했습니다. 고대 올림픽은 고고학자 크루티우스의 1875년 발굴까지 땅 속에 묻혀 있었던 것입니다.

▲파나요티스 수초스(Panagiotis Soutsos, 1806~1868)

2)근대올림픽을 노래한 최초의 시인 - 파나요티스 수초스(Panagiotis Soutsos)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의 전통문화였습니다. 로마제국의 통치에 들어간 뒤에도 올림픽은 여전히 강세를 보였지만 마침내 이교도의 문화로 배척돼 4세기경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곤 19세기말 다시 부활됐습니다.

1500년이나 지난 이 고대의 스포츠를 과연 누가, 왜, 무슨 이유로 부활시키려 했을까하는 의문은 쿠배르탱 한사람에게만 각인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쿠배르탱 한사라람일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쿠배르탱이전부터 근대올림픽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 최초로 근대 올림픽의 꿈을 선언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파나요티스 수초스(Panagiotis Soutsos, 1806~1868)였는데 1832년은 그리스가 오랜 외압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 발돋움한 해입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그리스의 계층은 이전엔 모두 국외로 추방됐거나, 다른 지역에서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수초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파리와 파도바, 루마니아를 전전하던 그는 오토 1세가 그리스의 근대적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은 나폴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스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르네상스도, 계몽주의시대도 거치지 못했고, 나아가 사회기반시설이나 제도, 정부의 조직까지 모든 것들이 엉성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더 선>이라는 신문사를 창간한 수초스 역시 다른 모든 그리스의 들처럼 고대 그리스의 영광을 재현해 그리스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1833년 그는 자신의 시에서 플라톤의 영혼을 빌어 고대 그리스 올림픽의 재현을 노래했습니다. 그리곤 1835년 이런 시상에 바탕을 둔 아이디어를 담은 고대올림픽의 부활을 국가에 제안했습니다. 1842년엔 오토 1세에게 청원하는 출판물을 냈고, 1845년엔 아테네의 수천 명의 대중들에게 이런 내용을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마침내 빛을 보게 된 1856년까지, 23년이나 줄기차게 지속되었습니다.

▲에방겔리스 자파스(Evangelis Zappas, 1800~1865)

3)최초의 근대올림픽은 아테네 올림픽이 아닌 자파스올림픽

그리스 독립전쟁 참전용사이며 박애주의자였던 사업가 에방겔리스 자파스(Evangelis Zappas, 1800~1865)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생애 대부분을 루마니아에서 보낸 그는 동부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사업가 중 한사람으로 성공했는데 수초스가 주장해온 고대올림픽의 부활에 대한 생각을 접하고는 1856년 그리스 정부에 강력하게 이 내용을 탄원했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는 1858년 아테네에서 최초의 근대올림픽을 1년 뒤인 1859년에 개최하기로 공식 선언을 하게 되지만 정부로서는 국가 부흥의 과제를 실현해야 했기에 농업올림픽과 산업올림픽을 함께 열기로 했습니다.

근대올림픽 출범을 위한 자파스의 이런 노력의 결과로 제1회 아테네올림픽이 열리기로 한 소식은 유럽 전역으로 타전됐지만 세인에 많은 관심을 끌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웬록(Wenlock)지방에 있는 W.P. 부룩스(Brookes) 박사에겐 매우 흥미로운 소식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소식들을 꼼꼼히 챙긴 그의 상세한 기록들은 근대올림픽이 어떻게 출현하게 됐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역사적인 자료들입니다. 웬록에서 연례적으로 소박한 수준의 운동경기를 개최했던 브룩스 박사는 아테네에서 최초의 올림픽이 열리기 두 달 전인 1859년 7월에 열린 웬록 올림픽대회를 후원했습니다.

그는 또 아테네올림픽위원회에 대회 우승자에게 줄 10파운드의 은화를 상금으로 보냈는데, 당시 위원회는 자파스의 상금 외에 영국의 웬록올림픽위원회의 추가 상금도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자파스는 고대올림픽이 열렸던 파나시나이코스 경기장에서 올림픽을 열 수 있도록 막대한 발굴비용을 제공했지만, 1859년의 올림픽은 아테네 북쪽 지역에서 개최되었으며 개최된 1회 대회에 우승 상금이 수여되기도 했지만 숙련된 선수들이 부족한데다, 종목도 매우 적어서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브룩스 박사(William Penny Brookes)1809-1895

4) 브룩스 박사와 영국 올림픽운동

1860년대 브룩스 박사(William Penny Brookes)는 올림픽운동을 영국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수행했고, 1859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자신이 보낸 웬록상을 수상한 그리스의 페트로 벨리사리오우를 웬록올림픽의 최초의 명예회원으로 위촉하며 그리스와 국제교류를 진행시켰습니다.

이 명예회원 리스트의 맨 마지막 줄에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등재됐는데, 이로부터 30년 뒤의 일입니다. 어쨌든 웬록올림픽위원회와 그리스올림픽위원회는 올림픽이라는 같은 이름을 쓰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로 하는 자매결연을 맺어 1860년대 올림픽 국제운동의 효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국제운동의 여파에 힘입어 마침내 1866년 영국 런던에서 국내올림픽대회가 성공적으로 열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당시 귀족 중심으로 꾸려진 아마추어운동클럽(Amateur Athletic Club)은 노동자나 기계공, 공예가들이 돈을 받고 뛰는, 브룩스가 추진하는 올림픽을 반대하며 대부분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오토 1세에 이어 1862년 왕위에 오른 덴마크 출신의 게오르게 1세는 1865년 세상을 떠나며 올림픽을 위해 막대한 재산을 기증한 자파스의 후원을 바탕으로 1870년 제2회 아테네올림픽을 개최했습니다.

당시 3만 명이 경기를 관람했고, 1회 대회에 비해 많은 종목이 답변확정됐으며, 그리스 전국 곳곳에서 참가자들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습니다. 크레타 섬에서 온 노동자 출신이 레슬링에서 우승했고, 아테네의 한 도축업자가 200m 달리기에서 1위를 하는 등 당시 참가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몇몇 대학교수들이 차기 대회에서는 노동자계층은 참가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5년 뒤에 열린 1875년 올림픽은 경기내용과 참가규모에서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올림픽위원회는 1888년 초 자피온(Zappeion) 올림픽 빌딩(2004년 아테네올림픽 미디어센터)을 준공한 뒤 가을에 1888년 올림픽을 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위원회는 아무런 대회 조직도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스포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 올림픽위원회는 고대올림픽 부활의 꿈을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에서 올림픽 부활의 노력이 무산될 당시, 영국의 브룩스 박사는 아테네에서 국제올림픽대회를 개최하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시도했습니다. 그는 런던에 있던 그리스 대사 존 게나디우스 설득에 나섰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1863.1.1 ~ 1937.9.2.

1892년부터 올림픽 부흥운동을 시작하여 1894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하였으나, 이에 협력한 것은 프랑스인이 아니고 타국의 정치가 ·학자 ·스포츠맨이었다.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대회를 아테네에서 개최하고, 그후 IOC 회장으로 올림픽의 발전과 운동 추진에 일생을 바쳤다. 그는 IOC 외에도 국제 교육학회를 창설하여 스포츠와 교육의 연관성을 주장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스위스 로잔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명예시민으로 살았다.

5)해성 같이 등장한 쿠베르탱 남작

이러는 사이 새롭게 올림픽의 부활을 꿈꾸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입니다.

그는 어릴 적 조국 프랑스가 프러시아군에 맥없이 지는 것을 목격하고는 영국과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 각지를 돌며 강인한 조국의 건설을 위한 체육에 크나큰 관심을 보이다, 마침내 스포츠교육의 내용이 잘 담긴 웬록의 프로젝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게 결국 브룩스 박사와의 만남으로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쿠베르탱은 자신의 연설에 브룩스 박사의 글들을 인용하기 시작했고, 브룩스 박사와의 서신교환을 통해 결국 1890년 웬록을 방문했습니다. 브룩스 박사는 근대올림픽 부활을 기리는 기념식수를 쿠베르탱에게 권했고, 자신의 올림픽에 대한 구상을 설명했으며, 1859년 자파스올림픽의 우승자 리스트까지 보여주었습니다. 1866년 런던에서 열린 국가올림픽대회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제공한 것은 물론입니다.

근대올림픽 부활 움직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은 쿠베르탱은 1894년 파리에서 제1회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를 열고, 최초의 근대올림픽 아테네 개최를 확정했습니다. 쿠베르탱은 또 당시 파리에 살고 있던 그리스 문인 디미트리오스 비켈라스(Demetrios Vikelas)를 초대 IOC위원장으로 추대했습니다.

비켈라스의 헌신적 노력과 당시 콘스탄티네(Constantine) 왕세자의 열성적인 지원, 부호 기오르고스 아베로프(Giorgos Averoff)의 경기장 신축 비용 후원 등에 힘입어 1896년 아테네올림픽은 성공적으로 개최됐습니다. 하지만 브룩스 박사는 대회가 열리기 석 달 전 수초스와 자파스가 있는 저 세상으로 합류하면서 근대올림픽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장면을 볼 수는 없게 됐습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근대올림픽은 수초스 시인의 최초의 제안, 자파스 부호의 재정적 지원, 문인 비켈라스의 가세, 그리고 무엇보다 콘스탄티네 왕세자의 지칠 줄 모르는 성원 등이 숨겨져 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의 바깥세상에서는 영국의 브룩스 박사가 처음으로 국제스포츠대회에 대한 이상을 그리고 있었고, 직접적으로는 그리스, 쿠베르탱과 구체적인 교류를 통해 국제올림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 제24회(1988년)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 The 24th Olympic Games ]

요약 1988년 한국의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하계 올림픽 경기대회.

1988년 서울올림픽경기대회 포스터

대회기간

1988년 9월 17일∼1988년 10월 2일

개최도시

대한민국 서울

대회규모

159개국, 선수 8,391명

한국참가인원

임원 125명, 선수 477명

메달순위

1위 소련, 2위 동독, 3위 미국 (금·은·동 합계)

한국획득메달

금 12, 은 10, 동 11

개최종목

근대5종, 농구, 레슬링, 배구,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승마, 양궁, 역도, 요트,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테니스, 펜싱, 하키, 핸드볼 등 237개 세부 종목

참가종목

근대5종, 레슬링, 배구, 복싱, 사격, 사이클, 수영, 양궁, 역도, 유도, 육상, 조정, 체조, 축구, 카누, 탁구, 테니스, 펜싱, 하키, 핸드볼

시범종목

야구, 태권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16일간에 걸쳐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전세계에서 159개국(브루나이는 개막식과 폐막식만 참가하고 실제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음) 1만 3304명의 선수단(선수 8,391명)이 참가하여 올림픽 사상 최대 대회규모를 기록했다. ‘화합과 전진’을 기본이념으로, ‘최다의 참가, 최상의 화합, 최고의 성과, 최적의 안전, 최대의 절약’을 대회목표로 했다. 한국은 1979년 9월에 제24회 하계 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하기로 결의하고 1981년 2월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에 올림픽 유치신청서를 정식 제출했다. 같은 해 9월 30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IOC 총회에서 일본의 나고야를 52 대 27로 누르고 개최지로 서울이 선정되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2번째, 그리고 세계에서는 16번째로 올림픽 경기대회 개최국이 되었다.

대회에는 경기장 34개와 연습장 72개가 이용되었고, 동대문운동장·효창운동장·장충체육관 등 기존의 시설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서울시는 송파구 잠실1동에 총면적 54만 5000㎡의 서울종합운동장을, 6∼24층의 건물로 86동 3692세대 및 36동 1848세대를 선수촌 및 기자촌으로 건설하였다. 대회운영에는 조직위원회 직원 1435명, 자원봉사요원 2만 7221명, 지원요원 1만 8281명, 단기고용요원 2775명 등이 동원되었다. 대회휘장은 한국 전통문양인 삼태극을 그린 작품이고, 올림픽 마스코트는 한국산 호랑이(애칭:호돌이)를 상징한다. 운동경기 외에 문화예술행사로 경축행사·공연행사·전시행사가 열렸으며 스포츠 과학학술대회도 열렸다.

경기는 정식종목 23개(근대5종·농구·레슬링·배구·복싱·사격·사이클·수영·승마·양궁·역도·요트·유도·육상·조정·체조·축구·카누·탁구·테니스·펜싱·하키·핸드볼), 시범종목 2개(야구·태권도), 시범세부종목 1개(여자유도), 전시종목 2개(배드민턴·볼링), 전시세부종목 1개(장애인휠체어경기)가 치러졌다.

종합 메달 순위 1위를 차지한 나라는 소련으로 금메달 55개, 은메달 31개, 동메달 46개를 획득하였고, 2위는 금메달 37개, 은메달 35개, 동메달 30개의 동독이, 3위는 금메달 36개, 은메달 31개, 동메달 27개의 미국이 차지하였다. 금메달 순위 역시 소련, 동독, 미국이 각각 1, 2, 3위를 유지하였고, 금메달 12개의 한국과 금메달 11개의 서독이 각각 4, 5위로 그 뒤를 이었다. 한국은 금메달 외에 은메달 10개와 동메달 11개를 획득했다.

16년 만에 동서양 진영 선수단이 모두 참가하여 동서의 이념분쟁·인종차별로 인한 갈등과 불화를 해소시킨 서울올림픽은 올림픽헌장의 정신을 준수하며 스포츠 교류를 통해 ‘화합’의 기틀을 다졌고 세계평화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또 한국의 뿌리 깊은 문화와 전통, 한국인의 저력을 통해 세계 속에 한국의 위치를 확고하게 새기게 되었고, ‘최다의 참가’를 통한 ‘최상의 화합’을 실증했다. 운영이 미숙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올림픽 사상 최고의 시설을 갖추었다는 극찬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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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관하여....

... 갑자기 우주에 대해 궁금한있어서 질문해요 우주는... 생각한 같다. 수메르의 전통은 이집트에도 영향을... 지하계까지 연결되어 있으며 하늘과 바다가 부딪치는 곳에...

운전에 관하여 질문하고 싶습니다.

... 받고 있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초보운전인데요. 운전에 관하여 궁금한게 있습니다. 이번에 시애틀... 올림픽 국립공원쪽(크레센도 호수, 허리케인릿지,라 푸쉬)...

호텔리어에 관하여(유학생 입니다)+내공

... 제가 정말 호텔 경영쪽으로 관심이 있는데 궁금한것좀... 세자르 리츠 컬리지의 경우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분야에 있어서는 상당히 인정받는다고 볼 수 있죠.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