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배달이 누구져??

최배달이 누구져??

작성일 2003.01.31댓글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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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느 나라사람이고 누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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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 [崔永宜, 1922.6.4 ~ 1994.4.26] 인쇄용 화면


개요

실전 가라테로 불리는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
별칭 : 오야마 마스다츠[大山倍達], 최고의 파이터
활동분야 : 스포츠
출생지 : 전북 김제
주요수상 : 전일본 가라테 선수권대회 제패
주요저서 : 《생명의 가라테》 《가라테는 무엇인가》



본문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1922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생하였다. 일본명은 오야마 마스다츠[大山倍達]이다. 국제가라테연맹총재를 역임하였으며, 일본의 가라테 10대 문파를 비롯, 세계 무술인과의 100여 차례의 격투기에서 모두 승리, 최고의 파이터라고 부른다.

일본 청소년이 뽑은 ‘위대한 인물 10걸’의 한 사람으로 16세 때 도일, 야마나시[山梨]소년 항공학교에 재학하던 1939년 가라데 초단으로 입문, 24세에 전일본 가라테 선수권대회를 제패하였다.

1964년 그가 발족한 국제가라데연맹 산하에는 140개국 1,200만 명의 수련인구가 있다. 《생명의 가라테》 《가라테는 무엇인가》 등 62권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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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사람인데

주먹으로 유명한 사람이라고하던데 기억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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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최영의 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고 실전 공수도의 창시자이죠..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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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nga.pe.kr/people/index.php?page=%B9%E8%B4%DE%C0%C7%BA%B0%C3%D6%BF%B5%C0%C7


본명은 최영의, 일본명 오오야마 마쓰다쓰(大山倍達:대산배달). 극진 공수 가라데의 대가. 현재는 고인이 되셨다. 방학기씨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1989.8.11~1993.7.20 스포츠서울 연재) '의 주인공이며 최배달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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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의 - 영원한 강자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최영의 명인은 우리에게 최배달이란 이름으로 보다 더 친숙합니다.
실전계공수 극진회관의 영수로서 전세계 수천만의 공수인을 이끌었던 국제적인 거인.

무도의 본질은 살법(殺法)이 아니라 활법(活法)이다
진정한 무도(武道)는 물과 같이 일정한 형이 없다.

권투와 레슬링의 챔피언을 만나든,
쿵후와 유도의 대가(大家)를 상대하든,
떨어져 폭포도 되고
고여서 옹달샘도 되는 물처럼
적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 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는 도(道)의 길!


과거 60년대 가라데의 세계적 명성은 신기의 가까웠다.종주국 일본에서는 물론 실용과 합리주의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가라데'라는 간판을 달면 이를 배우려는 수련생들이 벌때처럼 모여들곤 했다.
이처럼 동양무술인 가라데가 세계적 무술로 부상한 것은 국가적 계획도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닌 단지 카리스마적인 한 개인의 명성때문 이었다

50년대 '신의손(God's Hand)이라 불리던 가라데마스터 오오야마 마스다스 (大山倍達 최영의1923-1995)가 바로 그인물이다.
50여마리의 황소와 맨손으로 싸우고 세손가락만으로 동전을 구부리는등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발휘 '신의 손'이라 불리는 오오야마 마스다스(지도자.관장),그는 자신의 명성과 함께 가라데를 세계적 무술로 올려 놓았다. 그러나 그는 가라데 종주국인 일본인이 아닌 일명 최배달(催倍達)이라고도 불리는 최영의로 다름아닌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놀랄 일이다.

최영의는 일제시대때 '조센진'이라며 한국인을 멸시하던 나라 일본에서 그들의 무술이라 할 수 있는 가라데를 배우고 이를 더욱 격등시켜 세계적 무술로 만들었다.1923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최영의가 무술을 처음 접한 것은 9세였다. 집에서 고용한 농군으로부터 소림쿵후를 배우면서 어린나이에 무술에 대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다. 광복전 15세때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근대 가라데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후나고시 기찐의 도장에 입문해 직접 지도를 받았고 그후 2년간 조영주 밑에서 본격적으로 수련했다. 47년 교토에서 2차대전후 처음으로 열린 무도대회에서 우승하나 그는 뜻한바가 있어 그이듬해인 48년에 인간세계를 등지고 키요즈미 산에 들어가 무술을 수련하게 된다
그는 약 18개월간 문명의 이익과 편안한 생활에 격리된 고행을 한다.맹렬히 쏟아지는 폭포수 밑에서 좌선을 하고 야생동물과 싸우고 나무와 바위에 맨몸을 부딪치면서 최영의는 그만의 '가라데세계'를 확립한다.
상대방의 몸 바로 앞에서 공격을 멈추어야 하는 기존 가라데의 성향에 회의를 느꼈던 그는 이른바 실전 무도인 '극진(極眞)가라데'를 창설한 것이다.

51년에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세운 가라데의 진수를 세계에 전파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위해서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의 도전한다
맨손으로 50여마리의 황소와 싸워 뿔을 꺽어 쓰러뜨리고 바위를 격파했으며 세워놓은 위스키병을 쓰러뜨리지 않은채 둘로 자르는등 가이 신에 가까운 무서운 힘과 스피드를 보였다.
그의 황소대결 장면은 쇼오지꾸 영화사에서 필림으로 담아 20분 짜리 기록영화 '맹우와 싸우는 가라데'로 남아있다.이필름은 일본 전역에 보급돼 최영의를 일본내의 유명인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일본내에서만 머무를 수 없었던 최영의는 52년 일본유도 대표 엔도오 코오키치와 함께 미국순회공연을 떠나는데 이때 공중에서 위스키병을 산산조각내는가 하면 미국의 프로레스링,프랑스의 사파데, 브라질의 카포네라 등 세계유수의 격투기와 대결 연젼연승을 거두었다. 이같이 경이로운 현상에 감탄한 주최측은 그의 대전장면을 TV에 방영하였고 드디어 가라데가 동양의 신비한 무술로 매스미디어에 등장. 그는 전세계의 가라데 마스터로 떠오르게 되었다.그의 날카로운 스피드와 거칠것없는 힘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고 후에 스페인의 카를로스국왕,요르단의 후세인왕,모로코의 하산왕 등이 무술지도를 받기도 한다


극진 가라데의 보다 넓은 보급을 위해 54년 3개월간 동남아 순방에 오른 최영의는 웰터급 타이킥복서 '블랙 코브라(BLACK COBRA)'를 첫회 2분만에 턱을 으스러트려버렸다.그는 20세기 무도역사가 낳은 국제적 거인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각국 순회공연등으로 얻은 가라데마스터로서의 명성은 70년대 부루스리 출현 이전까지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56년 최영의는 자신의 가라데를 정립하고 보급시킬 계기를 맞아 도쿄에 학교를 열고 61년에는 단(段)과 자유롭고 거친 쿠미테(助手)를 강조하는 '극진회'를 설립한다. 이어 미국의 뉴욕 시카고 등지에 분관을 설립하고 기왓장격파술 시범을 보이는등 미국 대중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의 분관은 소련과 동구권에도 넓게 퍼졌고 지금은 520여개의 극진회관이 세계에 분포 되어있다.뿐만아니라 그는 이론정립에도 힘써 자신의 전기를 비롯한 22권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전기는 일본인에게 커다라 인기가 있는데 이는 아이러니한 일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것은 가라데종주국 일본이 가라데 마스터로 부상한 최영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JAL(일본항공)이 극진 가라데를 일본의 대표무도로 지원하고 있는것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신의손'최영의가 추구하는 가라데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GAISFC(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에 가입한 WUKO(세계가라데도조직연합)에서 행하는 가라데와는 다르다.WUKO의 가라데는 부상의 위험이 없지만 최영의의 극진가라데는 급소공격,손에 의한 안면공격 등 몇가지 사항만 금지될뿐 프로텍터(호구)도 없이 자유롭게 공격이 허용돼 경기도중 턱벼나 갈비뼈 빗장뼈가 나가거나 부상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가혹하다'싸움이 아니냐'는 등 일부의 비난도 있지만 동구권을 포함한 세계76개국에 지부가 설치된것만 보더라도 가라데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대단한 것이다

한국인 최영의라는 인물이 실존하는 가라데의 신적인물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심지어는 가라데 종주국인 일본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는 무도계에서나 언론계에서도 관심밖에 인물이 아니었나 한다.현재 동구권까지 퍼져있는 극진 가라데의 인구는 약 1천만에 이른다고 한다.이것만 보더라도 "신의 손 최영의" 는 세계적으로 이미 인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직 한국에서의 그의 위치가 정립되지 않은 만급 최영의가 차지하는 근대 무도사적의미를 다시 한번 고려해봄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한다.



한국名 최영의, 일본名 오오야마 마쓰다쓰(大山倍達 / 대산배달)

만화 바람의 파이터로 각색되기도 한 그의 무용담은 이제

전 세계 무술계의 전설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그가 한국 사람 최영의라는

사실 때문에 흥분하고 때때로 추앙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귀화한 일본인이다.

귀화를 했든 안했든 한국인은 한국인임에는 변함이 없고,

일본에 대한 나쁜 감정만 배재한다면 그게 뭐 어때서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가 전세계 무술계에 끼친 영향이 엄청나다.
그때까지 가라데가 뭔지도 몰랐던 서양인들이 그의 믿기 힘든 기술과 정신력에 감화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썼다고 하는 공수도 교본이 한국말로 번역되어 시중에 나와있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새삼 그는 완전한 일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국적이 일본 사람일 뿐인 것이 아니라 사상 자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대목을 꼽자면 애매하긴 하지만, 시시 콜콜 '우리 일본인은...'으로 시작하는 문장들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공수의 기술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는 무예 관련 책을 보면서 뜻하지 않게 많은 오류와 착오들을 보았다.

그 중의 하나가 태권도와 가라데에 관한 것이다.
최영의의 가라데(극진공수)는 태권도가 아니다.
그러나 태권도의 뿌리는 가라데이다.

무슨 말이냐면 첫째 태권도는 한 이삼천년전 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한국 전통 무예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을 함으로써 나를 바로 역적이며 매국노로 몰아 부치는 맹목적 세력이 현재도 존재한다.

소위 태권도의 1세대를 이룩하고 있는 사람들, 이원국(청도관), 황기(무덕관), 윤병인(?), 최홍희(오도관??) 등이 모두 일본에서 가라데를 배워 그 기술 그대로 한국에 도장을 낸 사람들임은
나로서는 전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고, 가라데의 한국식 발음이 음독으로 읽느냐 훈독으로 읽느냐에 따라 '공수'도 되고 '당수'도 될 뿐이다.

최영의의 무도 정신의 배경은 추측컨데 아마 위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영의는 일본으로 귀화하기전, 최홍희와의 어떤 교류를 통하여 한국으로 갈 생각을 하였다가 여러가지 여건이 맞질 않아 결국 일본으로의 귀화를 선택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한국 태권도 현대사)
이것은 최홍희 무술과 최영의의 그것이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생겨날 수 있는 일화이다.

최홍희는 다름 아닌 태권도라는 말을 최초로 만들어낸 바로 그 사람이다.
즉, 공수, 당수로 불리워 진것이 잠깐 태수도라고 불리다가 최종적으로 태권도가 되었다.

그러면서 태권도는 기존의 가라데와는 다른 경기 위주의 룰을 적용하면서 이에 따라 엄청나게 다른 면모를 갖추에 되어 지금은 전혀 다른 빠른 발기술 위주의 무술로 변모되었다.

많지는 않지만 지금도 최영의의 모습을 담은 흑백 필름들이 있다.
그는 확실히 뛰어난 무술가이다.
그의 명성을 이런 하찮은 글로 실추 시키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한국에 대한 그의 생각을 모르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의 공수도 교본을 읽고 난 지금, 과거 상상속에 있던 그런 최배달은 사라졌다.

(퍼옴)

 

제 목 : [ 가라테 ] 극진공수, 최영의 기사(88년)

 

"황소의 뿔을 꺽고 일격에 황소를 쓰러뜨리는 격투기의 백호, 최영의"

사람이 맨손으로 황소뿔을 꺾을 수 있을까? 또 사람이 맨손으로 일격에 황소 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있다. 실제로 맨손 만으로 황소의 뿔을 꺽고 한 대에 황소를 쓰러 뜨린 사람이 있다. 제일동포이며 현재 국제공수도연맹 총재이자 극진회관 관장인 최영의(일본이 름 大山倍達:오오야마 마쓰다쓰)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7년, 처음으로 열린 일본공수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최영의는 상대방 몸앞에서 공격을 멈추는 종래의 경기규칙에 의문을 품게된다. "격투기에서는 1/100초 사이에도 상황은 변할 수 있다. 또 설사 상대방의 공 격을 먼저 받았다해도 보다 위력강한 공격으로 반격했을 경우 승패는 뒤집어질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상대방 몸앞에서 공격을 멈추는 경기규칙으로 어떻게 강자를 가려낼 수 있단 말인가?"

인간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려고 기요즈미 산에 들어가 맨손으로 차돌을 깨뜨리 는데 이른 최영의는 1950년 다테야마의 도살장의 협조를 얻어 황소의 뿔을 꺾고 일격에 쓰러뜨린다. 그러나 처음부터 황소뿔을 꺾는데 성공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手刀를 휘둘러도 황소뿔은 꺽이지 않았다.

"참, 최영의 씨. 당신은 앞으로부터 황소뿔을 치고 있는데 뒤로부터 쳐보시 오. 소뿔은 앞으로부터 덤비는 적을 무찌르도록 되어있으니 앞으로부터의 충격 에는 강하지만 뒤로부터의 충격에는 약할지도 모르겠소" 도살장 사무소장의 도움말이었다.

좌절감에 사로잡혀있던 최영의는 다시 용기 를 얻어 6살짜리의 큰 황소에 다가가서 이번에는 수도를 날려 뒤로부터 비스듬 히 뿔을 쳤다. '와아!' 구경하고 있던 도살장의 관계자들이 함성을 질렀다. 뿔 은 날라갔다. 처음에는 정권으로 쳐서 황소를 쓰러뜨리는 것도 실패였다. 어떻게 하면 정권 만으로 황소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최영의에게 도움 말을 준 것은 도살장에 오래 근무했던 노인이었다.

"어때요. 황소의 급소를 쳐보면...?"

"급소가 어딥니까? 미간이 아닙니까?"

"아니오. 사람하고는 달라서 귀밑입니다"

"귀밑이라..."

최영의의 정권을 귀밑에 맞은 황소는 공중에 뜨듯 쓰러졌다. 물론 언제나 성 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47마리의 황소와 대결, 4마리를 즉사시킨 최영의는 1952년부터 세계를 돌며 중국의 쿵후, 프랑스의 사바테, 브라질의 카포에라, 발 리송 권법, 미국의 프로레슬러 등과 차례로 실전을 벌여 무패를 자랑, 온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 요르단의 후세인 왕, 모나코의 핫산 왕 등 여러사람 의 국가원수들이 그에게 호신술을 배웠으며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으로 이 름을 떨친 숀 코넬리, 한스 돌프 랑그렌도 최영의의 제자이다.

한국계 공수도인 극진공수에서는 다른 유파보다도 한국계 선수들의 활약이 두 드러진다. 1971년 제3회 전일본선수권대회 준우승자인 조태언(曺泰彦, 일본이름 大山 彦), 1973년 제5회 전일본선수권대회 우승자이자 1975년 제1회 세계선수권 대회 준우승자인 노초웅(盧初雄, 일본이름 盧山初雄)도 한국계 선수들이다. 또 요즘 [극진가라데의 별]로 눈부시케 떠오르고 있는 제일동포 문장규(文章 圭, 일본이름 松井章圭)는 1985년, 86년의 제17회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2연패 를 이룩한 뒤,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했다.

극진공수는 손으로 상대방의 안면공격 또 낭심공격 등 몇가지 만을 금지하고 자유롭게 공격을 허용하고 있어 선수들의 건강보호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최영의 관장은 "거의 모든 무도가 지나치게 스포츠화 되어 가고 있는 지금, 극진공수처럼 격투기의 원점 가까이 머물러 있는 무도가 하나 쯤은 있어도 좋다고 생각한다"는 굳은 신념을 지니고 있다.

끝. 고두현 기자.

 

 

스포츠진화론과 태권도, 태껸



스포츠들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얼마전 문화관광부가 한국문화상징물 가운데 하나인 태권도의 홍보화보와 영상물제작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나를 조금 놀라게 만든 것은 문화관광부가 태권도홍보상의 약점으로 하다고 지적한 점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중국의 쿵후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액션스타 이소룡의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부터다.

일본의 가라데만 하더라도 재일동포 고(故) 최영의(일본이름 오오야마 마스다쯔) 관장이 맨손으로 황소 뿔을 꺾고 세계를 돌며 다른 격투기의 고수들과 대결한 일대기가 만화주간지인 에 극화로 연재되어 많은 인기를 모으고 난 뒤에야 일본무도계에서 유도 못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최영의 관장은 생전에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라데가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프로레슬러 역도산(한국이름 김신락)과 액션스타 이소룡의 공이 컸다. 역도산이 프로레슬링에서 휘둘렀던 가라데촙(KARATE CHOP)이 진짜 가라데 기술이냐 아니냐를 떠나 가라데라는 무도를 많은 사람들에게 선전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이소룡의 통쾌한 쿵후영화는 같은 동양의 무도인 가라데를 알리는 데에도 적지 않게 이바지했다.”

그러고 보면 양진방 교수(용인대)의 “격투기는 카리스마를 지닌 영웅을 통해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마련이다.”라는 말은 맞는 셈이다.

태권도인을 소재로 삼은 재미있는 액션영화나 TV시리즈가 나왔더라면 태권도도 쿵후나 가라데보다 앞서서 한국고유의 무술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에서는 몽고씨름, 고대 인도권법, 중국권법(남권, 북권, 소림사권) 등이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의 격투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최영의 관장은 그의 저서 에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경지(경희대), 고(故) 김광성(용인대) 두 교수가 함께 지은 에서는 “고구려 제 10대 산상왕 13년(209년)부터 427년까지 수도로 정해졌던 환도성의 무용총 현실벽에 그려진 태권도의 원류로 보아야할 겨루기의 그림은 달마대사가 중국에 들어간 해보다 93년 내지 311년 앞서있음으로 태권도는 소림사권법의 영향을 받지 않고 탄생한 한국고유의 격투기”라고 쓰여져 있다.

태권도의 고(故) 홍종수 원로도 생전에 “북태남권(北跆南拳)이라는 말대로 태권도는 북방계 격투기로서 태(跆=다리)를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인 무도다.”라고 말했다.

무도철학의 신체적 발현인 태권도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물놀이, 탈춤 등처럼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다.

일본의 이름난 스포츠전문 잡지인 의 ’88 서울올림픽 특집호는 태권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아마도 한국인이 낳은 문화유산 가운데 태권도처럼 세계적으로 보급된 문화는 없을 것이다. 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이조의 도자기나 현대의 자동차보다도 어쩌면 김치나 갈비보다도 온 세계에 널리 퍼져 침투한 것이 태권도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에서는 태권도가 한국고유의 무도라는 사실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19세기에 다윈의 사상으로부터 나온 진화론(DARWINISM)은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진화론(SOCIAL DARWINISM)으로서의 적자생존(適者生存=생존경쟁에서 외계의 상태나 변화에 적합하거나 잘 적응하는 것만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멸망하는 일)이라는 개념을 낳았다.

진화론은 스포츠의 세계에도 도입되어 스포츠진화론(SPORTS DARWINISM)이라는 개념이 각광을 받고있다.

스포츠도 시대상황에 따라 진화를 해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사라지고 만다는 주장이다. 일본 고유의 무도라는 유도(柔道)의 유능제강(柔能制剛=부드러운 것이 능히 굳센 것을 이김)이라는 발상의 바탕인 (柔)는 중국의 무도인인 진원빈이 일본으로 건너가 전해준 것이란다.

근대유도의 기술 가운데도 한국씨름, 몽고씨름, 러시아의 삼보 등의 기술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일본유도는 옛부터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진화하고 있다.

일본의 가라데만 하더라도 중국의 남권(南拳)이 오끼나와에 전해져 중국을 가르치는 가라데(唐手)로 자리잡았다.

중일전쟁과 2차대전을 계기로 당시 적국(敵國)이었던 중국을 뜻하는 가라(唐)를 피하기 위해 발음이 같은 가라(空)를 붙여 오늘날의 가라데(空手)가 된 것이다.

일본본토에 가라데가 오끼나와로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고작 1920년대의 일이다.

따라서 가라데에 대한 인식은 일본에서도 초기에는 낮아 최영의 관장은 “사실 2차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가라데의 이미지는 나빠 맨손무도를 다룬 영화에서는 언제나 좋은 사람은 유도인이었고 나쁜 사람은 가라데인이었다.”고 돌이켰을 정도다.

복싱도 진화하고 있다. 지금은 복싱의 대표적인 전법으로 꼽히고 있는 경쾌한 다리놀림을 살린 히트 앤드 어웨이(HIT AND AWAY)가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892년 짐 코베트(미국)가 당시의 헤비급 세계챔피언 존 설리번(미국)을 21회 KO로 물리친 타이틀매치에서였다.

또 지금은 널리 쓰이고 있는 명치끝치(SOLAR PLEXUS BLOW)가 처음 선보인 것도 1897년 봅 피치몬즈(미국)가 헤비급 세계챔피언 짐 코베트를 14회 KO로 이기고 왕좌에 올랐을 때였다.

잽이라던지 더블펀치 등도 20세기 들어서야 널리 쓰이게 되기 시작한 기술들이다.

태권도도 눈부신 진화를 이룩함으로써 온 세계 지구가족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무도 스포츠다.

일본의 격투기전문 잡지인 (88년 12월호)은 이렇게 썼다.

“지금 치러지고 있는 태권도는 한국전통무예인 태권도가 아니라 경기스포츠로서의 태권도다. 안전성에 대한 배려, 알기 쉬운 승패, 기타 경기를 성립시켜 갖가지 요소를 지금의 태권도는 모두 갖추고 있다.”

태권도의 뿌리는 태껸이다. 하지만 경기기술만 하더라도 나래차기, 뒤돌려차기 등 새로운 기술개발로 꾸준히 진화를 이룩해나가고 있는 현재의 태권도는 태껸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태껸이란 한마디로 한국무도의 근원이다. 태권도도 태껸으로부터 태어났다.

태껸을 현대적인 스포츠로 만든 것이 태권도다. 태껸과 태권도의 차이는 태권도가 직선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는데 견주어 태껸의 움직임은 곡선적이고 또 종합무도이기 때문에 태껸에는 기술에 제한이 없어 손에 의한 안면공격과 메치기기술도 있다는 점 등이다.”(정경화 태껸지도자)

그러나 태권도와 태껸의 가장 큰 차이는 태권도가 무도스포츠로서 꾸준히 진화해나가는 반면 태껸은 진화를 꿈꾸지 못하고 한국고유무예의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무도의 화석(化石)으로 남아있어야만 한다는 점이 아닐까?

만약 태껸이 진화를 시도할 경우 그 원형을 잃게되어 무형문화재로서의 뜻을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결국은 합리적 무도스포츠인 태권도의 뒤를 따르는 결과밖에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월간 "태권도" 7월호中에서 

최배달이 누구져??

최배달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느 나라사람이고 누구져?? 최영의 - 영원한 강자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최영의 명인은 우리에게 최배달이란 이름으로 보다 더...

최배달이 누군가여??

누구져?? 194,50년대 가라데의 실전성을 스스로 증명한 사람입니다. 거의 무신에 가까운... 최배달, 최영의 라는 이름의 한국인 이었으나 일본으로 귀화했고 '오오야마 마스타츠...

쌈 젤 잘하시는 형님은 누구져??

... 방학기씨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1989.8.11~1993.7.20 스포츠서울 연재) '의 주인공이며 최배달이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국산 영화 '넘버3'에서 송강호가 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