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선수에 관해서

박지성 선수에 관해서

작성일 2010.03.10댓글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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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선수의 지금까지의 인생을 적어주세요 어느 대학교에 갔고 또 무슨 대회에나가서 무엇을 했는대 등등 자세히 써주세요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안녕하세요. 답변드리겠습니다.

 

위키디피아 프로필로 소개 해드리겠습니다.

 

개요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 출생으로 세류초등학교,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 명지대학교 졸업하였다. 활동량이 넓고 경기장 전체를 폭넓게 뛰어도 체력이 남는 강철 체력을 소유했다는 의미로 '산소 탱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휘날리는 머리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여드름 자국과 시골 사람 같은 외모로 인하여 '고구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 이후, 팀 동료들이 박지성에게 '지(Ji)'라는 애칭을 붙여주기도 하였다. 또 경기장 어디든지 순식간에 나타나 공을 뺏는 모습을 두고 그의 소속팀 동료 파트리스 에브라는 '유령'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유소년 생활

 

수원공업고등학교 시절

수원시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6학년 때는 5회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할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어려서는 체격이 왜소해서 아버지가 각종 보양식을 챙겨 먹였을 정도였고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심한 훈련이 성장에 차질을 가져올 까봐 수원공업고등학교 이학종 감독은 박지성에게 가벼운 훈련만 시킬 정도였다고 한다.

 

명지대학교 시절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학교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명지대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2000년 하계 올림픽 축구 대표팀과 연습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당시 올림픽 대표팀 허정무 감독에 의해 올림픽대표로 선발되었다.

 

교토 퍼플 상가

2000년 명지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신에게 스카웃 제의를 보낸 일본 J리그 시미즈 에스펄스 대신 연봉 5000만 엔 (당시 약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과 주전급 대우를 보장한 교토 퍼플 상가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황선홍 등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고참급 선수들이 높은 대우를 받으며 일본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지성이 어린 나이에 당시 하위권이던 교토 퍼플 상가로 이적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후 3년간 그는 교토 퍼플 상가에서 당시 팀 동료이던 마쓰이 다이스케, 미우라 가즈요시 등과 함께 맹활약을 펼쳤다. 팀이 2부로 강등된 후에도 팀에 잔류하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이끌었다. 2003년 1월 1일에는 일본 FA컵 대회격인 일왕배 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맞아 0-1로 뒤지던 후반 7분 프리킥을 받아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팀의 2-1 역전승을 도우면서, 교토 퍼플 상가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는데 크게 기여했다. 교토 퍼플 상가는 박지성을 잔류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그는 유럽 무대에 도전하기로 하였다.

 

PSV 에인트호번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활약으로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한 박지성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계약기간 3년 6개월에 연봉 100만 달러라는 조건으로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다. 사실 새로운 나라로의 이적이 두려웠지만 도전정신으로 네덜란드로 떠나게 되었다. 2003년, 이적 초기에는 월드컵 이후 소속팀에서 무리한 출전으로 인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펼쳤다.이 때문에 홈팬들로부터도 야유를 받을 정도에 이르렀고, 플레이가 위축되는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팀 동료 마르크 판 보멀도 박지성의 부진한 플레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할 정도였다.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 또한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그를 주로 원정 경기에만 출전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부상 치료후 서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점점 발군의 기량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팀내 주요 선수로 발돋움했다.특히 윙어 아르연 로번과 골게터 마테야 케주만 프리미어리그로 떠난 04-05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네덜란드 언론의 예상을 뒤집고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시를 제패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또한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입성함에 있어서 공격진의 핵심선수로서 활약하였다. 당시 박지성이 PSV 에인트호번에서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하였는지는 다양한 증거들로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마르크 판 보멀은 지난 시즌 불만을 표시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인터뷰를 하였으며,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AS 모나코전과 8강 올랭피크 리옹전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프랑스 해설가들은 박지성의 활동반경과 위협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내내 찬탄을 보냈다.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AC 밀란과의 원정 1차전 0-2 패배 이후 실낱같은 희망만을 가지고 있던 PSV 에인트호번의 홈 2차전 예상에서 네덜란드의 축구 레전드 요한 크라위프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박지성의 발 끝 일 것'이라고 평했고, 요한 크라위프의 말처럼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2차전 경기 초반 디의 640분 무실점 기록을 종결짓는 선제골을 기록하며 최초로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서 골을 터뜨린 대한민국 선수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PSV 에인트호번은 박지성의 선제골과 필립 코쿠의 2골을 포함 3-1로 승리하여, AC 밀란과 승점과 골득실 부분에서 모두 동률을 이루었으나, 원정 다득점원칙에 따라 결승에는 오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경기 내내 종횡무진 활약을 보였던 박지성은 외신들의 찬사를 받았고, 당시 박지성을 상대했던 선수인 젠나로 가투소는 박지성을 마크했던 일이 괴로운 기억이었음을 추억하는 내용의 에세이를 일본 축구잡지에 송고했으며, 시즌 종료 이후 박지성의 거취가 화두에 오르자 주장이었던 필립 코쿠는 박지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내용의 칼럼을 제기하였다.

무엇보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그렇게 박지성을 괴롭혔던 PSV 에인트호번 팬들의 야유가 열광적인 '위숭 빠르크' 송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환상적인 시즌을 보낸 박지성에게 들려온 소식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부터의 관심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AC 밀란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두 경기 모두 0-1 패배로, AC 밀란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PSV 에인트호번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AC 밀란과의 4강 2차전 홈경기에서 불과 전반 9분만에 순간적인 돌파를 통해 선제골을 기록하였고, 이것을 주목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 영입을 결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계약을 하고서, 2005년 7월 14일 입단식을 갖고 등번호 13번을 배정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공식 입단하였다. 2005년 7월 23일 홍콩에서 열린 홍콩 프로 선발팀과의 친선경기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입단 이후 첫 공식 경기를 가졌고, 7월 26일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현대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잉글랜드 무대에서는 2005년 8월 13일 에버턴 FC와의 프리미어리그 원정 경기에서 데뷔하였고, 12월 21일 버밍엄 시티 FC와의 풋볼 리그 컵 원정 경기에서 잉글랜드에서의 첫 골을 넣었다. 그리고 2006년 아스널 FC 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뒤늦게 신고하였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할 때, 큰 기대를 받았지만 상당수의 대한민국 축구 팬들은 박지성이 후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첫번째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스쿼드 로테이션의 한축을 담당했다.

박지성은 주로 오른쪽 윙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왼쪽 윙인 라이언 긱스와 번갈아가며 출전하였으며, 2006년 9월 10일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얻은 부상으로 수술후 회복에 성공해 12월 18일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와의 원정경기에서 복귀했다. 수술 후, 박지성은 우려와 달리 예전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2007년 3월 31일 블랙번 로버스 FC전에서 1골 1도움을 넣는 활약을 펼친 후, 무릎 부상을 입어 선수생명의 연장을 위해 2007년 4월 28일 미국콜로라도에서 리차드 스테드먼 박사의 지도 하에 수술을 받았고, 재활을 모두 끝마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공식 한글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복귀전에서 골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팀이 2006-07시즌에 우승함에 따라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다. (최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험자는 2001-02시즌 일본 이나모토 준이치이다. 당시 이나모토 준이치 아스널 FC 소속이었지만, 리그 경기의 4분의 1 이상 출전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해 메달을 받지 못했다. 둥팡줘도 같은 이유로 메달을 받지 못했다.)

2008년 3월 1일, 박지성은 풀럼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긴 재활 기간에서 돌아와 폴 스콜스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받아넣으며 2007-08시즌 첫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상 복귀 이후 3월 한달 간 꾸준한 선발 기회를 잡지 못했던 박지성은 국내에서의 출장 기회에 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8년 4월 2일 UEFA 챔피언스리그8강 1차천 AS 로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장하여 후반 웨스 브라운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하며 웨인 루니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 또한 며칠 후인 4월 6일, 그는 미들즈브러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카를로스 테베스와 교체되어 들어가 웨인 루니에게 결정적인 동점골 어시스트를 함으로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2008년 4월 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다시 선발 출장한 박지성은, 엄청난 활동량을 보이며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로써 1-0(총합 3-0)으로 승리한 유나이티드는 4강에 진출하였고, 박지성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 시즌 동안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는 기록을 이루어냈다(2004-05 PSV 에인트호번, 2006-07·2007-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4월 23일 4월 29일, FC 바르셀로나와의 준결승전에서 두 경기 모두 선발 출장하였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합계 1-0으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하였으나, 정작 박지성은 5월 21일 결승전에서 갑작스런 명단 제외로 출전하지 못하였다.

2008-09 시즌 초반에는 나오지 못하다가 2008년 9월 21일 첼시 FC와의 원정 경기에 시즌 첫 출장했고, 이 경기에서 선제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9년 3월 7일 풀럼 FC와의 FA컵 원정경기에서 후반 36분 팀의 네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긴 침묵을 깼다. 5월 2일에는 미들즈브러 FC와의 프리미어리그 3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후반 6분 팀의 두번째 골을, 5월 5일에는 아스널 FC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준결승 2차전 원정경기에서 전반 8분만에 선제골을 성공시키며 두 경기 연속 골을 터뜨렸다. 이 경기에서 그는 후반 16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성공시킨 팀의 세번째 골에도 관여하고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을 하며 90분 풀타임을 소화하였다. 이로써 그는 최근 불거졌던 골 결정력 부족 논란을 불식시켰다. 2009년 5월 1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벌어진 아스널과의 리그 37라운드에서 후반에 교체출장하여 골네트에 공을 꽂았으나 아쉽게도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다. 이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 통산 18회,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11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2009년 5월 27일 벌어진 UEFA 챔피언스리그 2008-09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66분간 활약함으로써, 이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국가 대표 생활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에서 라오스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다. 2002년 FIFA 월드컵 2006년 FIFA 월드컵 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특히, 2002년 FIFA 월드컵에는 주전 미드필더로 맹활약하여 대표팀 4강에 큰 공헌을 하였다.

2004년 하계 올림픽 당시에 박지성 차출을 놓고 대한축구협회 PSV 에인트호번 사이에 갈등을 빚었고, 결국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 2004년 AFC 아시안컵에 차출하기로 결정하였다.

2002년 월드컵 직전의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친선경기,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2차전 프랑스전에서 골을 넣으며, 강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2002년 6월 14일, 인천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2002년 FIFA 월드컵 예선 3차전에서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켜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이 골은 축구팬들이 뽑은 '2002년 최고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10월,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명단에서 제외되자 국가대표팀 주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 계속 주장을 맡고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5골로 대한민국 팀의 최다 득점자가 되었으며, 대표팀이 무패로 본선 직행하는데 기여하였다.

 


 

경기 스타일

좌, 우, 중앙 어느 위치에서나 뛸 수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이며, 수비 가담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넓은 행동 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너가 가장 큰 특징으로, '산소 탱크', '세 개의 폐'(three-lung Park)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열심히 뛰는 선수로 인정받는다. 패싱 능력과 스피드도 수준급이며, 공을 다투는 경합 상황에서 집중력과 근성이 돋보인다. 특히 공간 활용 능력과 영리한 움직임으로 정평이 나 있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이 점을 수 차례 칭찬한 바 있다. 또한 박지성은 수비형 윙어라는 새로운 포지션의 장르를 개척한 다재다능한 윙어이다. 경기장의 모든곳을 누비고 다닐 정도로 활동량이 많은 박지성은 윙어임에도 불구하고 수비능력도 뛰어날 뿐만아니라 공격력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보이고 있다. 동료를 활용하는 팀 플레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 외

  • 2002년 아시안 게임 당시에는 '축구팬들이 가장 기대하는 선수'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하여 활약하자, '2005년 포털사이트 최다 검색어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 2008년 창설된 지 2년이 된 K3 리그가 개막하자,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 종교는 불교이다.

 

 

주요 미디어

  • KBS 여유만만 - 피와 땀으로 얼룩진 눈물 겨운 가족 사랑》 (2009.07.30)
  • MBC MBC스페셜 -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 (2009.04.19)

 

 

선수 경력

  • 2000년 ~ 2003년  교토 퍼플 상
  • 2003년 ~ 2005년  PSV 에인트호번
  • 2005년 ~ 201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 FC

 

국가 대표 경력

  • 2000년 하계 올림픽 대표
  • 2000년 AFC 아시안컵 대표
  •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표
  • 2002년 FIFA 월드컵 대표
  • 2004년 AFC 아시안컵 대표
  • 2006년 FIFA 월드컵 대표

 

수상 경력

 

 

개인

  • 2001년 - J2리그 MVP 수상
  • 2001년 - J리그 베스트 XI 선정
  • 2002년 - J리그 베스트 XI 선정
  • 2002년 - 엠파이어스 컵 MVP 수상
  • 2002년 - 체육훈장 맹호장
  • 2002년 - 일본 오사카경제법률대학교 표창장
  • 2002년 -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
  • 2003년 - 피스컵 골든볼 수상
  • 2005년 - KNVB 컵 MVP 수상
  • 2005년 - 에레디비시 베스트 XI 선정
  • 2005년 - UEFA 챔피언스리그 베스트 XI 선정
  • 2005년 - UEFA 클럽 풋볼 어워즈
  • 2005년 - 유로스포츠 베스트 XI 미드필더 부문 선정
  • 2005년 - 에스콰이어 '한국을 빛낸 10명의 남성'
  • 2005년 - 타임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 20인'
  • 2005년 - 환경 재단 선정 '세상을 밝게 한 100인'
  • 2006년 - 한국 방송 프로듀서 선정 올해의 스포츠 스타
  • 2007년 - 세계 경제 포럼 선정 차세대 지도자
  • 2008년 - 슈퍼매거진 슈퍼어워즈 아시아 선수상 수상
  • 2009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3월 MVP 수상

 

교토 퍼플 상가

  • 일왕배 전일본 선수권 우승 1회 (2002년)

 

PSV 에인트호

  • 에레디비시 우승 2회 (2002-03 시즌, 2004-05 시즌)
  • 에레디비시 준우승 1회 (2003-04 시즌)
  • KNVB 컵 우승 1회 (2004-05 시즌)
  • 요한 크라위프 실드 우승 1회 (2002-03 시즌)
  • 요한 크라위프 실드 준우승 1회 (2004-05 시즌)
  •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회 (2004-05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프리미어리그 우승 3회 (2006-07 시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 프리미어리그 준우승 1회 (2005-06 시즌)
  • FA컵 준우승 1회 (2006-07 시즌)
  • 풋볼 리그 우승 3회 (2005-06 시즌, 2008-09 시즌, 2009-10 시즌)
  • FA 커뮤니티 실드 우승 2회 (2007-08 시즌, 2008-09 시즌)
  •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2007-08 시즌)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1회 (2008-09 시즌)
  • UEFA 슈퍼컵 준우승 1회 (2008-09 시즌)
  • FIFA 클럽 월드컵 우승 1회 (2008년)

 

국가 대표팀

  • 2000년 AFC 아시안컵 3위
  • 2002년 FIFA 월드컵 4위

 

대외 활동

  • 청소년위원회 홍보대사 (2005년 11월)
  • 아시아나항공 명예 홍보대사 (2007년 5월)
  • 경기 국제보트쇼 및 코리아 매치컵 세계요트대회 홍보대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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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선수는 부모님이 축구를 하는것에 대하여 반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축구를 포기하지 않을것이라는 말로 설득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작은 체격과 매우 기술적으로 영리하게 잘 하지만 눈의 띄지 않는 움직임으로 대학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때 허정무 감독이 박지성선수의 가능성을 보아 , 올림픽 대표로 뽑혓지만 주변 언론의 비난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죠.

 

하지만 그때 히딩크 감독을 만나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뛰고, 그떄의 활약으로

 

히딩크 감독과 함께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영표와 함께 이적합니다.

 

그러나 PSV에선 동양인을 무시하고 주변 환경으로 인해 홈팬들의 야유까지 받으면서

 

축구를 하기 싫어하기 까지 합니다.

 

하지만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고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면서 PSV 베스트 플레이러로 뽑히고

 

AC밀란과의 4강전에서 골을 넣으면서 맨유의 퍼거슨 감독 눈에 들어 맨유로 이적하게됩니다.

 

PSV 시절 박지성 선수 기록은

 

2002/03년 시즌
8경기 출장, 골 없음

2003/04년 시즌
28 경기 출장(선발 19, 교체 9), 6 골. 2 어시스트
챔피언스 리그 5경기, UEFA컵 5경기(1 어시스트), 암스텔컵 1경기

 

2004/05년 시즌
28 경기 7골(선발 27, 교체 1)
2004/05년 시즌 암스텔컵
3경기 2골

 

맨유에 이적해서는

 

05/06

리그 33경기 1골 7어시, FA컵 2경기 , 리그컵 3경기 1골, UEFA 6경기

 

06/07

리그 14경기 5골 2어시, FA컵 5경기 1어시 , UEFA 1경기

 

07/08

리그 12경기 1골 1어시 FA컵 2경기 UEFA 4경기 1어시

 

08/09

리그 25경기 2골 2어시, FA컵 3경기 1골 , 리그컵 1경기, UEFA 8경기 1골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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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 출생으로 세류초등학교,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 명지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활동량이 넓고 경기장 전체를 폭넓게 뛰어도 체력이 남는 강철 체력을 소유했다는 의미로 '산소 탱크'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 ji라는 별명도 있다.

첫번째팀은 교토퍼플상가 였고 네덜란드의psv아인트호벤에서 응원가가 '지성부르크'라는 응원가가있었고,지금은 아시다시피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최강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에서 뜁니다.

예전엔 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요즘은 공격형 미드필더입니다.

또 챔피언스리그에서 한국인최초로 골을는적도 있고요,상은 차범근축구상,또 스포츠 스타상을타기도하였습니다.

제가아는 정보는 여기까지네요.

죄송합니다.

꼭 도움되시길 바랍니다.

profile_image 익명 작성일 -

박지성 선수= 세류 초등학교>안용 중학교>수원 공고>??대학

키 작아서 1년 동안 개구리 먹고 ..우웩!

평발이였지만 두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고 불릴 만큼 체력이 강해서 성공 했다.

 

2002/03년 시즌
8경기 출장, 골 없음

2003/04년 시즌
28 경기 출장(선발 19, 교체 9), 6 골. 2 어시스트
챔피언스 리그 5경기, UEFA컵 5경기(1 어시스트), 암스텔컵 1경기

 

2004/05년 시즌
28 경기 7골(선발 27, 교체 1)
2004/05년 시즌 암스텔컵
3경기 2골

 

맨유에 이적해서는

 

05/06

리그 33경기 1골 7어시, FA컵 2경기 , 리그컵 3경기 1골, UEFA 6경기

 

06/07

리그 14경기 5골 2어시, FA컵 5경기 1어시 , UEFA 1경기

 

07/08

리그 12경기 1골 1어시 FA컵 2경기 UEFA 4경기 1어시

 

08/09

리그 25경기 2골 2어시, FA컵 3경기 1골 , 리그컵 1경기, UEFA 8경기 1골

 

더 자세히 알려면' 꿈을 향해 달려라 '책 봐보세요.

박지성 선수에 관해서...

... 박지성 선수에 관해서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박지성 선수 괭장히 좋아하긴 하지만... 박지성 선수 하는 플레이를 보면 어떤때는 공격적 어떤때는 수비적... 박지성...

박지성 선수에 관해서

박지성선수의 지금까지의 인생을 적어주세요 어느 대학교에 갔고 또 무슨 대회에나가서 무엇을 했는대 등등 자세히 써주세요 안녕하세요. 답변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박지성 선수에 관해서

... 제가 박지성 선수 팬입니다 그런 나쁜 의미로 ~ 빠 말구요 박지성선수 제가 초딩 4학년때 월드컵 이 햇거든요 ? 그때 와 저선수 진짜 잘될거 같다 라고 생각햇는데 그선수가...

박지성 선수에 관해서

... 박지성 선수는 맨유에서 이번 년도 까지 몇년 동안 뛰고 잇나요? 2. 교토퍼플 ~ 맨 유 까지 선수생활동안 네임벨류 잇는 선수들 누구누구랑 같이 뛰어봣나요 .. 은퇴한...

박지성선수에 관해서 질문하나 던집니다!

저는 현재 중2이며 순천중학교의 축구부인 한 학생입니다 한떄 박지성선수가 좋아 축구를 했건만 요즘들어 부쩍 그가 잘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런 뛰어난 체력과...

맨체스터UTD 박지성선수 친구에관해서;;

제가 2002 년때 박지성선수를 처음봤거든요;; 한 일 월드컵때요;; 그뒤로 2009년까지 약 7년팬인데욤;; 진짜 광팬이거든요... 박지성선수 맨유 들어가고, 박지성선수가 나오는...

축구선수 박지성의 실력에 관해서

... 했지만 박지성선수가 팀에 엄청난 관여를 했구요. 이처럼 박지성선수는 중요한 경기에서 많이 중용되는 선수입니다. 지금 맨유 8년차에 접어드는 박지성인데요 지금까지...

박지성 선수와 반니스텔루이 선수에...

... 그리고 반니선수가 레알로갈때 박지성선수에게 뭐라고 말했나요???? 그리고 반니선수는 지금 레알에서 등번호가 몆번인가요??? 그리고 반니선수가 레알에서 페널티킥을...

맨유vs셀틱전 박지성선수 81분쯤에...

다른선수들 교체할때는 함성 안지르던데 박지성선수 교체하니까 함성을지르더라구요... 어시스트에 관해선 긱스와 함께 팀 내 공동 3위에 오르는 등 호평을 받았죠.(빼앗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