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유구한 축구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잉글랜드는 축구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 핵심이 바로 프리미어리그(Premier League)의 배경이다.
130여년전인 1863년 축구협회(Football Association)의 창설을 통해 잉글랜드축구는 조직적인 기관으로 태동하게 되고, 1871년 이후 현재의 『FA』라는 명칭의 대회를 설립하기까지 잉글랜드는 근대 축구의 기틀를 확립한다.
FA컵의 탄생후 아크링튼, 번리, 블랙번 로버즈, 볼턴 원더러스, 에버튼 등 12개의 클럽에 의해서 영국의 정식리그가 출범한다.
출범과 함께 1부격의 리그를 구성한 이들 클럽들은 큰 변화없이 명맥을 유지해오다, 1891년 2개팀이 증가하였고 1898년엔 총 18개의 클럽이 리그에 참여하게 된다. 팀이 증가함에 따라 하위리그의 출범또한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1892년 단일체제형식의 리그는 두개의 디비젼(Division 1, Division 2)으로 구성되어지고, 1920년부터는 남부와 북부의 지역적인 리그 즉, 디비젼3과 4가 출범하게 된다. 현재 잉글랜드 4개의 디비젼의 역사는 이미 이때 시작된거나 다름없고 다만 1958년 디비젼3과 4의 지역적인 리그 구분이 아닌 통합된 리그의 시즌으로 운영된다.
이렇듯 잉글랜드는 1부와 하부리그의 균형잡힌 체제운영과 변화의 모색으로 발전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잉글랜드는 유럽내 타 리그의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리그가 바로 그들이다.
타리그의 도전에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하던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1992년 자국내 리그의 명칭을 바꾸는 중대한 결정을 한다. 이것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리그라 불리는 프리미어리그의 창설배경이다. 이후 프리미어리그는 축구산업의 전반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축구시장의 저변을 위한 마케팅과 홍보, 클럽내 최첨단 정보 시스템 보유, 그리고 에이젼트와 선수의 철저한 역할분담 등 잉글랜드의 축구는 더욱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방향으로 거듭난다.
92-93 시즌은 프리미어리그라는 명칭을 갖고 열리는 첫번째 리그였다. 총 22개의 클럽이 리그에 참가한 가운데 우승컵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몫이었다. 리그 우승트로피를 가장 많이 차지한 클럽은 통산 18회의 기록을 갖고 있는 리버풀이다. 그 다음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2번, 아스날은 11번의 우승컵을 안았다. 94-95 시즌부터 20개의 클럽이 리그에 참가한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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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09~201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첼시는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7승4무7패·승점 85)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리고 4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무리뉴는 첼시에서 리그 2연패라는 굉장히 훌륭한 일을 해냈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나도 무리뉴와 같은 업적을 남기기 바란다.”
유벤투스를 이끌던 10년 전. 마지막 경기 대역전패의 아픔은 재현되지 않았다. 정들었던 이탈리아 무대를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부임 첫 시즌 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지도력을 입증했다.
첼시는 9일 자정(한국시간) 영국 런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2009~201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위건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8-0 대승을 거뒀다.
이 날 승리로 승점 86점(27승5무6패)째를 챙긴 첼시는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7승4무7패·승점 85)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리고 4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패할 경우 우승을 장담하기 어려웠던 첼시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집중력을 발휘하며 안첼로티 감독에게 영국에서의 첫 번째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다. 1995년 레지나를 시작으로 14년간 이탈리아 무대에서만 활약하던 안첼로티 감독이기에 이번 우승의 의미는 남달랐다.
지난해 6월 스탬포드 브릿지에 입성할 당시 “첼시에서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겠다”는 약속은 내년으로 미뤘지만 리그 우승으로 체면치레에 성공했다.
지난해 8월15일 홈 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헐 시티를 상대로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을 치른 안첼로티 감독은 파죽의 6연승으로 초반 순위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감독답게 니콜라스 아넬카 등 개성 강한 선수들의 관리도 어렵지 않게 이뤄졌다.
리그에서는 순항과는 달리 최대 목표인 챔피언스리그 무대는 녹록치 않았다. 선수와 감독 시절 4차례나 정상을 밟았던 경험도 탈락을 막지는 못했다.
안첼로티 감독은 어렵지 않게 조별 예선을 통과했다. 8강행을 놓고 맞서야 할 팀은 바로 인테르 밀란이었다. 안첼로티 감독은 인테르의 영웅으로 떠오른 조세 무리뉴 감독과의 지략 대결에서 완패하며 첼시 팬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내는데 실패했다.
비슷한 시기에는 경질설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때마다 안첼로티는 “내년 시즌에도 나는 첼시를 이끌 것‘이라고 조용히 반전의 기회를 엿봤다.
챔스리그 탈락으로 여론의 몰매를 맞은 안첼로티 감독은 사태를 수습할 겨를도 없이 맨유와의 리그 타이틀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맨유 역시 챔스리그 4강행 실패로 리그에 집중해야 했던 상황.
맨유의 추격이 거세질 무렵인 지난 달 18일, 새롭게 빅4의 한 자리를 차지한 토트넘 훗스퍼에 1-2로 패하며 최대 위기에 봉착한 안첼로티 감독은 남은 4경기에서 승점 12점을 휩쓸며 우승을 차지했고 비난을 찬사로 바꿀 수 있었다.
영국에서의 첫 번째 트로피를 차지한 안첼로티 감독은 다음 주 포츠머스와의 FA컵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FA컵까지 제패하며 더블을 달성하면 런던에서의 입지는 보다 확고해 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