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축구협회가 1872년 축구공을 가죽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규정한 이후 경기장에서 이른바 `돼지 오줌보 공'은 자취를 감췄지만 지난 세기 중반까지 축구공은가죽만 얼기설기 꿰맨 형태로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공인구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월드컵 본선에서 공을 둘러싼 갖가지 해프닝이 속출했다.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서로자기네 공을 쓰겠다고 우겨 전반은 아르헨티나제, 후반은 우루과이제로 경기를 치른일화는 월드컵사의 유명한 촌극으로 기억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런 문제가 확산되자 1970년 멕시코대회부터 공인구를도입했다. FIFA 공인구의 효시인 `텔스타'는 흰색과 검정 5-6각형 조각으로 만든 `점박이' 디자인으로 다음 서독 월드컵까지 사용됐다. 하지만 텔스타는 방수처리가안돼 수중전에 쓰기는 곤란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등장한 완전방수 제품 `탱고'는 바느질 땀의 처음과 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박음질 처리에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향상된 탄력과 회전력으로 공인구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탱고 에스파냐'로 이름을바꿔 1982년 스페인 대회까지 장수한 탱고는 물에 젖어도 무게가 달라지지 않는 전천후 축구공으로 호평을 받았다.
'86멕시코월드컵에서는 축구공이 천연가죽과 결별하는 `외피의 혁명'이 일어났다. 100% 인조가죽(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아즈테카'가 선보인 것. 이어 90년 이탈리아대회에서는 `에투르스코 유니코'가 사용됐다.
이후 공인구의 역사는 반발력을 높이기 위한 쉼없는 연구로 맥을 이어갔다.
'94미국월드컵에 선보인 `퀘스트라'는 폴리우레탄에 기포를 넣어 반발력을 높이는 과학실험이 처음으로 동원된 공인구였다. 전 대회보다 0.5골이나 많은 게임당 평균 2.71골의 골 잔치를 만끽할 수 있었던 것도 몰라보게 좋아진 반발력 덕분이었다.
볼 스피드와 반발력이 향상되자 이번에는 `컬러 공인구'가 첫 선을 보였다. 98년 대회 주최국 프랑스의 3색기(적.청.백)에서 색상을 따온 `트리콜로'는 흑백 무늬에만 길들여져 있던 축구팬들의 시선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트리콜로는 외양의 혁신 뿐 아니라 소재에서도 기포강화 플라스틱(syntactic foam)을 써 볼 스피드를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한일월드컵 본선 무대에 선보이는 `피버노바(Fevernova)'는 예전과는 또다른 과학과 첨단 디자인의 결정체다.
8만회의 충격테스트, 3천회의 내압실험, 300시간의 방수검사를 이겨낸 피버노바는 35m거리의 축구공을 맞히는 `로봇 킥'실험에서도 2천회 중 2-3회만 실패했을 정도로 정확도를 자랑한다.
미세한 고압력 공기방울을 외피 겉면에 규칙적으로 배열해 반발력과 탄성, 회전력을 최고 경지로 끌어올린 피버노바는 시속 150㎞의 캐넌 슈팅과 골키퍼들의 수난을 예고하고 있다.
흰색 바탕에 터빈엔진을 본뜬 황금색 삼각형 바람개비와 붉은색 불꽃문양을 새겨넣은 피버노바는 축구공의 전형으로 통하던 벌집형 디자인에서 완전히 탈피해 신선함을 배가했다.
둘레 68-70㎝, 무게 410-450g의 축구공이 이처럼 변천을 거듭해온 것은 경기의박진감을 높혀 팬들의 흥분을 자아내려는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연합신문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