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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왜 일본에는 개혁을 한번에 밀어붙이는 이세계물 지도자가 나올까?

작성자 익명 작성일 2022-01-09 19:20 댓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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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일본작가들의 상태를 볼 때, 그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일본에는 실제 사례가 있다. 이세계(미국)에서 와서 보수파말 다 씹고 자기 맘대로 개혁을 한 사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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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아는 맥아더 쇼군님이시다

 

0. 국가 위의 국가, GHQ

 

항복 이후 천황과 일본 정부는 문자 그대로 GHQ와 맥아더에게 종속되었음. '문자 그대로'임

 

일본 역사상 맥아더만큼의 막강한 권력을 가진 통치자는 거의 없었음. 하다못해 전근대의 쇼군들도 막부 내부의 알력갈등은 신경썼어야 됐음.

 

맥아더에게는 일본 정치의 자잘한 파벌갈등 같은건 손짓 하나로 치워버릴 수 있는 권능이 부여되었고, 이 권능으로 일본을 '문명화'하겠다는 열망 또한 넘쳤음

1. 일본에 민주주의를 심어주신 맥쇼군

 

1)아새끼들에게 민주 정신을 교육하시는 맥쇼군

 

종전 후에도 일본인 스스로는 민주주의를 잘 이해하지도 못했고, 일본이 쉽게 민주화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음. 요시다 시게루의 일본에 민주주의는 적합하지 않다 드립이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임

 

바로 그 요시다 시게루가 'GHQ는 go home quickly의 약자다'라고 한 농담에서도 보듯, 일본 보수파들은 맥아더가 떠나기만 하면 모든 '비일본적인' 개혁을 백지로 돌릴 생각이었음.

 

보수파의 그 마인드야말로, 맥아더가 그토록 파괴적인 개혁을 실시한 이유임.

 

 

전쟁 말기의 보수파는 여전히 황도사상과 국가 신토를 아새끼들에게 주입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았었음. 패전 직후 문부대신 오타 고조는 각급 교육기관에 훈령을 내려 금후의 교육 또한 황도사상 계승을 기반으로 한다고 명시했고, 후임자 마에다 다몬 또한 '국체호지'로 말만 바꿨지 마인드는 마찬가지였음

 

보수파는 패전했음에도 국가신토, 황도사상 무엇 하나 포기할 생각이 없었음.

 

문부대신 : 우리 자체적으로 평화를 위한 새로운 교육방침을 가져왔음!

 

GHQ : 뭐야 이건? (찌익)

 

자라나는 새싹들이 기존의 군국주의에 오염되지 않도록, 맥아더는 상륙 직후 교과서 개정작업에 들어감. 전국 소학교의 교과서들 중 '불온한' 문구는 죄다 먹칠하고, [소년 소녀를 위한 민주 독본]을 출판하여 학생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학습하도록 함

 

이 민주주의 교육에 대한 맥아더의 노력은 초중고등학교의 '사회' 수업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음. 이름이야 조금씩 다를지라도 한일 교육체계의 사회과 수업은 1946~1947년의 점령정책에서 만들어짐

 

이 사회과(Social studies)는 1934년부터 1942년까지 버지니아 교육위원회가 개발한 '버지니아 플랜'에 기반을 둔 과목으로서, 청소년들의 공통욕구와 민주사회의 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인격적 특성을 발달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음. GHQ 교육정책의 중역으로서 광역교과의 특성을 가짐

 

1950년대 이후 군국주의 사상이 빠르게 물러나고 젊은층 사이에 민주주의가 들어선 것은 우리 맥쇼군님의 교육시스템 일대 전환을 통한 민주교육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음

 

 

2) 여성들에게 자유를 주신 맥아더 쇼군

 

 

일본 역사에서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고 남성과 동등한 수준까지 권리를 끌어올린 것은 바로 맥아더임

 

가좆적인 봉건주의 관습이 그대로 내려온 일본의 법률은 존나 남녀차별적이었는데, 여성은 참정권도 없었고 남자와 동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도 없었음

 

소학교 6학년 이후에는 여학교에 가야했는데, 여학교도 별로 없었을뿐더러 그 질도 그닥

 

남자의 간통은 합법이었지만 여자의 간통은 불법이었음

 

 

여성의 사회진출이 '일본적이지 않다'는 병신 정치인들의 헛소리를 과감하게 무시한 맥아더는 첫 선거에서 여성의원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유도했고

 

첫 의회에서 이 병신같은 간통죄부터 폐지시켰음

 

축첩제는 바로 박살냈고 중고등학교도 남녀공학으로 대거 바꿈

 

보수파 병신들은 씨부렁씨부렁대면서 맥아더 상대로 '일본의 관습'을 존중해달라 했지만 먹히는 건 없었다

 

 

2. 노동자의 어버이 맥아더 쇼군님

 

 

미국의 초기 노동자 정책은 노동조합을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키워내는 것이었음

 

맥아더는 미국의 와그너법을 기반으로 노조결성과 단체협상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조치를 통과시켰음

 

 

점령 초창기의 요미우리 신문 노사투쟁에 있어서 GHQ는 이것이 노동자들의 자발적 민주운동이라는 판단을 내린 뒤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음

 

1945년 GHQ는 노동조합법을 통과시킴으로서 노동조합 결성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었고 일본 정부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려는 행동을 견제했음

 

 

1946년 4월 SCAP 산하 노동과는 노동관계조정법의 영문 초안을 일본 정부에 전달하였고, 그걸 번역한 게 거의 그대로 노동법이 되었음

 

 

초안에 따르자면 행정관청의 노동문제 강제 개입 시도는 봉쇄되었고 사실상 노사협약에 따라 구성된 노동위원회가 노동업무 처리를 맡아보게 되었음

 

당시 일본 정부는 온갖 개지랄을 하면서 어떻게든 행정청이 강제로 노사관계 중재를 시도할 수 있도록 법안을 개정하려 했지만

 

GHQ : 껒져

 

걍 통과됨

 

 

이후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GHQ의 정책은 노동의 정치화 탄압기조로 돌아가지만, 그 경우에도 맥아더의 의중은 노조가 정치세력화 - 빨갱이화하는데 방점을 두었고

 

노동자가 먹고 살자고 하는 파업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대처했음

 

결국 55년 체제까지 가면 노사협치 수준으로 노조활동이 잦아들지만, 일제 시기는 사측이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깔아뭉개는 꼬라지였던 걸 생각하면 이마저도 큰 진보라고 할 수 있겠음

 

 

3. 일본 빈민들의 수호자 맥아더 쇼군

 

 

일본의 GHQ는 점령 시점부터 일본의 사회복지정책을 미국식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뚜렷한 의지가 있었음.

 

당시의 '미국식 사회복지정책'이 뉴딜맛 잔뜩 들어간 정책이었음을 생각해볼 때, 오늘날과 달리 우수한 최첨단 정책의 도입으로 봐도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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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빨갱이가 숨어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맥아더는 사회적 약자들을 구조하는데 큰 신경을 썼음. 미국식 온정주의의 영향도 컸을거임

 

사실상 국민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공공부조로서의 사회복지정책은 GHQ 시기에야 생겨났다고 보면 됨

 

 

더불어 이 공공부조의 급여기준 설정과 업무를 지방정부에게 맡김으로서, 지방자치제도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음(복지업무는 오늘날에도 지방자치단체의 핵심업무임)

 

 

4. 경찰 뚝배기를 깨고 다니신 맥아더 쇼군

 

 

1930~40년대는 군대가 지배한 군국주의 시절이었지만 그렇다고 경찰의 위세가 낮은 것은 아니었음

 

식민지 조선에서 '순사'가 공포의 대상이었다지만, 일본이라고 그게 크게 다르지는 않았었음

 

경찰은, 군인과 함께 '사무라이'의 위상을 물려받은 양대직업 중 하나였고 시민에 대한 치안서비스 제공자로서의 경찰이라기보단 시민을 규율하는 감독관으로서의 경찰이었음

 

전쟁과정에서 군부가 오모시로이하게 박살나자 일본 경찰은 권력 각을 보기 시작한다.

 

 

경찰 : 저 병신같은 파시스트 군바리새끼들 대신 우리가 치안 관리하면서 빨갱이 처리하는 거 도와줄 수 있는데. 우리랑 협조하쉴?

 

GHQ : 니들은.... 파시스트가..... 아니고?

 

 

점령 직후 내려진 조치 타임라인

 

9월 24일 : 신문통제 철폐에 관한 지령

 

9월 29일 : 신문통신 자유에 관한 지령

 

10월 4일 : 일명 인권지령 - 악명높은 치안유지법 및 기타 탄압법령 폐지, 천황 비판의 자유, 특고경찰 폐지, 특고경찰 간부 추방, 정치범 즉각 석방 등등

 

12월 20일 : 정치범의 공민권 부활

 

 

일련의 조치들로 일본 경찰의 사찰/통제 기능은 사실상 뚝배기가 깨진다.

 

 

미국은 영미식 경찰제도를 일부 이식해 일본 경찰을 자치경찰화 하려는 계획이었음

 

미국의 경찰개혁에 의해 일본 경찰은 정치민주화 및 중립화를 위해 공안위원회를 두었고, 이를 내무대신 산하가 아닌 총리대신 '소할'로 두었음

 

'소할' 이 무슨 뜻이냐면 단지 소속만 거기라는 뜻임. 직무에 있어서 감시감독 안받고 지휘권도 없음. 이는 경찰의 중앙통제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함

 

역시 냉전이 시작되면서 어느 정도 퇴보가 있었긴 하지만, 오늘날까지 일본 경찰이 정치색을 빼고 국민 친화적인 이미지로 다가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음

5.토지개혁과 헌법제정

토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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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파괴적이라고 할만한 토지개혁의 결과 맥가는 일본 소작지 80% 를 날려버리고 막대한 자작농을 육성하게 됨

일본 농촌에서 맥가를 맥쇼군으로 모셨던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임

 

 

헌법제정: 미국인인 미군 민정국의 장교 16명과 민간인 8명이 '헌법개정' 절차에 돌입해서 일주일 만에 헌법 만들고

일본 정부 압박해서 통과시킴 10일만에

 

 

결론

토지개혁도 해 줘, 헌법도 만들어줘, 군대와 경찰 뚝배기도 깨줘, 민주주의도 줘, 인권도 개선해줘, 복지제도도 만들어주고 노동자 권리도 개선해주고 남녀평등도 이뤄줌.

맥아더가 한 개혁의 여파는 진짜 현대 일본을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위에서도 말했듯 냉전기조 들어서면서 이 개혁의 상당부분은 후퇴한 게 사실임.

 

그렇다고 해서 맥아더가 했던 게 다 철폐된 것도 아니고, 100정도 나갔던 개혁이 20~30정도 나간것만 해도 엄청난 진전인거임. 맥아더 이전의 일본은 개혁은 커녕 후퇴중이었고, 일본 보수파는 10정도 개혁할 생각이었으니까.

 

 

ㄹㅇ 이세카이 쇼군 맥아더임.

 

우리도 하지같은 멍청이보단 맥아더가 왔어야 했는데

출처: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664640&exception_mode=recommend&page=1

원글은 4개인데 적당히 편집해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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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V지표 profile_image 작성여부

백마를탄 초인 ㄷㄷ

골방철학가 profile_image 작성여부

가난한 환경에서는 빨갱이가 태어난다라.. 좋은글

문틈 profile_image 작성여부

개발도상국 일본의 총력전 역량이 재벌 집단에서 나왔다고 판단해서 재벌도 싹 다 날려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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