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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일본군 구타대왕

작성자 익명 작성일 2021-12-26 18:35 댓글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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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일본군 구타대왕 -cboard

 

니뽄군의 구타왕 하나야 타다시 (1894~1957)

 

1. 1933년 35연대장 시절 군부를 비판한 신문사에 부하들을 데리고 쳐들어가서 기자들을 폭행.

 

2. 1937년 중일전쟁에 연대장으로 참전. 사관학교 동기던 휘하 대대장을 이유도 없이 부하들 앞에서 수시로 폭행

그 대대장은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자살

 

3. 이등병부터 투스타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구타의 대상이 됐고 타다시의 부대에서는 말단 사병부터 고급 장교까지 수많은 정신질환자와 자살자가 속출

 

4. 1944년 2월 버마에 위치한 55사단장으로 부임. 임팔작전에서 조공을 담당하여 무다구치 렌야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

영국군 7사단과 교전을 벌였으나 방어를 뚫지 못하고 후퇴. 패전의 책임으로 수많은 부하들에게 자살을 강요

 

5. 위의 기간동안에 55사단의 보급소가 영국군에게 공격받자 말라리아 환자인 사단 병기부장(대령)을 한달간 매일 폭행

 

6. 그 대령을 보다 못한 부관이 적당히 때리라고 건의했다가 같이 구타당했다. 피해자인 대령은 결국 권총 자살

 

7. 이 사건에 빡친 병기부 소속 병사들과 부사관들이 하나야를 프래깅할려고 사단 병기고에서 지뢰 반출을 시도했다가

장교들이 필사적으로 말려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장교들이 하극상을 시도하는 병사들을 군사재판에 넘긴게 아니라 제발 참으라고 말렸음)

 

8. 어록

부관 : "사단장님, 어째서 저를 때리십니까. 제가 그렇게 미우십니까?"

하나야 : "미워서가 아니다."

부관 : "그렇다면 어째서 때리십니까."

하나야 : "네놈이 때리기 좋으니까."

 

중장이었으므로 전후에 전범재판에 넘겨졌지만 그의 구타대상은 언제나 같은 일본군이었으며

아군 말고 포로나 민간인에게는 사디즘 기질이 발동된 적이 없어서 무죄 처리되고 바로 귀향한다.

 

 

 

*

1955년에 하나야는 <만주사변은 이렇게 계획되었다>(『満州事変はこうして計画された』)라며 취재에 답하는 형식으로 만주 사변 및 관동군의 모략을 증언하기도 했다.

57년 병으로 죽었고 장례식에는 구 만주국 관계자들이 참석해 현직 국철 총재가 장의위원장을 맡고 당시 일본 수상 기시 노부스케가 화환을 보낼 정도로 성대히 장례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하나야의 악행을 뼛속 깊이 증오했던 옛 부하들은 단 한 사람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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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부오러사무국장 profile_image 작성여부

뭐야이새끼는 ㅋㅋㅋㅋㅋㅋㅋ

낙하산포장교육 profile_image 작성여부

결말 ㅅㅂ.. 휘하 부하가 잔인하게 복수하는 거 없음?

니가챔피언 profile_image 작성여부

대한의 독립을 위해ㅠㅠ

김판석 profile_image 작성여부

사실: 하나야 타다시는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전에 (만주사변이 발발한 지역인) 펑톈에서 특무기관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관동군이 만주사변을 일으킬 것이라는 첩보를 누설하여 만주사변 발발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니가챔피언 profile_image 작성여부

"포로나 민간인에게는 사디즘 기질이 발동된 적이 없어서 무죄"

존재안하는닉네임 profile_image 작성여부

ㅋㅋㅋㅋ씨발 렌야 선생이 더 있었네

홍영빈 profile_image 작성여부

“네놈이 때리기 좋으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제카일아바돈 profile_image 작성여부

어둠의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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