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10월 여행기 10. 폴란드 아우슈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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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여행루트를 설정할 때
큼지막하게 어디 들르면 뭘 한다 이렇게 굵직한 것들만 정해놓고
루트를 선으로 연결하고, 세세한건 그때그때 정하는 편임
그리고 폴란드 크라쿠프를 들른다고 정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바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이었음
아우슈비츠는 크라쿠프 버스터미널에서 오슈비엥침 간다고 하면 몇번 정류장 가서 타라고 알려줌
참고로 오슈비엥침은 폴란드식 지명이고 아우슈비츠는 독일식 명칭이라고 함
보통은 현지 발음으로 말하는 게 맞지만, 아무래도 이쪽은 아우슈비츠라는 명칭이 훨씬 유명하니 그쪽으로 가도록 하겠음
아우슈비츠는 가이드투어와 무료 자유투어 두 가지로 나뉜다던데
내가 갔을 때는 가이드투어밖에 안 된다고 해서 그냥 영어 가이드투어로 결제해서 들어감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하면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표어
아르바이트 마흐트 프라이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는 뜻이라는데
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의 수감자들은 노동을 하면 할 수록 죽음에 가까워졌을 뿐이니
정말 기만적인 표어라고 할 수 있음
물론 고통스러운 이승을 떠나게끔 죽음이라는 자유를 주었다 라고 하면 할 말은 없음
아우슈비츠 내부의 모습
건물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는 동안
가이드의 설명을 제외하면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음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음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에 사용한 치클론B
당시 독일에서 사용하던 살충제였는데, 이걸 이용해서 사람들을 가스실에 몰아넣고 학살했다고 함
전쟁 막바지에 연합군이 수용소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난 뒤에 근처 사는 독일 시민들에게 그 모습을 공개한 후에
늬들도 알고 있었는데 모른척 한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
몇몇 일반 독일 시민들은 대량의 치클론B가 수용소로 계속 반입되는 것을 보고
수용소가 매우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었구나 라고 생각했다 라고 했다는데
뭐..판단은 각자 알아서ㅋㅋ;;
사용된 치클론B 용기들
분명 폐용기가 많이 쌓이면 갖다버리고 했을테니 이렇게 쌓여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치클론B를 사용했을텐데
그마저도 가스실에 투입하는 양은 돈 문제 때문에 규정보다 덜 넣어서 가스실 내부에선 죽지 않고 의식만 잃은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고 함
하지만 그건 결코 운이 좋지 않은 케이스였는데, 왜냐하면 시체들을 수거하고 태워버렸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산채로 불에 타 죽었기 때문임
수용소 수감자들은 의류를 포함한 개인물품을 싹다 빼앗겼는데, 그 중에 돈이 될만한 것들은 죄다 간부들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함
사진은 수감자들이 입고왔던 의류와 목발 등의 보조도구임
어린아이의 신발이나 옷 등도 뒤섞여 있었음
그리고 사진에는 없는, 여성 수감자들의 머리카락도 있었는데 이 것이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음
다른 것에 비해서 신체 일부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음
머리카락들이 묶여서 쌓여있는 것을 보면 기괴하기도 하고..
사진이 없는 이유는 머리카락만큼은 사진 촬영 불가였기 때문임
수감자들을 총살할 때 세워뒀던 돌벽
사진 우측의 건물 지하실 독방에 갇혀있다가 여기로 끌려나오면 거의 대부분 총살이었다고 함
건물들은 똑같은 구조로 일정한 간격으로 지어져 있었음
당연하겠지만 굳이 다른 모양새로 지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
물론 수용건물 외의 다른 목적을 가진 건물들은 외형이 다르긴 했음
똑같이 생긴 건물들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수용소 내부를 걷는 내내 답답한 느낌이 들었음
몇십년이 지난 지금 방문해서 자유롭게 걷고 있어도 이런데
당시 수감자들은 어땠을지 참..
가스실 내부의 모습
흘러내린 듯한 검붉은 자국은 당연하겠지만 사람의 피가 굳어서 생긴 자국이고
세로로 나있는 자국들은 죽어가는 사람들이 손톱으로 긁어서 생긴 자국임
그리고 인터넷에서 본 거라 100% 믿긴 그럴 수도 있지만
여기 방문했던 어떤 사람이 가스실에서 자기 손톱으로 벽을 긁어봤는데 손톱이 아플 정도로 긁어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고 함
말 그대로 손톱이 빠질 정도로 긁어야 될 거 같다고 하던데
위에 말한대로 인터넷 썰이라 이건 믿거나 말거나임
아우슈비츠 수용소 투어가 끝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투어가 끝나고
셔틀버스를 타고 비르케나우 수용소로 향함
보통 우리는 아우슈비츠라고 퉁쳐서 다 말하고 있지만
이 곳의 수용소는 총 3개가 있었고 1번이 아우슈비츠, 2번이 비르케나우 수용소임
3번 모노비츠는 나치군이 퇴각할 때 부수고 가서 지금은 없다고 함
따라서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만 방문할 수 있는데
아우슈비츠도 물론 사람들을 가스실에 넣고 죽이곤 했지만 일단은 강제노동 수용소라서 싹다 죽인건 아니었는데
비르케나우는 '절멸'수용소임
말 그대로 수감자들을 죽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수용소임
참고로 사진처럼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입구에는 커다란 기찻길이 있는데
수감자들이 처음 수감될 때 저 기찻길을 이용한 열차로 비르케나우 수용소로 도착하여
노동가능여부를 확인하는 심사를 거쳤다고 함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아우슈비츠와 다르게 탁 트인 곳에 수용소들이 일정 간격으로 지어져 있었음
사진을 찍은 곳의 반대쪽도 비슷한 규모였는데, 그쪽은 나치군이 퇴각할 때 파괴하고 가서 흔적만 남아있었음
아마 퇴각할 때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면 아우슈비츠까지 싹다 부수고 갔을 것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이 머물렀던 숙소 내부의 모습
그냥 나무 판자 위에서 죽음을 기다렸다고 보면 됨
아까 말한대로 비르케나우는 절멸을 위한 수용소이기에
노동력을 유지할 레벨의 숙소를 마련해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
마지막으로 다시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입구
가이드 투어가 진행될 때 내가 카메라로 사진찍고 있으니
가이드가 나한테 말을 걸었음
나는 뭐 어디는 사진찍지 마라, 혹은 설명할 때는 사진찍지 말고 들어달라 이런 주의 주는 줄 알았음
(물론 설명할 때는 최대한 설명 듣고, 이동하기 직전에 재빠르게 사진 찍고 따라가고 그랬음)
근데 가이드는 내 국적 묻더니 한국이라고 하니까
사진 찍은걸 한국 인터넷에 많이 올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하더라
솔직히 아우슈비츠에서 본 다른 것들도 많이 기억에 남았지만
가이드의 저 말이 정말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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