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 분쟁

체첸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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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체체니아 공화국과 러시아의 민족분쟁.

러시아 남서부 카프카스 지방에 위치해 있는 체체니아와 잉구셰티아는 두다예프 장군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1991년 11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러시아 연방의 붕괴와 이슬람 원리주의의 파급을 두려워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이들의 독립을 거부하고 군대를 파견했는데, 의회의 반대 및 실력저지에 직면하자 3일 만에 이를 단념하고 병력을 철수시켰다.

1992년 6월 러시아 최고회의가 잉구셰티아를 러시아 쪽에 끌어들이기 위해 잉구셰티아 공화국 수립을 선언함으로써, 체체니아와 잉구셰티아는 2개의 공화국으로 분할되었다. 그 후 체체니아에서는 경제재건에 실패한 두다예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는 한편, 1994년 8월 친(親)러시아 정책을 취하는 잠정평의회가 국회재생정부의 수립을 선언함으로써, 대통령파와 충돌이 발생하여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이 내전에 편승한 러시아에서 병력을 파견하여 1995년 5월에는 수도 그로즈니를 제압하고, 두다예프 대통령과의 평화 교섭을 기대했다. 그러나 게릴라화한 체체니아의 무장세력이 인질작전을 펼치면서 격렬히 저항하여 양쪽 모두 합쳐서 4만 명 이상(민간인 2만 5,000명 이상 포함)의 사상자를 냈다.

1996년 5월 드디어 정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999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5차례나 연이어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이를 체체니아의 행위로 결론내린 러시아 정부는 체체니아 국경의 반군 거점지역에 공중폭격을 감행함으로써 제2차전의 막을 열었다. 2000년 2월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로즈니를 점령했으나 철수단계에서 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한편 2002년 10월 모스크바 시내 극장에서 체체니아 반군 지도자 아르비 바라예프가 사흘 동안 수백 명의 극장 관객들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여 러시아 특수부대가 이를 진압했는데, 진압과정에서 민간인을 포함해 140명이나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인질극에 참여한 체체니아 여성 전사들은 체체니아 독립전쟁 희생자들의 부인들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국제사회는 체체니아 문제가 카프카스 지역과 카스피 해 유역의 에너지 자원확보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새로운 분쟁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