힉소스

힉소스

다른 표기 언어 Hyksos

요약 BC 17세기에 나일 강 유역으로 점차 침투해 들어와 결국 하(下)이집트를 다스리게 된 셈족과 아시아인들의 혼합 집단.

아흐모세 1세가 힉소스인들을 전투에서 치는 장면
아흐모세 1세가 힉소스인들을 전투에서 치는 장면

제15왕조(BC 1674경~1567경) 때 통치했다.

힉소스라는 이름은 이집트의 역사가 마네토(BC 300 활동)가 붙인 것으로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AD 1세기 활동)에 따르면 '양치기 왕' 또는 '붙잡힌 양치기'라는 말을 옮긴 것이라고 한다.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으며 힉소스인들과 〈구약성서〉에 나오는 히브리인들이 같은 집단이라는 점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는 힉소스인들이 이집트를 지배하던 시기에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로 들어갔거나 힉소스인 가운데 일부가 히브리인들의 선조였을 가능성은 있으나 많은 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힉소스'는 '외국에서 온 지배자들'(heqa-khase)을 뜻하는 이집트어로 나타낸 것이 거의 확실하다. 힉소스인들은 제16왕조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통치자들은 제15왕조 왕들의 봉신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힉소스인들은 당시 중동 각지에서 일어난 전반적인 이주 운동과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들은 대부분 셈족의 이름을 가졌지만 후리족들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힉소스인들은 말과 전차를 비롯해 조립식 활, 개량된 전투용 도끼, 발달된 요새 축조술을 이집트에 들여왔다. 또한 나일 삼각주 북동부에 있는 아바리스(지금의 탈앗드다바)에 수도를 정하고 자신들이 점령한 중왕국 시대의 유적지 위에 요새를 쌓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발굴 작업이 벌어져 가나안 지방 풍의 신전과 말의 무덤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지방풍의 매장지, 팔레스타인풍의 도자기 및 이들이 사용한 많은 양의 발달된 무기들을 찾아냈다.

힉소스인들이 최고로 숭배한 신은 이집트인들이 폭풍과 사막의 신으로 여기던 세스신으로, 이들은 세스신을 아시아에서 폭풍의 신으로 숭배하고 있는 세테크신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아바리스에서 이들은 하이집트의 대부분과 헤르모폴리스에 이르는 상(上)이집트 지역을 지배했다. 남쪽으로는 쿠사이 넘어까지 이집트인 봉신들을 통해 통치했다. 세케넨레와 테베 출신의 카모세가 반란을 일으키자 힉소스인 파라오 아우세레 아포피 1세는 제13왕조 말기(BC 1700경)부터 이집트의 누비아를 지배하고 있던 쿠시족 통치자들과 동맹을 맺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테베에서 일어난 반란은 카모세의 지휘 아래 북쪽으로 확산되었고 BC 1567년경 카모세의 후계자이자 제18왕조를 시작한 아모세에게 아바리스가 함락되었다. 이로서 108년에 걸친 힉소스인의 이집트 지배는 끝났다. 하트솁수트 여왕 때부터 이집트인들로부터 비방을 당하기는 했으나 힉소스인들은 여전히 파라오로서 이집트를 다스렸으며 '토리노 파피루스'에도 합법적인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이들은 이집트인들에게 동화되었고 정치적 영역을 벗어나 이집트의 문화에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