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안대군

회안대군

다른 표기 언어 懷安大君 동의어 이방간, 李芳幹, 양희, 良僖
요약 테이블
출생 1364년
사망 1421년(세종 3)
국적 조선, 한국

요약 이름은 방간이고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인 신의왕후 한씨 소생이며 동생 방원과 함께 제1차 왕자의 난을 주도했다. 방원을 제거하기 위한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방원의 군대에 패하여 유배되었다.
1392년(태조 1) 조선왕조 성립 후 회안군에 봉해졌고, 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가 되었다. 1398년 왕위계승과 사병혁파 문제를 둘러싼 제1차 왕자의 난 때 동생 방원과 함께 신덕왕후 강씨 소생의 세자 방석과 정도전 등을 제거하고 형 방과를 세자로 옹립, 왕으로 즉위하게 했다. 그 공으로 정사공신 및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1400년 박포의 계획을 받아들여 방원을 제거하려고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개경에서 방원의 군대에게 패하여 토산으로 유배되었다. 태종연간에 여러 차례 치죄가 논의되었으나 태종의 거부로 직첩이 몰수되었을 뿐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름은 방간(芳幹).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韓氏)이다. 3번 결혼했는데, 부인들은 각각 민선(閔璿)·황형(黃亨)·김인배(金仁排)의 딸이다. 고려왕조에서 군기시소윤을 지냈다.

1392년(태조 1) 조선왕조 성립 후 회안군(懷安君)에 봉해졌고, 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가 되었다. 1398년 왕위계승과 사병혁파 문제를 둘러싼 제1차 왕자의 난 때 동생 방원(芳遠:뒤의 태종)과 함께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康氏) 소생의 세자 방석(芳碩)과 정도전(鄭道傳) 등을 제거하고 형 방과(芳果)를 세자로 옹립, 왕으로 즉위하게 했다. 그 공으로 정사공신(定社功臣)·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1399년 풍해도(豊海道) 서북면의 병사를 분령했다.

1400년 박포(朴苞)의 계획을 받아들여 방원을 제거하려고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개경(開京)에서 방원의 군대에게 패하여 토산(兔山)으로 유배되었다. 태종연간에 여러 차례 치죄(治罪)가 논의되었으나 태종의 거부로 완산·홍주로 옮겨지고 직첩이 몰수되었을 뿐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선원록 璿源錄〉에서 오랫동안 제외되었으나 1680년(숙종 6) 자손들과 함께 기재되었다. 시호는 양희(良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