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

황순원

다른 표기 언어 黃順元 동의어 만강, 晩岡
요약 테이블
출생 1915. 3. 26, 평남 대동
사망 2000. 9. 14, 서울
국적 한국

요약 시인∙소설가. 시인으로 등단해서 뛰어난 단편소설가로, 다시 장편소설가로 거듭 변신하면서 문학세계를 넓힌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소나기>, <목넘이 마을의 개>, <독 짓는 늙은이> 등이 있다.

본관은 제안. 자는 만강. 시인으로 등단해서 뛰어난 단편소설가로, 다시 장편소설가로 거듭 변신하면서 문학세계를 넓힌 작가이다. 평양 숭덕학교 고등과 교사였던 아버지 찬영과 어머니 장찬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3·1운동 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평양 시내에 배포해 1년 6개월 동안 징역살이를 하기도 했다. 오산중학교를 거쳐 숭실중학교를 마쳤으며, 1934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제2고등학원에 입학, 재학시절 이해랑·김동원 등과 극예술연구단체인 '동경학생예술좌'를 조직했다. 1935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귀국했다가 조선총독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도쿄[東京]에서 시집 〈방가〉를 펴냈다는 이유로 평양경찰서에 29일간 구류되었다.

1939년 와세다대학 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생활하다 1946년 월남했다. 서울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7년 경희대학교 문리대학 교수가 되었으며, 1980년 정년퇴임 후 명예교수를 지냈다.

문학세계

숭실중학 시절 시 〈나의 꿈〉(동광, 1931. 7)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으며, 시창작에 몰두하는 동안은 당시 문단의 큰 흐름이었던 모더니즘 시를 주로 썼다. 시집 2권을 펴낸 다음 1930년말부터 소설창작에 전념하게 되었다.

초기 단편들인 〈별〉(인문평론, 1941. 2)·〈목넘이 마을의 개〉(개벽, 1948. 3)·〈황노인〉(신천지, 1949. 9)·〈노새〉(문예, 1949. 12)·〈독짓는 늙은이〉(문예, 1950. 4) 등은 빼어난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섬세한 내면세계와 인간 사이의 교감을 그려내는 휴머니즘이 주조를 이룬다. 또한 시적 정취를 자아내는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는 당시 문체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8·15해방 후 장편 〈별과 같이 살다〉(여러 잡지에 분재하다가 1950년 단행본으로 펴냄)를 발표한 이후 단편소설보다 장편소설에 주력하여 잇따라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았다. 장편소설을 통해 본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카인의 후예〉(1954)·〈인간접목〉(1957)·〈나무들 비탈에 서다〉(1960) 등은 6·25전쟁 전후의 사회적 혼란과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그려낸 데 반해, 〈일월〉(1962)·〈움직이는 성〉(1972)·〈신들의 주사위〉(1982) 등은 신분적 질곡, 현대사회의 윤리와 전통의 문제, 종교문제 등을 다루어 소설적 주제가 매우 다양해졌다. 이중 〈별과 같이 살다〉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며, 곰녀라는 한 여인의 짧은 생애를 통해 일제강점기의 민족수난사를 그려냈다. 곰녀는 〈카인의 후예〉에 나오는 오작녀와 매우 닮은 인물로,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한 원형을 이룬다. 〈카인의 후예〉는 8·15해방 직후 북한의 토지개혁과정을 통해 인간의 소유욕과 윤리적 패덕에 대한 강한 응징을 보여준 작품이며,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전쟁 체험이 낳은 비극적인 인간성 파괴를 다룬 작품으로 장편소설로서의 진가를 유감 없이 발휘한 문제작으로 꼽힌다.

황순원은 수많은 작가들이 일제의 조선어 말살정책에 굴복해 일본어로 작품을 쓰거나 친일 작품을 휘갈겨댄 일제말 모국어로 작품 쓰기를 고집하고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며 평생 잡문을 쓰지 않은 작가로서 크게 존경받았다. 시집으로 〈방가〉(1934)·〈골동품〉(1936)과 소설전집으로 〈황순원전집〉(1964)·〈황순원문학전집〉(1973)·〈황순원전집〉(1985) 등이 있다.

1955년 아세아자유문학상, 1960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61년 3·1문화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3년 대한민국 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0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