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과 화살

활과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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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원시적인 발사 기구.

활과 화살
활과 화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무기에 속하며, 그 기원은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활은 일반적으로 나무 통널로 되어 있는데, 통널을 휘게 하고 줄로 묶어 팽팽하게 한다. 화살은 일반적으로 나무로 된 대에 돌이나 쇠로 촉을 만들고 꽁무니에 깃털을 단다. 화살의 대 끝에 새긴 홈(오니)을 줄(활시위)에 놓고 활에 충분한 탄력이 생길 때까지 잡아당긴다. 그리고 시위를 놓으면 활에서 화살이 나가게 된다. 가장 초기의 화살촉은 부싯돌이었다.

활은 중요한 군사무기로 이집트 시대 이후 중세기 지중해 연안과 유럽, 그리고 더 오랜 기간 중국과 일본에서 사용되었다. 〈오디세이아 Odyssey〉의 절정은 오디세우스가 활솜씨로 페넬로페의 구혼자와의 대결에서 이기는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아합은 적의 화살에 맞아 죽는데, "화살이 이스라엘 왕 갑옷의 이음새를 뚫었다"고 되어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중갑 보병대는 대체로 활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종종 숙련된 적 궁수, 특히 기마궁수의 공격에 시달렸다.

활은 원래 고대의 석궁으로부터 발달하여 중세 영국의 긴 활로 그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졌고, 14세기 유럽 전쟁터에서 전해져 강력한 화살 발사기구가 되었다(→ 쇠뇌, 영국 큰 활). 터키 근위보병이 사용한 혼합식 터키 활 역시 위력이 비슷했는데, 중세말 전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은 무기들은 당시 손으로 다루는 그 어떤 무기보다 훨씬 효과적인 무기였다.

많은 문화권에서 활은 전쟁에서보다 사냥에서 중요성이 더 컸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에스키모인, 수많은 아프리카인들, 그밖의 많은 사람들이 본래의 활이나 석궁을 사냥과 전쟁에 사용한다. 고대 일본의 나무로 만든 활은 길이가 2.44m에 달했다. 일본인들은 뿔이나 고래뼈로도 작은 활을 만들었다. 일본의 활과 화살통은 정교하게 꾸며져 장인의 서명이 있는 경우도 있다.

안다만 해와 벵골 만 사이에 있는 안다만 제도 원주민들은 매우 크고 폭이 넓은 활을 만들었다. 한편 아프리카에서는 정글에서의 행동반경이 좁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반적으로 작은 활을 만들었다. 에스키모인들은 나무와 힘줄로 등을 댄 뼈로 만든 혼합식 활을 만들었는데, 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대다수의 활과 비슷하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나무와 힘줄로 안받침한 나무로 활을 만들었다.

활은 나무와 뿔, 그리고 나무와 금속 등 여러 재료들을 조립하여 만들기도 한다. 케이블과 도르래를 사용한 근대적인 복합식 활은 정확도와 탄력성이 높다. 많은 스포츠 사냥꾼들은 총기류보다 활을 더 애호한다. 그밖의 사냥꾼들은 둘 다 사용한다. 활시위 또한 여러 가지 다양한 질긴 재료로 만들어진다. 활줄의 재료는 큰 변화를 거쳐왔다. 중세 영국의 긴 활은 아마나 대마로 된 시위를 사용했지만, 터키와 아라비아의 활은 비단과 모헤어로 시위를 만들어 썼다(→ 합성 활). 등나무, 대나무, 식물섬유, 동물의 힘줄·가죽 등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다.

화살은 이보다 더 큰 변화를 거쳐왔다. 화살대는 보통 한 가지 재료로 만든다. 때때로 나무와 금속 등의 2가지 재료를 결합하여 만들기도 한다. 화살촉은 구멍을 뚫어 끼우거나 접합시키거나, 또는 2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해서 화살대에 부착시킨다. 깃털 또는 그 대용품(나뭇잎·가죽 등)으로 된 화살깃은 거의 항상 화살의 비행을 안정시켜준다. 화살대의 앞쪽이 무거우면 깃을 달지 않아도 된다.

한국의 활과 화살

한민족은 예로부터 활을 잘 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설문해자 說文解字〉 이(夷)자조를 보면 '夷'란 대인이 활을 쏘는 형상으로 우리나라를 동이라고 했음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또 말 위에서 활로 노루를 사냥하는 모습이 고구려 무용총에 그려져 있는 것에서도 활은 한민족의 생활에서 매우 흔한 도구임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활 잘쏘는 이를 선사(善射)라 했는데 고구려 건국 시조인 주몽(朱蒙)은 선사자를 가리키는 부여말이다.

활과 화살
활과 화살

주몽은 22세 때 비류왕과 활을 겨루어 100보 밖에 옥지환(玉指環)을 맞췄다는 일화가 전하며, 백제의 다루왕은 사냥을 나가 쌍록(雙鹿)을 연이어 맞췄다고 한다. 또 고려의 의종은 과녁 위에 촛불을 켜놓고 맞췄다는 기록이 전한다. '활'이라는 말은 〈계림유사〉에 '궁은 활이다'(弓曰活), '쏘는 것은 활 쏘아'(射曰活素)라 한 것에서 '활'이 우리나라 고유어이며 '화살'은 '활소'에서 유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활과 화살은 고조선의 단궁에서 비롯되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록에 따르면 낙랑단궁(樂浪檀弓)이라 하여 중국과 다른, 우리 고유의 활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고 그밖의 중국문헌에도 숙신의 호시석노(楛矢石弩), 예의 단궁, 고구려의 맥궁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태조가 대우전(大羽箭)을 써서 화살로 삼았다고 했다.

단궁의 맥은 고조선,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는데 삼국시대에 새로 생겨난 각궁은 고구려의 맥궁과 같은 것으로 백제와 신라에서 쓰였던 듯하다. 화살은 남북이 서로 달라서 고구려에는 호시, 신라·백제에서는 죽전(竹箭)을 썼다. 고려의 군제를 보면 당시의 활과 화살의 종류를 짐작할 수 있다. 고려의 군제에는 경궁·사궁(射弓)·정노(精弩)·강노(剛弩) 등의 특과병이 있었으며, 활은 동궁(彤弓)·장엄궁(莊嚴弓)·세궁(細弓)이 쓰였고, 화살로는 세전(細箭)·유엽전(柳葉箭)·대우전·편전(片箭) 등이 쓰였으며 이때 새롭게 철전(鐵箭)이 생겨났다.

조선시대에는 전투용·수렵용·연습용 등의 용도에 따라 활의 종류가 나누어진다. 무과 응시용의 정량궁(正兩弓), 궁중연사(宮中燕射)·향음주례(鄕飮酒禮)용의 예궁(禮弓), 전투·수렵용의 목궁(木弓)과 철태궁(鐵胎弓), 전투용의 철궁, 달리는 말 위에서 쏘는 전투용의 고(이미지), 수렵·연회·전투훈련용의 각궁 등이 쓰였다. 화살의 종류로는 목전(木箭)·철전·장전(長箭)·아량(亞兩)·편전·동개살·장군전(將軍箭)·세전·유엽전 등이 쓰였다.

활 쏘는 기술은 대개 구전으로 전해져 정확한 자료가 없으나 그 대강을 〈조선의 궁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