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

화교

다른 표기 언어 華僑

요약 중국과 타이완의 국적을 가진 자로 해외에 정착하여 거주하는 중국인 및 그 후손.
화교는 주로 타이완과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연관된 한민족계만을 지칭하기도 한다. 화교는 거주 국가에서 유통·금융을 중심으로 한 경제 활동을 통해 여러 면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화교의 90% 정도가 태국·인도네시아·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 분포하고 있고 미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도 분포되어 있다.

목차

접기
  1. 개요
  2. 지역적 분포
  3. 구분
  4. 한국의 화교

개요

중국과 타이완 출신으로 해외에 정착하여 거주하는 중국인과 그 후손. 시기에 따라 중국 내의 출신 지역과 진출한 국가가 다르다.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수립 이전에 동남아 지역에 진출한 화교 가운데에는 중국의 푸젠성(福建省) 출신들이 많으며, 미국이나 유럽 쪽에는 광둥성(廣東省)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한국에는 주로 산둥성(山東省) 출신들이 진출해 있다. 많은 화교들이 중화민국(中華民國) 국적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1979년 중화민국이 유엔가입국 지위를 잃고 1980년대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사회에서 중화민국을 대신하여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로 인정받으면서 국적을 상실하는 경향이 많아졌다. 전 세계의 화교 인구는 2016년 기준 약 4천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적 분포

중국 민족이 다른 국가로 이주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수백년 전부터이다. 특히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는 몇 대에 걸쳐 진출하여 현지에서 자리를 잡았다. 중국인 특유의 중화사상이 이들의 이주 생활의 원리로 작용하여, 거주하는 나라에서 중국인촌(차이나 타운)을 형성하며 집단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또한 강한 생활력과 경제감각으로 상호부조하면서 경제력을 획득하여, 해당 국가에서 경제적인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경우가 많고, 나아가 정치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집단이 되기도 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화교 국가이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에서 화교가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일본에는 간사이 지방(關西地方)에서는 고베( 神戸), 간토 지방(関東地方)에서는 요코하마(横浜)에 화교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한편 1800년대부터 많은 중국인들이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 철도 건설 노동자, 광산의 광부 등으로 일하면서 기반을 닦았다. 미국의 뉴욕, 샌프란시스코, 캐나다의 밴쿠버, 토론토 등에 대규모의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미국 대륙에 있는 중국인 최대 거주지로 약 6만 5,000명의 화교들이 살고 있다. 차이나타운은 금융지구, 호텔 지구, 상업지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구역에는 골동품 상점, 레스토랑, 찻집, 극장, 사원, 중국인의 미국생활사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다.

구분

화교라 하더라도 형성된 시기와 환경이 달라서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 시기인 청나라나 중화민국 시기에 이주한 경우는 '구화교(舊華僑)'라고 하는데,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도 중화민국의 국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화인민공화국이 198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중국을 대표하기 시작하면서 구화교는 점차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편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해외에서 체류하는 중국인들을 '신화교(新華僑)'라고 하는데, 구화교와 신화교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타이완)의 갈등 상황에 따라 서로 배척하는 성향이 있기도 했다.

한국의 화교

한국에는 임진왜란과 같은 국제전 시기에 개인적으로 한국에 정착한 경우가 없지 않으나, 이 경우 대부분 한국에 귀화하여 한국인으로 살아왔으므로 화교라고 하기 어렵다. 한국의 화교는 1800년대 말 조선이 개항하면서 철도 노동자의 신분으로 대량 진출하면서 형성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가까운 산둥성 출신으로, 다른 나라의 화교들과 사용하는 중국의 지역방언도 달라서 교류가 쉽지 않았다. 대개 중화민국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인천에 소규모 차이나 타운을 형성했다.

한국은 1960년대 들어 화교가 경제권을 소유하는 것을 견제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1961년에는 <외국인토지소유금지법>을 제정했고, 1962년에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는데, <외국인토지소유금지법>으로 많은 화교들이 결과적으로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게 되었으며, 화폐개혁은 화교들이 비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자본을 노출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이밖에도 여러 제도적인 제약이 있어 많은 화교들이 귀화하거나, 타이완 또는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 화교의 경제적, 정치적인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조선족 출신인 중국인들이 한국에 취업 목적으로 입국하여 거주하는 경우가 증가했으나, 이들은 한국 화교에 포함하지 않는다. 2010년대 이후 한국 화교의 인구는 대략 5만 명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화교(華僑)
화교(華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