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훈

홍계훈

다른 표기 언어 洪啓薰
요약 테이블
출생 미상
사망 1895년(고종 32)
국적 조선, 한국

요약 조선 말기의 무신.

본관은 남양. 초명은 재희(在羲). 자는 성남(聖南), 호는 규산(圭珊).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궁궐에서 탈출시킨 공으로 중용되었다.

1893년 3월 동학교도들이 충청도 보은에서 척왜척양(斥倭斥洋)의 기치를 내걸고 대규모 집회를 갖자, 장위영정령관(壯衛營正領官)으로 경군 600명을 이끌고 출동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에 임명되어 장위영 군사 800명을 거느리고 출전, 4월 7일 전주에 이르렀다. 농민군이 부안·영광 등 인근의 여러 읍을 휩쓸자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며, 이어 영광으로 출진했으나 관군의 힘으로는 농민군을 진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도록 했다. 4월 27일(양력 5. 31) 전주성이 함락되자 완산에 진을 치고 농민군과 대치했다. 성내로 포격을 가하고 농민군의 공격을 격퇴하기도 했으나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전봉준(全琫準)의 폐정개혁안이 받아들여져 5월 7일(양력 6. 10) 전주화약(全州和約)이 성립되고 농민군이 철수하자 강화병 200명을 남겨 성을 지키게 했다. 서울로 돌아와 농민군의 예봉을 꺾은 공으로 훈련대장에 임명되었다. 1895년 8월 일본군이 궁궐을 습격하자 군부대신 안경수와 함께 시위대 병력을 이끌고 방어하다가 전사했다. 1896년 군부대신에 추증되었으며, 1900년 장충단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양호전기(兩湖電記)
양호전기(兩湖電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