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가

혜성가

다른 표기 언어 彗星歌

요약 신라 진평왕 때 융천사가 지은 향가.

10구체. 〈삼국유사〉 권5 감통 제7 융천사 혜성가 진평왕대조에 가사의 전문과 배경설화가 실려 전한다.

제5 거열랑 제6 실처랑, 제7 보동랑 등 세 화랑이 풍악으로 유람을 떠나려 하는데 혜성이 나타나 심대성을 범했다. 화랑도는 이를 우려하여 유람행을 그만두려 했다. 그때 융천사가 이 노래를 지어 부르니 성괴가 즉시 사라지고 때마침 침략한 일본군도 본국으로 돌아갔다. 화(禍)가 복으로 바뀌는 것을 본 진평왕이 기뻐하며 낭도들을 금강산에 보냈다고 한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의하면 594년(위덕왕 41, 신라 진평왕 16) 11월에 혜성이 동쪽 하늘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사서인 〈니혼쇼키 日本書紀〉 스이코[推古] 덴노 때(신라 진평왕대)에 1만 명이 넘는 왜군이 신라에 쳐들어갔다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창작연대는 594년(진평왕 16)으로 추정된다. 문헌에 나타나는 연대 기록에 의하면 이 노래가 최초의 향가작품일 가능성이 많은데, 4구체·8구체·10구체 가운데 가장 완성된 형태인 10구체 형식을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노래의 가사는 향찰로 기록되어 있으며 해독상 비교적 이견이 많은 작품에 속한다. 전체는 의미상 3단락으로 구분된다. 현대역으로 작품을 소개하고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동쪽 물가 건달바의/논 성을랑 바라보고/왜군이 왔다/횃불 올린 변방이 있어라." 고대인은 혜성을 흉조로 파악했다. 혜성이 나타나면 역적이 나타나거나 외적의 침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심대성은 전갈좌에 있는 별로서 국왕을 상징한다.

혜성이 동쪽에 나타나 심대성을 침범한 것은 신라에 어떤 재앙이 닥쳐올 것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병이 쳐들어온다고 봉홧불을 올렸다. 그러나 융천사는 사람들이 본 것은 '건달바가 노는 성'이라고 말한다. 건달바는 불교에서 말하는 제석의 천악신을 말하며, '건달바가 노는 성'은 신기루를 의미한다. 화랑을 건달바로 나타낸 데서 신라인의 호국불교사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신기루를 보고 봉화를 올린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세 화랑이 산에 오르심을 보고/달도 부지런히 불을 밝히려 하는데/길을 쓸어줄 별을 바라보고/혜성이라 아뢴 사람이 있다." 달은 천상계 질서에서 혜성보다 우위를 차지한다.

혜성은 달 밑에서는 아무 힘이 없다. 이런 달이 화랑의 유람행을 돕기 위해 부지런히 떠서 갈 길을 밝혀준다고 했다. 달이 이미 떠 있으니 혜성은 달을 도와 '길을 쓸어주는 별'이 될 뿐이다. "아아, 달 아래 떠갔더라/이 무슨 혜성 기운이 있을꼬." 달이 이미 떠갔으니 무슨 흉조의 기미가 있겠느냐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노래의 주된 성격은 주가이다. 흉조라고 여기는 혜성을 오히려 '길을 쓸어주는 별'이라 단언함으로써 길조로 전환시켰다. 있어야 하는 현실을 미리 언어로 말하여 그렇게 되기를 강하게 희망하는 언어의 주술적 기능을 이용했다. 혜성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어도,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혜성이 없다고 하면, 나타난 혜성이 사라진다는 주술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이 노래의 시적 세계는 '동해물가·성·봉화·달·혜성'과 같은 시어를 통해 광활한 우주적 시계를 형성하며 펼쳐졌다.

언어의 주술적 기능을 활용한 주가로서의 면모 외에도 탁월한 서정성을 지니고 있는 향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