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헤이그

다른 표기 언어 The Hague
요약 테이블
위치 네덜란드 남서부 조이트홀란트 주
인구 697,564명 (2020년 추계)
면적 98.2㎢
언어 네덜란드어
대륙 유럽
국가 네덜란드

요약 북해에서 6km 떨어진 곳에 있다. 1248년 이곳에 성과 여러 건축물이 지어지면서 빈넨호프라는 도시의 핵심부를 형성했다. 1350년경 만들어진 호프베이베르 인공호는 지금까지도 헤이그의 명소이다.
13, 14세기가 지나면서 성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었고, 1585년 네덜란드 국회와 중앙정부기구가 빈넨호프에 설립되었으며, 홀란트 주정부도 이전해왔다. 17세기에 헤이그는 외교협상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프랑스의 통치에서 벗어나면서 네덜란드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899, 1907년에 헤이그 평화회의가 개최된 후 헤이그는 국제법의 중심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도시 전체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나 전후에 대대적인 재건·확장 사업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기업이 무역·은행·보험·서비스업에 치중하고 있다.

북해에서 6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의 네덜란드 지명인 스흐라벤하헤는 '백작가의 사유지'를 뜻하며, 홀란트 백작가의 사냥 막사와 주요거주지가 하헤(Haghe)라는 삼림지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헤이그(The Hague)
헤이그(The Hague)

1248년 백작 빌렘 2세는 여기에 성을 세우고 기사궁(1248)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을 그 주위에 지었는데, 이것이 빈넨호프라는 도시의 핵심부를 형성했다.

1350년경에는 시의 북쪽 방향에 호프베이베르 인공호를 만들었으며, 이곳은 지금까지도 헤이그의 명소가 되고 있다. 시의 서쪽 편은 보인텐호프라고 불리는데, 그 주요통로인 헤방겐포르트('감옥의 문'이라는 뜻)는 한때 감옥의 입구였다. 13, 14세기가 지나면서 성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585년 네덜란드 국회와 기타 중앙정부기구가 빈넨호프에 설립되었다. 홀란트 주정부도 이전해왔으며, 오라녜 공국의 마우리츠 공 또한 이곳에 본거지를 마련했다. 1616년 마우리츠 공은 헤이그 주변에 운하망을 건설했으며, 그 흔적이 19세기 중반까지 시의 경계로 남아 있었다. 네덜란드 공화국이 유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던 17세기에 들어서면서 헤이그는 외교협상의 중심지가 되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시기(1795~1813)에는 빈곤한 지역으로 몰락했으나 프랑스의 통치에서 벗어나면서 네덜란드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850년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세금 수입을 얻어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됨에 따라 예술이 번영·발전하고, 헤이그 학파의 풍경화가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1899, 1907년에 개최된 헤이그 평화회의가 개최된 이후 헤이그는 국제법의 영구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1913년에 미국의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가 헌사한 평화궁전이 완공되었으며, 20세기 초반 산업발전이 가속화되고 있을 때 항구가 건설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도시 전체가 독일군의 점령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나 전후에 대대적인 재건·확장 사업이 이루어졌다.

중공업의 비중은 작으며, 대부분의 기업이 무역·은행·보험·서비스업에 치중하고 있다. 또 주요국제회의의 장소가 되고 있으며, 몇몇 대석유회사의 국제 본부도 있다. 이곳에는 소장품이 풍부한 박물관이 많이 있다.

마우리츠호이스 왕립미술전시관은 렘브란트, 베르메르, 얀 스틴을 비롯한 대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하흐게멘테 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피트 몬드리안 작품 수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 네덜란드 복식 박물관, 메스다흐 박물관, 메스다흐 파노라마관, 화폐·훈장 전람관, 우표박물관 등이 유명하다.

예술학교 2개와 헤이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있다. 중요한 역사적 유적으로 신트야코브스 대성당(1399)과 새 개신교회(1654)가 있고, 노르데인데 궁전과 16세기의 시청 건물도 남아 있다. 전쟁 이후의 건축물로는 미국 대사관(1961)과 네덜란드 의회 건물(1969)이 유명하다.

지도
헤이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