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헤스

루돌프 헤스

다른 표기 언어 (Walter Richard) Rudolf H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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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4. 4. 26,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사망 1987. 8. 17, 독일 베를린
국적 독일

요약 독일 나치당의 지도자. 제1차 대전 때 독일군에서 복무하다 종전 후 뮌헨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국가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선전했다. 1920년 나치당에 입당했고, 1923년 뮌헨 폭동사건에 가담했다 히틀러와 함께 구속되었다. 이 당시 란츠베르크 감옥에서 히틀러가 구술한 <나의 투쟁>을 받아적었으며, 출소 후 히틀러의 최측근이 되었다. 1933년 히틀러 정권이 설립된 후 총통 대리자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후 입지가 작아지자 1941년 독자적으로 영국에 가 평화협정 교섭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영국에 포로로 억류되었다.

헤스((Walter Richard) Rudolf Hess)
헤스((Walter Richard) Rudolf Hess)

독일 나치당의 당원·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계승서열 2번째인 헤스는 1941년 몰래 영국으로 가 영국과 독일의 평화협정을 교섭하러 온 협상대표를 자처해 국제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루돌프 헤스의 임무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루돌프 헤스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육군에서 복무하다가 나중에 공군으로 전속했다. 전쟁이 끝난 뒤 헤스는 뮌헨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국가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선전하는 일에 참여했다.

루돌프 헤스는 1920년 갓 태어난 나치당에 가담하여 곧바로 히틀러의 친구이자 신임받는 측근이 되었다. 1923년 11월 헤스는 실패로 끝난 뮌헨 맥주 홀 폭동사건에 가담한 뒤 오스트리아로 도망갔다가 되돌아와 란츠베르크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헤스는 히틀러가 불러주는 〈나의 투쟁 Mein Kampf〉을 받아적고 편집했다.

히틀러의 개인비서로 승진한 루돌프 헤스는 구스타프 슈트라서의 좌익 추종자들이 탈당(1932)한 뒤, 권한이 중앙에 집중된 새로운 당조직을 창설하는 일을 맡았다. 1933년 4월 헤스는 부당수가 되었고 12월에는 내각에 들어갔다. 히틀러가 군사문제와 외교정책에 몰두하고 있던 1930년대말부터 제2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헤스의 권력은 차츰 줄어들었고, 마르틴 보르만을 비롯한 나치고위지도자들은 그의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1941년 봄 루돌프 헤스는 극적인 일격으로 독일과 영국 사이에 계속되고 있는 전투를 끝냄으로써 차츰 쇠퇴하고 있는 자신의 명성을 회복하기로 결심했다. 5월 10일 헤스는 영국의 현상태를 존중하고 영국이 갖고 있던 식민지를 모두 돌려주기로 약속하는 대신 유럽 대륙에서 독일의 자유재량권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평화협정안을 갖고, 비밀리에 스코틀랜드로 갔다. 영국 정부는 헤스의 제안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를 전쟁포로로 취급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억류했다. 히틀러도 헤스의 돈 키호테 같은 행동에 거부반응을 보이면서 헤스가 평화주의적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난했다.

전쟁이 끝난 뒤 루돌프 헤스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유죄가 인정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헤스는 베를린의 스판다우 감옥에서 복역했으며 1966년부터는 이 감옥의 유일한 수감자가 되어 1987년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