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아

프리지아

다른 표기 언어 Phry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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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소아시아의 중부에서 서부에 걸쳐 있던 고대 지역
대륙 서남아시아
국가 터키

요약 아나톨리아 중서부에 있는 고대 지역.

프리지아 Phrygia
프리지아 Phrygia

이 지명은 BC 12세기에 히타이트가 몰락할 때부터 BC 7세기에 리디아가 지배할 때까지 소아시아를 지배한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이들을 프리지 사람이라 불렀다.

원래 트라키아계 사람들일 것으로 추정되는 프리지아 사람들은 BC 2000년대말에 아나톨리아 북서부에 정착했다. 히타이트 왕국이 와해되면서 이들은 중부 고지대로 이주하여 고르디움에 수도를 세우고 '미다스 시'(지금의 야질리카야)에 종교 중심지를 세웠다.

BC 12~9세기 프리지아는 아나톨리아 반도 모든 지역을 지배한 사람들(아시리아 기록에 '무슈키'라고 한 사람들로 추정됨)의 엉성한 연합의 서부를 이루었다. 이러한 초기의 문명은 이전에 번영했던 히타이트인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다. 이들은 뒤에 페르시아 사람들이 이용한 도로망을 건설했다.

730년 무렵 아시리아 사람들은 연합의 동부를 떼어냈고 권력의 중심이 전설적인 왕 미다스가 다스리는 동안 프리지아 본토로 옮겨졌다. 미다스 왕국은 700년경에 킴메리족이 침략하자 갑자기 끝이 났는데 킴메리족은 카프카스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로서 고르디움을 불태웠고 아나톨리아 서부의 지배권은 리디아인들에게 넘어갔다. 킴메리족이 침략한 뒤 프리지아는 아나톨리아를 잇따라 지배한 통치자들 밑에서 단순한 지명으로 근근이 남아 있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프리지아 사람들을 노예처럼 생각했다. 프리지아 사람들은 금속·목각 세공에 뛰어났고 자수 기법을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웅장하게 조각한 몇몇 돌무덤과 사원을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의 고고학자들이 발견했다.

프리지아 사람들의 여러 종교의식 가운데 대모신(大母神 : Cybele) 숭배가 지배적이었고 그리스 사람에게 전해졌다. 고대 프리지아 사람들이 쓴 부드러운 원추형 머리 장식인 프리지아 모자는 그리스와 로마 노예들의 해방을 상징했고 프랑스 혁명 때 자유의 모자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