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3세

프리드리히 3세

다른 표기 언어 Friedrich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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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31. 10. 18, 프로이센 포츠담
사망 1888. 6. 15, 포츠담
국적 프로이센

요약 프로이센의 왕, 독일 제국의 황제.
(영). Frederick Ⅲ. Kronprinz Friedrich Wilhelm이라고도 함(~1888). 정식 이름은 Friedrich Wilhelm Nikolaus Karl.

1888년 독일 황제로 즉위했으나 즉위한 지 99일 만에 후두암으로 죽었다. 비록 자유주의적이고 헌법을 존중하는 중산층의 영향을 받았으나 호엔촐레른 왕가의 위엄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었다.

후에 황제 빌헬름 1세가 된 빌헬름과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트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프로이센 대공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학교를 다녔으며, 철저한 군사 교육도 받았다. 1858년 영국 왕녀 빅토리아(1840~1901, 1888년부터는 프리드리히 황후)와 결혼했다. 아내의 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나 그는 강한 중앙정부를 선호했고 독일 연방의 군주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려는 측면에서는 종종 총리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능가하기도 했다.

1861년 왕세자가 된 그는 27년간 주로 업적을 세우기를 바랐다. 그의 참모장인 레온하르트 폰 블뤼멘탈 덕택에 그는 1864년 덴마크 전쟁과 1866년의 7주전쟁, 그리고 1870~71년의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참전해 훌륭한 사령관으로서 활약했다. 1866년 전쟁에서는 비스마르크를 지지했으나 비스마르크가 실시한 국내외에서의 '철혈'정책은 대체로 그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1887년 프리드리히는 후두암 증세를 나타냈다. 독일 의사들은 이 병을 정확히 진단했으나 영국 전문가인 모럴 매켄지 경이 1887년 5월 21일로 예정되었던 수술을 하지 말 것을 권유해 결국 수술은 취소되었다. 1888년 2월 목 절개수술을 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그는 황태자로서 3월 9일 황제로 즉위했으나 이 무렵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행한 중요한 공식적 행위는 극단적인 보수주의자 로베르트 폰 푸트카머를 내무장관직에서 해임한 것이었다. 그의 제위는 아들이자 계승자인 빌헬름 2세가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