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토리우스

프레토리우스

다른 표기 언어 Andries (Wilhelmus Jacobus) Pretorius
요약 테이블
출생 1798. 11. 27, 케이프 식민지 그라프레이네트 근처
사망 1853. 7. 23, 트란스발 마갈리에스베르크
국적 보어인

요약 보어인 지도자.

영국령 케이프 식민지로부터 대이주(Great Trek)를 이끌었으며 나탈과 뒤에 트란스발에서 유력한 군사적·정치적 인물이 되었다. 케이프 식민지에서 여러 차례 국경전을 치른 1837년 대이주를 위한 탐사를 계속하다가 이듬해 나탈의 농장에 정착했다.

줄루족의 딩간 왕이 이주의 지도자 피에트 레티프와 그의 부하를 살해하고 나탈에 살고 있던 보어인들을 위협하자 그는 500명의 의용군을 모아 블러드 강에서 1만 명의 줄루족과 싸웠는데 아군의 인명 피해는 거의 없이 줄루족 3,000여 명을 살상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 딩간의 형제 음판데가 프레토리우스를 지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프레토리우스와 음판데 연합군은 마고노 전투(1840. 1)에서 딩간을 물리쳤고 음판데는 줄루족의 왕위를 차지했다. 그해 프레토리우스는 보어인을 트란스발에 정착시키고 연방형태로 나탈과 통합했다.

1842년 영국이 나탈에 있는 더반을 점령했으나 프레토리우스는 이를 막아내지 못해 총사령관직을 사임했다. 나탈이 합병된 뒤 영국 정부와는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케이프 총독 헨리 포팅어 경에게 보어인의 불만을 해결해달라는 청원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멀리 떨어져 있는 트란스발로 다시 한번 보어인들을 이끌고 이주할 결심을 했다(1847).

'오렌지 강 주권국'으로 알려진 이 지역이 이듬해 영국에 합병되자 프레토리우스와 트란스발의 보어인들은 분개해 구두 항의에 이어 군사적 저항을 시작했다. 그는 부하들과 함께 블룸폰테인을 장악했으나 봄플라츠에서 패배해(1848. 8) 트란스발로 도망갔다. 이때 그의 목에는 현상금 2,000파운드가 걸려 있었다. 4명의 트란스발 총사령관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는 영국군과 협상을 벌였다(그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이미 취소되었음). 이 협상 결과 샌드 강 협정(1852. 1. 17)이 체결되어 트란스발(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독립이 승인되었다.

영국 내부에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프레토리우스는 오렌지 강 주권국에 있는 보어인이 독립할 수 있도록 영국에 압력을 가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그가 죽은 지 7개월 뒤에 맺은 블룸폰테인 협정(1854. 2)으로 결실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