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럭

핼럭

다른 표기 언어 Henry W(ager) Hall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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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15. 1. 16, 미국 뉴욕 웨스턴빌
사망 1872. 1. 9, 켄터키 루이빌
국적 미국

요약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교.

총사령관(1862~64)을 지냈으며 행정 능력은 있었지만 북군의 전반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데 실패했다. 뉴욕 주 웨스트포인트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1839) 뒤 공병 장교로 임관되었다. 1844년에 유럽으로 파견되어 주요군사시설을 견학했다.

미국에 돌아온 뒤 군사학에 관해 연속 강연을 했으며, 1846년 강연 원고를 모아 〈군사기술 및 군사학의 요소 Elements of Military Art and Science〉로 출판했다. 이 책은 남북전쟁 동안 자원군 장교들에 의해 교과서로서 널리 이용되었다. 멕시코 전쟁이 일어났을(1846) 때 미국 태평양 해안 탐사대에서 복무했으며 군정이 실시되고 있던 캘리포니아의 주장관에 임명되었다. 1849년 주헌법을 기초하는 일에 참여했다. 5년 뒤에 장교직을 사임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자(1861) 육군 소장으로 군대에 복귀하여 서부 전선의 최고사령관직을 맡았다. 이 직위에 있으면서 대규모 자원군을 서둘러 조직하는 과정에서 생긴 혼란을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1862년 봄에 거둔 군사적 승리는 주로 율리시스 S. 그랜트, 존 포프 같은 예하 장군들의 전술 덕분이었다.

1862년 7월 링컨 대통령은 어느 정도 걱정을 하면서도 워싱턴으로 그를 불러들여 자신의 군사고문 겸 육군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하지만 버지니아에서 북군 장군들이 계속 패배를 당하고 핼럭이 그의 부하 장교들 및 에드윈 M. 스탠턴 육군장관과도 사이가 좋지 않되자 그는 1864년 3월 사임하고 그랜트 장군에게 총사령관직을 물려주었다. 그뒤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참모장으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