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신학

해방신학

다른 표기 언어 liberation theology , 解放神學

요약 가톨릭 신앙을 정치적·서민적 일상사와 관련시킴으로써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를 도와주고자 하는 신학이다. 주창자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근본적으로 유럽의 교회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라틴아메리카의 교회는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방신학운동의 출발 시기는 보통 1968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열렸던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의에 참석한 주교들은 가난한 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제3세계가 희생한 대가로 산업화된 국가들이 부유해지고 있음을 역설하는 문서를 발표했다. 이 운동의 근본이 된 저서는 페루의 신학자이며 사제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스가 쓴 〈해방신학〉(1917)이다. 레오나르도 보프, J. 소브리노 등이 이 운동의 다른 지도자이다.

따라서 해방신학자들은 종교적 신앙을 정치적·서민적 일상사와 관련시킴으로써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를 도와주고자 했다. 사회 불평등을 야기시킨 사회·정치 구조를 깨닫게 하고, 변화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활동적인 참여를 고양시켰다.

해방신학자들은 하느님이 특히 가난한 자를 통해 말씀하며, 성서는 가난한 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근본적으로 유럽의 교회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라틴아메리카의 교회는 가난한 자의 교회이며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들은 기초 공동체를 세웠는데, 이것은 각각 10~30명 정도로 구성된 지역교회로서 성서를 연구하고 음식·물·하수처리·전기 같은 해당지역 교구민들의 긴급한 필요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수많은 기초 공동체는 대부분 평신도 지도자가 이끌며,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형성되었다.

해방신학운동의 출발 시기는 보통 1968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열렸던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의에 참석한 주교들은 가난한 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제3세계가 희생한 대가로 산업화된 국가들이 부유해지고 있음을 역설하는 문서를 발표했다. 이 운동의 근본이 된 저서는 페루의 신학자이며 사제인 구스타보 구티에레스가 쓴 〈해방신학 Teología de la liberación〉(1917)이다. 이 운동의 다른 지도자로는 엘살바도르의 대주교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브라질의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예수회 신학자 J. 소브리노 등이 있다.

해방신학운동은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힘을 얻었다. 목회는 부유한 엘리트에 대한 가난한 자의 정치적 투쟁을 포함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해방신학자들을 공식적(로마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비공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순진한 조달자로서 또는 폭력적인 사회혁명의 주창자로서 비판했다. 니카라과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처럼 전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는 몇몇 사제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제는 그들의 활동이 그리스도교적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의 해방신학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한국의 민중신학운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기본적으로 해방을 지향하는 전제로 신학화작업을 진전시켰던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문제제기 및 방법론의 측면에서 민중신학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마르크스의 사회과학적 분석들을 이용해 사회의 경제구조를 분석하는 점에서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민중신학은 마르크스의 방법론만을 사용하여 신학화작업을 시도하는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는 달리 마르크스의 세계관을 수용하려는 제2세대 민중신학자에 의해 그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 민중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규모 공동체의 움직임은 라틴아메리카의 기초 공동체와는 구별된다. 반면 일부 가톨릭 쪽에는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적 경향을 충실히 받아들여 현재 '가톨릭 정의평화연구소'를 중심으로 해방신학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출판물은 거의 해방신학자들의 원서를 번역한 번역물들로서 개신교 계통의 한국신학연구소와 가톨릭 계열의 분도출판사에서 주로 출판된다. 단행본으로는 김춘호 신부의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이 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점점 해방신학의 학문적 영향권에서부터 벗어나 실천적인 측면이 강화되었다. 라틴아메리카 기초 공동체의 형식을 빌렸지만 영성이나 종교성을 강조해 평신도들에게도 설득력 있는 소공동체로 나아가는 경향이 나타난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에서 그러한 성격의 모임을 취재해 자료집을 내기로 함으로써 1990년대의 전반적인 경향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