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

한유

다른 표기 언어 Han Yu , 韓愈 동의어 퇴지, 退之, 창려, 昌黎, 문공, 文公
요약 테이블
출생 768, 등주(鄧州 :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에 속함)
사망 824, 장안(長安)
국적 중국

요약 중국 산문의 대가이며 탁월한 시인.
(병). Han Yu. (웨). Han Y대체이미지.

한유(Han Yu)
한유(Han Yu)

자(字)는 퇴지. 한문공이라고도 한다.

중국과 일본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후대 성리학(性理學)의 원조이다. 어려서 고아였고, 처음 과거에 응시했을 때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문체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낙방했다. 그후 25세에 진사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이부시랑(吏部侍郞)까지 지냈다. 사후에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추증되었고 문이라는 시호를 받는 영예를 누렸다.

유학이 침체되어가던 시기에 유학을 옹호했던 그는 헌종(憲宗)이 불사리(佛舍利)에 참배한 데 대해 끝까지 간한 일로 인하여 1년 동안 차오저우[潮州] 자사(刺史)로 밀려나 있었고, 평생을 불우하게 지내야 했다. 유학을 옹호하기 위해 그때까지 유학자들이 다소 소홀히 하던 〈맹자〉·〈대학 大學〉·〈중용 中庸〉·〈주역 周易〉을 광범위하게 인용했다. 후대의 성리학자들은 기초개념을 이 책들에서 취했고 한유는 성리학의 기초를 놓은 셈이었다.

한유는 당시에 유행하던 규칙적인 운율과 고사성어로 가득 찬 변려문을 배격했고, 위의 책들을 만든 옛 학자들처럼 자유롭고 간결한 문체의 사용을 주장했다. 그가 쓴 〈원도 原道〉·〈원성 原性〉 등은 중국문학의 백미이며 그가 주장한 고문체 문장의 대표작이 되었다. 시문학에서도 그는 기존의 문학적 형식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그러나 문학에서 그가 기울인 노력의 많은 부분은 실패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