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푸 티브

티푸 티브

다른 표기 언어 Tippu Tib
요약 테이블
출생 1837
사망 1905. 6. 14, 잔지바르
국적 아라비아

요약 아라비아의 무역상.
Muhammed Bin Hamid라고도 함.

19세기말 중부·동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한 사람 중 가장 명성이 높다.

국가를 건설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품어 벨기에의 왕 레오폴 2세 및 잔지바르의 술탄과 충돌을 빚었다. 그러나 주된 관심사는 상아무역이었으며 국가설립 계획과 정치적 술책들은 상아무역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1850년대말 또는 1860년대초에 그는 아프리카 내륙지방으로 몇 안 되는 일행을 대동하고 최초의 무역여행을 떠났다. 1860년대말경 4,000명으로 구성된 탐험대를 이끌고 원정을 실시했으며, 그뒤 곧 콩고 동부와 중부 지역에 완전한 체제를 갖추지 못한 국가를 건설하고 카탕가를 니암웨지의 통치자 음시리에게 넘겨주었다. 1870년대에는 넓은 지역에 걸쳐서 족장들의 권한을 인정하거나 자신에 충성하는 사람들로 기존 족장들을 대체해나갔다. 그러나 그의 주요관심사는 장사였는데, 코끼리 사냥에 관한 독점권을 확보하고 도로를 건설했으며 콩고 강 상류의 카송고를 비롯한 주요 아랍인 정착지 주변에 농장을 개척했다. 그 자신도 1875년 카송고에 정착했다.

1876~77년에 영국의 탐험가 헨리 M. 스탠리와 함께 콩고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스탠리빌(지금의 키상가니)로부터 콩고 강 하류로 180㎞ 떨어진 아루위미의 합류지점까지 탐험대를 파견했다. 1880년대초 잔지바르의 술탄 바르가시와 협력했다. 바르가시는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의 국제 콩고 협회(레오폴 2세의 개인 영리단체)의 위협에 맞서 콩고에서 아라비아 세력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티푸 티브를 이용하고자 했다.

1883년 스탠리폴스로 돌아왔으며 바르가시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의 콩고 분지를 차지하려고 했다. 1886년까지 콩고에 남아 있었으며 이후 많은 상아를 가지고 잔지바르로 다시 떠났다. 그당시 레오폴 2세의 콩고 분지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다른 유럽 국가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었으며, 티푸 티브는 국제 콩고 협회와 화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887년 2월 그는 자신을 자유 콩고의 폴스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하는 협정에 서명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티푸 티브가 이 지역의 모든 아라비아 무역상들을 통제할 것을 기대하면서도 필요한 무기를 갖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려 했으며, 많은 아랍인들은 티푸 티브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유럽인들과 동맹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 분개했다. 이때문에 티푸 티브는 폴스 총독직을 유지할 수 없었다. 1890년 4월 그는 마지막으로 폴스를 떠나 잔지바르로 귀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