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펙투스

프라이펙투스

다른 표기 언어 praefectus

요약 고대 로마의 관직.
(영). prefect. 복수형은 praefecti.

최고행정관이 임명하는 관리로서, 그의 대리인이나 부하 역할을 했다. 공화국 초기에는 콘술(집정관)이 로마를 비울 때면 프라이펙투스를 임명해 자신의 업무를 맡겼다. 이들 프라이펙투스는 로마에서 160㎞ 범위 안에 있는 지역에서 사법 및 재정 업무를 책임졌다. BC 4세기 중엽에 이르자 콘술이 로마를 비울 때는 콘술이 따로 임명한 프라이토르가 콘술의 책임을 떠맡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프라이펙투스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BC 2년경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프라이펙투스라는 공직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는 소방대장인 프라이펙투스 및 곡물공급을 담당하는 프라이펙투스와 더불어 2명의 프라이펙투스 프라이토리오(근위대장)를 임명했다. 프라이펙투스 프라이토리오는 황제의 경호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막강한 권력을 얻었다. 그들은 사실상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였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로마의 프라이펙투스는 나중에 나타났다. 그는 바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93~211) 황제가 임명한 이이밀리우스 파피니아누스였다. 대단히 박식한 법률가인 파피니아누스는 엄격한 도덕주의자였다.

〈질의록 Quaestiones〉(37권)·〈해답록 Responsa〉(19권)·〈정의 Definitiones〉(2권)·〈간통에 관하여 De adulteriis〉(2권)를 비롯한 그의 저서들은 최고의 권위를 누렸으며 오늘날에도 근대법률의 토대를 마련해준 가장 중요한 로마 시대의 자료로 손꼽힌다. 300년경에 이르자 제국의 동부와 서부의 프라이펙투스 프라이토리오는 민간행정을 감독하게 되었다. 그들은 황제의 대리인으로서 사법권을 행사하고 세금을 징수하고 속주의 총독들을 감독했다.

그들은 또한 군대를 지휘하고, 황궁에 물자를 공급하는 업무를 관장했다. 306년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1세 시절에 프라이펙투스 프라이토리오는 군지휘권을 잃었지만, 사법과 재정 기능은 계속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