퓌제

퓌제

다른 표기 언어 Pierre Puget
요약 테이블
출생 1620. 10. 16, 프랑스 마르세유 또는 그 근처
사망 1694. 12. 2, 마르세유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조각가·화가·건축가.

바로크 양식의 매우 독창적인 작품들로 유명하다. 젊은시절(1640~43) 이탈리아로 건너가 벽화가인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에게 고용되어 로마에 있는 바르베리니 궁전과 피렌체에 있는 피티 궁전의 천장 장식을 꾸미는 일을 도왔다. 1643~56년 마르세유·툴롱에서는 주로 화가로 활동했지만, 거대한 군함의 선수상을 새기기도 했다.

1656년 툴롱 시청의 출입구에 조각을 새기는 중요한 일을 맡았는데 이 건물 입구의 여인상 기둥에 새겨진 조상들은 로마의 바로크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미켈란젤로의 마니에리스모 양식 작품과 비슷한 긴장감과 고통을 보여준다. 그러한 느낌은 〈크로토나의 밀로 Milo of Crotona〉(1671경~84) 같은 작품에 강렬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운동선수인 밀로가 나무의 그루터기에 손이 끼인 채 사자의 공격을 받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659년 파리에 갔으며, 루이 14세의 재정총감인 푸케의 주목을 받았다. 1661년 헤라클레스 상(지금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갈리아의 헤라클레스 Hercule gaulois〉)을 의뢰받았는데, 그것을 조각할 대리석을 고르기 위해 이탈리아에 가 있는 동안 푸케는 권력에서 밀려났다. 여러 해 동안 이탈리아에 머물러 있으면서 제노바에서 조각가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그곳에서 만든 뛰어난 작품으로는 산타마리아데카리냐노 교회에 있는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있다.

1669년 이후로는 주로 툴롱과 마르세유에 살면서 조각뿐만 아니라 건축과 선박 장식에도 관여했다. 까다롭고 약간 오만하기까지 한 성격 때문에 루이 14세의 강력한 새 재정총감인 콜베르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고, 말년에 들어서야 가까스로 왕궁으로부터 약간의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1683년 〈크로토나의 밀로〉는 베르사유로 옮겨졌으며, 1684년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Perseus and Andromeda〉가 거기에서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곧 경쟁자들이 꾸민 음모에 희생되어 왕궁에서의 출세는 단명하고 말았다.

베르사유를 위해 설계한 작품들 가운데 뛰어난 평부조 〈알렉산드로스와 디오게네스 Alexander and Diogenes〉(1671~93경, 루브르 박물관)는 베르사유에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어떤 작품들은 거절되기도 하여 퓌제는 이 일들로 인해 크게 상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