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케

푸케

다른 표기 언어 Nicolas Fouquet
요약 테이블
출생 1615, 파리
사망 1680. 3. 23, 프랑스 피녜롤
국적 프랑스

요약 루이 14세 치세 초기 프랑스의 재무장관.
Fouquet는 Foucquet라고도 씀.

최후의 쉬르앵탕당(surintendant:총감독관)이었으며 횡령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출세에 종지부를 찍었다.

부유한 선주이자 왕실 행정관의 아들로 태어난 푸케는 프롱드의 난(1648~53) 때 막강한 마자랭 추기경과 왕실정부를 지지했다.

1650년 파리 장관의 검사장 자리를 돈으로 산 뒤 1653년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그는 마자랭을 돕기 위해 상당한 액수를 국고에 대부했고 그 대가로 마자랭의 지원을 받으며 사실상 왕의 물주가 되었다. 그는 비합법적인 방법(당시의 관행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음)으로 수많은 금융조작을 해서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마자랭이 죽자(1661. 3) 마자랭의 개인적인 앵탕당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장 바티스트 콜베르가 그에 대한 왕의 신임을 허물어뜨림으로써 재무장관 직위를 차지하려 했다. 콜베르는 푸케의 불법적인 회계처리를 폭로하고 그가 금융조작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고발했다.

푸케는 1661년 9월 체포되었으며 3년간 계속된 그의 재판은 일반인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콜베르는 의문의 금융거래에서 많은 부분이 마자랭에게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밝힌 신문들을 발매금지시켰다. 그러나 푸케는 솜씨좋게 자신을 변호했고 여론은 그를 지지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1664년 12월 20일 푸케는 추방선고를 받았으나 루이 14세는 그를 무기금고로 감형했다. 그는 피녜롤 요새에 수감되었고 사면조처가 취해지기 직전에 그곳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