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블로 인디언

푸에블로 인디언

다른 표기 언어 Pueblo Indians

요약 선사시대 아나사지족(→ 아나사지 문화)의 후예.

미국 애리조나 주 북동부와 뉴멕시코 주 북서부 곳곳의 푸에블로(스페인어로 '읍', '촌락'라는 뜻)라는 밀집된 영구 정착지에서 살았다.

선사시대의 아나사지족 사이에 지역적인 다양성이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푸에블로 인디언 사이에서도 문화적·언어적 다양성이 존재한다. 현대의 푸에블로 인디언은 동부와 서부 집단으로 나뉜다. 동부 집단은 리오그란데 강 유역 뉴멕시코의 모든 푸에블로 인디언을 포함하며, 서부 집단은 애리조나 북부의 호피족과 뉴멕시코 서부의 주니족·아코마족·라구나족을 포함한다. 언어적으로 이들은 4개의 집단으로 구분되며 다시 몇 개의 소집단으로 나뉜다.

동부 집단은 테와어와 케레스어를 사용한다. 테와어는 유토아스텍어와 약간의 관련이 있으나 케레스어의 경우는 다른 언어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 서부 집단 가운데 아코마족과 라구나족은 케레스어를 사용하며, 주니족은 페누티어족에 속하는 호피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호피족 가운데 리오그란데 강 유역에서 피신한 테와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하노 부락에서는 다른 언어가 쓰인다.

푸에블로 인디언은 기본적으로 농경에 의존하나 농법 및 토지소유의 형태는 집단마다 다양하다.

리오그란데 강 유역에서는 하구의 관개지에서 옥수수·목화 재배가 이루어진다. 오늘날에는 남자들이 모든 농사일을 하지만, 예전에는 사냥을 중요시하여 여자들이 농사일을 했다. 이 지역의 푸에블로 인디언 사회에는 산악지대에서 사슴과 영양을 사냥하는 특별한 수렵공동체가 있었으며, 타오스족이나 피쿠리스족 같은 동부 집단들은 가끔 평원에서 들소를 사냥하기도 했다. 푸에블로 인디언은 공동체 단위로 토끼를 사냥했으며, 여자들은 야생식물을 채집했다.

호피 인디언을 비롯한 서부 집단 사이에서는 기후가 건조하여 농경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낮았다. 스페인인들과 접하기 전 푸에블로 인디언의 각 부락은 종교지도자들의 회의체를 통해 자치적으로 다스려졌다. 부락의 종교집단은 지하 의례실이자 남자들의 사교를 위한 공간 역할을 했던 키바(kiva)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스페인인이 들어온 후 선출된 관리가 1년 동안 마을의 우두머리가 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유럽인들과 접하면서 원래 80여 개에 이르던 푸에블로 부락의 수가 25~30개로 크게 감소했다. 일반적으로 푸에블로 인디언은 평화를 애호했다. 그러나 1680년 테와족의 포페 지휘하에 모든 푸에블로 인디언이 봉기하여 12년에 걸쳐 스페인인들을 영토에서 완전히 몰아냈는데, 이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대(對) 백인투쟁사에서 필적할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승리였다.

오늘날 푸에블로 인디언의 생활은 푸에블로의 강한 신정(神政) 전통에도 불구하고 정치 단위이기도 한 촌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부 집단에는 씨족과 혈통집단 외에 특정한 씨족의 지배를 받는 비밀결사체가 있어 부족의 번영과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부족들 사이에서 널리 행해지는 카치나 의식은 조상숭배를 중심 내용으로 하며, 남성들의 결사체는 부족의 안녕과 풍요의식을 담당한다. 리오그란데 지역에서는 부족이 여름과 겨울 집단으로 나뉘어 번갈아 부족의 생활에 책임을 진다. 이곳의 비밀공동체에서는 주로 치료의식을 담당하며, 카치나 숭배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덜 발달해 있다.

한편 호피족 사이에서는 토속 예술과 공예가 특히 성행한다. 직조와 바구니 제조가 이루어지며 1890년대 이후에는 호피족과 테와족이 도자기 제조 기술을 재생시켰다. 대부분의 푸에블로 인디언 사이에서는 은과 터키옥이 생산되나 은세공은 전통적인 기술이 아니다.

푸에블로 인디언은 스페인 정복 이전의 생활방식을 상당히 많이 간직하고 있었으나 점차 가축, 금속용구, 밀과 칠리후추 같은 새로운 곡물, 현대적인 의류, 자동차, 라디오, 텔레비전 등을 보유했다. 이러한 생활 변화로 인해 사상과 생활태도, 전반적인 세계관이 변화되었다. 그러나 샌타페이와 앨버커키 근처의 리오그란데 푸에블로 인디언은 기본적인 사회조직, 공동체 조직, 전통신앙 등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